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이 아니라 ‘코리아 인권’ 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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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잣대 가운데 하나는 북한에 대한 태도이다. 즉 통일 방법론, 북핵에 대한 규정과 해결, 경제 협력이나 인도적 지원 여부에 대한 태도에 따라 한국인들은 진보나 보수로 분류된다. 북한 인권 문제 역시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진보 진영은 인권을 거론하는 게 남북 협력을 파탄 낼까봐서 주저하는 반면, 보수 진영은 인권의 절대성을 앞세워 북한 체제의 전복까지 넘겨다본다.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서보혁의 <코리아 인권-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책세상)는 무척 반가운 책이다. 솔직히 말해, 북한 인권 문제가 한반도의 평화나 통일 문제와 밀접한 주제임에도 식상한 화제로 치부되어온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제껏 북한 인권 문제는 탈북자(새터민)나 국내외 북한 인권 관련 시민단체가 독점한 가운데, 지난 10여 년 동안 여야의 정쟁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다. 하지만 지은이의 문제의식에 따르면, 북한 인권 문제는 남북한이 평화 체제로 가는 길목의 교두보가 될 수도 있고, 복병이 될 수도 있다.
북한 인권이 한국 사회의 난제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탈북자들의 증언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을 부각해 ‘북한 정권 교체’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던 조지 W. 부시 정권의 전략이 한몫 했다. 2004년 10월 미국 연방 상하 양원에서 북한 인권법안이 통과되자, 남한에서도 한나라당을 주축으로 한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북한 인권 개선 관련 법률안을 공세적으로 추진했다. 이때 참여정부는 인도적 지원과 ‘조용한 외교’ 등을 통한 북한 주민의 생존권 개선, 탈북자 보호 및 입국 사업을 실질적 대안으로 삼았다. 하지만 2008년에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2010년 2월 유사 법안들이 취합된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켰는데, 거기에는 1991년 남북한 총리가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제1조(상대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와 제2조(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에 배치되는 조항이 들어 있다.
사회주의 인권관 이해 못한 채 북한 인권 평가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는 미국이 북한 정부에게 창피를 주고 인권을 내세워 국제적인 북한 제재를 유인하기 위한 필요성과,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이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김정일 정권에 나약한 ‘친북 좌파’로 색칠하기 위한 호재로 의제화한 배경이 있다. 하지만 지은이도 번번이 강조하듯이, 북한 인권 문제는 전반적으로 열악하다. 종종 탈북자의 증언이 미심쩍고 국내외 북한 인권 보고서가 수상쩍은 배후를 가졌더라도, 오해의 원인 역시 상당 부분 북한에 있다. 북한은 네 가지 인권 규약에 가입해 있으면서도, 가입국의 의무인 보고서 제출과 감사에 충실하게 응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북한의 인권 개선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주체는 남한’인데도, 근 10년 넘게 북한 인권 정책이나 논쟁은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북한 인권에 접근하고 개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주의 체제의 인권관을 이해했어야 하는데, 남한의 정책 결정자들이나 운동가들은 자유주의 체제의 잣대로만 북한 인권을 재단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맹점은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는커녕, 남한의 인권마저 왜곡되게 만들었다.
1948년 유엔 총회는 세계인권선언문을 채택했지만 국제법적 효력이 없는 그야말로 선언이었다. 이후 국제법적 의무 이행을 수반하는 국제인권규약을 작성하게 되는데, 자유권을 강조하는 서방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권을 강조하는 옛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끝에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일명 자유권 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ESCR:일명 사회권 규약)’이 나누어 제정되었다. 전자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시민의 경제 활동과 정치 활동을 보호한다면, 후자는 노동할 권리와 노조를 결성할 권리에서부터 교육받고 치료받을 권리 등의 실질적인 삶을 돌본다. 1966년에 채택된 두 규약 가운데 미국은 아직도 사회권 규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로, 미국은 자유권을 중심으로 인권을 파악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그리고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도 자유권 중심의 인권관이 팽배’해 있다.
바로 이런 차이가, 기독교 근본주의 성격을 가졌던 미국의 부시 전 정권이나,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의 대북 인권 단체들이 북한의 인권을 턱없이 낮춰 보는 이유다. 그러나 서로 견해를 좁힐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동서 진영의 인권관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뒤따른 소련 패망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정치학자16명이 글을 보탠 <인권의 정치사상>(이학사)에 논문 한 편을 쓴 오영달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자유권이 홀로 득세한 게 아니라 “‘시민적·정치적’ 권리들이 우선인가 아니면 ‘경제적·사회적’ 권리가 우선인가의 논쟁도 크게 약화되었다”니, 이런 것을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남한 ‘자유권’ vs 북한 ‘사회권’
세계사의 전개는 이처럼 자유권과 사회권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의 북한 인권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예를 들어 현 정권의 북한 인권법안은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사업과 인도적 지원을 연계해 실시해야 한다”라고 다짐하는데, 여기에서는 ‘인도적 지원이 생존권 개선에 이바지한다는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자유권=인권’이라는 자유주의적이고 냉전적 인식이 사회권을 차단함으로써, 북한 인권을 개선하겠다는 법안이 도리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권 인식이야말로 대북 인권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비정규직에 대한 냉대와 철거민들의 주거권 투쟁을 외면하게 만든 주범이다.
자유권을 인권이라고 여기는 남한과 ‘인권=국권’이라고 믿는 북한이 인권이란 가치를 함께 발전시키기 위해 지은이가 제시하는 게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된 ‘코리아 인권’이다. 남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는 코리아 인권은 남한과 북한의 인권을 개별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으로 묶고, 인권을 독립적인 가치가 아닌 평화 체제와 경제적 발전이라는 통합적 연계 속에서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선택적이고 도구적인 북한 인권 논의는 이제 끝나야 한다.
장정일 (소설가)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서보혁의 <코리아 인권-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책세상)는 무척 반가운 책이다. 솔직히 말해, 북한 인권 문제가 한반도의 평화나 통일 문제와 밀접한 주제임에도 식상한 화제로 치부되어온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제껏 북한 인권 문제는 탈북자(새터민)나 국내외 북한 인권 관련 시민단체가 독점한 가운데, 지난 10여 년 동안 여야의 정쟁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다. 하지만 지은이의 문제의식에 따르면, 북한 인권 문제는 남북한이 평화 체제로 가는 길목의 교두보가 될 수도 있고, 복병이 될 수도 있다.
이지영 그림 |
사회주의 인권관 이해 못한 채 북한 인권 평가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는 미국이 북한 정부에게 창피를 주고 인권을 내세워 국제적인 북한 제재를 유인하기 위한 필요성과,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이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김정일 정권에 나약한 ‘친북 좌파’로 색칠하기 위한 호재로 의제화한 배경이 있다. 하지만 지은이도 번번이 강조하듯이, 북한 인권 문제는 전반적으로 열악하다. 종종 탈북자의 증언이 미심쩍고 국내외 북한 인권 보고서가 수상쩍은 배후를 가졌더라도, 오해의 원인 역시 상당 부분 북한에 있다. 북한은 네 가지 인권 규약에 가입해 있으면서도, 가입국의 의무인 보고서 제출과 감사에 충실하게 응하지 않았다.
<코리아 인권-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서보혁 지음, 책세상 펴냄 |
1948년 유엔 총회는 세계인권선언문을 채택했지만 국제법적 효력이 없는 그야말로 선언이었다. 이후 국제법적 의무 이행을 수반하는 국제인권규약을 작성하게 되는데, 자유권을 강조하는 서방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권을 강조하는 옛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끝에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일명 자유권 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ESCR:일명 사회권 규약)’이 나누어 제정되었다. 전자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시민의 경제 활동과 정치 활동을 보호한다면, 후자는 노동할 권리와 노조를 결성할 권리에서부터 교육받고 치료받을 권리 등의 실질적인 삶을 돌본다. 1966년에 채택된 두 규약 가운데 미국은 아직도 사회권 규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로, 미국은 자유권을 중심으로 인권을 파악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그리고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도 자유권 중심의 인권관이 팽배’해 있다.
바로 이런 차이가, 기독교 근본주의 성격을 가졌던 미국의 부시 전 정권이나,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의 대북 인권 단체들이 북한의 인권을 턱없이 낮춰 보는 이유다. 그러나 서로 견해를 좁힐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동서 진영의 인권관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뒤따른 소련 패망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정치학자16명이 글을 보탠 <인권의 정치사상>(이학사)에 논문 한 편을 쓴 오영달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자유권이 홀로 득세한 게 아니라 “‘시민적·정치적’ 권리들이 우선인가 아니면 ‘경제적·사회적’ 권리가 우선인가의 논쟁도 크게 약화되었다”니, 이런 것을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남한 ‘자유권’ vs 북한 ‘사회권’
세계사의 전개는 이처럼 자유권과 사회권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의 북한 인권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예를 들어 현 정권의 북한 인권법안은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사업과 인도적 지원을 연계해 실시해야 한다”라고 다짐하는데, 여기에서는 ‘인도적 지원이 생존권 개선에 이바지한다는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자유권=인권’이라는 자유주의적이고 냉전적 인식이 사회권을 차단함으로써, 북한 인권을 개선하겠다는 법안이 도리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권 인식이야말로 대북 인권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비정규직에 대한 냉대와 철거민들의 주거권 투쟁을 외면하게 만든 주범이다.
자유권을 인권이라고 여기는 남한과 ‘인권=국권’이라고 믿는 북한이 인권이란 가치를 함께 발전시키기 위해 지은이가 제시하는 게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된 ‘코리아 인권’이다. 남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는 코리아 인권은 남한과 북한의 인권을 개별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으로 묶고, 인권을 독립적인 가치가 아닌 평화 체제와 경제적 발전이라는 통합적 연계 속에서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선택적이고 도구적인 북한 인권 논의는 이제 끝나야 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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