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기-12]"조국통일되면 남북 해외동포들 모두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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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12]선군정치가 강성대국의 기둥
조국통일되면 남북 해외동포들 모두 행복
[평양=민족통신 노길남/유태영 공동취재단]이번 북녘 땅을 취재하기 위해 열흘간 머무르는 동안 각계 각층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지만 이들의 민심을 통하여 북부조국의 현주소를 진단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민족통신 공동취재단은 이 땅을 밟기 전에 계획했던 당초의 취재일정들을 모두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정리했다.
[출처 : 민족통신 공동취재단 2011-03-20]
민족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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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9] [방북기-12]선군정치가 강성대국의 기둥 조국통일되면 남북 해외동포들 모두 행복 [평양=민족통신 노길남/유태영 공동취재단]이번 북녘 땅을 취재하기 위해 열흘간 머무르는 동안 각계 각층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지만 이들의 민심을 통하여 북부조국의 현주소를 진단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민족통신 공동취재단은 이 땅을 밟기 전에 계획했던 당초의 취재일정들을 모두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정리했다.
민족통신 공동취재단은 이번 방문에서도 북녘 사회가 이뤄 놓은 세계 제1의 일심단결이 어디에서 온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시켰다. ‘조선혁명박물관’의 실록관을 비롯하여 조선로동당 ‘당창건 사적관’ 등에 비치된 자료들과 해설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북녘이 이룩한 ‘일심단결’의 뿌리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에 대하여 다시 한번 관심을 기울였다. 이 같은 관심은 비단 우리만의 의문이 아닌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들 뿐만 아니라 이들 강대국들에 시달려 온 피해국들, 이른바 제3세계 나라들도 고개를 갸우뚱하여 왔기 때문이다. 김일성 항일혁명시기부터 이어진 전통 북녘의 ‘일심단결’은 하루 아침에, 그것도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 다시 절감하게 된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투쟁 첫 시기부터 이어온 동지들 사이의 사상단결이 그 뿌리가 된다. 김일성 주석은 이미 10대 중반에 해당하는 시기였던 1926년 10월에 ‘ㅌ ㄷ제국주의 동맹(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 그 당시 항일투쟁혁명을 전개할 때 조직성원들의 연령과 성향은 다양했다. 김 주석보다 열살이나 위인 지식인들도 있었고, 각계 각층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 있었지만 김일성 주석의 애국일념을 관찰하면서 이 분을 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결의 중심을 누구로 내 세우는가에 초점이 모아진다. 그 후 4년만인 1930년 6월30일 중국 땅에서 ‘카륜회의’를 주제한 김일성 주석은 여기에서 ‘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하고 이에 기초하여 항일혁명을 전개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김일성 항일유격대원들이 겪었던 난관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1938년 이른바 일제와의 투쟁에서도 제1차 고난의 행군을 체험했고, 8.15해방이후 강대국들에 의해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사업과 함께 미 제국주의의 대북적대시 정책에 맞서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한 생을 바쳐 온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8일 서거한 바로 그 이듬해인 1995년 8월에 닥쳐 온 세기만의 큰 물난리 사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의 붕괴로 인한 무역난관 사태, 그리고 미국의 대북압살고립정책으로 중첩되었던 제2차 고난의 행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펼친 ‘선군정치’ 에 의하여 극복되었다. 이러한 힘은 바로 북녘의 최고 지도자와 군민이 이뤄낸 ‘일심단결’에 비롯 되었다. 이러한 북녘의 ‘일심단결’은 단순한 대동단결이 아니라 북녘 인민들의 사상적 단결에 기초한 조직적 단결, 도덕의리적 단결에 바탕을 둔 위대한 힘으로 분출되었다. 다름아닌 이 같은 ‘일심단결’이 바로 오늘의 북녘사회를 그 어느 나라도 흉내내지 못하는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음악예술강국, 첨단과학기술강국으로 자리매김하여 주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2012년 경공업 분야를 불러 일으켜 강성대국의 문패를 달기 위한 목표도 그 달성 지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존경은 절대적 북녘 동포들 사이에는 동지적 의리를 중시한다. 이 의리는 상호간의 믿음을 바탕에 둔다. 프랑스의 영웅 나포레옹도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다. “그대들이 나를 믿어라, 나도 그러면 그대들을 믿는다”라고 했다. 이 뜻은 북녘사회에서 사용되는 동지적 의리와는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나포레옹은 나를 먼저 믿으라고 하였지만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은 나와 동지적 믿음과 신뢰의 관계는 동시적이지 선후적이나 조건부가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북녘의 지도자는 인민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다. 북녘의 지도자는 문제가 생기고 의문이 나면 그 대답을 인민에게 물어보라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그런가하면 북녘 동포들의 최고 지도자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북녘동포들은 누구나 ‘이민위천’의 사상을 말한다. 영도자가 인민을 하늘처럼 생각한다는 그 믿음은 항일투쟁시기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북녘사회의 ‘일심단결’을 만들어 낸 핵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에 관련된 일화들이 수없이 많다. 기록영화를 만들다 순직한 ‘신윤선’, 훌륭한 연출가로 활동하다가 운명하여 애국열사릉에 묻힌 ‘오병초’, ‘조선의 별’ 주제가를 작사한 리종순의 처가 불치에 병에 걸려 있을 때 여우뇌가 필요하다고 하여 김정일 위원장이 그것을 직접 사냥총으로 여우를 잡아 준 일화, 인민들과 인민들 사이의 동지적 사랑의 이야기도 수두룩하다. 긴급환자가 피가 필요하고, 살이 필요할 때 의사들과 간호원 등 의료진 성원들이 자기 피와 살을 떼어 환자들을 살려내는 미담 등 북녘사회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동지적 의리에 얽힌 이야기들은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사랑의 이야기들이 북녘 동포들의 입과 입을 통해 회자해 왔다.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동지관에 대해 “나는 그대이고 그대는 나이다”라고 정의하며 이것이 나의 동지관이라고 말해왔다. 핵무기 보다 더 강하다는 북녘사회의 ‘일심단결’은 다름 아닌 이러한 동지애의 분출이라고도 지적할 수 있다. 컴퓨터숫자조절기(CNC) 기술이 2009년 8축 수준까지 갔으나 이것을 일년도 안되는 기간에 9축 수준까지 올려 놓았다는 놀라운 사실도 그 밑 바탕에는 동지애에 기초한 정신력이 뒷받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신력은 단지 과학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사회, 교육, 문화, 과학, 문학, 체육, 음악, 예술, 무용 등 북녘사회 전반에 걸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전쟁시기의 일화에서도 나타난다. 1950년-1953년 사이에 조국반도에 전쟁이 터져 평양시 건물들이 거의 잿더미가 되었다. 평양시 거주민들이 당시 40만명 가량 살았는데 미군폭격기가 이곳에 40만여개의 폭탄을 떨어트려 평양시 일대를 완전 폐허로 만들어 놓았다. 그 때 서방세계 사람들을 포함하여 외국인들은 1백년이 가도 복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과 북녘동포들은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그것도 다른 나라들 신세지지 않고 자력갱생의 힘으로 수년만에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다. 대동강의 기적은 이미 50년대 말과 60년대에 일어났다. 70년대에 들어서서는 제 궤도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기적과 같은 역사과정을 창조해 낸 힘은 바로 훌륭한 지도자의 영도력과 군민일체의 일심단결이 있었기 때문이리고 파악되었다. 조국통일되면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 민족통신 공동취재단은 계획된 취재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향하는 고려민항에 올랐다. 비행기도 새로 구입한 신형기였다. 좌석마다 천정에 달아 놓은 모니터 스크린에서 승객에 대한 주의사항과 함께 북녘 노래들이 울려퍼진다. 10일 동안 북녘에 체류하면서 만났던 각계각층 동포들의 얼굴들을 떠 올렸다. 북녘동포들의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들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무척 갈망하고 있었다.”로 묘사할 수 있다. 북녘동포들이 뜨겁게 받아들이며 좋아하는 어휘는 “평화통일” 네글자였다. 남북이 같은 형제자매로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하는 것이 북녘 동포들의 한결같은 마음들이었다. 앉으나 서나 북녘동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 “통일”은 그 어디에서나 통했다. 호텔에서, 식당에서, 박물관에서, 학교에서, 농장에서, 그 어딜가나 해외동포 통일운동을 위한 민족언론인들이라고 소개하면 누구 하나도 빠짐없이 반겨 맞아 주었다. 잠시 비행기에서 눈을 감고 지난 해 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 20주년기념행사에 참석하려고 서울에 갔던 생각을 떠 올려 보았다. 이명박 정부측에서는 이 행사 장소까지 불허하는 바람에 건국대 강당에서 갑자기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하는 사태를 경험했다. 그래도 1천2백여명이 운집한 관중들의 통일열기는 뜨거웠지만 조, 중, 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이러한 거대한 행사에 대해 단 한줄도 기사화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겨레신문’조차도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다. 이미 이명박 정권은 일제시대처럼 언론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었다. ‘민족통신’을 포함하여 30여개 해외통일운동 지향 인터네트 사이트들과 북녘의 인터네트 사이트들은 남측 공안당국에서 차단하여 알 권리조차 가로 막고 있었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일반사람들은 ‘통일’이라는 두글자를 말하면 마치도 이상한 것처럼 반응하며 때로는 “돈도 생기지 않는데 그런 걸 왜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사람들은 아예 통일운동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좌빨’이니 ‘친북’이니 하면서 매도하는 말을 하는 것이 보편화하고 있는 사회현상도 엿볼 수 있었다.
인천 상공을 떠 오르며 미국을 향해 구름을 박차고 달리는 항공기 창밖을 내다보며 “조국의 평화통일만 되면 남과 북, 해외동포 모두가 행복할 텐데…”라고 혼자 읊조리며 남과 북을 동시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과 북은 본래 하나의 조국이었다. 그 분단을 만든 주범은 외세, 즉 미국 지배세력이었다. 미국과 일본 지배세력들은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극구 반대해 왔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 외세들은 입만 열만 대북적대시 발언들만 일삼아 온 것이다. 툭하면 “굶어죽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붕괴되어 급변사태가 온다.”, “인권이 없다.”, “미사일과 핵무기만 만든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 등의 말들만 퍼트리면서 북의 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왔다. 이에 비해 북측 당국은 진정으로 북미관계 정상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관계로 전환되기를 갈망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과 합의하고 서명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할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러한 남북정상들의 선언들은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못 박았다. 그래서 남북 양측의 통일방안은 양측의 이념이나 제도 등을 간섭하지 않는 조건에서 첫 단계로 느슨한 형태의 연방통일방안이나 연합통일 방안으로 상호 토론하여 합의하는 선에서 통일로 가자는 약속이었다. 북측 당국이나 북측 동포들은 이에 대해 전혀 이의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 북에 대해 전혀 무지 이명박 정권은 북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것 같다. 북의 변화를 유도하여 그 체제를 바꾸겠다는 의도로 대북정책을 몰고 가고 있는데 이것은 짤라 말해서 전혀 불가능하다. 북은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이 아니다. 탈북자들의 이야기만 듣고 대북정책을 그런식으로 끌고 간다면 그 후유증은 심각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 내부의 대북관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심지어는 급변사태를 기정사실화 시켜 놓고 북의 재산상속문제를 포함하여 토지문제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으니 이 같은 사실이 얼마나 북을 모르는가를 구체적으로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우선 (1)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점과 (2)동북아 정세와 객관적인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에서 비롯되는 점 등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북-중간의 관계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남북대결 상태가 미국만 영향을 주는게 아니라 중국의 영향도 간과해서는 안되는데 이명박 정권은 북-중관계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북-중관계는 이미 그 어느나라 양국관계 보다 한-미관계나 한-미-일 관계 측면에서 이명박 정권의 각본이 전혀 수용될 수 없는 전략적 관계에서 반기를 들고 나설 것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전망이다. 이명박 정권이 미국의 힘을 얻어 북과 대결하여 급변사태를 유도하려는 노력에 맥놓고 가만이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당장 중국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대북대결정책에 이용하여 왔으나 이러한 노력도 앞으로는 역반응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 두사건이 이명박 정권의 조작행위와 그 배후세력이 미국지배세력이라는 분석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 북(Facebook)"과 "트위터(Twitter)"에서는 벌써 이 사건들이 한미합작 공작이라는 것이 노골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남북관계 정상화에 대한 남측 국민들의 요구와 해외 동포들 그리고 국제사회 여론들은 점차 그 정상화를 회피하며 긴장을 의도적으로 조성시켜 온 것이 이명박 정권이고 그 배후가 오바마 정권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남녘동포들이나 해외동포들에게 대북대결정책을 노골적으로 나타내 왔다. 심지어는 “해외에서 운영하는 북측 식당을 이용하지 말라”. 또는 “사과나무를 기르기 위해 묘목으로 북에 들어가는 것도 식량대용이다”라고 하는 유치한 지시까지 내릴 정도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은 역대 집권세력 가운데 가장 유치하고 치졸한 자세로 평가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또 북핵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 대북대화와 협상을 거부해 왔는데 이것도 6자회담이 어떻게 돌아갔으며 북미간에 94년 제네바 협정부터 지금까지 어느 편에서 약속을 어겼는가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남측은 6자회담 과정중에 나온 2.13합의에 대한 보상문제도 아직 일본과 함께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 북은 영변핵발전소 냉각탑까지 폭파시키는 성의를 보여주었으나 이에 대한 미국, 일본, 한국은 아직도 주기로 한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북미관계, 6자회담 관계를 ‘전략적 인내’라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 북미관계를 후퇴시켜 놓고 동북아 정세를 긴장으로 몰고 온 것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북미관계, 남북관계, 6자회담 관계를 놓고 따져 보아도 누가 약속을 지켜 왔으며 누가 이행하지 않았는가를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이것들을 말하지 않으면서 진정성이나 전략적 인내이니 하면서 북을 몰아 세우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먼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안위도 안중에 없는 자세를 보이며 막가파식으로 가고 있다. 2월28일부터 4월30일까지 근 두달동안 미군 1만8천여명, 남한군 21만명이나 동원하여 북을 노골적으로 겨냥하여 ‘급변사태’에 대비한 훈련으로 지칭하고 북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시키고 있어 여차하면 국지전 내지 핵전쟁까지 일어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그런가하면 남측 당국은 탈북자, 보수단체를 동원하여 북으로 삐라를 날리는가 하면 남측군부가 나서서 삐라 340만장을 날리는데 지원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러한 행위야 말로 완전히 도발행위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전시상태도 아닌데 극도로 자극적인 심리전 행위를 공공연히 하였기 때문이다. 답답한 것은 이명박 정권과 그 관리들이 국제정세에도 아주 어둡다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미국의 위상이 추락되고 있다. 향후 동북아 지배권이 하향곡선을 그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돌입하고 있다. 일본은 점차 탈미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게 9천억달러를 빌려 줄 정도로 강세를 보이며 세계 제2강국의 자리를 탈환하고 동북아 정세 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서도 그 영향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남한 국민들과 해외동포들의 반이명박 정서는 극에 달할 정도로 악화되어 가고 있고 멀지 않아 대통령 자리를 내놓을 시기에 어떠한 사태가 온다는 것 쯤은 알아야 되는데 그것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며 그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보좌진들이다. 국내외 동포들은 4대강사업을 포함하여 민생을 악화시켜온 장본인으로 그리고 남북관계를 최악의 사태로 만든 장본인으로 지적하며 두고 두고 원한을 뱉어 낼 것이다. 우리 민족통신 공동취재단은 방북취재 중 가급적이면 남측 사정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절제했다. 그리고 북측 동포들도 우리의 입장과 자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 정부관리와 만난 자리에서 잠시 동안 남북관계에 대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우리 취재단이 보는 관점과 거의 유사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무척바라고 있었고, 북미관계 개선으로 양국이 우호적인 관계로 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이 관리의 발언을 외교적인 발언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리고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우리 사정을 있는 그대로이야기 한다. 이것은 우리 인민 모두의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마지막에 짧게 한마디 한 것이 우리 머리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대로 옮길수는 없지만 그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대화도 대결도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경우) 우리는 준비도 되어 있고, 계획도 있습니다. 우리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알 것입니다. 우리식 통일로 갈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불가피한 경우에 이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되었다. 나는 미국 공항에 곧 도착할 것이라고 알리는 기장의 방송소리를 들으면서 두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북부조국 제대로 알리는 운동이 절실하다는 점과 둘째로 남녘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그 주변 관리들이 북을 올바로 이해하는 동시에 국제정세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절박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곧 남과 북을 위하는 길이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도 생각하게 된 것이 이번 방북취재의 결론이다. 그런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던져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 정신을 차리고 남은 기간이나마 지금까지의 실책을 만회하여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그것이 곧 국민들을 위하는 길이며 동시에 전쟁을 막는 길이며, 전임 대통령들이 남겨 놓은 업적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길이 될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 신자이며 더욱이 장로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통신 공동취재단 일원인 유태영 상임논설위원은 목사이고, 대표겸 편집인도 교회 장로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공동취재단은 이 방북기를 마치면서 이명박 대통령도 우리 마음과 같이 “조국이 평화적으로 통일되면 남북 해외동포들 모두 행복할텐데..”하는 생각을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고 기도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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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족통신 공동취재단 201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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