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질문 3] 진보 세력의 한계는 무엇인가?
페이지 정보

본문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 2010-11-03)
“그래 이제 자칭 진보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한번 보자. 노동운동의 한계, 좌절, 그런데 자기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의욕, 의식, 이념과 투쟁 의식 같은 것, 노동과 환경은 변화하고 있는데 철석같이 변화하지 않는 이 사람들, 그리고 이기주의, 이런 것들이 짚어질 수 있는 것이냐?" - <진보의 미래> 125쪽
이 질문은 답변이 쉽지 않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소위 '리얼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의 반성문도 나와야 하고, 소위 '자유주의자'들에게서도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념과 사상, 소위 '이즘'에 갇힌 교조주의에 대한 반성문이 철저하게 나와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의 질문에 누가 답을 할 것인가? 기대할 수 있는가? 기대할 수 없다면 한국이라는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노동과 자본을 적대적인 개념으로 위치지은 마르크스의 틀은 여전히 강고하다. 자본을 타도하자는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자본은 타도되어 지는가? 그럴 능력은 있는가?
민주노총 산하의 거대 공기업과 대기업 노조는 진보인가? 걸핏하면 진보를 외치는 정규직 교수들이 시간강사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왜인가? 공기업 민영화는 악인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 그럴 물적 토대는 있는가? 만약 불가능한 이야기를 떠드는 것이라면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구호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자신들을 선한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기만책은 아닌가? 정규직 노조들이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일자리를 나눌 의향은 있는가? 근로시간을 단축하여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여건을 정규직 노조가 양보할 수 있는가?
수많은 질문이 존재한다. 이 세상을 단순히 좌파와 우파로 나눌 수 없는 이유다. 정의란 무엇인가? 평등은 가능한가? 합리적 불평등은 필연적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인간의 능력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에 따른 차등은 필연적이다. 이걸 부인할 수 있는가?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다. 모든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생존의 최소 물적토대를 갖추는 것은 일자리다. 보편적 복지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이념이라는 틀로 이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옳은가? 한국 사회가 당면한 숱한 현실적인 문제를 이념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가? 이념은 이미 획득한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이 된 것은 아닌가? 자본과 대립하는 노동이라면, 그들이 누리는 터무니없는 보상도 눈감아야 하는가?
수많은 질문에 답할 능력은 갖추었는가? 이상을 추진할 여건은 갖춰졌는가? 역량은 뒷받침되는가? '리얼 진보'는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정해구의 답변] 경쟁속에서도 상호협조와 역할분담해야
정교수는 우선 한국의 진보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역사적 맥락부터 살핀다. 그 특징은 서구 사회의 역사발전 경로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 서구와 한국은 다르다. 역사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서구의 역사발전 경로에 억지로 보편성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서구의 사상과 이론은 그들이 처했던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지, 한국의 상황을 고려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특수성은 존재한다. 어디 한국 뿐일까? 모든 나라가 그렇다. 조선이라는 봉건제 국가에서 시민들의 힘으로 체제를 바꾼 경험도 없다. 새로운 사상의 세례를 받아 체제전환에 제대로 적용한 경험도 없다. 그리고 곧장 일제 식민지 체제로 들어갔다. 그리고 항일운동 과정에서 등장한 것은 민족주의였다.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이미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복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까지 등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일제에서 해방이 되면서 한국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조건은 다양한 사상의 학습과 실천을 제약했고, 반공주의라는 괴물이 탄생한다.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상이 중심이 된 것이다. 무슨 가치지향성도 없는 '이즘'이 장악한 것이다. 반공주의 아래에서는 자유주의도, 민족주의도 억압받았다. 서구사회에서는 보수적인 이념으로 밀린 생각조차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성장주의'가 더해진다. 이름하여 '반공성장주의'다. 이런 시대적 환경 속에서 한국의 진보진영은 '자유주의'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연속된 군부독재정권 하에서는 자유가 가장 큰 당면과제였고, 결정판은 87년 시민항쟁이다.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겨우 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도 어느 정도 숨쉴 수 있게 되었다. '민주화'라는 과제를 해결한 이후 진보진영의 분열을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교수는 한국 진보진영을 이렇게 분류한다. "현재 한국의 진보주의는 한편으로는 개혁적 자유주의의 모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평등과 분배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미하거나 또는 그것을 포함하는 또 다른 진보주의의 모습으로 분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노무현이 꿈꾼 미래> 56쪽 <개혁적 자유주의>와 <평등.분배주의>는 노회찬 말마따나 한강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리얼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과 같은 개혁적 자유주의를 '가짜 진보'라고 부른다. 87년 이전에는 한 팀이었는데 이제는 한 팀이 아닌 것이다. 정교수는 한국 진보진영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하나의 기준은 반공-성장주의에서 평등-분배주의에 이르는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이며, 다른 하나의 기준은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의 상황에서 비롯되는 특수한 기준으로 북한에 대한 태도이다." - 위의 책 56쪽 이같은 두 개의 기준을 사용해서 분류하면 다음 그림처럼 분포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 위의 책 57쪽 그러면서도 정교수는 "이데올로기 분화가 뒤늦은 한국적 상황에서 개혁적 자유주의와 평등-분배주의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정교수의 이 실토야말로 한국적 상황의 진실에 접근하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를 어떤 주의나 이데올로기로 획일적으로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이같은 분석은 편의적인 도구일 뿐이다. 간단하게 한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는 있겠지만, 무우 자르듯이 이런 식으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그 내부로 들어가보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력'이라는 관점에서는 이런 분석에 동의할 수 있다. 국민참여당이 빠졌는데, 민주당보다는 조금 더 왼쪽, 민노당보다는 조금 오른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정 교수는 87년 이후 한국의 진보진영이 이렇게 분화되어 왔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그 이후의 진보진영의 특징과 한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양자(개혁적 자유주의와 평등분배주의)의 관계는 지나치게 분열적인 경우가 많을뿐더러, 때로는 그 분열이 상호 적대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나아가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부인과 대체의 인식과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진보 세력은 그들이 바탕하고 있는 공통성보다 그 차이를 더 강조하는 '신념의 정치'가 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 위의 책 60쪽 그렇다. '차이'를 드러낸다는 것은 선명성 경쟁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관계가 그렇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관계가 그렇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 더 강한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그리고 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의 집권으로 분화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분화는 했지만, 연대가 안된다. 분화가 분열이 된 것이다. 세세한 논리로 따지고, 감정으로 맞선다. 사실 논리라는 것이 얼마나 정확성을 가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슨 절대적인 교리를 받드는 모습도 보인다. 미세한 차이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고집스러운 '사상의 보수성'이 연대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교수는 이렇게 우려한다. "진보세력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우리 사회의 진보 세력들이 분화와 경쟁 속에서도 상호 협조와 역할 분담의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기보다는, 점차 분열적이고 파편적인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 위의 책 62쪽 이같은 정교수의 말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지금 눈 앞에서 보고 있는 현실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교수의 결론도 누구나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오면 정교수의 글은 노무현의 세번째 질문을 벗어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소위 '리얼 진보'를 주창하는 세력의 문제점에 대한 정면 비판은 없기 때문이다. 비판을 떠나서 분석도 없다. 다만 정교수는 한국 노동운동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사회적 진보 세력으로서 노동운동에 대해 보다 우려스러운 일은 그들이 일종의 '이익단체'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중략)...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기득권만을 대변하는 것이 될 때, 그것은 이익단체로서의 노동조합 이상은 아니다." - 위의 책 61쪽 이것이 유일한 답변이라고 할 수도 있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과 그 세력, 즉 개혁적 자유주의 혹은 유시민이 주창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보수진영 뿐만 아니라 '리얼 진보'로부터 받은 비판은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리얼 진보'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은 별로 없다. 소위 '리얼 진보'는 성역인가? 아니면 앞으로도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책임질 일이 없는 세력이어서 비판할 가치도 없는 것인가? 개혁적 자유주의(진보적 자유주의)와 '리얼 진보'가 연대를 하기 위해서는 노무현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교수의 답변은 핵심을 비켜간, 민감한 부분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 성격이 짙다. 그래서 노무현의 세번째 질문에 대한 정해구 교수의 답변은 그 내용의 충실성으로 볼 때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이 부분에 관하여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의 <노무현 이후-새 시대의 플랫폼은 무엇인가>를 참조할 필요가 있겠다. 또한 노무현 스스로 한국 진보진영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해놓은 글이 있다. 다음 기회에 함께 소개하기로 한다. |
스나이퍼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fp_forum&uid=256
- 이전글[노무현의 질문 4] 진보정치가 가야 할 방향은? 10.11.05
- 다음글[노무현의 질문 2] 김대중, 노무현정부는 진보정권이었나? 10.11.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