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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질문 14] 미국과 유럽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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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386회 작성일 10-11-20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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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질문 14] 미국과 유럽은 어떻게 다른가?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kwonsw87) / 2010-11-17 14:59)



[노무현의 질문 14] 미국과 유럽은 어떻게 다른가?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 2010-11-18)


“나는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사람이 쓴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책과 폴 크루그먼이라는 사람이 쓴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을 읽고 ‘보수의 나라와 진보의 나라’, ‘보수의 시대와 진보의 시대’, 이런 관점을 발견하였다. 살아 있는 현실로서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 보고, 살아 있는 역사로서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 <진보의 미래> 41-42쪽

“어느 나라가 선한 나라인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은가? 아이를 어느 나라에 살게 하고 싶은가? 어느 나라가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 <진보의 미래> 175쪽

이제 진보와 보수의 역사적 흐름에 대한 탐구를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는 유럽과 미국을 뭉뚱그려서 왔다. 이제 유럽과 미국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고, 다음 질문부터는 구체적인 현실과 정책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가게 된다.

 

[이병천의 답변] 새로운 진보주의와 시대정신 세워야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열네 번째 질문, <미국과 유럽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답변이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가 그 답변에 나섰다.

그동안 큰 흐름에서 진보와 보수를 비교했다. 큰 물줄기가 흐르는 강을 살펴본 셈이다. 이제는 그 지류에 흐르는 작은 강을 살펴보는 것이다. 세계사적인 큰 흐름이 지류의 흐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각국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고, 문명의 발전과정이 다르기 때문이고, 각 나라에 발 딛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론이나 사상도 함부로 보편성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이라는 지류를 보면 세계사적 흐름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를 거쳐 유러피안 드림을 이야기하는 세계사적 시간대와는 달리 한국은 전근대적인 잔재도 남아 있고, 근대와 탈근대적 요소도 뒤섞여 있다. 전문가들은 이걸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어떻든 그만큼 한국은 일정한 경로를 밟아온 서양사회와는 다르다는 말이다.

미국과 유럽은 한국의 담론을 지배해 온 나라들이다. 미국에서는 주로 보수적인 이론들이, 유럽에서는 주로 진보적 이론들이 수입되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된 사상이나 이론을 신봉하거나 마치 복음서처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서양의 특수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이론과 사상을 무조건 한국에 대입시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이 교수의 답변을 비평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열네 번째 질문에 대한 이병천 교수의 답변으로 가보자. 여기서는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와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훨씬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미국적 가치와 유럽적 가치

열네 번째 답변자인 이병천 교수는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을 참조하여 답변을 하고 있다. 몇 가지 주제로 나눈 뒤 다시 세부 쟁점별로 정리해놓아서 간편하게 비교할 수 있게끔 했다. 그래서 나는 이 교수의 답변을 다시 도표로 정리했다. 내용을 줄이되 한 눈에 쉽게 들어오도록 하는 데 도표가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본격적인 비교에 앞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저물고 있다. 배타주의적인 아메리칸 드림은 애초부터 미국 안에서나 통용될 수 있을지언정 세계가 공유하거나 이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 대안으로 유러피안 드림이 떠오르고 있다.” - <노무현이 꿈꾸는 나라> 207쪽

이 교수가 방금 말한 내용은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아마 한국에서 진보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 진보진영의 화두가 된 보편적 복지도 유럽이 모델이고, 리얼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 역시 유럽을 롤모델로 하고 있다. 더러는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모랄레스의 볼리비아, 룰라의 브라질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떻든 많은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신자유주의의 온상으로 여기는 듯 하다. 이 교수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지난 약 30년 동안 세계를 주도하고 지배한 시대정신은 미국적 가치였다.” - 위의 책 207쪽

미국이 신자유주의의 온상인 것은 어쩌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메리칸 드림=신자유주의’로 등치시킬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도 마찬가지 문제제기에 부딪친다. 미국과 유럽을 그렇게 무 자르듯이 단순비교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도 그 내용이 계속 바뀌어 왔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어떤 하나의 고정적인 형태로 머물러 있다면 모르겠지만,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만 보아도 미국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라는 국가가 앞으로 지난 30년간 보여왔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의 진보시대와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진보주의로 나가게 되면 리프킨의 주장은 무력화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의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한 것이기 때문에 그 논리의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교수는 미국적 가치와 유럽적 가치를 이렇게 비교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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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위와 같은 비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미국적 가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 역사적 배경과 미국인들의 관습이 만들어낸 것이고, 유럽적 가치 역시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역사적 맥락을 생략한 채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

위의 도표에 나온 비교내용은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래에 나오는 여타 지표의 비교와는 달리 위의 도표상 비교는 다소 위험한 비교라는 느낌도 든다.

특히 이 교수의 답변 전반에는 미국에 대한 강한 거부감, 그리고 유럽에 대한 우호감이 엿보인다. 어쩌면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 전반이 그런 감성을 지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담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그 비교 대상에 대해 우호감이나 적대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는 실사구시의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위와 같은 비교분석에 ‘보편성’을 부여하기는 힘들겠지만, 하나의 ‘경향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단정적으로 “미국은 저렇고, 유럽은 이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은 이런 경향이 있고, 유럽은 저런 경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다시 본론이다. 이 교수는 몇 가지 지표를 통해 유럽과 미국을 비교하고 있다. 일단 이 교수의 정리 내용을 따라가 보자.


불평등과 빈곤

‘아메리칸 드림’은 한국인들에게도 우호적인 슬로건임에 분명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들의 성공 스토리가 뉴스가 되는 현실만 보아도 그렇다. 그런 미국이 이제 ‘승자 독식의 땅’으로 변모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신분 상승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적은 사회에서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다면, 우리는 출세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더 유망한 곳은 유럽이라고 보아야 한다.” - 위의 책 209쪽

이 교수의 이 같은 언급은 다음 도표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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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로 정리한 내용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럴 거면 도표를 만들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사회복지

시장주의를 그냥 내버려두면 앞서와 같이 소득 불평등과 빈곤은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천국’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국가가 보완장치를 마련한다. 복지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가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는 장벽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진보주의 시대를 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미국의 강경 보수주의자들에게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이 교수는 ‘정치적 장벽’과 ‘이념적 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장벽’은 기득권층의 양보를 얻어내거나, 혹은 노동세력이나 시민사회의 힘으로 대항력을 구축해야 하는 문제를 말한다. 힘의 논리, 혹은 협상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념적 장벽’은 복지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복지정책을 ‘빨갱이’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우파와 좌파를 색깔로 나누면 그렇기는 하다. 그래서 미국은 사회보장제도 보다는 기부나 자선으로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관습이 발달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는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되어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겠다. 어떻든 미국을 건국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니 미국과 미국인들이 오랫동안 형성한 이런 문화에 대해 옳고, 그르다는 식, 혹은 좋다, 나쁘다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문화가 형성되었는지 이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미국인들은 시장이 부와 소득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가장 공정한 제도라고 믿고 자유시장을 옹호한다. 능력 있고 노력해서 부자가 되었고, 능력 없고 게을러서 가난뱅이가 됐다고 믿는다. 정부에 의한 부의 재분배는 아메리칸 드림의 기본 저인을 해친다고 본다.” - 위의 책 211쪽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미국인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미국 역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사무엘 헌팅턴은 그가 쓴 다른 책 <미국(Who are We?)>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핵심 문화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기본적으로, 미국 사회를 건설했던 17세기와 18세기 개척자들의 문화이다. 이 문화의 중심 요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기독교인 종교, 개신교도의 가치관과 도덕주의, 노동 윤리, 영어, 영국식 전통의 법치와 정의, 정부 권력의 제한, 그리고 유럽의 유산인 예술, 문학, 철학, 음악을 포함한다. 이와 같은 문화를 바탕으로 초기의 개척자들은 18세기와 19세기에 자유와 평등, 개인주의, 인권, 대의정부, 그리고 사유재산의 원칙들을 갖는 ‘미국의 신조’를 정립했다. 뒤를 이은 여러 세대의 이민자들은 그와 같은 개척자 문화에 동화되고, 그것에 공헌하고, 그것을 수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 <미국> 61쪽

미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근면하게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미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그런 고된 노동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그래서 루스벨트가 복지제도를 도입할 때 굉장한 반대에 부딪쳤던 것이다. 만약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미국에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될 수 있었을까? 라는 가정도 해본다.

다시 이 교수의 답변으로 가보자. 이 교수는 유럽과 미국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몇 가지 지표를 통해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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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을 유럽과 비교할 경우 많은 차이가 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의 발꿈치도 못 따라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즉 미국을 형편없는 나라라고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가 왼쪽으로 열심히 달려가야 일본을 만나고, 거기서 더 달려가야 미국을 만나고, 그리고 다시 달려가야 오른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영국을 만난다”는 노 대통령의 말씀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일자리

노 대통령은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 <비전2030>은 일자리 창출 방안이기도 했다.

1990년대에 미국 모델이 전 세계의 흐름을 이끌게 된 것은 일자리 창출 때문이었다. 유럽은 지금도 비슷하지만 그 당시에 특히 만성적인 높은 실업률이 문제였다. 그래서 높은 실업률, 높은 세금, 과도한 복지,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이 묶음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그 반대지점에 신자유주의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유럽 모델도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인지 이 교수는 일자리와 관련해서 미국의 일자리의 실체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는 미국의 일자리 기적의 실체가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 그 대가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선례를 따라가자는 식의 논의가 얼마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위의 책 213쪽

이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의 방식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유럽의 방식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교수가 가진 유럽에 대한 호감도가 지나치게 작용하는 것은 이번 답변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

특히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이든, 유럽이든 참고의 대상이지 어느 한 쪽이 낫다고 하여 우리의 모델로 무조건 채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교수의 답변 내용을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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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유럽에 관한 자료가 없다. 미국에 대한 비판만 존재한다. 이 교수가 미국 비판에 너무 매몰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라고 짐작된다. 대통령의 질문은 미국과 유럽의 비교였다. 그렇다면 어느 한 쪽을 비판하는 데 몰입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양쪽을 비교하기만 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삶의 질

도표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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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사망률에 있어서 미국이 유럽보다 나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유럽이 미국보다 낫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GDP의 허점에 대해서는 유럽만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앞선 글들에서 소개했듯이 미국에서도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차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자유시장 모델에서 네트워크 협력 모델로

이 교수는 이상에서 열거한 이유들 때문에 아메리칸 모델이 저물고 유러피언 모델이 인류의 미래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세계는 자유시장 모델에서 네트워크 모델로 혁명적인 변화 도상에 있으며, 유럽이 이 변화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통신혁명이 이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인데, 통신혁명에 따라 세계적인 상호의존과 연결성이 고도로 증대되었다.” - 위의 책 217쪽

이 교수는 답변에서 아마존닷컴과 냅스터를 비교해놓았다. CD를 구매해야 하는 아마존과 월정액을 내고 라이브러리를 이용하는 냅스터 방식을 비교하면서 냅스터 방식이 큰 흐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네트워크 모델이 유럽만의 특수성이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네트워크 모델을 유럽과 미국의 차이점으로 부각하기는 힘들 것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 교수의 말을 들어 보자.

“네트워크 모델은 재산 개념의 재정립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재산의 개념은 '내 것 대 네 것'이라는 간단한 공식으로 표현되는 근대 초기 배타적인 사유재산권은 민주주의와 충돌해 온 오랜 역사를 거쳐, 이제 사용권의 공유 그리고 네트워크 접근성으로 거대한 전환을 겪고 있다.” - 위의 책 218쪽

이 부분은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재산권 개념에 변화가 얼마나 일어나는지 말이다. 지금은 리프킨의 ‘예측’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진보주의와 시대정신을 세워야

한국은 미국적 가치와 많이 닮아 있는 나라다. 해방 이후의 한국이 미국의 보호 아래 있었던 역사적 맥락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을 비교하는 것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이고, 미국은 미국이고, 유럽은 유럽이다. 그래서 이 교수도 코리언드림과 유러피언드림이 같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국의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 토대 위에서 유럽이든, 미국이든, 우리가 참조할 것은 참조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실사구시의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닐까? 그 속에서 한국 진보주의의 비전과 가치를 새롭게 세우고, 그 토대 위에서 전략을 짜야 한다.

어떻든 이 교수의 답변은 유럽과 미국을 잘 비교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쪽에 편파적인 우호감과 적대감이 작용한 것은 실사구시의 자세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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