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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잔’이 일으킨 비극적인 종교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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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1,628회 작성일 11-02-08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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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모독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한 여성으로 인해 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 갈등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 여성을 돕던 정치인까지 암살되면서 파키스탄 정부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아이샤 노린(45)은 파키스탄 펀자브 주의 ‘이탄왈리’라는 마을에 사는 다섯 아이의 엄마이자 동네 농장에서 일을 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파키스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난한 여인이다. 한 가지 다르다면 흔치 않게 그녀가 기독교 신자라는 점이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2009년 6월 더운 어느 날, 노린은 농장에서 일하다 동료들에게 물 한 잔을 나눠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슬람 신자인 동료들이 “크리스천이 주는 물은 더럽다”라며 쏟아버렸다. 그녀가 동료들과 언쟁을 벌이며 싸우게 된 것이 화근이 되었다. 화가 난 노린이 “예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마호메트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었던 것이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노린은 동료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고 ‘신성모독’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AP Photo
수만명의 파키스탄 군중이 1월9일 신성모독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미국에 대한 불만이 기독교로 번진 것”

지난해 11월, 노린은 지방법원에서 파키스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신성모독법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겨우 물 한 잔이 발단이 된 이 사건은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신성모독법은 1980년대 중반 파키스탄의 독재자였던 지아 울하크가 이슬람 성직자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만들었다. 이슬람교를 훼손하는 표현에 대해 최고 사형선고까지 내릴 수 있는데, 코란을 훼손하면 종신형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이 법안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그동안 962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119명이 기독교인이다.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지만 10명은 옥중에서 누군가에게 맞아 죽었다.

노린이 사형선고를 받자 삽시간에 국제사회가 이 법안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가난한 아이 엄마인 노린이 갑자기 뜨거운 쟁점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인권단체와 국제사회는 신성모독법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키스탄 기독교총회(PCC)는 사형 판결 직후 노린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신성모독법 폐지를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파키스탄 정부에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며 신성모독법 폐지를 주장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공식 성명을 통해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법은 소수 종교인과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에 맞선 이슬람 쪽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1월 초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비롯해 라호르·카라치·페샤와르·케타에서 동시에 수니파 이슬람 성직자들이 앞장선 대규모 신성모독법 개정 반대 시위가 24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들은 또한 노린의 사형 집행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마호메트를 모독한 이에게 마땅한 응징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누구든 개인적으로 노린을 죽이는 이에게 거액을 지불할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하기도 했다.

   
ⓒAP Photo
사형선고를 받은 아이샤 노린(위). 많은 이슬람 교도가 그녀의 목숨을 노린다.
신성모독법 폐지에 반대하는 이슬람 성직자들의 성명도 잇따랐다. 이슬람 정당들은 “이 법에 손을 댄다면 통치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슬람 정당 ‘자미아트 울레마에이슬람(JUI)’은 교황의 신성모독법 폐지 발언이 모욕적이며 내정간섭이라고 반박했다. JUI의 고위 지도자 하피즈 후사인 아메드는 “교황은 파키스탄의 1억8000만 무슬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이슬람 신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우리는 교황을 존중하지만, 무슬림의 종교 문제에 대해선 간섭을 자제하라”고 말했다.

지금 파키스탄은 아이샤 노린 사건이 촉발한 거대한 종교 갈등으로 치닫는 중이다. 아시프 파키스탄 지오TV의 사회뉴스 편집팀장은 “파키스탄이 이렇게 신성모독법에 예민한 까닭은 종교 문제를 떠나 서방세계에 대한 불만이 더 앞서서이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파키스탄 사람들에게도 불만을 키웠다. 미국에 대한 불만이 곧 기독교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고, 결국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이슬람뿐이라는 생각이 파키스탄 사회에 만연해졌다. 그러다보니 이슬람 극단주의가 서서히 사람들을 설득하게 되었다. 신성모독법 논란은 지금 파키스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함축시킨 하나의 예이고, 노린은 이 와중에 지독하게 운이 나쁜 사람일 뿐이다”라고 상황을 정리했다.

이렇게 신성모독법 쟁점으로 정국이 들끓자 노린이 살던 이탄왈리 마을이 속한 펀자브 주지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펀자브 주지사 살만 타시르가 감옥에 있는 노린을 면회하고 그녀가 작성한 탄원서를 직접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파키스탄 헌법은 사형선고를 받은 형사범의 경우 자신의 판결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대통령에게 결백을 호소할 수 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아이샤 노린의 사형을 집행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법안 수정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촌각을 다투던 그녀의 사형 집행은 대통령에 의한 집행정지로 소강상태에 들어서는 듯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다시 터졌다. 노린을 적극 돕던 살만 타시르 펀자브 주지사가 1월4일 차를 타고 이슬라마바드 자택 인근 코사르 마켓을 찾았다가 경호원이 쏜 총에 맞아 과다 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그를 죽인 경호원은 평소 타시르가 신성모독법 폐지를 주장하고, 아이샤 노린 사건을 중재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파키스탄 집권 여당인 파키스탄 인민당(PPP) 소속 중도파 인물인 타시르 주지사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반대해왔을 뿐 아니라, 최근 노린 사건을 중재하며 사형 집행을 막으려 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단체로부터 비난과 협박을 받아왔다. 그는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및 그의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군정 당시 정치적 견해 때문에 투옥되기도 했다. 영국에서 대학을 나와 법과 제도에 대해 서구화된 시각을 지닌 대표적 인물이며, 언론계 거물이자 비즈니스맨 출신으로 2008년 주지사 자리에 올랐다. 무슬림임에도 종교적 극단주의는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살만 타시르는 평소에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과감하게 밝혀온 용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이것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자극했고, 노린 사건을 계기로 결국 그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AP Photo
아이샤 노린을 돕던 타시르 펀자브 주지사(위)가 1월4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암살자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타시르 피살 사건은 파키스탄 정부의 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2008년 무샤라프 정권이 무너지고 독재정치가 막을 내리자 부토 전 총리가 이끌던 PPP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이들은 제2당인 무타히마 카우미 운동(MQM)과 연정을 구성했다. 그런데 1월2일 MQM이 PPP에 반대하며 탈퇴를 선언하면서 연정이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살만 타시르는 하필 그 시점에 암살된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자르다리 대통령이 입을 정치적 타격이 크다.

파키스탄 연립정부 붕괴할 수도


타시르가 피살된 것은 2008년 부토 여사 암살 사건 이후 가장 큰 사건으로 꼽힌다. 미국도 최근 파키스탄 내에서 벌어지는 혼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8년 출범한 파키스탄 민선 연립정부가 붕괴하면, 미국이 파키스탄에서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6일 파키스탄 사람 200여 명이 라왈핀디 시 법정 밖에 모여들었다. 타시르 암살범 말리크 뭄타즈 카드리의 재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모인 사람 대부분은 이슬람 정당 관계자이거나, 암살범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카드리가 법정에 출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자 열광적인 지지자들은 암살범에게 장미 꽃잎을 뿌려주거나 화환을 걸어주며 환호했다. 이 요란한 환영 탓에 재판 시간이 재조정되기까지 했다. 범죄자에게 환호하는 이상한 광경은 타시르 암살 이후 종교적 갈등으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팽배해진 파키스탄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신성모독법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아이샤 노린은 아직 감옥에 있다. 그녀의 석방 결정을 두고 이슬람 정당들이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고등법원에 사건을 회부했다. 설사 석방되더라도 그녀의 미래는 암담하다. 노린이 살던 마을 주민들이 국가가 그녀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법대로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처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최측근까지 암살된 상황에서 가난한 여인에 불과한 노린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물 한 잔으로 시작된 가난한 여인의 비극이 이슬람과 기독교 간 충돌이라는 종교적 갈등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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