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史 모두 다시 써야 하나? 3 .1운동은 상해로부터 점화(5부) 3.1운동, 임시정부, 파리강회회의는 함께 묶어서 보아야 한다. 김상구 2011.08.08 역사복원신문 2) 삼일운동은 상해로부터 점화되었다.1919년 12월 3일, 조선군참모부가 작성한 선내외일반정황을 보면 '朝鮮軍配置圖, 國外排日鮮人獨立運動關絡圖(조선군배치도, 국외배일선인 독립운동관련도)'라는 서류가 첨부되어 있다.1) ▲ 국외배일선인 독립운동관련도, 상해지역 인물에 김복이 보인다. © 김상구 이 연락도를 보면…
3.1운동의 핵심배후는 김규흥과 신규식 (4부) 3.1운동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이론은 역사발전을 위해 재고되어야 일제가 파악한 3·1운동의 배후1) 김복과 신정이 모든 일의 배후이다.1919년 8월 23일 조선총독부(朝鮮總督官房外事課長)가 일본외무성정무국장(埴原正直)에게 보낸 기밀문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1) ▲ 파리강화회의, 임시정부 수립, 삼일운동의 배후로 김복(김규흥)과 신정(신규식)을 지목하고 있는 일제의 기밀문서 《즉 민족자결주의를 부르짖고 조선의 현상을 호소하여, 미국 및 세계 여…
3.1운동 민족지도자 33인에게 선고된 가벼운 형량 (3부) 일제는 33인이 3.1운동의 실질적인 주모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김상구 2) 33인의 민족지도자에게 선고된 형량3·1 운동에 대한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건 명칭은 .조선만세소요사건‘(朝鮮萬歲騷擾事件)이고, 기본적 시각은 ‘소요’(뭇사람이 들고 일어나서 폭행·협박을 함으로써 한 지방의 공공질서(公共秩序)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였다.<삼일운동참가자의 형량> 무기 유기형 벌금 구류 과료 태형 합계 10년 이상 5년 이상 2년 …
일제가 파악한 3·1운동의 전개과정 1) 우리가 몰랐던 민족대표 33인의 허상 김상구 민족대표를 자처했던 사람들이 정작 시위현장인 탑골(파고다) 공원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선언문 낭독 장소로 택한 곳은 태화관이란 요정이었고, 참석자도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4명이 불참한 29명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은 너무나 관대했다. 적극적인 친일행위자로 변절했던 박희도, 정춘수, 최린 그리고 유일하게 무죄를 선고받았던 길선주(그가 2009년 제64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된 사실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3.1독립운동史 모두 다시 써야 하나? (1부) - 동제사, 신한청년당과 신규식, 김규흥을 중심으로 - 김상구 컬럼 1. 머리글-3.1 운동의 의의와 의문점현행 대한민국 헌법에는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그리고 <4·19>이다. 특히 <3·1운동>은,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헌법이 개정되었지만 3.1 운동이란 단어 자체가 누락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만큼 3·1운동은 우리 민족에게 역사적 의미가 크다…
김규흥은 신해혁명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인 (3부) 범재 김규흥이 제1차 신해혁명에 참여했다는 증거들 3. 제1차 신해혁명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인, 공화주의자 김규흥3-1) 기존 학설의 문제점“예관은 중국혁명의 성공이 조국의 독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 성공을 위하여 스스로 중국혁명에 참가하여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신해혁명에 참가하였으며…”<신승하, 1989「한국독립운동가열전, 예관 신규식」p55『 독립운동가열전』한국일보사>상기 글의 논자인 신승하 교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은 신규식…
23. 미 CIC의 소환조사 그 여론조사는 ①현재 경비대 군인 중에서 존경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 ②그 이유를 물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군인들은 존경하는 군인으로 김익렬 전 연대장, 증오하는 군인으로는 박진경 대령을 꼽았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김익렬 전 연대장은 항상 군인은 국가방위가 주목적이고 애국애족만이 충성의 본질이라고 말해왔다. 제주도 폭도토벌 작전때도 군기(軍紀)지시에서 ①무기를 가지지 않은 비전투원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사살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②민간에서 한 톨의 곡식이라도 약…
19. 최고 수뇌회의 ① 귀순공작의 성공으로 제주도 전역에 전투가 종식되고 완전진압이 눈 앞에 보이던 중 경찰의 방해공작과 귀순폭도들의 잇단 피살로 폭동이 재연되는 상황으로 급변하고 만다. 당황한 미군정청장관 딘 장군은 직접 제주도에 내려와 현지에서 대책을 세우기 위하여 제주읍에 비래(飛來)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대령은 나와 함께 회의준비를 하였다. 맨스필드 대령과 드루스 대위는 사전에 나에게 자기들의 난처한 입장을 설명하고(딘 장군이 자기들의 건의를 들어주지 않고 강압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상황을 상…
15. 귀순.평화회담 ④ 나는 먼저 오늘 당장 지서습격 등 일체의 전투행위를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김달삼은 전도에 연락하려면 시간이 걸리므로 즉각 전투행위 중지는 불가능한 일이며 5일후 전투중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그런 대답에 나는 불쑥 의심이 들었다. 김달삼이 유일한 폭동두목이 아니라 다른 두목들이 여러 명 있어서 닷새간에 자기들끼리 회합을 가져 합의에 의하여 결정하려는 수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자와의 합의가 무의미했다. 만일 폭도의 두목이 몇명 더 있다면 각자의 견해가 다를 것이며 그 …
12. 귀순‧화평 회담 ① 그때의 판단으로는 폭도의 조직이 여럿인지 단일 조직인지, 지휘자가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간 두목으로 지목된 수많은 이름이 명단에 올랐고 또 자칭 우두머리라는 자도 많았다. 나는 우리의 회담당사자는 ①전도의 폭도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실력과 권한을 가진 자라야 된다 ②본인이 직접 나와야지 대리인은 안된다 ③회담에서 결정한 사항은 즉석에서 결정되고 실행되어야지 타인(다른 실력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자는 만나지 않겠다는 등 이상과 같은 조건을 내세웠다. 한편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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