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질문 16] 감세는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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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kwonsw87) / 2010-11-22 08:55)
[노무현의 질문 16] 감세는 옳은가?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 2010-11-22)
“감세는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는가? 실제로 성장을 하는가? 성장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성장을 가져다주는가? 트리클 다운 이론은 사실인가? (…) 세금을 줄이면 누구의 세금이 줄어드는가? 복지가 줄어들면 누구의 수입이 줄어드는가?” - <진보의 미래> 52~53쪽
“세금 논쟁이라는 것도 무시 못합니다. 이게 아주 감정적인 부분이죠. 세금 누가 내나? 지난번에 깎은 세금 누가 다 가져갔나? 누구 호주머니로 들어갔나? (…) 누가 이득을 봤는지 계산을 딱 해보면 사람들이 핏대를 올릴 수밖에 없죠.” - <진보의 미래> 173~174쪽
사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가장 큰 쟁점은 ‘세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세금이 필요하다. 세금이 큰 만큼 정부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고, 세금이 작은 만큼 정부의 규모도 작아진다. 그래서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도 세금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박근혜 의원의 ‘줄.푸.세’에도 감세가 포함되어 있다. 대처와 레이건, 그리고 부시의 핵심 정책도 감세였다. 감세는 정말 경제성장에 효과가 있는가? 설령 성장에 효과가 있더라고 가난한 사람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인가? 여러 질문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황성현의 답변] 감세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감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단 황 교수의 답변을 전체적으로 살펴본 뒤, 지금 현 시점의 문제로서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 관련된 현실을 짚어보고, 비판적 문제제기를 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의 주장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황 교수는 먼저 감세에 대해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보통의 감세는 ‘세율 인하’를 말하는데, 세율을 인하해도 물가가 상승하면 세금 액수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절대 액수로 보면 더 많은 세금을 거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증세로 볼 것인지? 감세로 볼 것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전형적인 보수진영의 논리로서 감세를 하면 투자와 소비가 늘어서 경제가 성장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이윤과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이 같은 세원확대로 인해 세수가 증가하는 경우이다. 결국 국가가 징수하는 세금 총량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감세인지, 증세인지 논란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 교수는 ‘조세부담률’을 기준으로 감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세부담률’은 조세 수입을 GDP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현 정부의 감세정책도 바로 조세부담률을 낮추는 것이다. 2008년에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조세부담률을 2012년까지 1.9%p까지 낮춘다고 한다. 조세를 부담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기업과 가계다. 그렇다면 조세부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기업의 법인세, 그리고 가계부문의 소득세를 낮추게 되는 것이다. 현재 2011년 예산안 편성을 앞두고 있다. 관심 있게 지켜볼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감세정책은 왜 문제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미래에 닥치게 될 문제에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대충 이렇다.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노령화, 이로 인한 공적연금 고갈문제, 그리고 사회안전망 부족이다. 황 교수는 여기에 교육문제와 국방개혁도 포함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갖고 있는 대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황 교수는 현 정부가 위와 같은 핵심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렇게 비판한다. “그저 ‘감세와 작은 정부를 하면 민간 경제가 활성화되어 더 성장할 수 있고, 재정지출을 효율화하기만 하면 감세를 해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정부가 할 일을 할 수가 있다’라는 식의 주장만을 하는 것이 ‘이념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 <노무현이 꿈꾼 나라> 238쪽
사실 감세를 한다는 것은 재정규모를 축소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작은 정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상한 정책 조합을 하고 있다. 감세를 할 경우 재정지출도 줄여서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데, 오히려 재정지출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수입은 줄여놓고 지출을 확대한 것이다. 결국 그만큼 재정에 적자가 발생하게 된다. 재정지출이 필요한 현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은 4대강 사업이다. 여기에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신성장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는 등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필요한 돈은 어떻게 조달할까? 빚을 내는 것이다.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현 정부의 유일한 방안을 ‘전 국가적인 빚내기’로 요약된다. 감세로 재정은 줄어들었지만 빚을 내서 4대강 사업 등 토목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을 키운 가계의 대출을 연장해주거나, 대출금을 갚기 위한 대출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지금 당장의 곤란을 모면하기 위해 낼 수 있는 빚은 최대한 내고 있다. 그 빚이 나중에 문제가 되든 말든 ‘내 알 바 없다’는 식이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빚 무서운 줄 모른다는 거다. 정부는 엄청난 재정 적자에도 돈을 펑펑 써대고, 가계부채도 엄청난 규모인데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아일랜드의 정부·민간부채 합계가 GDP의 250%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규모다. 아일랜드는 부동산거품이 터지면서 민간부채가 부실화돼 국가부도가 났다. 정부는 부채가 많은 만큼 자산도 많아 걱정할 것 없다고 한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부채는 그대로지만 자산 가치는 휴지조각이 되면서 미스매치가 발생, 부도가 나는 법이다. 우리도 안심할 때가 아니다.” - <뷰스앤뉴스> 2010년 11월 20일자 <뷰스칼럼> 중에서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9295 여기서 가계부채는 빼놓고 국가부채만 놓고 이야기해보자.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은 국가 채무가 급증한다며 비판을 거듭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가채무가 어떻게 변했을까? 먼저 도표를 보자.
GDP를 기준으로 ‘관리대상 재정수지’의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관리대상 재정수지’는 국민연금기금과 같은 사회보장성 기금의 수지를 제외한 것으로,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중심 지표다. 수치를 보면 플러스는 재정 흑자를, 마이너스는 재정 적자를 나타낸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 재정 적자가 급속도로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액으로는 대체 얼마일까? 여기서 잠깐 11월 16일에 개최된 정당정책토론회에서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한 말을 들어보자. “국가채무는 또 얼마나 심각하냐면요, 이명박 대통령이 금년 한 해 동안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 적자를 메운 게 29조 3천억, 작년에 35조 5천억 원입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재정 적자로 인한 국채발행이 18조 5천억 원이었는데, 단 한 해에 35조 원, 30조 원 이렇게 국채 발행을 하고 있고, 지자체도 돈이 없으니까 금년도에 9조 원 어치의 지방채를 발행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부수립 이후 60년 동안 쌓인 국가채무가 300조 원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그 절반(150조)이 더 늘어났습니다. 정말 위험하죠, 재고를 바랍니다.” - 2010년 11월 16일 선거관리위원회 주최 정당정책 토론회에서 한쪽에서는 감세정책으로 정부 금고를 가볍게 하고, 그 가벼워진 금고는 엄청난 빚으로 메워 놓은 것이다. 그래서 황 교수는 현 정부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정부의 정책 기조는 ‘감세’와 ‘작은 정부’가 아니라 ‘감세’와 ‘적자 정부’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재정 여건에서 감세 정책은 재정 적자의 대폭 확대를 가져와서 재정 건전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 <노무현이 꿈꾼 나라> 240쪽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먼저 표를 보자.
‘조세부담률’은 GDP에서 조세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잠재적 조세부담률’은 재정 적자를 감안한 비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세부담률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은 것으로 나오지만 재정 적자를 감안할 경우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조세부담률’에 관해서는 많은 쟁점이 있다. 특히 싱가포르와 홍콩,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등 우리나라 주변의 경쟁국과 비교했을 경우 우리의 조세부담률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도시국가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여기서 잠깐 보수진영의 감세논리를 알아보고 가자. 보수진영의 논리를 단순화하면 이렇다. 감세 -> 투자(기업) 및 소비(가계) 확대 -> 경제 성장 -> 이윤(기업) 및 소득(가계) 증가 -> 세금 징수액 증가 이걸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 바로 ‘래퍼 곡선’이고, 레이건 정부가 이를 채택했다. 그러나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가 일찍이 설파했듯이 래퍼곡선은 현실에서 증명된 적이 없다. 그냥 ‘가설’로 끝난 이론이다. 학계에서는 ‘사기’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래퍼곡선의 신화’가 맹신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처럼 말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강만수 전 재정부장관이다. 황 교수는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감세에 의한 지출 감축이나 재정 건전성 악화가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저 이념적으로 공공 부문은 비효율적이고 감세를 하면 민간 부문이 커져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에 기반을 둔 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위의 책 244쪽
세금 이야기를 하면 소위 ‘서민’이라는 사람들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국가권력은 백성들의 살과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였으니까. 그리고 민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해준 게 별로 없다. 사회보장제도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다. 문제는 소위 ‘서민’들의 이런 ‘국가에 대한 불신’을 엉뚱한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절반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더구나 근로소득자 가운데 상위 20%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90%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월급쟁이 가운데 상위 20%에 포함되는 사람들이 거의 모든 세금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웬만한 월급쟁이는 감세를 해도 혜택받을 것도 없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이 거의 모든 법인세를 감당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는 상위 1%에 부담시켰던 세금이다. 감세를 하면 누가 혜택을 입는가? 이것은 너무 뻔한 질문에 뻔한 답이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이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세금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가가치세를 내린다면 온 국민 모두가 혜택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는 다양한 형태로 도입이 시도되고 있다. 결국 상위 20%,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그 부족분은 전체 국민들을 상대로 거둬들이는 셈이다. 어쩌면 자업자득일 수 있다. ‘부자감세’의 상징으로 ‘종부세 폐지’를 많이 거론하지만 사실 세금의 근간은 법인세와 소득세다. 이 세금을 감면하게 되면 그 혜택은 부자와 고소득층이 가져간다. 너무 뻔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뻔한 사실을 아무리 얘기해도 많은 국민들이 감세정책에 솔깃한 이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황 교수는 감세정책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저출산과 노령화, 그리고 각종 연금 고갈, 교육과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더구나 <감세+재정확대>, 이로 인한 <나랏빚 급증>이라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사례가 없었던 괴물 같은 정책조합은 당장 폐지해야 할 것이다. 황 교수의 답변은 모범답안에 가깝다. 그래서 밋밋하다. 감세논쟁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이 답변을 산만하게 만들거나, 분량의 제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감세정책을 둘러싼 기둥은 세웠다고 평가하고 싶다. |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 왜 선별적 복지에 반대하는가?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보편적 복지’다. 누군가 돈을 내야 한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부자들을 상대로 세금을 거두면 되는 것인가? 아닌 말로 고액 연봉자와 고소득 자영업자, 그리고 대기업이 세금의 대부분을 감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이 사람들이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줘야 한다. 이 계층을 적대시하면서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누가 기본 좋게 세금을 감당할까?
감정적으로 싫든 좋든 대기업과 부자들, 고소득층은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막연한 적개심으로 문제를 풀어가서도 안 된다. 미국의 부자들이 감세정책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부자들이 나와줘야 한다. 그것은 부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기준부터 고쳐야 한다고 본다. 부를 축적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무상급식을 생각해보자.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자는 주장이 한나라당에서 나왔다. 언뜻 말이 되는 주장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주장에 주로 찬성할까? 소수의 부자들이? 아니다. 실제로 세금을 별로 내지 않는 사람들이 선별적 복지에 찬성한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선별적 복지는 속임수라고 치자. 그렇다면 이 논리를 갖고 있는 다수의 서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선별적 복지는 한 마디로 이렇다. ‘돈 내는 사람 따로, 수혜받는 사람 따로’. 고소득층이 돈을 내고, 혜택은 저소득층이 입는다. 이것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선별적 복지에 반대하는 것은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유일하다. 이게 최소한의 양심 아닐까? 복지라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듯이 부자들 재산 빼앗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마찬가지 문제가 의료보험에도 있다. 아니 사회보장제도 전반이 그렇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우리나라의 부자들, 그리고 고소득층이 부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혜택은 주로 서민들이 받는다. 그래서 민영보험 도입에 반대하는 것이다. 민영보험을 도입하면 부자들을 위한 보험이 따로 만들어질 것이고, 병원들은 그쪽으로 갈 게 뻔하다. 그러면 서민들만 남아 있는 공공보험은 황폐화된다. 왜냐하면 돈 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민영보험으로 가버리고, 돈 없는 사람들만 남아서는 의료보험을 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돈을 내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 돈 내는 사람들한테 감사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사회시스템이 그렇게 굴러간다는 정도는 이해하면서, 공공시스템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그 공공시스템이 가능하게끔 세금을 내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은 최소한 갖춰야 한다고 본다. 그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면 ‘도둑놈 심보’ 아닐까?
지금 진보진영에서 논의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는 이런 부분에 대한 이성적, 감성적 접근이 전혀 없다. 그냥 세금 때리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증세를 하든, 뭘 하든 국민 여론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국회에서 다수를 확보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들이 당연히 보편적 복지에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일 것이다. 좀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적어도 실제로 돈을 내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도 고려해야 하고, 세금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감도 고려해야 한다.
역사 이래로 한반도의 국가권력은 백성들의 흡혈귀였고, 백성들 편에 선 역사는 딱 10년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기간은 백성들의 신뢰를 획득하기엔 너무도 짧았다는 사실부터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마당에 보편적 복지라는 당위만 떠든다고 사람들이 맞장구쳐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유아적인 발상일 뿐이다.
함께 생각해볼 문제 2 - 아일랜드는 남의 일이 아니다
경제분야에서는 최근 아일랜드의 재정 적자 위기가 이슈다. 정부의 재정 적자 문제는 비단 아일랜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의 재정 적자 문제도 심각하고, 미국과 일본도 사실 정상적이라면 부도가 나야 한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의 재정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복지를 하든, 토목사업을 하든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필요한 돈은 빚을 끌어다 쓴다. 어디에서 빌린 돈인가? 미래세대로부터 빌린 돈이다. 그렇게 빚낸 돈으로 경제를 성장시켜서, 즉 빌린 돈을 불려서 먹고사는 거 해결한 다음에 빚을 갚는다는 논리다. 그런 식으로 쌓이고 쌓인 빚이 터지면 부도나는 것이다. 이건 개인이나 집단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통 재정 적자는 케인스주의 이래로 대규모 토목사업이나 SOC 사업 등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복지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도 재정 적자가 필요했다.
문제는 경제가 늘 성장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진보진영에서는 ‘성장’이라는 단어에 반감부터 갖고 있지만, 실상 복지제도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걸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냥 부자들이 돈을 더 내면 된다고? 이건 거지 근성이거나 아니면 조폭논리다.
보편적 복지를 말하는 사람들은 돈 문제를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대책 없는 사람들이다. 보통의 시민들은 이런 이치를 이성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다 안다. 까딱하면 ‘보편적 복지’는 ‘개구라’로 매도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책임감 있게 복지확대를 고민한 정책이 있다면 ‘비전2030’이다. 이건 재정계획이다. 즉 앞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필요한 사업이 무엇이며, 거기에 필요한 돈이 얼마 정도이며, 그 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고민한 것이다. 무조건 빚내서 하면 된다는 발상에서 벗어난 책임감이 들어 있는 재정계획이다. 현 정부는 나중에 국가가 부도가 나든 말든 아무 생각 없이 빚내서 토목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의 보편적 복지를 외치는 사람들 역시 내 눈에는 아무런 자금조달 계획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일랜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80년대 이후 유럽에서 보수적인 정당들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해서가 아니다.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국가재정 문제가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보수당의 캐머런 총재의 강연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는 영국의 국가부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고하면서 강연을 시작한다. 그리고 국가채무를 줄이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 복지축소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는 긴축재정에 항의하는 파업이 일어났지만, 파업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부채는 그 국민들 전체가 함께 쓴 돈이다. 그래서 함께 갚아야 할 돈이다.
지금 한국도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아들 딸들이 갚아야 할 빚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합리적인 재정계획이 필요하다. 보편적 복지라는 것도 합리적인 재정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 범위 내에서 점차 확대해야 하는 것이지, 한 방에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런 것을 고민하지 않는 보편적 복지는, 솔직히 관심 없다. 국민들이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알량한 논리로만 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면 플라톤도, 공자도, 뜻을 못 이루었을 리 없다.
함께 생각해볼 문제 3 - 종합소득세의 증가와 자영업자 몰락
가장 큰 논쟁점은 2007년까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이 빠르게 상승했다는 부분이다. 특히 이 부분과 관련해서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 소장은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한국, 일본 등 주요국의 1990년대 대비 2005년의 명목 GDP에서 차지하는 조세부담률을 보면 한국은 18.9%에서 25.5%로 1.35배가 되었다. 일본은 29.1%에서 27.4%로, 스웨덴은 52.7%에서 50.7%로 줄었다. 미국과 독일의 조세부담률은 15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다. (미국27.3%, 독일 34.8%), 영국도 거의 변화가 없으며 2005년 현재 36.5%다. 조세부담률이 올라갔다는 것은 어떤 계층이 세금을 더 냈다는 뜻이다. 즉 경제성장률(소득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세금 증가율을 감당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조세저항이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참여정부가 외면받은 이유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영업자에 대한 세금 부담의 폭증(?)이다.” - <노무현 이후-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104쪽
김 소장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핵심은 ‘참여정부 기간 동안 조세부담률이 가파르게 올라갔는데, 어떤 계층이 세금을 더 냈다, 그게 바로 자영업자’라는 것이다. 김 소장은 종합소득세의 증가와 자영업자의 불만을 연결시키고 있다. 김 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의 임금 근로자 총소득이 2000년 259조 원에서 2007년 449조 원으로 오르는 동안 자영업자 총소득은 101조 원에서 거의 110조 원으로 답보 상태다… (중략)… 소득세 신고분은 종합소득세와 양도소득세로 이루어져 있다. 자영업자들이 주로 내는 세금은 종합소득세다… (중략)… 종합소득세 추이를 보면 2003년이 100이라면 2007년은 179다. 같은 기간 GDP가 124로, 법인세가 138로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중략)… 근로소득세 신고 인원은 1154만 7000명에서 1337만 6000명으로 15% 늘었다. 종합소득세 신고 인원이 45% 늘어나는 동안 근로소득세 신고 인원은 16% 늘었으니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높아질 만하다.” - 위의 책 196~198쪽
황 교수가 김 소장의 비판을 염두에 두고 답변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떻든 황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의 조세 부담 수준은 세입 기반을 꾸준히 늘려온 결과 2007년에 21.0% 수준까지 높아졌는데, 우리의 조세 부담 수준이 OECD 국가에 비해 낮은 것은 지금 현재만의 현상이 아니라 건국 이래 지속되어 왔던 누적적 문제이다.” - <노무현이 꿈꾼 나라> 241쪽
참여정부 기간동안 조세부담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래의 투명성 확보를 통한 세수기반 확대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김 소장도 인정하고 있는 듯 하다.
문제는 참여정부에서 비중이 커진 종합소득세와 관련된 부분이다. 김 소장은 자영업자가 종합소득세의 주요 부담자라고 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종합소득세 부과와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곤란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사실 종합소득세 비중이 늘어났다 하더라도 이는 ‘고소득 자영업자’에 국한하는 것이 옳다. 신용카드 사용 확대를 통해 거래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세수가 늘어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영세한 자영업자의 고통도 수반되었을 것이다. 세금 탈루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세무행정의 투명성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더구나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루는 심각할 정도였고, 참여정부에서 이 부분을 바로 잡은 결과 종합소득세 비중이 올라간 것이다.
오히려 김 소장이 문제 삼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신용카드 사용 확대로 인해 힘들어진 부분도 있지만, 그들 역시 낮은 연봉의 월급쟁이들과 마찬가지로 세금부담 규모가 별로 크지 않다.
오히려 영세 자영업자의 문제는 한국 산업구조의 문제로 보는 것이 옳겠다. 즉 세금 문제와 직결해서 논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 소장이 평소 문제 삼고 있는 3비층(비정규직, 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의 문제는 ‘결과의 불공평’을 시정하는 것과 동시에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해답일 것이다.
즉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종합소득세와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그건 고소득 자영업자에 국한한 문제다. 김 소장이 문제 삼는 영세 자영업자의 문제와 종합소득세는 연관성이 작아 보인다.
오히려 여기에 관해서는 김 소장 스스로 밝혀놓은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세금 추이를 길게 설명했지만, 자영업자를 결정적으로 힘들게 한 것은 세금이 아니라 세계화, 지식정보화, 유통 현대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충격은 자영업자를 비롯한 ‘3비층’에 거의 집중되었다.” - <노무현 이후> 198쪽
사실 김 소장의 문제의식은 따로 있다. 세금 문제를 걸고넘어진 것은 한국 진보진영에 만연한 복지만능주의 때문이다. 소위 3비층(비정규직, 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의 문제는 현재의 복지론자들의 보편적 복지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과 불공평 문제, 지나치게 높은 자영업자 비율, 미래세대의 일자리 부족 등 증세를 아무리 많이 해도 돈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는 데에는 유용한지 모르겠지만,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별로 기여할 역할이 없다. 그나마 한국 진보진영에서 비판받고 있는 ‘제3의 길’에서 제시한 ‘사회투자국가’ 정도가 문제해결책을 갖고 있을 뿐이다.
감세라는 이념적 구호를 외치는 보수진영의 정반대 위치에 보편적 복지라는 이념적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 소장은 조세부담률을 높인다고 3비층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맥락으로 읽었을 때 김 소장의 문제제기는 적확성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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