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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한민국 ‘청년 대학살’ 기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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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권일 작성일 11-04-22 18:28 조회 1,7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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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진 ‘청년 대학살’을 기억하는가. 무슨 소리냐고 눈을 깜박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수부대가 시민에게 총을 난사하는, 그런 학살은 아니었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그건 ‘학살’이었다. 그때 취업을 앞둔 수많은 청년 구직자들의 미래가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이른바 ‘대졸 초임 삭감’ 사건이었다.

전경련은 2009년 2월25일,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이 참석한 ‘고용안정을 위한 재계 대책회의’를 열고 대기업 신입사원 임금을 최대 28% 삭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계획이 ‘인건비 절감을 통해 인턴 직원을 더 뽑기 위한 일자리 나누기’라 밝혔다. 이것을 그들은 ‘잡 셰어링(job sharing)’이라 불렀다. 며칠 후 공기업 경영진들도 ‘신입사원 임금을 최대 30% 삭감할 것’이라 선언했다.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금융기관과 민간 기업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건 전경련의 ‘단독 범행’이 아니었다. 같은 해 <머니투데이> 2월26일자 보도에 따르면 ‘잡 셰어링 논의의 진원지는 청와대 지하벙커’였다. 1월의 제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을 안정시켜 실질적으로 고용을 늘리는 ‘잡 셰어링’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강구하라” 하고 지시했고,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낮추는 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이때부터 한 달 남짓 지나 전경련의 발표가 나왔다. 기득권과 기성세대는 놀랍도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노동조합과 최소한의 노동법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취업준비생들은, 미처 저항할 겨를도 없이 자신들의 몫을 일방적으로 약탈당했다.

   
2년이 지난 2011년 현재, ‘대학살’의 흔적은 참혹하다. 단적인 예로 국민은행의 경우, 2010년 무려 2000명의 인턴 사원을 뽑았지만 이 중 정규직이 된 사람은 거의 없다. <매일노동뉴스>의 최근 기사도 잠깐 읽어보자.

“공공기관의 신입 초임 평균연봉은 2770만원에서 2490만원으로 10.3% 하락했다. 그런데 신규 채용 인원은 같은 기간 22.5% 떨어졌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신입사원 임금을 깎았는데 신규 채용 인원은 되레 줄어든 것이다.”(‘대졸 초임 삭감 2년, 남은 건 차별 상처뿐’, 2011년 3월28일자)



인턴X와 알바Y가 어떻게 노동자 정당을 지지할까


2009년 대졸 초임 삭감이 워낙 ‘결정타’여서 그렇지, 사실 지난 10여 년간 상황은 글자 그대로 악화 일로였다. 전경련이나 청와대가 말하는 ‘잡 셰어링’이란 ‘고용 안정’을 위해 ‘불안정 노동(인턴)’을 확산시키자는 것이므로 애당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헛소리였다. 그런 몹쓸 짓을 가리키는 개념은 따로 있다. 바로 ‘일자리 쪼개기(job splitting)’다. 극소수의 핵심 일자리만 빼고 대부분의 일자리를 외주화·모듈화·비정규화하는 것. 인턴으로 돌리다 던지고, 알바로 쓰다 버리는 것. 그게 바로 일자리 쪼개기의 실체다.

진보적인 어떤 사람들은 “요즘 청년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CEO가 되길 욕망한다”라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어떤 맥락이 추가된다면 충분히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청년들이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가질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는 게 더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이 아닐까. ‘인턴X’와 ‘알바Y’를 전전하는 이가 어떻게 노동자의 감수성을 가지고 노동자의 정당을 지지할 수 있을까. 그들 대다수는 인턴X일 때는 언젠가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란 기약 없는 희망을 부여잡고, 알바Y일 때는 잠시 쉬어가는 것뿐이라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열정을 착취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한다. 우리의 미래는 그렇게 노심 용해(meltdown)되기 직전이다.


박권일 (<88만원 세대>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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