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질문 11]진보진영이 퇴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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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 10-11-16 13:09 조회 2,285 댓글 0본문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kwonsw87) / 2010-11-15 09:13)
[노무현의 질문 11] 진보진영이 퇴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 2010-11-15)
“정치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집권을 했으나 진보 진영은 제3의 길, 신중도주의, 진보정치 지도자회의, 이런 노선들이 신자유주의의 일부 논리를 수용했다. 이른바 보수 시대의 진보주의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진보 진영은 분열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상의 변화인가? 환경의 변화인가?
사상의 변화라면, 그것은 진보의 오류 때문인가? 신자유주의-보수주의 타당성의 우월성 때문일까? 제도주의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세계화, 기술의 발전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상과 제도의 문제인가? 환경변화의 결과인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자. 이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대책이 달라질 것이다.” - <진보의 미래> 44쪽
그렇다. 이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마따나 중요한 문제다.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대책이 달라질 테니까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노 대통령 스스로 약간의 언급을 해놓은 것이 있다. 다음 구절이다.
“그러니까 전통적 이론, 전통적 좌파는 뭐냐면 제도 문제로 보고 있거든요. 제도 문제로 보고 있고 장하준 씨는 언급이 없어요. 폴 크루그먼은 노동조합을 억압하고 푸대접하고 그래서 노동 조직률이 떨어지고 사회적 압력도 없고 해서 그렇다는 거고요. 제도다 이거거든요.
그런데 또 로버트 라이시 같은 사람은 그게 제도가 아니라 직업 환경의 변화라는 소위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명확하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뭐 합의도 없고 대답도 없고, 이런 부분에서 이제 <해밀턴 보고서>라든지 미국 오바마 진영에서 내놓고 있는 대안은 뭔지 모르죠.” - 진보의 미래 1권 196쪽
질문의 핵심 요지는 원인을 분석해보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답변이 나왔을까?
[김호기의 답변] 경제위기에 능동적 대처 못했다
김 교수는 먼저 ‘진보 진영의 퇴조’라는 표현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의 <진보의 시대>, 그리고 그 이후 <보수의 시대>를 거쳐 미국 오바마와 일본의 하토야마 정부가 들어선 최근의 상황을 고려할 때 ‘퇴조’보다는 ‘정체’라는 표현이 맞는다고 한다. “정체라는 말을 선호하는 이유는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과연 진보 진영의 상황을 퇴조라고만 보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구체적으로 오바마 정부가 등장하기 전에도 서유럽에서는 중도진보진영이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영국의 브라운 정부나 독일의 연립 정부의 경우를 보면 퇴조라는 말은 다소 과도한 평가인 듯하기 때문이다.” - <노무현이 꿈꾼 나라> 169쪽 퇴조냐 정체냐를 놓고 옥신각신할 필요는 없겠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그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꼼꼼하게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진보 진영의 정체를 불러온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했던 포드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게 된 1970년대 중반, 이에 대한 대응에 따라 진보의 정체, 보수의 약진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현대화 전략은 저부가가치 산업을 도태시켜 설비 투자를 합리화하고 산업구조를 재조정시킴으로써 일본과 미국이 불황을 어느 정도 벗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에 서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이런 현대화 전략을 회피했으며, 이것은 특히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에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하면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 변동이라는 객관적 조건은 복지국가를 지향해 온 서유럽 진보 진영의 정체를 가져오는 외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 위의 책 171쪽 열 번째 답변에서도 언급됐듯이 이후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게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결과 유럽의 진보 진영은 오랜 야당생활 끝에 ‘제3의 길’을 통해 재집권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제3의 길은 어떤 성격인가? 김 교수는 답변을 보자. “‘제3의 길’이 진보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울리히 벡이 말하는 ‘신자유주의 좌파’가 적절한 개념이 될 것이다. 경제 정책에서는 신자유주의에 기울어졌지만, 여전히 좌파적 가치를 지향한 것에 ‘제3의 길’의 본질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통 좌파를 지지하는 그룹이 보기에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의 아류일 수 있으며, 세계화의 충격을 고려하려는 현실주의 그룹이 보기에 ‘제3의 길’은 중도좌파로서의 정치적 정체성을 유지하되 사회민주주의를 갱신하고자 한 시도일 수 있다.” - 위의 책 175쪽 사실 ‘신자유주의 좌파’라는 규정은 ‘신자유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즉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 노선의 아류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리얼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규정에 따라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정권이 아니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김 교수의 분석은 애매모호하다. ‘리얼 진보’ 진영에 대한 언급 자체를 회피하고 넘어갔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어쨌든 ‘신자유주의 좌파’라는 식의 규정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사상과 이념, 그리고 이론은 인간을 위해 현실을 분석하는 데 쓰이는 도구다. 현실을 개선하는 데 참조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한국 진보진영의 논쟁을 보고 있노라면, 이념과 사상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고, 이념과 사상이라는 틀에 현실을 갖다 맞춘다는 것이다. 침대 크기에 따라 다리를 늘리거나 자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연상될 정도다. 이념이나 사상에 투철한 것은 주관적 신념이다. 나무랄 것도 없다. 개인적인 신념이니까. 그런데 주관적 신념을 객관적 현실로 착각하는 경향마저 보이는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개선해나가는 과학적 자세(‘리얼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학적 자세를 중요하게 여겨서 쓰는 표현이다)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신학적’이고 ‘미신적’이기까지 하다고 볼 수 있다. 이념과 사상에 투철한 ‘리얼 진보’의 자세가 일반 대중들과 점점 멀어지는 이유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떻든 이런 맥락 속에서 김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치러진 세계 각국의 선거 결과를 분석하면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 데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 위기가 정치 변화에 미친 영향은 나라에 따라 양상이 사뭇 달랐다……. (중략)…… 진보의 거점이었던 서유럽에서는 보수적 경향이 강화된 반면 보수의 아성이었던 미국과 일본에서는 진보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둘째, 어느 나라이건 기존 정부 및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이 크게 반영되었다……. (중략)…… 새로운 세력에 대한 대망론보다 기존 세력에 대한 심판론이 그 결과를 좌우해 온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일자리 창출과 안정으로 대표되는 생활 정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졌다.” - 위의 책 176쪽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김 교수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세계사적으로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가 마감하는 현재, 전환의 문턱 너머에 있는 사회는 이념 통섭consilence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가 진보적 정책을 차용하고 진보가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을 그 실제적인 증거로 지목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진보의 새로운 과제가 놓여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존의 이념적 이분법을 넘어서서 성장 동력 확충, 일자리 창출, 사회 양극화 해소 등을 포괄하는 생활 정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비전 모색과 정책 대안 개발은 진보 진영에 부여된 엄중한 과제이다.” - 위의 책 177쪽 개인적으로 김 교수의 결론에 동의한다. 이념과 사상이라는 주관적 신념들이 다른 생각들과 융합해야 한다. 통해야 한다.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지극히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요구가 담겨 있다. 그런데 잘 안된다. 왜 안될까? 주관적 신념들이 너무 강해서는 아닐까? 그렇다면 진보 진영, 특히 한국 진보 진영의 과제는 이런 자세, 혹은 태도를 수정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아닐까? 여전히 ‘리얼 진보’와 ‘가짜 진보’를 구분하려 하고, ‘진보’와 ‘개혁’으로 나누고,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모순관계’라거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진보’라거나 하는 식으로 이념과 사상이 인간을 지배하는 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진보 진영의 과제는 아닐까? 글을 마치기 전에 대통령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열한 번째 질문의 요지는 진보 진영이 퇴조(정체)한 이유가 무엇인가이다. 사상과 제도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의 발전에 따른 세계화 등으로 외부 환경이 바뀌어서인지를 물었다. 진보 진영의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한 자세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큰 흐름에서 볼 때 그런 분석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언급은 해주는 것이 좋았을 뻔했다. 결론적으로 큰 흐름에서는 이해를 돕는 답변이긴 하지만, 대통령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는 약간 동문서답이 아닌가 한다. 거의 유일하게 나온 답변이 있다면 1970년대 중반에 닥친 경제위기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서 레이건과 대처로 상징되는 신보수주의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정도다. 동의할 수 있는 답변이지만, 여전히 진보 진영의 성찰이나 비판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미흡한 답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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