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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테이너 권해효, 안치환과 일본 조선학교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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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1,837회 작성일 11-05-1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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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테이너 권해효 "내가 나서는 이유는…"
[인터뷰] '몽당연필' 기획 "사회참여 부끄러움서 비롯"… 안치환과 일본 조선학교 돕기
newsdaybox_top.gif [0호] 2011년 05월 11일 (수) 김원정 기자 btn_sendmail.gif mingynu@mediatoday.co.kr newsdaybox_dn.gif

"…너희들이 견디어 왔던 고단한 이방의 삶, 너희들이 지켜왔던 자랑스런 모국어, '가갸거겨 고교구규'. 그래 이제는 함께 견디자. 그리고 함께 지키자. 지진과 해일로 방사능 피해로 무너진 너희의 어깨를 아직은 튼튼한 우리의 어깨에 걸고 '대지는 흔들어도 함께 가자, 손잡고 가자 웃으며 당당하게 가자'.…" 몽당연필 여는 글 일부

배우 권해효 씨가 가수 안치환, 이지상, 영화감독 김명준 씨와 의기투합해 '몽당연필'이란 공연을 기획·가동 중이다. 이 공연은 길이가 짧아질수록 소중한 존재가 돼 가는 몽당연필처럼 일본사회 차별적 시선에도 굳건히 정체성을 지켜온 재일동포를 보듬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1차로 지난 3월 일본 동북부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센다이 민족학교를 재건하기 위한 기금을 모은 뒤 이후엔 공연을 지속시켜 일본사회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이를 돕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드라마를 녹화하고 있던 권씨를 만났다.

 

   
▲ ⓒ몽당연필
 

"반응 좋았죠. 공연 자체 퀄러티가 높았거든요. 안치환, 강허달림, 김민종, 강산에 씨가 왔고 밴드도 두 팀이나 무대에 올랐죠. 아마 일반극장에서 공연했다면 제작비가 무척 많이 들었을 텐데 우리는 100만 원 갖고 모든 것을 해결했습니다. 극장 빌리는 것부터 함께 하는 분들이 도와줬고, 출연진 역시 정말 거마비 수준도 안 받고 참여했어요. 더욱이 공연 내용이 워낙 다양하고 좋다보니 관객 역시 행복하게 어울렸습니다."

'몽당연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권씨는 예의 시원스런 웃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몽당연필 팀은 내년 봄까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서울 웰콤시어터에서 토크쇼와 음악공연을 결합한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공연이름에 걸맞도록 콘서트는 '수업', 관객은 '학생', 그리고 토크쇼 사회를 맡는 권씨는 '담임쌤'이라 지칭된다. 지난 4월 27일 저녁 '1교시 수업'은 공연 2주 전에 표가 매진되고 140석 정원에 170명이 몰릴 만큼 성황을 이뤘다.

권씨는 "공연은 내년 봄까지 앞으로 1년 동안 진행될 것"이라며 "일단 1차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일회성 캠페인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조선학교를 좀더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우리사회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좀 긴 호흡으로 가고자 합니다. 지금은 지진 피해 입은 동포를 돕는 데 무게 중심이 있지만 앞으론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길을 찾아볼 겁니다."

소설 <Go>나 영화 <박치기>,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 <디어 평양> 등이 소개되며 재일조선인을 향한 색깔론은 이전보다 누그러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오해가 적지 않다고 권씨는 말한다.

"65년 전 일본 땅에 살고 있던 200만 명 넘는 한인들이 해방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했거든요. 불안한 한반도 상황 때문에. 그 분들이 일본에 남아서 우리말을 배우기 위해 1946년부터 학교를 세웠죠. 그 학교가 조선학교인데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차별과 어려움 속에서 지금껏 버텨온 거예요. 해방 당시 맥아더 미군정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일본동포를 조선적으로 분류했는데 일종의 무국적자죠. 그뿐입니다. 조선적이라는 게 북도 남도 아닌 해방 당시 하나의 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지금 조선학교 구성원을 봐도 다양한 국적이 혼재돼 있다고 해요. 대한민국 국적자가 60%, 일본 국적자가 10%, 30%가 조선적이라고 하는데 북한과는 상관없습니다."

 

   
▲ ⓒ몽당연필
 

권씨는 이날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썼다. 몽당연필 공연도, 북한 아이들을 돕는 일도,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부끄러움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의무감 이런 것은 아니고…, 설명하기 힘든데 기본적으로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내가 몰랐다면 또 모를까, 이미 알게 됐고 알게 된 내용에 대해서 분노하고 속상했다면 그냥 넘어가는 게 부끄럽다는 거죠."

권씨는 2002년 6·15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차원에서 처음 조선학교를 방문한 뒤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 동포사회 구심체 역할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 뒤로 <겨울연가> 열풍이 불면서 드라마에 출연했던 그 역시 일본을 자주 방문하게 됐고 그때마다 조선학교를 찾으며 동포들과 교류하고 아이들을 응원하는 공연을 벌여왔다. 햇수로 5년째, '몽당연필' 기획은 그 연장선에 선 셈이다.

"60년 동안 일관되게 외면하고 모른 척 해온 거잖아요. 재일조선인이나 만주의 조선족, 러시아 고려인도 나라가 힘이 없어 지지키 못했는데 현대사의 그런 아픔, 또 상처가 지금껏 지속되는 것, 거창한 걸 떠나 그런 것에 대한 마음의 빚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념 있는 연예인,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불리는 권씨는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홍보대사를 맡아 남한의 호주제 폐지나 북한 아이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 왔고, 2004년 탄핵정국 때 군중 앞에 서는 등 집회 사회자로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일본의 조선학교를 돕는 일 역시 우리 사회가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하나의 답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전체 해답은 안 되더라도 일본의 조선학교를 보면서 한국사회 교육이 가야 할 어떤 출구 같은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일심동체 되고, 학교가 지역사회 중심으로 자리잡고, 아이들은 학교를 고향이라고 부르는 것, 한국에서는 사실 볼 수 없는 거잖아요. 우리는 만날 아이들 교육을 걱정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죠. 또 경쟁에서 항상 살아날 것이라고만 생각하고요. 조선학교를 통해서 보고 배울 게 있다는 겁니다."

권씨는 "남한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북한을 마음으로 이해하며, 군국주의·제국주의 피해자이면서 평화에 대한 애착을 체질적으로 갖춘" 이들 재일조선인과 교류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셜테이너? 요즘 기준으로 저는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사실 이 땅에 사람 사는 데 정치가 관여하지 않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저 역시 배우이기 전에 먼저 시민이라는 거죠. 보육이나 일자리 문제에서 불공정한 것도 많고 상식적이지 않은 것도 많고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인데 그런 걸 해결하는 데 나서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이익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색시와 딸내미에게 미안하죠."

 

   
▲ ⓒ몽당연필
출처: 미디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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