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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의 탄생과 지배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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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유제강
댓글 0건 조회 3,273회 작성일 14-09-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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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장기 입원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불안한 상태다. 삼성 해법을 두고 전문가들의 공방이 치열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의 재벌 구조는 왜 생겨났는지, 한국 경제와 지배구조는 어떤 관계인지를 알기 쉽게 소개한다.
newsdaybox_top.gif [363호] 2014년 08월 25일 (월) 11:57:39 이종태 기자 btn_sendmail.gif peeker@sisain.co.kr newsdaybox_dn.gif
1945년 광복 직후, 똑똑하고 야망에 찬 젊은이 야심씨는 쌀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야심씨는 한국의 재벌 총수들을 상징화한 인물이다. 또한 ‘기업 지배구조’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자본금, 그룹 지분구조 등의 수치를 극히 단순화했다-편집자). 가게 건물과 땅, 쌀 등은 야심씨 개인 소유였다. 야심씨는 은행과는 대출, 농가와는 쌀 공급 계약을 맺고 있었다.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거나 쌀값을 주지 못하면 야심씨의 개인 재산에 차압이 들어온다. 야심씨는 계약에 얽힌 모든 권리와 의무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후 야심씨는 동료들과 돈을 모아 ‘현성(現星)섬유’를 창업했다. 이내 복잡한 문제에 부딪혔다. 야심씨 등은 현성섬유의 자산(방적기·건물·땅·현금)을 공동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마다 사업(어떤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어떤 농가에서 원자재를 구입하고 어떤 방식으로 섬유를 생산해서 어떤 의류업체에 판매할지)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은행이나 농가와 계약한 뒤 동업자 몇 명의 마음이 변해서 계약을 파기하기도 했다. 점점 불신이 커졌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정주영 현대 회장(왼쪽)과 이병철 삼성 회장(오른쪽)은 상점에서 시작해 재벌 그룹을 일구었다.  
ⓒ연합뉴스
정주영 현대 회장(왼쪽)과 이병철 삼성 회장(오른쪽)은 상점에서 시작해 재벌 그룹을 일구었다.

그러나 방법이 있었다. 동업자들(인간) 명의가 아니라 업체(비인간) ‘현성섬유’의 이름으로 계약하면 된다. 동업자 몇 명의 마음이 바뀌어도, 현성섬유 차원의 계약은 유지되도록 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도, 동업자들이 아니라 현성섬유가 대출하는 것으로 한다. 상환하지 못하면 당연히 현성섬유 법인이 ‘자신’의 자산으로 빚을 청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동업자들 소유인 방적기·건물·땅·수익금 등 자산의 주인도 현성섬유로 바꿨다.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뭔가를 소유하거나 권리를 행사하고 이에 대한 책임도 질 수 있다. 그러나 현성섬유는, 인간이 아닌데도 소유하고 계약하고 책임진다. 야심씨가 현성섬유를 법인(法人:법률상 인간)으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현성섬유 법인은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인간으로 ‘간주’된다. 동업자들의 지위도 현성섬유라는 법인의 주주로 바뀌었다. 주주들은 현성섬유 법인을 소유하고, 법인은 기계·건물·수익금 등의 자산을 소유한다.

출자금을 가장 많이 낸(최대 주주) 야심씨는 동료들과의 주주총회에서 현성섬유 법인의 대표이사로 선출되었다. 이전의 쌀가게(개인 가게)와 현성섬유(법인)는 많이 달랐다. 하루는 공장에 갔다가 섬유 몇 필을 가져왔는데, 사이 나쁜 동업자 한 명이 ‘도둑질’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 섬유는 주주의 것이 아니라 현성섬유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란다. 좋은 점도 있었다. 쌀가게 주인 시절에는 은행 빚을 못 갚으면 야심씨 개인 자산이 차압당했다. 그러나 현성섬유에서는 법인의 이름과 책임으로 돈을 빌리기 때문에 돈을 못 갚으면 현성섬유가 파산할 뿐이다. 다만 야심씨의 현성섬유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된다. 투자한 돈만 날리면 된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야심씨는 좀 더 과감하게 경영에 임할 수 있었다.

‘문어발 확장’ 혹은 ‘비관련 다각화’의 비결

현성섬유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야심씨는 섬유업과 관련 없는 중화학공업에 진출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불타게 되었다. 나쁘게 말하면 문어발 확장, 점잖게 부르면 비관련 다각화다. 당시의 정권도, 야심씨가 중화학공업에 뛰어들면 장기 저리로 정책금융을 주겠다고 했다. 뇌물을 바치고 비싼 술도 먹인 결과다. 야심씨는 현성자동차, 현성전자, 현성전기 등을 잇달아 설립했다. 이에 따라 다른 산업의 여러 기업들이 현성 산하에 모였다. 이른바 기업집단 혹은 재벌 그룹이다. 야심씨는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까지 현성그룹의 계열사들은 기존 주주 외에는 외부 투자를 받지 않는 ‘비상장 회사’들이었다.

   
 

그런데 중화학공업에는 섬유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본금이 필요하다. 결국 그룹 계열사들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외부 투자를 받는다는 의미다. 현성 계열사들은 그 주식이 시장에서 매매되는 ‘상장 주식회사’가 되었다. 밑천(자본금)이 불어난 것은 좋다. 그러나 외부인이 야심씨보다 더 많은 주식을 매집해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자리(경영권)를 탈취할 위험도 커졌다. 야심씨는 동업자들의 주식을 매입해 지분율을 늘렸으나 안심이 되지 않는다. 당시의 정권도 기업공개를 강권한 바 있었다. 야심씨는 술자리에서 취한 김에 독재자에게 겁 없이 항의했다. 국회의원도 ‘까불면’ 정보기관 지하실로 끌고 가서 ‘혼내주도록 하던’ 정권의 수장은 의외로 관대했다. 경영권(=대표이사 자리)을 보호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안을 마련해주거나 허용한 것이다.

하나는, 경영권 보호 법안이다. 이에 따르면, 투자가가 현성그룹 계열사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하려면 야심씨(대주주)의 주식을 사야 한다. 야심씨가 안 팔면 끝이다. 혹은 계열사 주식의 50% 이상을 사야 한다. 쇠고기 10근 사러 갔는데, 정육점째 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 차라리 경영권을 포기하고 만다. 다른 하나는, 야심씨가 경영권을 지키는 동시에 자금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계열사 출자’와 ‘상호 출자’다.

일반적으로는 인간이 법인을 소유한다. 그러나 법인도 법인을 소유할 수 있다. 인간이 주식회사 법인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하면(경영권 획득), 해당 법인의 자산 전체(100%)를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 50% ‘소유’하면 100% ‘지배’한다. 법인이 법인을 소유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야심씨는 자본금 100억원인 현성섬유에 50억원(지분율 50%)을 투자해서 경영권을 보유하고 있다(앞으로 나오는 기업들은 모두 자본금이 100억원이며, 부채는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므로 자본금=자산이다). 또한 현성섬유의 자본금 100억원 가운데 50%(50억원)는 현성보험에, 나머지 50%(50억원)는 현성자동차에 투자해 두 회사의 경영권을 획득할 수도 있다. 같은 방법으로, 현성보험은 현성전자와 현성중공업을, 현성자동차는 현성마트와 현성전기를 지배하도록 한다(위의 그림). 이 모든 과정에서 야심씨가 실제로 투자한 돈은 현성섬유의 지분 50%를 매입한 50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배하는 자산의 규모는 7개 기업(섬유·보험·자동차·전자·중공업·마트·전기)의 700억원이다. 이에 더해 계열사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있는 현성마트가 자본금 100억원 중 50억원으로 다시 현성섬유의 지분을 매입하면, 현성섬유의 자본금은 150억원으로 늘어난다(상호 출자). 야심씨의  현성섬유에 대한 지분율도 종전의 50%에서 67%로 증가한다. 계열사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있는 현성섬유에 대한 야심씨의 지분율을 한층 강화한 것이다. 이 정도면 외부인이 경영권을 탐낼 수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87년 12월 ‘수출 100억 불’ 시절 삼성전자의 생산라인. 삼성전자가 후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그룹체제가 한 요인으로 꼽힌다.  
ⓒ연합뉴스
1987년 12월 ‘수출 100억 불’ 시절 삼성전자의 생산라인. 삼성전자가 후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그룹체제가 한 요인으로 꼽힌다.

덕분에 야심씨는 은행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리한 조건으로 조달할 수 있었다. 예컨대 현성중공업 단독으로 대출할 수 없는 돈을 다른 계열사나 그룹 전체의 보증으로 빌릴 수 있다. 당시 세계 최첨단 산업이던 전자 부문(현성전자)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그룹 구조 덕분이다. 오랜 역사의 현성섬유에 축적된 수익금을 현성전자에 투자했던 것이다. 현성전자는 20여 년 뒤, 전자 부문에서 세계 최강의 기업으로 떠오른다.

그룹 경영에는 약점도 많았다. 외부 투자자들이 기웃거리지도 못할 만큼 경영권이 탄탄했기 때문에 무리한 투자를 벌이기도 했다. 야심씨는 자동차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현성자동차 창업으로 연결시켜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물론 실패했다. 아들에게 자동차부품 회사를 설립하게 만든 뒤 현성자동차에 납품하도록 하기도 했다. 덕분에 급속히 성장한 부품회사의 대주주는 모두 야심씨의 친지들이다. 야심씨는 심지어 회계 조작으로 계열사 법인들의 금고에서 돈을 빼내 사적인 비자금으로 챙기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현성그룹은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그룹 해체 소문이 도는 가운데 현성자동차와 현성중공업을 매각했다. 이후 금융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현성카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 자유화와 개방’

국제통화기금(IMF)은 외환위기를 당한 한국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주식시장 자유화와 개방’을 요구했다. 주식의 자유로운 거래를 막는 법적 장치(경영권 보호 법안)와 그룹 구조를 해체하라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한국 대기업 주식을 일정 규모 이상 매입할 수 없도록 금지한 법안도 폐지하도록 요구했다. 이로써 대기업 주식은 국내외에서 자유롭게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주주이익 보호’도 강조되었다. 야심씨의 그룹 경영이 국민경제 전체 차원에서는 순기능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현성전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그룹 경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일부 주주들은 손해를 보았다. 야심씨는 현성섬유의 축적된 수익금을 현성전자에 투자했는데, 이는 현성섬유 주주들 처지에서는 자신들에게 돌아올 배당금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주주들에게 불리한 그룹 경영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에 따라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경영’이 국가적으로 제창되었다. 기업 경영의 목표는 ‘주가(기업 가치) 올리기’로 변했다.

정부는 경영권 보호 법안들을 폐지하고 그룹 경영에 압력을 가했다. 기업이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있는 비율을 제한한 것이다(출자총액 제한). 현성그룹은, 소속 기업들이 자본금(부채가 없는 것으로 가정했으므로 자산) 전체를 다른 기업에 출자하는 것으로 계열사를 늘려왔다. 만약 자본금 100억원 중 30%(30억원)까지만 다른 기업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면, 그룹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시민사회 단체와 진보 정당 등에서는 야심씨 같은 재벌 총수 가족이 그룹 구조를 사익에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주들의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한편 외국인이 한국 기업의 주식을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게 되면서 현성전자의 외국인 주주 비율이 50%를 넘겼다. 야심씨의 경영권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실제 역사에서는 주식시장 자유화 이후, 대기업들의 주식 발행 규모가 커지면서 자본금 역시 크게 불어났다. 그러나 설명의 편의상 자본금 규모가 이전과 같은 것으로 표시한다-편집자).

야심씨는 경영권 유지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돈만 있으면 간단한 문제다. 지주회사(다른 기업의 주식을 소유·지배하는 회사)를 설립한 뒤 그 회사가 6개 계열사(기존 7개사 중 자동차·중공업이 망했고 카드를 새로 설립)의 지분을 각각 40% 정도 소유하게 만들면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 이 경우, 지주회사는 계열사(자본금 100억원)마다 40억원씩 모두 24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예전에는 50억원으로 지배력 유지가 가능했는데 이제 190억원이 더 필요하다. 이렇게 ‘큰돈’은 마련할 수 없다(현실의 재벌들로서는 누워서 떡먹기지만, 이 글은 가상현실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0년대 후반부터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주주의 목소리를 키우는 소액주주 운동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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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주주의 목소리를 키우는 소액주주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출자총액제한제 아래에서 갖은 보조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우선 현성섬유가 현성보험의 지분 30%를, 현성보험은 다시 현성전자의 지분 30%를 확보했다. 보험과 전자는 그룹의 핵심 기업이라서 이 정도로는 불안하다. 그래서 야심씨는 그동안 각종 수단으로 모아둔 사재를 털어 자기 명의로 현성보험의 지분 40%, 현성전자의 지분 10%를 확보해두었다(현성전자 주식은 비싸서 충분히 사지 못했다). 야심씨 측 지분율은 현성보험 70%(현성섬유 지분 30%+야심씨 개인 지분 40%), 현성전자 40%(현성보험 지분 30%+야심씨 개인 지분 10%)로 올라갔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보험→전기→전자’ 그리고 ‘전자→마트→전기→전자’로 이어지는 계열사 출자로 방어선을 2중, 3중으로 설치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룹의 기둥인 현성섬유다. 현성섬유가 무너지면 모든 계열사가 날아간다. 그래서 섬유에서 보험과 전자로 이어지는 지배력의 고리를 왼쪽으로는 마트(10%)를 통해, 오른쪽에서는 카드(10%)를 통해 섬유로 돌아가게 했다. 전형적인 순환출자다. 이와 동시에 야심씨는 편법으로 현성섬유 법인이 아들 야망씨에게 아주 싼 가격으로 주식을 발행하도록 해서 일가의 지분율을 60%까지 늘렸다. 이에 마트와 카드의 지분을 합치면 현성섬유에 대한 야심씨 측 지분은 모두 80%다. 그 다음 현성섬유의 상장을 폐지하면서 상호까지 조이랜드로 바꿨다. 그룹의 축인 조이랜드에 관한 한 아예 주식거래 자체를 차단해 다른 투자자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현성그룹이 이런 그룹 구조를 완성하기까지 엄청난 법적·정치적 논란이 벌어졌다. 다만 야심씨가 오래전부터 길러온 정관계·법조계·언론계의 ‘장학생’들이 은혜를 갚았다.

그러나 위기는 계속된다. 순환출자를 청산하고 금산분리 원칙을 준수하라는 목소리가 계속 커졌다. 현성그룹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면 마트의 조이랜드 지분 10%, 전기의 전자 지분 10%, 카드의 조이랜드 지분 10% 등을 야심씨 일가가 사들여야 한다. 그래야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더욱이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려면, 현성보험의 현성전자 지분 30%와 전기 지분 30%, 전자의 카드 지분 30%를 떨어내야 한다. 막대한 돈이 든다.

이런 와중에 야심씨가 쓰러져버렸다. 만에 하나, 현성보험의 최대 주주(40%)인 야심씨가 사망하면 그 다음 주주(30%)는 조이랜드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금융사의 최대 주주는 자동적으로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된다. 금융지주회사는 현성전자 같은 일반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 그러므로 조이랜드의 자회사인 현성보험은 현성전자와 현성전기 지분을 토해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성전자를 야심씨 일가와 이어주는 끈은 야심씨의 개인 지분 10%와 현성전기가 가진 10% 등 모두 20%밖에 안 된다. 더욱이 상속자인 야망씨는 야심씨가 물려준 현성전자 지분 10% 가운데 5%를 상속세로 납부해야 한다. 현성전기의 지분 10% 역시 ‘전자→마트→전기→전자’의 순환출자 고리에 속하므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처럼 그룹을 이어주던 끈들이 마구 끊어지거나 약해질 전망이다. 이를 다시 이어줄 접착제(돈)는 급히 마련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현성전자의 지배력에 공백이 발생하면, 경영권 다툼이 야심씨 일족을 비롯한 국내외 금융자본들 간에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그 싸움의 결과가 야심씨 일족만의 흥망으로 이어질지 국민경제 전체에 대한 충격으로 귀결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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