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노동의 양과 질 따라 ‘노동보수’ 지급 … 점차 차등화 추세, 무상혜택은 축소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남북노동자가 만난다. 남한의 양대 노총과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은 30일부터 5월3일까지 평양에서 ‘6·15 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2004년 남북노동자 5·1절 통일대회’를 갖기로 했다. <매일노동뉴스>는 뜻깊은 행사를 직접 취재하기 위해 송은정 기자를 평양에 보내기로 했으며, 행사를 앞두고 다섯차례에 걸친 기획연재 ‘북한의 노동자’를 통해 북한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을 미리 살펴본다. <편집자주>
1. 직장배치와 기술교육
2. 직장생활과 여가생활
3. 노동보수로 생활하기
4. 노동자 조직 ‘조선직업총동맹’
5. 북녘에 부는 변화의 바람
예전에도 늘 그랬지만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유독 더 호들갑을 떤다. 자본가들과 <조선일보> 말이다. 총선 뒤 양대 노총이 임금 인상, 비정규직 차별 철폐, 노동시간 단축 등의 임단협 방침을 밝히자 <조선일보>는 바로 “춘투(春鬪)도 경제가 살아야 가능하다”며 노동계가 임금인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말라고 요구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입으로 노동계의 요구에 과거보다 더 힘이 실릴 것이라 점치고 기선을 제압하려는 속셈이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노동자 국회의원의 등장에 신경 꽤나 쓰이는 모양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적게 주려는’ 자본가와 ‘더 많이 받으려는’ 노동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특히 남쪽처럼 사회복지가 열악한 곳에서는 직장에서 받는 ‘임금’이 생계유지의 가장 중요한 - 때로는 거의 유일한 - 수단이 되기 때문에 임금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북쪽은 어떨까? 북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림살이를 꾸려나갈까? 자본가도 없는 사회에서 북녘 노동자들의 월급은 누가 올려줄까? 귀가 솔깃해지는 돈(錢)얘기를 해보자.
노동보수, 직종ㆍ기능ㆍ노동조건 등 따라 차등화
북의 생산수단은 모두 국가소유다. 따라서 남쪽처럼 땅을 가지고 있으면 공장부지를,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 사무실을 빌려주고 “일하지 않고 골프만 치고도” 돈을 버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북에서는 오직 직장에서 ‘노동’을 해야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생계에 필요한 돈과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북에서는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화폐를 분배하는 제도를 ‘노동보수제’라고 부른다. 기본적인 노동보수는 매달 지급되는 ‘생활비’로 크게 도급생활비와 정액생활비로 나뉜다. 도급생활비는 생산물을 생산한 양(또는 작업량)을 계산해주는 것으로 단일도급생활비, 누진도급생활비, 개인도급생활비, 반(班)도급생활비 등이 있다. 특히 북은 채취공업, 금속공업처럼 노동강도가 높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한해 기준작업량까지는 고정된 도급단가를 적용하고, 초과작업량에 대해서는 누진적으로 보수를 높여주는 누진도급제를 실시한다. 한편 당 간부, 행정기관 사무원처럼 작업량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운 직업은 도급생활비가 아니라 일한 시간에 따라 정액생활비를 지급한다.
이러한 생활비는 국가가 미리 정한 생활비 기준에 따라 지급되는데, 중요한 점은 직종 및 직제, 기술기능 자격과 급수, 노동조건 등에 따라 이 기준이 매우 세부적으로 차등화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직업,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도 모두 ‘똑같은’ 생활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무직보다 생산직, 생산직 중에서는 경노동보다 중노동이 더 많은 생활비를 받는다. 그리고 북에서는 생활비를 ‘현금으로 봉투에 담아’ 준다. 현금은 은행계좌로 들어가고 지급명세서만 보는데 익숙한 남쪽과는 다른 모습이다. 월급 받는 기분은 어느 쪽이 더 나을까?
▲ 대성수출입상가에서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 사진제공 = 민족21ⓒ 사진제공=민족21
이러한 생활비에 덧붙여 가급금, 상금, 장려금이 지급된다. 가급금은 기존 생활비 기준으로 해결할 수 없는 특수한 조건을 고려해 해당 노동자에게 추가로 지불하는 생활비다. 예를 들어 근속연한에 따라 가급금이 나오며, 주로 밤에 일하거나, 높은 곳, 땅속 또는 물밑에서 일하는 노동자, 유해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도 가급금을 받는다. 상금은 계획된 생산지표를 초과달성하거나 기술혁신을 한 집단과 개인에게 주는 일종의 보너스다.
끝으로 장려금은 생산계획초과, 품질향상, 설비이용률 제고, 자재절약 등에 따른 포상금으로, 상금이 원칙적으로 공장ㆍ기업소에 이윤이 있을 때만 지불되는데 비해, 장려금은 이윤과 상관없이 일을 잘한 노동자에게 지불된다.
공짜가 많았던 시절
이처럼 일한 만큼 능력에 따라 분배받는 제도로만 보면 각자 받는 보수의 차이가 크고 그로 인해 생활수준 차이도 커질 것 같지만, 사실 북의 노동자들은 1980년대까지 노동보수보다는 주로 국가혜택에 의존해 생활했기 때문에 월급차이가 바로 심각한 불평등을 낳지는 않았었다. 과거에는 별로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었고 사는 수준도 비슷했다는 얘기다.
과거 대표적인 국가혜택이 바로 터무니없이 낮은 쌀값이다. 2002년 7월1일 전까지 북의 국가는 1946년에 설정한 가격 그대로 농민들에게 쌀 1㎏을 82전에 사서 노동자에게 8전에 배급했다. ‘완전공짜’는 아니지만 국가가 매년 수십 억 원을 부담하면서 56년 동안 한 번도 인상하지 않은 낮은 가격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하루만 일하면 한달 가량을 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애써 일하지 않고도 살아가게 되어 있었다.
의료와 교육은 무상이었고, 주택, 운임 등 공공요금도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소비품 가격도 생산원가보다 낮게 책정됐다. 북의 국가는 한 세대당 월평균 100 ~ 125원에 해당하는 추가적 혜택을 주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2002년 7월 이전 노동자의 월평균 생활비 80~100원과 비교하면 국가혜택이 노동자 생활에서 얼마나 큰 몫을 차지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자본가야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갖은 수단’을 다 써서 해고하면 그만이지만, 명색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일을 안 한다고 해고할 수도 없으니 국가의 고민도 꽤나 심각했겠다. 오죽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제기관 간부들을 앉혀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겠나. “공짜가 많으면 노동에 대한 자극과 통제가 약화되며 사회주의 분배원칙을 옳게 실시할 수 없습니다. 무상공급이요, 국가보상이요 또 무슨 혜택이요 하는 것들을 다 검토하여 보고 없앨 것은 없애도록 하여야 합니다.”(2001년 10월3일)
열심히 벌어서 알뜰히 써야
이런 상황은 1990년대 들어 급격히 바뀌었다. 에너지난ㆍ자재난으로 생산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 생활비가 제 때 안나오고, 생필품은 부족하며, 식량배급도 줄거나 끊기기 일쑤였다. 노동자들은 국가물품을 빼돌려 ‘농민시장’에서 팔고 그 돈으로 1㎏에 40원을 주고 쌀을 사와야 했다. 굶지 않기 위해서. 협동농장 농민들 입장에서도 1㎏에 82전밖에 안 되는 헐값으로 쌀을 국가에 수매하느니 시장에 직접 내다 파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이 결과 국영상점에는 상품이 부족한데 일부 개인에게는 상품이 쌓이는 현상이 생겼고, 급기야 정부도 “솔직히 말하여 지금 국가에는 돈이 없지만 개인들에게는 국가의 2년 분 예산액이 넘는 돈이 깔려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북 당국은 2002년 7월 1일 대대적인 물가?생활비 인상을 단행했다(‘7.1조치’). 우선, 쌀 수매가격을 농민시장 가격에 맞춰 1㎏ 40원으로 정했고, 다른 상품의 국정가격도 쌀값을 기준으로 평균 25배 정도(설탕 한 병은 2원에서 100원, 세숫비누 개당 3원에서 20원, 텔레비전 350원에서 6,000원 등) 인상했다. 또한 국정가격만 인정하던 과거와 달리, 국가의 감독 아래 각 공장ㆍ기업소가 품질이나 수요에 맞춰 스스로 가격을 정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조치는 모든 제품에 ‘제 값’을 쳐줌으로써 노동자, 농민의 생산의욕을 높이려는 시도다.
물가인상과 함께 노동자들의 구매력 유지를 위해 생활비도 18~20배 정도 인상했다. 건국 이후 몇 차례 생활비 인상이 있었지만 - 예를 들어 1992년에는 전반적으로 43.4% 인상 - 이번처럼 큰 폭으로 올린 건 처음이었다. 사무원보다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 과학자의 생활비를 더 높게 인상했고, 탄광처럼 힘든 곳에서 일하거나 국가전략물자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생활비를 20~25배 정도로 가장 높게 올린 것이 특징이다. 현재 고급기능을 가진 탄부의 기준생활비는 6,000원으로 내각의 "상"(남쪽의 장관급)보다 높다.
국가는 이처럼 생활비를 올리는 동시에 그동안 제공하던 ‘공짜’의 상당부분을 없앴다. 이제 노동자는 8전으로 먹던 쌀 1㎏을 44원에 사야 한다. 지하철요금도 1구간 10전에서 2원으로 올랐고, 한 세대 60㎡(약 18평) 주택사용료도 한 달에 90전에서 78원으로 80배 이상 올랐다. 철도일꾼의 가족도 더 이상 공짜로 철도를 탈 수 없다. 기존의 무상의료?교육, 사회보장제도 등은 ‘7.1조치’ 이후에도 여전히 실시되지만, 바야흐로 노동자들이 국가혜택보다는 노동보수를 가지고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시절이 온 것이다. 한라씨는 오늘밤에도 어떻게 하면 ‘열심히 벌어 알뜰히 쓸지’ 고민 중이다.
“버는 돈의 반은 먹는데 들어가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은 남새(야채)를 사러 시장에 가야 하는데 국영상점보다 물건은 많아서 좋지만 비싼 게 걱정이다. 예전에는 그럴 일 없었는데 이제는 흥정도 하고 더 싸게 파는 곳도 찾게 된다. 참, 수돗물ㆍ전기사용료도 올랐지. 아끼자 아껴. 낮에 철호씨 말 들어보니 우리 세대주가 요즘은 작업도, 기술학습도 부쩍 열심히 한다던데. 기특한 사람 같으니. 내일부터 우리 공장에서 만든 운동화 중 일부를 통일시장 매대에서 팔게 됐다. 시장가격으로 팔면 공장수입이 늘고 우리가 받는 보수도 많아질 테니 잘 됐지. 휴~ 일단 자자.”
[출처:매일노동뉴스 200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