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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게시판 내 결과

  • 2. 상 월 선 생나에게 《자본론》을 안내해준 선생이 박소심이라면 고리끼의 《어머니》와 《홍루몽》을 소개해준 사람은 상월선생이였다. 상월선생은 육문중학교의 어문교원이였다.상월선생이 육문중학교의 교원으로 부임되여온 얼마후였다. 베이징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한 새 어문교원이 학교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모두 어문시간을 기다리였다.그러나 신임교원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한가닥의 불안도 없지 않았다. 교육청이 특무를 어문교원으로 배치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였다. 교육청이 파견하는 육문중학교 교원들가운데는 군벌당국에 매수된 불순…

  • 제3장 길림시절1. 선진사상의 탐구나는 집에서 한달가량 머무르다가 설까지 쇠고 이듬해 정월중순에 무송을 떠났다. 내가 길림에 도착한것은 행인들의 왕래가 번잡한 한낮이였다. 길을 물을 때마다 아버지친지들의 주소가 적혀있는 수첩을 꺼내들고 언손을 놀려가며 종이장을 번지는것이 거치장스러울것 같아서 나는 미리 내가 찾아야 할 거리와 번지들을 머리속에 다 외워두었다.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대도시의 번창한 풍경은 첫 순간부터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지대에서만 살아온 나를 위압하는상 싶었다.나는 개찰구를 나선 다음에도 가슴을 치미는 흥분때문에 걸…

  • 3. 타도제국주의동맹화성의숙의 시대적락후성은 나로 하여금 낡은 방식대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총 몇자루를 가지고 소규모의 무장단성원으로 압록강을 넘나들면서 왜놈순사나 몇놈 처단하고 군자금이나 모으러 다니는것과 같은 투쟁방법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굳어졌다.나는 새로운 방법으로 조국광복의 길을 개척해야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품게 되였다. 새 길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나의 동무들도 견해가 같았다.그런데 그런 견해를 가지고있는 학생이 몇명 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새 사조를 …

  • 3. 독립만세의 메아리아버지는 몹시 추운 날에 집을 떠났다.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였다. 못먹고 못입는 우리들한테는 추위도 큰 원쑤였다.날씨가 좀 따스해지자 할머니는 조금 있으면 증손이의 생일이 되겠구나 하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생일때면 꽃이 피고 북쪽으로 간 아버지도 추운 고생을 덜하겠지만 춘궁기에 나의 생일을 어떻게 하면 섭섭치 않게 해줄것인가 하는데서 오는 걱정이였다.우리 집에서는 농량이 떨어지는 봄철이지만 내 생일이면 흰쌀밥 한그릇과 백하를 두고 지진 닭알을 밥상에 놓아주군했다. 죽도 제대로 못먹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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