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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게시판 내 결과

  • 7. 3부통합1920년대는 총적으로 볼 때 반일애국력량의 단일전선에로의 통합촉성기였다고 말할수 있다. 민족의 전도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선각자들과 애국지사들은 독립의 기초가 반일력량의 통일단결에 있음을 확신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로씨야에서의 사회주의10월혁명과 3.1인민봉기의 영향밑에서 새 사조의 보급과 함께 급속히 태여난 여러개의 로동운동단체들은 1920년대중기에 와서 조선로농총동맹으로 통합되였다. 반일애국세력을 한데 묶어세우기 위한 작업은 민족주의진영에서도 진행되였다.1927년에는 민족단일당조직의 기운…

  • 6. 안창호의 시국대강연1927년 2월 길림의 교포사회는 전례없는 환영일색으로 들끓었다. 상해림시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있던 독립운동의 원로 안창호선생이 베이징을 거쳐 길림에 도착하였던것이다.길림의 교포들은 안창호를 국가수반 못지 않게 성대히 영접하였다. 우리도 《거국가》를 부르며 그를 진심으로 환영하였다. 《거국가》란 안창호가 외국으로 망명할 때 조국을 하직하면서 지은 노래이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라는 구절로 시작되여 《나 간다고 설워 말아 나의 사랑 한반도야》라는 구절로 끝나는 이 《거국가》는 《한일합…

  • 5. 단결의 시위조직이 꾸려지고 늘어나는데 따라 우리는 실천투쟁에 들어갔다.그 서막으로 된것이 1928년 여름에 있은 길림육문중학교 동맹휴학이였다.그때까지 육문중학교에서는 식당과 재정관리, 도서관운영에 이르기까지 학교관리운영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진보적인 교원들과 학생들의 민주주의적의사에 따라 순조롭게 풀어나가고있었다. 교내에서의 우리의 활동도 큰 구속을 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진행되였다. 이것은 육문중학교 학생들이 학교교무위원회와의 협동밑에 투쟁을 통하여 쟁취한 열매였다.그런데 군벌들의 조종을 받고있던 반동교원들은 …

  • 4. 조직을 확대하기 위하여반제청년동맹과 공청을 내온 다음부터 우리는 활동무대를 광할한 지역에로 넓혀나갔다. 공청과 반제청년동맹의 핵심들이 조직을 확대하기 위하여 꼬리를 물고 길림을 떠나갔다.나도 그때 학생의 몸이지만 여러 고장들에 나가군 하였다. 길림에서 몇백리 떨어진곳들에도 자주 다니며 새로운 활동무대를 개척하였다. 토요일 저녁차로 길림을 떠나 교하, 카륜, 고유수와 같은 고장들에 갔다가 다음날 밤차로 돌아오군 하였는데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때에는 결석도 하였다. 리광한교장이나 상월선생을 제외한 대다수의 교원들은 그것을 몹시 이…

  • 3.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ㅌ. ㄷ》성원들과 비밀독서조성원들의 활동에 의하여 맑스ㅡ레닌주의사상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여가자 청년학생들의 사상의식에서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선진사상은 그들로 하여금 점차 력사와 민족앞에 지닌 자기들의 임무를 깊이 자각하게 하였다.우리는 청년학생들의 의식화를 위한 사업을 계속하면서 그들을 여러가지 조직에 묶어세워나갔다. 조직을 통해서만 맑스ㅡ레닌주의사상을 더 널리 보급할수 있었고 핵심력량도 더 빨리 키워낼수 있었다.나의 혁명활동은 청년학생운동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우리가 혁명활동을 청년학생운…

  • 2. 상 월 선 생나에게 《자본론》을 안내해준 선생이 박소심이라면 고리끼의 《어머니》와 《홍루몽》을 소개해준 사람은 상월선생이였다. 상월선생은 육문중학교의 어문교원이였다.상월선생이 육문중학교의 교원으로 부임되여온 얼마후였다. 베이징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한 새 어문교원이 학교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모두 어문시간을 기다리였다.그러나 신임교원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한가닥의 불안도 없지 않았다. 교육청이 특무를 어문교원으로 배치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였다. 교육청이 파견하는 육문중학교 교원들가운데는 군벌당국에 매수된 불순…

  • 제3장 길림시절1. 선진사상의 탐구나는 집에서 한달가량 머무르다가 설까지 쇠고 이듬해 정월중순에 무송을 떠났다. 내가 길림에 도착한것은 행인들의 왕래가 번잡한 한낮이였다. 길을 물을 때마다 아버지친지들의 주소가 적혀있는 수첩을 꺼내들고 언손을 놀려가며 종이장을 번지는것이 거치장스러울것 같아서 나는 미리 내가 찾아야 할 거리와 번지들을 머리속에 다 외워두었다.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대도시의 번창한 풍경은 첫 순간부터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지대에서만 살아온 나를 위압하는상 싶었다.나는 개찰구를 나선 다음에도 가슴을 치미는 흥분때문에 걸…

  • 3. 타도제국주의동맹화성의숙의 시대적락후성은 나로 하여금 낡은 방식대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총 몇자루를 가지고 소규모의 무장단성원으로 압록강을 넘나들면서 왜놈순사나 몇놈 처단하고 군자금이나 모으러 다니는것과 같은 투쟁방법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굳어졌다.나는 새로운 방법으로 조국광복의 길을 개척해야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품게 되였다. 새 길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나의 동무들도 견해가 같았다.그런데 그런 견해를 가지고있는 학생이 몇명 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새 사조를 …

  • 3. 독립만세의 메아리아버지는 몹시 추운 날에 집을 떠났다.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였다. 못먹고 못입는 우리들한테는 추위도 큰 원쑤였다.날씨가 좀 따스해지자 할머니는 조금 있으면 증손이의 생일이 되겠구나 하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생일때면 꽃이 피고 북쪽으로 간 아버지도 추운 고생을 덜하겠지만 춘궁기에 나의 생일을 어떻게 하면 섭섭치 않게 해줄것인가 하는데서 오는 걱정이였다.우리 집에서는 농량이 떨어지는 봄철이지만 내 생일이면 흰쌀밥 한그릇과 백하를 두고 지진 닭알을 밥상에 놓아주군했다. 죽도 제대로 못먹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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