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국제반제력량과 련합하여1. 하바롭스크회의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3(1984)년 여름 쏘련과 동구라파 사회주의나라들에 대한 력사적인 공식친선방문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오시던 도중 하바롭스크에 들려 하루동안 머무르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원동의 훈련기지에서의 생활과 하바롭스크회의를 두고 감회깊은 회상의 말씀을 하시였다.하바롭스크는 내가 한번 와보고싶었던곳입니다. 요전에는 만주리로 해서 쏘련으로 들어왔기때문에 하바롭스크에 들릴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하싼으로 해서 두만강역을 거쳐 귀국하는것으로 로정을 잡았기때문에 이고장에서 하…
3. 국제당의 련락을 받고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의 나날에 조선혁명을 자주적으로 이끄시는 한편 국제혁명력량과의 련대를 위해서도 많은 로고를 바치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말ㅡ1940년대초에 국제당이나 쏘련과의 련계가 심화되여 조선혁명의 국제적판도가 더욱 넓어지고 조중공동항일이 조선, 중국, 쏘련을 포괄하는 보다 높은 형태의 새로운 투쟁단계에로 발전하던 력사적시기를 두고 아래와 같은 회상교시들을 남기시였다.우리가 여러해동안 두절되였던 국제당과의 련계를 다시 회복한것은 1939년이였습니다. 대부대선회작전을 앞두고 모두가…
3. 수십만의 《대토벌군》과 맞서일제는 1939년 가을부터 1941년 봄까지 동남부 3개 성에 대한 《치안숙정특별공작》의 명목밑에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미증유의 《대토벌》을 감행하였다.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작전의 주담당자였던 노조에와 그산하 《토벌》대장들의 패전고백을 담은 글을 보시다가 해당 일군들에게 《호언장담을 즐기는 일본군이 이렇게 김빠진 소리를 한걸 보면 그들도 그때 몹시 혼이 난것 같소. 우리 동무들의 고생이야 더 말해 뭘하겠소.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결전이였소.》라고 하시면서 적아의 대결에 대하여 상세히 회상하…
3. 소금사건1949년 6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공화국내각소회의를 지도하시였다. 회의에서는 소금배급제를 페지하고 자유판매제를 실시할데 대한 문제가 토의되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날 회의를 결속하시면서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시기 체험한데 의하면 소금이 떨어졌을 때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에서 싸울 때 쌀은 떨구는 일이 있어도 소금만은 떨구지 않기 위하여 애썼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소금생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예비까지 조성할수 있게 되였으니 이제는 소금을 자유판매하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다.소금을 자유로 팔고사…
3. 독립군의 마지막부대《시일야방성대곡》으로 몸부림치던 망국조선의 력사무대에 무력항쟁의 기발을 들고 등장한 독립군은 의병투쟁과 애국문화계몽운동을 비롯하여 합법, 비합법, 폭력, 비폭력의 각이한 투쟁을 통하여 국권수복의 뜻을 이루려고 필사적으로 싸워온 이 나라 애국지사들의 피끓는 독립열망과 눈물겨운 로고의 열매였다. 비록 시대에 뒤떨어지고 민중적지반이 박약한것으로 하여 조락의 길을 걷기는 하였지만 독립군은 민족운동진영의 유일한 반일무장력이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원이나 구걸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총검으로써 일제를 타승하려 한 독립…
3. 농민을 준비시키던 나날에중일전쟁발발후의 새로운 정세는 전민항쟁준비를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우리는 힘을 미리 길렀다가 때가 오면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작전에 전민항쟁을 배합하는 방법으로 조국광복을 이룩할 구상을 점차 무르익혀나갔다.농민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있던 우리 나라에서 그들의 참가없이는 전민항쟁이 성립될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농민은 로동자들과 달리 조직성과 의식성이 부족하기때문에 혁명의 주력군으로 삼기 곤난하다고 하였으나 우리는 견해를 달리하고있었다. 옳바른 지도가 보장되고 조직적으로 결속만 된다면 농민대중도 거…
3. 지양개군민련환대회보천보를 치고 귀로에 오른 대렬이 구시골에 들어서자 대원들은 지휘관들을 통하여 나에게 하루의 휴식을 제의하였다. 그때까지의 항일전쟁행정에서 대원들이 사령부에 휴식을 요구한 전례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피곤이 겹쌓였으면 그들이 그런 제의를 하였겠는가. 사실 그무렵에 우리 대원들과 지휘관들은 단 하루도 편안하게 쉬여본적이 없었다. 곤장덕에 가서도 만 하루를 지냈지만 모두가 열에 떠서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피곤이라는것을 몰랐다. 그런데 전투가 일단락을 짓게 되자 어느새 대오를 지배하고있던 탕개가…
3. 경위대원들나는 생애의 많은 부분을 전장에서 보냈다. 항일전쟁 15년에 반미대전 3년을 합치면 스무해 가까운 세월을 포연탄우속에서 보낸것으로 된다.그런데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천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단 한번의 상해도 입지 않았다. 항일전쟁시기 유격부대들에서는 이신작칙을 몹시 강조하였다. 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는 언제나 지휘관들이 서있었는데 그들은 이신작칙을 하는데서 보람을 찾았다. 공격할 때에는 대오의 앞장에 서고 퇴각할 때에는 대오의 뒤에 서서 전우들을 돌보는것이 인민혁명군지휘관, 정치일군들의 기풍이고 도덕으로 되여…
3. 백두산기슭에서의 싸움우리가 백두산으로 나온 다음 장백땅이 자리잡고있는 동변도, 특히 북부동변도일대는 관동군과 만주국치안당국에 있어서 매우 골치아픈 최대의 《치안불량지대》로 되였다.일만군경의 모든 신경은 동변도로 쏠리게 되였다. 신문지상에는 장백땅의 소란스러운 사변들에 대한 기사들이 그칠새없이 나돌았다. 그전만 해도 치안량호지대로 치부되여왔던 백두산기슭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였다.일본침략자들은 만주강점직후부터 조선과 함께 만주를 아세아제패의 전략적기지로 만들기 위하여 동변도의 치안에도 깊은 주목을 돌리였다.동변도는 중국의 북양정…
5. 《3.1 월간》인류생활에 미치는 출판물의 위력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가 다 인정하고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어 과거의 온갖 세계는 몇개의 미개한 민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몇권의 책에 의하여 지배되여왔다고 말하고있다. 력사는 이미 사회를 개조하고 발전시키는데서 출판물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에 대하여 충분히 증명하였다. 세계를 움직이는것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움직이는것중의 하나가 정의와 진리를 대변하는 량심적인 지성인들과 시대의 선각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출판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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