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정문 번역엔 2천5백만원, 로비엔 5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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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많이 아낀 것 같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에서 무더기로 번역 오류 사례가 쏟아져 나오는 것과 관련해,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내놓은 ‘해명’이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연 김 본부장은 “외교부 직원들이 협정문 한쪽 번역하는 데 20만원이라 1300쪽을 번역하면 2억6000만원이 든다고 해서 ‘좀 힘들어도 우리가 하면 안 되겠느냐?’라고 했다”며, 비용을 아낀 사정을 털어놓았다. 또 김 본부장은 “직원들이 번역은 스스로 하더라도 한쪽에 10만원씩 모두 1억3000만원을 주고 국내 법률회사에 검토를 맡기자고 요구했다”며 “‘그것도 너무 많다. 쉬운 돈이 아닌데, 조금 어려워도 우리가 하자’고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협정문 일부만 외부기관에 검토를 맡겨 비용을 2500만원으로 깎았다는 게 김 본부장의 자랑이다.
언뜻 보면 국민이 낸 세금을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한 공무원의 ‘충정’으로 들린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마어마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글본 협정문이 엄연히 영문본과 동등한 정본임에도 영문본을 더 중히 여기고, 한글본을 토대로 경제생활을 하는 대한민국 국민과 기업을 깔보고 있다는 고백일 뿐이다.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분야에는 국민 세금을 쏟아붓고 있는 게 바로 외교부다. 외교부가 지난해 12월 박주선 민주당 의원에게 낸 ‘자유무역협정 체결 및 후속 조치사업 세부내역’을 보면, 한-미 두 나라가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우리 정부가 미국 로비·법률회사에 쓴 돈은 24억889만원이다. 올해에만 26억7900만원을 추가로 쓸 예정이다. 명분은 미국 의회에 대한 설득 활동이다.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새로운 1300쪽짜리 ‘법전’을 제대로 만드는 데 드는 2억6000만원을 아끼던 외교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통해 추가 양보를 해준 것도 모자라 ‘로비용’으로만 50억원을 통 크게 쓰고 있는 셈이다. 외교부가 충정을 바치는 대상은 어느 나라인가?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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