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의 기업, 무엇이 신자유주의를 불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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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의 단상
지난주에는 진보ㆍ개혁 버전의 성장담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특히 집권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집권과 동시에 성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정책이나 복지문제 일변도로 흐르는 진보ㆍ개혁 담론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복지수준의 향상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복지수준의 향상 없이 안정적 성장을 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복지만으로는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산업구조 조정과 자본시장의 육성 등 경제ㆍ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성장담론을 필요로 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또 얼마나 열린 자세로 접근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오늘은 신자유주의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주 강의와 연관된 것이죠. 이 주제 역시 상당히 논란이 따를 수 있습니다. 기억하시겠습니다만 참여정부 내내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서는 성장의 이야기도 분배의 이야기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도중에 참여정부가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아며, 또 왜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전에 짤막하게 다른 이야기 하나 하고 가겠습니다. 어제가 5월 23일, 노무현대통령님 2주기였죠. 저는 봉하마을에 가지 않고 제주도에 갔습니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추모세미나에 기조강연을 하러 간 것입니다. 봉하마을에는 많은 분들이 모이니, 오히려 다른 지역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여정부 때 시행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 예컨대 해군기지 문제와 영리 의료법인 허용문제,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 문제와 자치계층(시ㆍ군) 폐지문제 등에 관해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죠. 대통령에 대한 추모열기가 뜨거운 가운데서도 참여정부의 이러한 정책에 대한 비판과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추모열기 만큼이나 비판도 강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을 다 드렸습니다. 오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모임들이 많으면 좋겠고, 저처럼 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때그때 마다 가서 설명도 하고, 새로운 정책방향을 모색하기도 하면 좋겠다고요. 한 곳에 모여 하나의 이벤트로서의 추모집회를 하거나 친목 겸해 모임을 할 것이 아니라 전국으로 흩어져 공부하고 토론하면 좋겠다는 것이죠. 너나없이 한 곳에 모여 ‘노무현’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노무현 정신’에 가까운 일 아닐까 생각했죠.
신자유주의의 배경 - 무너지는 국가 간의 벽
제주도 다녀 온 직후라 생각난 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미국유학을 간 것이 1970년대 말입니다. 요즘 유학가시는 분들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그때는 속칭 ‘유학고시’를 쳐야 했습니다. 유학생 자격시험이었죠. 국가시험이었어요. 국사와 가고자 하는 나라의 언어......... 저 같으면 영어가 되겠죠, 그리고 논술을 쳤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다들 노이로제가 걸리다시피 했죠. 가고 싶은 학교에서 입학허가서를 받아도 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유학생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 겁니다. 유학생 여권을 못 받으면 회사의 주재원 등으로 위장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지요. 비정규 유학생이라는 건데, 쉽지 않은 일이었죠. 합격자도 1년에 몇 백 명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전 전공분야에서 말이지요. 저도 이 시험이 없어진다는 소문이 있어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가 뒤 늦게 없어지지 않는 것을 알고 공부를 했는데,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그 때 시험문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이야기죠. “유학 가는데 무슨 국가시험까지 치고 가냐?” 하겠죠. 하지만 그랬습니다. 출입국을 엄격히 제한 할 때였습니다.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꼭 이런 형식은 아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출입국을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제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는 정말 나라와 나라 사이에 높은 담이 쌓여 있었습니다. 관세를 통해 물건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면, 수입규제로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리기도 했죠. 생각의 흐름도 막았습니다. 나갈 때는 사상교육 비슷한 것도 받고 ‘위험한(?)’ 책은 가지고 들어오지를 못했죠. 사람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장벽을 치곤했습니다. 비자발급을 다들 엄격하게 했죠. 특히 우리의 경우 외환을 가지고 나가는 것은 엄격히 통제 했습니다.
이렇게 나라와 나라 사이에 관세, 수입규제, 비자, 여권과 같은 큰 벽돌들이 쌓여 높은 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가 유학 마치고 들어올 때도 그랬습니다. 가지고 있던 책을 제법 버렸습니다. 가지고 들어오면서 말썽이 될까봐......... 그런데 그때 버린 책들이 별거 아닙니다. 요즘 같으면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책들이었습니다.
이제 나라와 나라 사이의 담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비자라는 벽돌도, 관세와 수입규제라는 벽돌도, 또 사상검열이라는 벽돌도 하나하나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여권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시험 쳐가며 받을 일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제한 없이 내주죠. 사람이나 사상이, 또 물건이나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다니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는 거죠.
Globalization, 즉 세계화입니다. 이 세계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한번 볼까요? 상식적인 것이니까 그냥 지나가듯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안 보셔도 됩니다.
먼저 <그림 1>인데요. 세계 교역량 추이입니다. 국가 간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서로 사고팔고 하는 거죠. 1991년부터 2011년까지의 추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보시는 바와 같이 2008년의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상승해 왔습니다. 그 속도도 매우 빠르죠. 2000년의 교역량을 100으로 보았을 때, 1990년대 초에는 50도 채 안 됐던 것이 2011년에 와서는 170~180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불과 20년 만에 3.5배 늘어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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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레짐(regime)
세계 단일시장 vs. 국지적 정부(Global Market vs Parochial Government)
먼저 기업과 국가의 위상변화인데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기업........ 즉 민간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이 국가 또는 정부 위에 올라서버렸습니다. 국가보다 힘이 더 세 져 버린 것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와 시장이 글로벌화 되었죠.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겁니다. 그런데 기업을 비롯한 경제 주체들을 규율하고 규제하는 국가권력은 여전히 ‘지역적’ 또는 ‘국지적’입니다. 영어로 말해 parochial 한 것이죠. 시장은 세계 전체를 단위로 하는데 규제를 하고 세금을 매기는 국가나 정부는 여전히 동네 단위라는 말씀입니다.
이러다보니 기업들이 국가를 ‘쇼핑’하고 다닙니다. ‘당신들은 세금을 얼마 깎아줄래.’ ‘당신들은 규제를 어떤 걸 풀어 줄 건데.’ ‘당신들은 우리한테 땅을 얼마나 줄 거고, 행정편의는 얼마나 봐 줄래..........’ 이러면서 쇼핑을 하고 다녀요.
2007년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 대통령 특사로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기업들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죠. 글로벌 기업 CEO들의 위상이 대단했습니다. 주요 국가의 국가원수와 동격의 대접을 받는 것 같았고요, 카메라도 줄곧 그들을 따라 다녔습니다. 웬만한 나라의 장관들이나 작은 나라의 국가원수들은 그들의 큰 키에 가려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저는 델라웨어(Delaware) 주에 있었습니다. 인구가 60만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주죠. 인구수로 보면 아마 미국에서 제일 작은 주일 겁니다. 이 주의 특징 중의 하나가 소비세, 그러니까 sales tax가 없습니다. 미국서 물건을 사다보면 적지 않은 소비세를 내죠. 통상 3~6% 정도 되지만 높은 지역은 그 이상도 됩니다. 그런데 델라웨어에는 그게 없는 거죠. 없어도 괜찮을 만큼 재정에 여유가 있거나, 아니면 이를 없애는 것이 기업유치나 재정확보에 더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더 재미있는 현상이 눈에 띄는데요. 다름 아닌 기업유치 전략입니다. 한 때는 Fortune 500, 즉 미국 내 500대 대기업의 60%가 델라웨어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기업을 유치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결국은 세금을 깎아주거나 규제를 세일즈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기업이 들어올 수밖에 없지요. 그것도 회사 전체가 다 옮겨 오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 일은 뉴욕 같은 데서 하고, 여기는 작은 사무실 하나 내어 놓고 그곳을 본사라 하는 거죠. 수익이 델라웨어 본사에서 발생하도록 회계처리나 하면서 말이지요. 델라웨어도 재미보고 기업도 재미보고 하는 거죠.
문제는 다른 주에 있습니다. 기업을 뺏기게 되니까요?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연히 기업에 사정을 하거나 규제나 세금을 같이 세일즈 할 수밖에요. 특히 인구규모가 작은 주들은 이런 부분에 있어 빨리 움직입니다. “델라웨어가 재미를 보는데, 우리라고 재미 못 보란 법이 있나?” 이렇게 되는 것이죠. 결국 주정부 간에 경쟁이 붙으면서 기업이 어부지리를 얻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글로벌 차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죠. 기업들이 여기를 갈까 저기를 갈까, 여기에 투자할까 저기에 투자할까 쇼핑을 하고 다닙니다. 세계적인 기업인 코닝이 한 때 우리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죠. “우리한테 뭘 해 줄 거야?” “그것 가지고 되겠어........ 좋아. 우리는 중국으로 가.”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기업이 국가권력 위에 올라 서 버린 거예요. 국가와 정부는 점점 더 쪼그라드는 모습을 보이고요. ‘Global Market, Parochial Government,’의 결과죠. 이게 저는 Globalization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경제이론과 이데올로기의 백업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 위에 다시 이데올로기와 경제이론이 붙습니다. 세계화가 일어나고, 그 속에서 기업이 국가 위에 서는 현상 등이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는 설명이 따르는 거죠. 자유주의경제이론이 백업을 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정부의 역할과 관련된 경제이론은 크게 두 줄기로 단순화할 수 있습니다. 개입주의와 자유주의죠. 개입주의는 소위 케인즈(Keynes) 이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리고 시장주의는 스미스(Adam Smith)나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그리고 시카고학파를 대표하는 프리드먼(Milton Friedman) 등의 이론들을 기초로 합니다.
미국에 경제공황이 오기 전에는 자유주의 경제이론이 상당히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결국 시장이 실패하면서 개입주의, 즉 케인지안 아이디어가 상당히 강세를 띠었습니다. 전통적으로 개입주의에 대해 좋은 감정이 별로 없는 공화당조차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흐름이 있었지요. 아이젠하워(Eisenhower) 대통령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그대로 이어갔지요. 소득세 최고세율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서 소득세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13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정 소득수준을 넘으면 그 이상의 소득이 얼마냐에 관계없이 단일세율(flat rate)로 3%를 과세했습니다. 실제로는 1% 정도의 부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가면서 20%대로 올라가고, 루즈벨트 대통령 시기에 들어서는 30%대, 40%대로 올라가고, 나중에는 최고세율이 90%대 까지 갔습니다. 이 세율이 민주당의 트루먼(Truman) 대통령을 거쳐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기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91%였습니다. 이후 조금 내렸다는 것이 89%였죠. 그만큼 개입주의의 바람이 강했다는 뜻이 됩니다. 세금을 거두고, 그렇게 만들어진 재정을 통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분위기였지요.
1970년대 들어 오일쇼크가 나면서 이러한 개입주의가 주춤합니다. 고용이 불안해지고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등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개입주의 경제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된 거죠. 그리고 이 틈에 자유주의 경제학이 조금씩 강세를 띠게 되고, 1980년대 들어와서 강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등장과 그의 경제정책 기조인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의 승세는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이 처럼 대세를 이루게 된 자유주의 이론이 세계화 현상을 백업합니다. 무역장벽은 더욱 완화되어야 하고, 사람과 자본의 이동은 더 자유로워져야 하며, 국가의 역할은 더 축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죠. 나라마다 규제완화의 바람이 불고, ‘down-sizing' 이라는 기치 아래 정부의 지출과 기구를 줄이느라 야단법석을 떨게 됩니다. 외국자본과 외국기업을 끌어 들이는 것이 곧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고, 그 가운데 기업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점점 더 높아져 갔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들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자유주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뛰는 actor들, 즉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미 존재하던 선수들도 더욱 맹렬히 뛰기 시작합니다. IMF, World Bank, WTO 같은 기관들이지요. 모두들 자유주의 질서를 무척이나 강조하는 기관들입니다. 그들이 권고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신자유주의의 한 가운데 서 있게 되지요.
여기에 각종의 평가기관들까지 전면 배치됩니다. S&P, Moody's, Fitch........ 이런 기관들이죠. 게다가 이런 기구 내지는 기관들도 있습니다. WEF(World Economic Forum),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 등. 며칠 전에도 IMD 발표가 있었습니다. 신문에 커다랗게 났대요. 한국이 국가경쟁력 역대 최고 수준에 올랐다고....... 어떻게 조사한 것일까요? 기업인들에게 정부의 정책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를 물은 질문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조사였습니다.
여러분들, 이런 기관들의 이런 발표를 얼마나 믿으십니까? 정부에 있을 때는 말을 다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민간인 신분이니까 한마디 하죠. “이거 정말 믿어야 하나?”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 보십시오(그림 4). IMF 위기 전후의 우리나라 신용등급 변화를 나타내는데 IMF 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A-, A1 등을 유지하던 신용등급이 하루아침에 BBB- Baa2 등으로 떨어졌습니다. 10등급, 혹은 그 이상 강등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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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고도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지표를 발표하는 이들 기관에 꼼짝을 못하지요. 등급 잘못 받으면 외평채의 이자가 달라지고, 우리 기업도 비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또 이런 일 하기 위해 지불하는 수수료까지 달라지죠. 그러니 죽기 살기로 이들 기관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이들이 제시하는 스탠다드를 따라가야 하고요. 그래서 열심히 시스템도 고치고 관행도 고치고......... 규제완화 하라면 규제완화도 하고........ 따라가야죠. 이들의 스탠다드가 뭐겠습니까? 신자유주의 스탠다드죠.
WEF나 IMD지표는 어떻습니까? 이번에 22위인가 21위로 발표가 됐습니다만 이건 더 합니다. 한번 보십시오(그림 5). 경향신문에 난 그림을 옮겨왔는데 WEF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 23위가 됐다가 다음에 11위가 됐다가, 또 22위가 되죠. IMD 순위는 32위에서 이렇게 쭉 올라오고는 있습니다만 이렇게 연도마다 들쭉날쭉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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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설명 자료를 내지요. 이 지표의 어디가 잘못되고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됐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런 걸 누가 보기나 하나요. 참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총리실에 아예 팀을 둬 가지고 지표관리를 했습니다. 무조건 따라가기 위한 팀이 아니라 지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갈 건 따라가고 해명할 건 해명하고 하기 위해, 말하자면 다각도로 대응하기 위한 팀이었습니다. 다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자유주의 질서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지요.
레짐으로서의 신자유주의
제가 지금 무엇을 이야기 드리고 있습니까? 신자유주의가 만만치 않은 현상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Globalization, 즉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기업이 국가 위에 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아래 단단한 경제이론과 이데올로기가 받치고 있고, 전선의 전면에는 IMF다 IMD다 하는 ‘선수’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치경제적 환경에 명분과 이론, 그리고 이를 위해 뛰는 전사들까지 있습니다.
단단한 구조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일종의 ‘레짐(regime)’이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신자유주의 레짐이죠. 레짐이라 하면 우리는 흔히 ‘정권’이라는 말로 많이 쓰지요. 박정희 정권을 Park's Regime 이라 부르는 게 그 예죠. 그러나 원래 레짐이라 하면 일종의 구조화되어 있는 정치경제적 상호작용의 패턴을 이야기합니다. 박정희 정권은 오히려 Park administration이나 Park's administration이라 하는 것이 맞겠지요. Park administration은 박정희대통령이 죽으면서 끝이 났지만 권위주의 레짐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죠.
아무튼 이런 뜻에서의 신자유주의 레짐이 우리 시대에 그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습니다. 엄청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기업들이 막강한 군단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각종의 평가기관과 국제기구들이 첨병 역할을 하고, 뒤로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경제이론이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들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그러면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내용은 뭐냐? 길게 이야기 드릴 필요 없겠죠. 개방화, 규제완화, 민영화, 감세, 복지축소 이런 것들입니다. 많은 분들이 1989년의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라 함은 IMF와 World Bank, 그리고 미국의 재무성 등, 워싱턴에 있는 기관들이 중심이 되어 이룬 합의였죠. 재정을 함부로 확대하지 말자. 자유무역을 확대하자. 자본자유화를 확대하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자. 민영화를 추진하자........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내용에 대해 반대가 심하죠.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좌측에서만 반대하는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내용에 따라 우측에서도 반대가 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민정책과 노동시장의 개방문제입니다.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죠. 왜 문화와 종교가 다른 외국인이 들어와서 사회를 어수선하게 하고,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복지재정을 쓰고, 또 그러느라 세금을 거두고 하느냐는 거죠. 최근 유럽 내에서 회교권 국가 출신 이민자들에 대해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외국인 혐오를 강하게 표현하는 극우세력들이 자라고 있기도 합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만 해도 그동안 이러한 분위기에서 좀 떨어져 있었죠. 이입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죠. 사실 스웨덴 같은 나라의 경우 언어장벽이 있지 않습니까? 영어나 불어를 쓰는 나라와는 사정이 다르죠. 덜 들어온다는 말이죠. 대학만 해도 스웨덴 같은 나라는 주로 스웨덴 사람들이 다니죠. 영국이나 프랑스의 학교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지원해 주는 문제를 놓고 마찰이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나라까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지난 번 선거를 보니까 외국인 이입을 반대하고 높은 조세부담률을 반대하는 극우정당이 스무 개 정도의 의석을 얻었더군요. 300개 넘는 의석 중에 20개........ 극우 정당으로서는 대단히 선전을 한 것입니다. 영어나 독어 그리고 불어를 쓰는 국가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20% 선을 넘고 있습니다.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극우 정치인들이 상당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왜 제가 이 이야기를 굳이 드리느냐? 우리 사회의 많은 분들이 신자유주의를 하나의 팩키지로 인식하거나, 그에 대한 비판을 마치 진보나 좌파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때 장하준교수와 같은 발전경제론 학자를 두고 큰 혼란이 생기기도 했죠.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고 하니까 ‘같은 편’ 아니냐 했다가, 막상 책을 읽어 보고서는 ‘이건 또 뭐야’라는 반응을 보였죠. 팩키지로 묶어 생각하지도 말고, 편을 가르는 기준으로도 삼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양극화의 덫
그러나 어찌되었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주류는 아무래도 주로 좌측에서 많이 옵니다. 진보적일수록 강하게 비판하지요.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에서부터 결국은 세계 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란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판들이 있습니다.
저는 진보적 입장에서 쏟아 놓은 이러한 비판의 상당부분을 정당하고 옳은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양극화 문제도 그렇습니다. 국가 간의 빈부격차가 아닌 같은 나라 안에서의 빈부격차를 이야기합니다만....... 신자유주의적인 질서가 이러한 양극화를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잘 사는 나라들을 보죠. 당장에 문제가 생깁니다.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해서 돈을 벌수가 있어요. 글로벌 분업체제를 한껏 활용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죠. 글로벌 분업체제 아래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일자리를 외국으로 가져가 버리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자동화 전자화가 일어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이런 일까지 겹쳐 버리니 더 죽을 지경이죠.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을 쓴 리프킨(Jeremy Rifkin)은 2000년에서 2003년에 이르는 3년 동안 미국에서 약 3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역시 미국의 경우입니다만 흔히들 이야기하길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약 7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외국인 노동자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단순노동을 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되는 겁니다. 양극화,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어려운 사람은 더 어려워지는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죠.
이 양극화가 어떤 문제를 유발하겠습니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에 갈등을 만들죠. 이러한 갈등이 증폭되면서 사회 전체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같은 일이라도 훨씬 어렵게 풀어야 하고, 수많은 중요한 정책 사안들이 그 갈등 속에 옴짝달싹 못하고 갇히게 됩니다.
뿐만 아니죠. 양극화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구매력 자체를 저하시킴으로써 자본주의 경제 그 자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경제가 선순환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소비가 있어야 되는데,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구매력을 잃게 되면 그러한 소비가 일어날 수가 없죠. 성장이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다가오는 재정위기: 세금 ‘세일’
양극화 외에 또 하나 꼭 이야기 드리고 싶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재정위기 문제입니다. 정부 지출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지요. 양극화 구도 속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지는 데다 고령화 현상 등으로 국가가 돌보아야 할 대상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이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자유주의 구도 아래 정부들이 조세경쟁, 말하자면 세금을 ‘세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림 6>을 한 번 보실까요. OECD 자료를 바탕으로 제가 만든 표인데, 주요 국가들의 법인세 세율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빨간 막대는 1990년대 말의 법인세 세율입니다. 그리고 파란 막대는 2009년도의 법인세입니다. 10년 동안 어떻게 변했습니까? 거의 모든 국가가 법인세 세율을 내렸습니다. 2011년도에 들어와 일본도 법인세를 20% 목표로 내려가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지금이 약 40% 정도 되거든요. 반으로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작업이 진행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올해 당장 4.5%를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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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를 내린다고 해서 나갈 기업이 안 나가고, 또 들어오지 않을 기업이 들어오고 할까 요? 글쎄요?....... 기업은 법인세 세율만 보고 투자하지 않습니다. 노동력의 질이나 지리적 위치, 그리고 그 나라의 금융시스템이나 정보통신 기반 등 많은 변수들을 다 고려하게 되죠. 법인세 세율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하나의 변수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가가 이렇게 앞 다투어 내리고 있는 겁니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이야기도 되고 신자유주의의 논리와 이데올로기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도 됩니다.
상속세는 어떻습니까? 강만수장관이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우리 사회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었죠.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느냐?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요 국가 120개 중에서 70개 정도가 상속세를 거의 걷지 않거나 아니면 폐지를 했습니다. 최근에도 오스트리아와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상속세를 폐지해 버렸어요. 호주는 이미 10년 전에 폐지를 했지요.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상속세를 계속 거두면 어떻게 될까요? 상속세를 안 내는 나라로 돈을 빼 나가죠. 자본이탈 현상이 생기는 거죠. 합법적인 방법이든 불법적인 방법이든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겁니다. 그렇게 빼 나간 돈을 그 나라에서 자식들에게 상속하고, 그 자식은 나중에 ‘외자유치’ 운운하며 다시 가지고 들어오기도 하고....... 그러면 이 나라에서는 투자유치라 하여 특혜를 베풀고......... 대충 이렇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이 나라 저 나라 모두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아니면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이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세금을 ‘세일’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지요. 재정수요는 느는데 수입기반은 도로 줄어드는 판이니 어떻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림 7>을 한 번 봐 주시죠. 지난 10년 동안 국민의 조세부담률 변화, 즉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과 연금 및 공적보험 부담액의 GDP 대비 비율이 어떻게 변해 왔나를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오른 쪽으로 뻗은 막대는 늘어난 것을, 그리고 왼쪽으로 뻗은 막대는 줄어든 것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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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 조세부담률이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점차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와 고령화 문제 등을 고려한다면 말이죠. 당연히 늘어나는 쪽 아닙니까? 아니면 최소한 그대로 있어야겠죠. 물론 보수적인 견해가 있지요. 오히려 세금부담을 줄여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와 투자를 하게 되고, 결국 세수는 더 많이 들어오게 된다는 견해지요. 그럴까요? 지금도 논쟁이 한참 붙어 있습니다만 그렇지가 않다는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양극화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약해지고, 이로 인해 시장 자체가 동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는 말이지요.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수준의 조세부담률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나라에 따라 사정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주요 국가의 동향을 보십시오. 우리나라처럼 늘어난 나라도 있습니다만 적지 않은 국가가 그대로 있거나 아니면 도로 내려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정수요가 늘어나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지요. 참고로 우리나라가 늘어난 경우에 속하는 것은 그동안의 조세부담률이 워낙 낮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가 50% 안팎을 오간데 비해 우리는 늘 20%대 초반을 오르내렸으니까요.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죠.
하여간 이렇게 재정수요가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재정수입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도가 되다보니 <그림 8>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많은 나라들이 빚을 지게 되는 것이죠. 짙은 갈색으로 갈수록 국가부채가 많고, 짙은 녹색으로 갈수록 국가부채가 적은 것을 나타내는데, 북미 국가들과 상당수의 유럽국가들, 그리고 일본 등이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GDP 대비 70~80%의 빚을 지고 있는 국가가 많죠. 1991년의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조약에서 유럽공동체의 정상들은 국가부채를 GDP의 60% 아래로 유지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일종의 한계선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적지 않은 국가가 이미 그 선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국가부채는 GDP의 200%에 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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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입니다만 우리는 비교적 다행입니다. 재정건전성이 매우 높습니다. 위의 그림에도 녹색으로 칠해져 있죠. 국가부채가 35% 정도입니다. 공기업 부채 등 관련된 것을 다 포함해도 50%를 크게 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빚을 엄청나게 내어 써도 아직은 심각한 문제가 안 생기는 거죠. 하지만 이런 정부 몇 번만 거치면 녹색은 곧 짙은 갈색으로 변하겠죠. 세계 최고수준의 가계부채에 무거워진 국가부채, 결국 지난 몇 년간의 경기라는 것이 모두 빚으로 유지된 것입니다.
둔화되는 성장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문제, 하나만 더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성장이 둔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겠죠. 신자유주의야 말로 성장을 위한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제적 분업체제로 인해 후진국도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되고, 선진국은 또 그들 나름대로 투자에 따른 이익도 보고 낮은 가격의 상품생산에 따른 소비자 잉여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돌고 돌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의 패턴을 만들 것이다.......... 뭐 이런 것이죠.
그러나 적지 않은 연구들이 신자유주의 구도가 성장을 둔화시키고 있다는 결과를 내어 놓고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이야기인데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가 자리 잡고 난 다음에 성장한 것은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반해 그 앞의 1970년대나 그 이전의 성장률은 3%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질서가 자리 잡힌 상태가 더 못했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이 신자유주의 질서의 문제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잘 보여주었습니다. 금융기업이 정치적 우월성까지 확보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정부는 올바른 규제를 하지 못했죠. 결국은 파생상품에 파생상품이 만들어지면서 온 세상을 위기구도로 몰고 간 것이지요. 또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양극화 구도만 생각해도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경제가 온전하게 지속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했고,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레짐 해체를 위한 고민
자,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여기서 부터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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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를 이겨내려면 신자유주의 레짐을 어떻게 해체해 나가겠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명한 판단과 전략이 있어야겠지요. 되도록 영향을 적게 받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당한 실질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은 예입니다만 WEF나 IMD와 같은 전위부대가 나와 신자유주의의 기반을 깔고 다니면, 이들이라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제어해 줄 필요가 있죠. 이들이 만든 평가척도의 모순을 지적하며, 이런 척도로 대한민국을 평가하려 하느냐고 따져야겠지요. 국민들에게 그 부당함을 알리는 노력도 해야 하고요. 다보스 포럼의 결과 같은 것을 가지고 이것이 마치 미래기획의 프레임워크가 되어야 하는 양 보도가 되면 이에 대해서도 적절한 해설이 따라야지요.
진보진영에서 이러한 작업을 제대로 한 적이 있었던가요? 참여정부 시절에는 정부가 그나마 조금 했지요. IMF나 World Bank 하고 논쟁도 하고, 이들의 평가지표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죠. 도대체 기업인들에게 정부가 그들에게 얼마나 잘 해 주느냐를 물어, 이를 바탕으로 순위를 매기는데 왜 정부가 그 결과에 연연해야 하는 겁니까?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보수 언론이 대문짝만하게 보도를 해도 지킬 것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고군분투한 것이죠.
그러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참여정부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려고 했나? 제 나름의 관점에서 이 점을 이야기 드렸으면 합니다. 결국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겠죠.
현실 인정과 국가역할의 강화
첫째, 세계화를 인정하는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막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죠. 기업이나 시장이 국가권력 위에 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시장이 세계화되는 만큼 정부권력도 세계화 되면 좋겠지만 당분간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결국은 상당기간 시장과 기업의 영향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인식했습니다. 옳고 그러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옳지 않다고 해도 현실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시정되기를 바라고, 또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당장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 보았죠. 현상은 현상대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대응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 겁니다.
둘째, 기업과 시장중심의 질서를 현실로 인정하는 만큼, 그러한 질서가 불러올 수 있는 문제점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부문을 더 강화하고자 했지요. 국가를 불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부문에 정부역할을 강화하고자 했을까요? 장하준교수가 강조하는 박정희 모델 같은 것은 당연히 아니지요. 지금이 어느 땐데 정부가 나서서 기업과 노조보고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겠습니까? 참여정부의 1차적 관심은 사회정책 영역이었습니다. 즉 복지와 평생교육, 그리고 고용안정 등의 문제였죠.
솔직히 하고 싶은 만큼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그러나 일단은 사회정책 분야에서의 국가기능을 강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장중심의 질서가 가지는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한 것이죠. 대통령 말씀을 빌리면 ‘어머니형 국가’죠. 늘 ‘어머니형 국가가 돼야 된다’고 하셨거든요. 다소 가부장적인 냄새가 나긴 합니다만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아이들이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고, 붕대 매어주고 약 발라주고........ 공부하는 아이들 간식 챙겨주고.......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 키워 시장에서 제 역할 하도록 해 주고, 행여 시장에서 넘어지고 소외되면 보살펴 주고, 이들이 다시 힘과 기술을 얻어 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 주고....... 하는 것이죠.
2002년 대통령선거 기간 중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공무원의 30%를 잘라 낼 거다”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후보가 이 문제에 대해 몇 번 스피치를 했어요. 진정으로 했습니다. “구조조정 할 것이다. 어떤 구조조정을 하느냐?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시장이나 시민사회에 대해 쓸데없이 간섭하고 쓸데없이 힘쓰는 부분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할 것이다. 대신 사회정책 영역과 서비스 분야를 늘릴 것이다. 그러자면 공무원 수는 줄일 수가 없다.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작은 정부 할 생각 없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사회정책 영역에서의 정부역할 강화에 대한 강한 인식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한 말씀 드릴까요? 국가역할의 강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 보셨습니까? 신자유주의 질서의 문제를 인식하고, 또 시장중심과 기업중심의 질서가 불러 올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국가의 사회정책적 역할 강화를 꾀하는 신자유주의자를 보셨습니까? 우리의 진보진영은 이러한 대통령을 신자유주의자로 불렀습니다. 진보진영에 있어 ‘신자유주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욕하기 위한 언어적 도구였습니다. 시장의 긍정적 기능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해도, 또 개방이나 산업구조 조정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꺼내도 바로 ‘신자유주의자’란 라벨을 붙였습니다. 참으로 편리한 언어적 도구였습니다.
시장 역동성의 활용: FTA
셋째, 시장을 힘을 가능한 한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진보진영이 대통령을 신자유주의자로 몰아붙인 이유가 되기도 한 부분이죠.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산업구조의 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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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정부가 시장을 주무를 힘이 있다고 해도 그런 일은 이제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정부의 판단이 옳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내일 금융위기가 터지는데도 7% 성장을 한다고 큰 소리 친 사람들이.......... 말하자면 그 정도로 경제도 산업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집권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정부라고 다 정부가 아니죠. 그런 정도의 판단능력을 가진 정부의 판단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러면 무엇으로 산업구조 조정을 하지요. 시장의 힘입니다. 시장의 압력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입니다.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들이 우리 산업의 구조를 미래형으로 바꾸게 하지요. 대통령께서 이야기하셨던 ‘메기론’입니다. 미꾸라지 사이에 메기 한 마리를 넣어 놓으면 미꾸라지가 훨씬 더 강해진다는 거죠. 물론 이렇게 조정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나 재교육과 재훈련을 위한 평생교육, 그리고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다시 일으키는 일 등은 모두 정부가 할 일이죠. 앞서 말씀 드린 사회정책 기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 하나를 드려야겠습니다. 한미 FTA 문제입니다. 시장의 힘을 빌리고자 했던 대표적인 사안이죠. 참여정부에 관여했던 분들 중에도 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이상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입장이 곤란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편한 게 좋아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마치 대통령께서 한미 FTA에 대해 후회를 하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셨지요. 엄청나게 고민하셨습니다. 한미 FTA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불안하잖아요. 그리고 한미 FTA가 발효되면 그로 인해 고통 받을 국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한미 FTA를 하기만 하면 우리 국가가 단숨에 잘 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하셨습니다. 상당기간 엄청난 진통이 따를 거라 걱정을 하셨죠. 잠을 못들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중간 중간에 “내가 괜히 꼬여가지고.......”라는 농담아닌 농담을 하시기도 하셨지요. 그만큼 고통스러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셨습니다. “개방을 해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방을 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라는 말씀이 바로 이러한 고민과 고통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민과 고통 속에서도 대통령에게 위안을 주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 국민에 대한 자신감이었습니다. 개방을 한다? 개방을 하고 난 다음에 엄청나게 많은 문제와 시련이 겪게 될 텐데, 이를 이겨나갈 수 있을까? “틀림없이 이겨나갈 것이다.” 이런 확신이 있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이 한미FTA를 반대하는 많은 분들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은 상당부분 우리 경제나 사회를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꼭 유물사관까지는 안 간다고 하지만 멕시코나 한국이나 브라질이나 다 같다는 것을 전제로 이해를 하죠. 그러나 이런 구조적인 해석만 가지고 되겠습니까? 결국 경제와 사회도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화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브라질 사람도, 멕시코 사람도 아닙니다. 숱한 어려움을 넘어 왔던 한국 사람입니다. 다를 수 있죠.
한미 FTA에 관해 가장 정확한 이야기는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을 맡고 있었던 김현종씨의 책 속에 있습니다. 얼마전 『한미 FTA 이야기』라는 책을 써셨죠. 그 책 속에 대통령과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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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도표들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군요. 원문을 보시려면 다음 링크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http://www.socialdesign.kr/news/articleView.html?idxno=6389

강추님의 댓글
강추 작성일감사합니다 잘 배워습니다.다음에도 좋은글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