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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질문 13] 진보의 시대는 어떻게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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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675회 작성일 10-11-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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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의 답변]정치질서는 성장과 퇴조을 반복한다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kwonsw87) / 2010-11-17 12:05)



[노무현의 질문 13] 진보의 시대는 어떻게 왔는가?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 2010-11-17)


“역사적으로 보수의 시대, 진보의 시대라는 이 시대 구분을 가지고 한번 비교해보자.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세계를 거의 휩쓸고 있는데, 이전에 진보의 시대가 있었고 그 진보의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이 되었으며 그 사회가 어떤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진보의 미래> 111쪽

“오바마, 진보 시대의 진보 대통령? 진보의 시대로 가는 신호탄인가? (...)변화의 방향은 진보의 시대가 될 것인가? 오바마의 당선이 개인의 당선이 아니라 미국에 불고 있는 진보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라면 이제 진보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 <진보의 미래> 92쪽

노무현 대통령님이 이런 질문을 던질 때만 해도 오바마에 대한 기대는 굉장히 컸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특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일본의 하토야마 당선은 또 어떤가?

여기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브라질의 룰라도 얹혀놓으면 오바마와 하토야마에 은근히 환호를 보냈던 소위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의 행태는 이해가 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을 시도하기 이전까지 한국의 진보언론이라는 매체들은 특집기사를 쏟아내기도 했고, 베네수엘라 현장취재도 했다. 그러다가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론이 나오자 슬그머니 그 기획기사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차베스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브라질 룰라는 또 어떤가? 보수언론에서는 좌파대통령 룰라가 우파적 정책을 썼기 때문에 브라질 경제를 일으켰고, 퇴임 시까지 높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호도한다. 그 반대의 진보언론에서는 룰라의 좌파적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서 참여정부와 비교하면서 룰라를 칭송한다.

아전인수도 이런 아전인수가 없다. 그리고 아전인수의 사례도 늘 외국이다.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늘 외국 타령이다.

오바마와 하토야마의 당선에 한국 진보진영이 은근히 혹은 내놓고 기대를 걸었다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실망하면서 오바마가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사태도 지켜보았다.

좋다. 중요한 건 세계사적 흐름이다. 오바마에 환호하든, 하토야마에 기대를 걸든 각자의 자유로 남겨놓고, 지구본을 갖다놓고 세계를 한번 들여다보자. 지구적 흐름은 어떻게 변해왔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안병진의 답변] 정치질서는 성장과 퇴조를 반복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세 번째 질문, <진보의 시대는 어떻게 왔는가?>라는 질문에는 역시 열두 번째 답변자였던 경희사이버대 안병진 교수가 또 나섰다.

사실 12번과 13번의 질문은 노 대통령이 질문을 던졌던 그 당시와 현재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질문 당시에는 미국과 일본에서 정권교체가 막 일어났던 시점이고, 지금은 이미 2년의 시간이 흘러 오바마는 중간선거에서 패배했고, 하토야마는 실각했기 때문이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생겼다. 따라서 질문도, 답변도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원래의 답변을 충실하게 반영하되, 상황의 변화를 고려하여 안 교수의 최근 생각까지 담아서, 내 개인적인 부연설명을 통해 풀어볼 생각이다.


시대의 흐름은 존재한다

퀴즈부터 하나 풀고 시작하자. 다음 연설은 누구의 연설일까?

“우리가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들이 우리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바마? 부시? 레이건?

이 연설은 1979년 지미 카터가 <미국의 병>이라는 제목으로 한 연설이다. 그리고 이 연설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악의 연설’로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조치로 브래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그리고 1974~74년, 그리고 1978~80년의 1, 2차에 걸친 석유파동, 이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이런 상황 속에서 어쩌면 카터의 연설은 미국인들에게 ‘한가한’ 혹은 ‘한심한’ 소리로 들렸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연설은 어떨까?

“우리의 가치와 영적인 삶이 최소한 GDP만큼이나 중요하다.”

이것은 2008년에 버락 오바마가 한 연설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명연설’로 이야기된다.

하나만 더 보자.

“우리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 광고, 시체가 즐비한 고속도로를 치우는 구급차도 포함됩니다. 우리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미국 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탄도 포함되고, 핵탄두와 도시 폭동 제압용 무장 경찰차량도 포함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총생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의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1968년 3월 18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J.F.케네디가 캔자스대학교에서 한 연설이다. 그리고 이 연설은 ‘명연설’로 남았다. 케네디의 연설에 비하면 40년 뒤에 나온 오바마의 연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다시 시계를 오늘로 돌려보자. 2010년 2월 영국의 보수당 총재로 총선을 준비 중이던 데이빗 캐머런은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앞머리 글자를 딴 비영리단체로 각종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다)에서 주최한 연설에서 42년 전 케네디가 했던 바로 위의 연설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 더 멋진 연설을 소개해 드리죠. 지금부터 큰 분량의 연설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처음부터 이야기했던,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는 연설입니다. 그리고 돈 이외에 더 노력하고 측정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연설은 ‘왜 GNP 가 사람들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가’에 대한 로버트 케네디의 매혹적인 설명입니다……. (케네디 연설)…… 40년 전에 이렇게 고귀하고 아름답게 남긴 감성과 이 40년 전의 아름다운 꿈을, 현재 정보 기술의 막대한 발전을 이용하고, 행동경제학의 엄청난 변화를 이용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서, 그리고 민중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정보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통찰력을 더한 다음,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과 동시에, 왜 사람들이 지금처럼 행동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잘 활용한다면, 그 꿈은 오늘날 현실로 이루기에 더 쉬운 꿈입니다. 40년 전의 그 아름다운 연설이 이루어졌을 때보다 말이지요.”

동일하거나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누구의 연설은 명연설이 되고, 누구의 연설은 최악의 연설이 되었다. 그리고 보수 정치인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정치인의 오래된 옛날 연설을 들고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시대의 흐름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정치인도, 정당도, 세력도, 시대의 큰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카터의 연설이 최악의 연설이 된 것은 경제위기가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돈의 가치를 너무 무시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새로운 보수정치를 들고 나온 캐머런이 42년 전 케네디의 연설을 들고 나온 것은 대처리즘의 실패를 넘어서고, 노동당의 국가주도의 복지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큰 흐름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시민들의 생각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거기에 조응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지지를 받고 집권을 하게 된다. 그 시대 흐름을 오판하게 되면 권력을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연설을 인용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진보의 시대는 왔는가?

이제 대통령의 질문으로 가보자. 진보의 시대는 왔는가? 오바마와 하토야마의 당선은 그 징조로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이렇게 평가한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사회의 거대한 시대 흐름이 국가의 역할 강화, 금융 제도나 노동 보호 등에서 견제와 균형의 강화, 사회적 투자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추구, 국제적으로 보다 민주적 관계의 지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거시적으로는 진보의 시대의 개막으로 본다.” - <노무현이 꿈꾼 나라> 195쪽

안 교수가 이 글을 쓴 시점은 거의 1년 전이다. 그 이후 상황변화가 있었다. 11월 2일 열린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에서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오바마가 중간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흐름은 다시 반전한 것인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개혁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그 반대로 금융개혁, 의료보험 개혁, 그리고 감세 철회 등 진보적 정책 때문에 패배했다는 분석도 있다. 아마도 서로가 서 있는 입장과 위치에 따라 현상을 다르게 분석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안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오바마의 유일한 실책은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 등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안이하게 판단한 것과 취임 초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면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말해 유권자의 기대치를 높인 것은 실수였다.” - 2010년 11월 12일 한겨레21 제835호

2008년의 경제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해 유권자의 기대치를 높여놓았지만 실제로는 높은 실업률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패배했다는 것이다. 이 분석에는 오바마 당선이 가져왔던 시대 흐름의 변화가 되돌려진다는 뉘앙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전히 진보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정치질서의 성장과 퇴조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진보의 흐름과 보수의 흐름이 교차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이런 서구사회의 시간 흐름과는 전혀 다른 과정을 밟고 있고, 남미는 남미대로 그들의 역사 속에서 진보와 보수의 흐름이 교차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의 역사적 변화가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도 보수적 흐름 일변도에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깐 벗어난 경험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고할만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두고 안 교수의 분석을 들어보자. 먼저 도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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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표는 미국 정치질서의 변화과정을 흐름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안 교수는 위의 도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안 교수의 답변을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위의 도표를 말로 풀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안 교수의 답변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역사적 배경을 덧붙이고자 한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 정치질서는 오랜 기간 진보의 흐름이 대세를 이룬다. 그 때문에 이 시기에 유일하게 공화당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아이젠하워도 그 흐름을 거역하지 못했다. 최저임금도 인상했고, 보건부, 교육부, 복지부가 신설되는 등 사회보장제도가 확대되었다. 물론 아이젠하워가 두 번의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미국 의회는 여전히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든 아이젠하워가 진보의 시대에 등장한 보수 대통령이었다면, 카터와 클린턴은 보수의 시대에 진보 대통령이었다. 안 교수는 두 사람 모두를 ‘보수적인 민주당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그 시대 흐름이 보수의 시대였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민주당원들의 선택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다시 도표로 가보자. 사실 1964년은 중요한 시기이다. 이때 선거에서 패배한 미국 공화당의 골드워터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신보수주의>를 준비한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1980년 이후 보수의 시대를 열기 위해 미국 보수진영이 어떤 준비를 했는지 말이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사이, 신보수주의 지식인들은 보수주의 이념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투자하도록 부유층과 기업가들을 설득했다. 주로 학회와 비슷한 기능을 하도록 설립된 싱크탱크들이 여기에 해당됐으며, 정해진 틀에 맞는 연구결과만 발표했다. 미국기업연구소는 1943년에 설립되었지만 부유층이 설립한 보수주의 재단과 기업으로부터 상당한 돈과 연구비를 받기 시작한 1971년부터 눈부시게 확장되었다.” - <미래를 말하다> 153쪽

그래서 안 교수도 이렇게 말한다.

“이 당시(1964년) 공화당 전당대회 골드워터 지지 연설의 스타는 레이건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결국 이 시기 골드워터의 새로운 보수주의 운동과 레이건이라는 대중적 스타의 성장은 이후 보수주의 도약의 중요한 거름이 되었다.” - <노무현이 꿈꾼 나라> 198쪽

안 교수의 답변은 주로 도표만 참조해도 충분히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별도로 부연 설명할 것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포착해야 할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오랜 진보의 시대에 맞서 미국 공화당이 10년도 훨씬 넘는 기간동안 새로운 보수주의를 건설하고 각종 시민단체, 언론, 연구소 등을 활용하여 시민들의 동력을 모아냈듯이, 그리고 이로 인한 1980년대 이후 오랜 보수의 시대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민주당과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이 ‘새로운 진보’와 ‘제3의 길’을 기획했듯이, 한국에서도 현재의 질서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질서’ 혹은 ‘새로운 진보’를 기획하고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진보의 시대는 어떻게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런 역사적 과정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돌아보고, 배워야 할 교훈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안 교수의 답변은 역사적 과정을 서술하는 데 치중했다. 분량 때문인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도 불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교수의 답변 정도라면 시민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제 노 대통령의 질문에 대한 안 교수의 답변을 들어보자.

“결국 진보의 시대가 어떻게 왔는가에 대한 답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보수의 시대가 점차 성장해 가면서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퇴락의 씨앗을 뿌리다가 심지어 타락해 가는 구조적 환경이다. 다른 하나는 이 구조적 환경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 세력들의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아래로부터의 정치 세력화>라 할 수 있다.” - 위의 책 202쪽

모범답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안 교수의 답변을 보충하는 글은 마침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올려주셨다. 안 교수의 답변이 원론이라면, 김 처장의 글은 구체적인 기획서라고 할 수 있다. 김 처장의 탁월한 통찰과 좋은 내용의 글을 보며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안 교수의 글을 더욱 풍성하게 보완해 줄 수 있는 내용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우리는 승리를 준비하고 있나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13674)

문성근 씨 주도의 백만민란은 <아래로부터의 정치세력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대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보편적 복지가 시대정신인가? (복지소사이어티) 이름만 살짝 바꾼 역동적 복지(정동영과 천정배)가 시대정신인가? 최장집 사단(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등)이 주장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확대가 시대정신인가? 묻지 말고, 따지지 말고 정권교체가 시대정신인가? 시대정신에 대한 공감 없이 진행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세력화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밝혀두고 싶다. 그나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굉장히 훌륭한 실천이고, 지지하고 있음도 동시에 밝힌다.

그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의 <진보의 시대는 어떻게 왔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꾸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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