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빈국 쿠바에 사는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 > 민족-국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민족-국제

최빈국 쿠바에 사는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3,037회 작성일 12-01-13 17:52

본문

2012011312025469323_144403_0.jpg
[한겨레] 월수입 2만2천원이지만 국가별 행복지수는 7위

교육·의료가 무료, 배급제도 등 최저한의 생활 보장


 기자는 1995년 쿠바를 열흘쯤 다녀온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우방국이었던 소련 붕괴 이후 원유 공급마저 끊기고, 고무보트를 타고 탈출러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등 쿠바는 경제적으로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자는 일반적인 사회주의 체제와는 다른 쿠바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무엇보다 집단주의 체제의 특징인 억압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쾌활함과 유쾌함, 유대감, 에너지가 자유주의 국가인 한국보다 더 넘치는 듯했다.

지금도 쿠바 경제는 기자의 방문 당시보다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가 붕괴조차 거론되면서 외식이나 여행도 힘들다.

그렇지만 쿠바 국민들이 행복해하는 것은 국제기관의 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난다.

2009년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전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환경오염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국가별 행복도지수를 보면 쿠바는 7위를 차지했다. 세계 슈퍼파워라는 미국(114위)보다도 쿠바 국민들이 훨씬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68위)과 일본(75위)보다도 쿠바 인민들의 행복지수는 높다. 물질과 행복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쿠바 인민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신년호는 ‘쿠바사람들은 왜 행복한가’라는 주제로 현지 르포기사를 실어 그 ‘행복’의 정체를 추적했다. 르포작가 사이토 마키코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현지 취재해 기고한 <아에라> 기사를 발췌 소개한다.

쿠바 사람들은 가슴을 펴고 거리를 걷는다. 밝은 햇빛과 길거리 행인들의 ‘뜨거운 시선’을 동시에 맞으며.

나이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얀, 화려한 색감의 옷을 몸에 걸친다. 남자들은 짧은 티셔츠의 소매에서 단단한 팔뚝을 내비치고, 여자들은 타이트한 스커트와 대님으로 신체의 곡선을 강조한다.

“무이 린다”(무지 예쁘다) “미 프린세사”(나의 공주님)
스쳐지나갈 때 남자는 여자에게 아부, 애교라고도 하기에도 지나친 찬사를 던진다. 스페인어로 ‘피로포’로 불리는 이런 ‘수작’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 낯간지럽다.

반세기 전부터 붕괴된다더니 아직도 건재
3년전 쿠바를 여행했다. 일찌기 영화를 다했던 구시가지의 건물은 낡았고 식량도 생활물자도 부족하다. 그러나 거리에는 활기찬 살사 음악이 울려퍼지고 스타카토의 빠른 스페인어가 메아리쳤다.

장래를 걱정하거나 낙담하거나 하지 않는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쿠바에는 피자가 없기 때문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도 될 수 없다. 하하하.”
“직장에 도착하기까지 5명이 말을 붙여온다. 농담을 이야기하고 웃는 사이에 초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잊어버린다.”
나는 <아에라>에 최근 수년간 일본의 20대, 30대 연애사정을 취재해 기사를 써왔다. 결혼이나 가정을 갖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 이유로 ‘경제상황의 불황’을 거론했다.

그렇지만 쿠바는 유럽경제위기와 리먼브러더스 쇼크 훨씬 이전부터 심각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부터 식랑조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1959년 혁명으로 탄생한 이 사회주의 국가는 반세기 전부터 붕괴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에는 자영업, 주택 자동차의 개인 판매를 인정하는 등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 경제봉쇄의 영향도 있어 ‘평등하게 가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 행복도를 표시하는 영국 신경제재단 발표의 국가별 행복지도를 보면 2009년도 쿠바는 7위였다. 일본은 75위. 불황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는 훨씬 혜택을 받은 일본과 쿠바의 이 차이는 왜 일어난 것일까?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인생관이 흔들릴 정도의 재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민의 행복감이 높다고 하는 부탄 국왕부부의 방일로 일본인은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앞서 나라별 행복지도는 ‘생활만족도’ 등도 고려하고 있다. 결코 경제적으로 혜택받았다고는 할 수 없는 중남미 나라들이 상위 10개국 중 9개국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라틴인들의 기질에 의한 것일까? 경제의 곤경을 떠안고 있으면서 행복감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것을 찾기 위해 다시 쿠바에 갔던 것이다.

실패가 리스크가 아니라 말을 걸지 않는 것이 리스크
수도 아바나의 신시가지에 있는 국민적 아이스크림집 ‘콧페리아’. 북적거리는 이곳에서 텔레비전방송사의 조엘(28)과 회계사 라우라(18)를 만났다.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만난 라우라에 조엘이 한눈에 반했다. “그녀를 눈으로 좇고 있었더니 미소로 답해줬다. 이야기를 하고 함께 춤을 추고, 키스를 하고….”
쿠바의 커플에게 만남을 물으면 “밖에서” “우연히”가 많다. 해안가, 공원, 버스정류장…. 밖에서 만남이 넘치고 있다.

“마음에 든 여성이 있으면 말을 걸까, 걸지 않을까 둘 중 하나.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둘 중 하나.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데 말을 걸지 않는 것은 아깝다.”
전 외교관인 엔리케(55)는 이렇게 말한다. 실패하는 것이 ‘리스크’가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해서 말을 걸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성공을 놓치는 리스크’. 이것이 쿠바인의 ‘연애철학’이다.

쿠바인의 평균 월수입은 쿠바국가통계국에 따르면 429페소(2만2천원 가량)이지만 교육과 의료가 무료이고, 배급제도가 있어서 최저한의 생활은 보장된다.

그렇지만 레스토랑, 호텔, 인터넷, 휴대전화 등은 국민이 사용하는 ‘현지 페소’의 24배에 달하는 ‘태환 페소’로밖에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쿠바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에 따라 외식이나 여행 이메일도 없는 ‘내밀하기 짝이 없는 연애’가 쿠바에선 주류다. 인기 데이트 장소는 공원이나 해안가의 말레콘 거리. 오락은 영화관이나 아이스크림집, 야외콘서트 정도이다.

아이스크림을 입안 가득이 먹고 있던 여고생(16)은 이렇게 말했다.

“연애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불타오르는 연애와 오래 지속하는 연애. 어느 쪽도 느낌과 대화가 중요하다.”
이게 쿠바인 연애의 기본이다.

쿠바에서는 13~14살이면 연인이 생기는 아이들이 많다. 꽤 조숙하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는 분명하게 성교육을 시킨다. 콘돔도 싸게 손에 얻을 수 있다. 10대 임신은 적다고 한다. 가톨릭 국가인데도 임신중절도 합법이다. 연애와 성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사회 전체가 인정하고 있다.

쿠바인은 연애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아티스트도, 영화배우인 듯이 행동한다. 코미디언인 듯 농담을 연발한다. 어느 때는 로맨틱한 시인이 되고 사랑의 볼레로를 낭랑하게 부르는 일도 있다.

“상대방의 전부가 좋다”고 말하는 신혼, 알고보면 이혼-재결합 커플
아드리아나(41)는 남편 헤라루드(43)와 13년간 각각 떨어져 살고 있다. 남편은 미국의 형무소에 있다. ‘살인미수, 스파이 공모죄’로 종신형 두 차례, 징역 15년 판결이 내려졌다. 쿠바 정부는 ‘국가 스파이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면회조차 성사되지 않고 있다.

1개월에 수차례, 언제 걸려올지도 모를 전화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신수단이다. 어느날 친구들 집에서 귀가하자 남편은 수화기 너머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 술냄새 나네~”
어떤 상황에서든 농담을 잊지 않는다. 함께 살기시작했을 때부터 웃고 앞을 보고 살아왔다.

“단 몇 분이라도 함께 잊고, 함께 즐긴다. 최근에는 아이가 생기면 어떤 이름을 지을지 서로 농담을 했습니다.”
결혼식도 다녀왔다. 근처의 파라시오 드 마트리모니오(결혼의 궁전)로 불리는 공공시설에서 식을 올린 리카르드(25)와 하이디(26). 공증인이 ‘부부의 규약’을 담담히 낭독한다. 가정 내의 평등, 상부상조할 것, 존중할 것…. 종교색도, 신랑신부의 영원의 맹세도 없다. 증명서에 사인을 마치고 웨딩키스를 나눈다. 그러자 친척 일동에게서 환호성이 날아오른다.

피로연은 인근 광장. 참가자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면서 신부는 말한다.

“일생에 한 번 공주님이 될 수 있는 날이고, 결혼하면 친구와 커뮤니티가 두 사람 분량으로 넓어져요. 중요한 이벤트이예요.”
인근 지역의 식장에서는 간호사인 바바라(40)와 수화교사인 레오넬(46)이 결혼 절차를 마치고 나왔다. 캐주얼 복장이었다. 25페소를 내고 이름을 등록해 두 사람만의 사진을 찍었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상대의 전부가 좋다.”
바바라는 말하고 두사람은 뜨거운 시선을 교환했다. 레오넬은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무에 두사람은 수화로 대화한다. 실은 이 두 사람 10개월 전에 한 번 이혼한 뒤 재결합한 커플이다.

“함께 살았던 때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차이가 있어 마음이 서로 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헤어지고 보니까 역시 상대를 좋아했구나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결혼했다.”
쿠바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에 5만 8490쌍이 결혼하고 같은 해 3만 2318쌍이 이혼했다. 꽤 높은 이혼율이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디바 오마라 폴듀오드(81)도 윙크를 날리며 이야기했다.

“사랑과 열정이 없으면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없어요. 그렇지만 나도 이혼했어요.”
의사인 라이디(51)도 3번이나 결혼했다. “헤어질 때는 아이들 문제로 괴로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서로 애정을 느끼는 게 중요하고 신체 관계도 중요하다. 그것이 없어졌다면 결혼생활은 계속할 수 없다.”
최초의 결혼생활로 생긴 아이들은 대학생이 됐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재혼한 처와의 사이에 생긴 딸을 데리고 자주 집에 놀러 온다. 아이와 부친은 매일 같이 전화로 이야기하고 주말에는 함께 식사도 한다. 라이디도 ‘아버지의 권리’는 될 수 있는 한 빼앗지 않도록 마음을 써왔다.

어린아이 때부터 남자아이 요리시켜
쿠바에서는 이혼하기 쉽다. 결혼해도 서로 각자의 성을 쓰고 아이들도 양쪽의 성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이혼해도 이름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 한 쪽이 이혼법정에 신청하면 어느 한 쪽이 동의하지 않아도 3개월이 지나면 이혼이 성립된다. 위자료도 없다. 모친이 친권을 갖는 경우가 많고 부친이 급료 액수에 따라 양육비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 양육비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을 경우 모친이 부친의 월급에서 원천징수할 수 있도록 법률적 요구를 할 수 있다. 주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혼해도 칸막이를 쳐서 같은 장소에서 계속 사는 커플도 있다. 느낌이 서로 잘 맞으면 결혼하고 맞지 않으면 헤어진다. 심지어 7~8차례 결혼, 이혼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혁명 뒤 남녀 권리 평등을 지향해온 쿠바에서 의사나 엔지니어 등 남성이 많은 직업에서도 여성이 진출해 반수를 차지하게 됐다. 지금은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남녀의 역할, 경제력의 차이는 줄어들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남녀 평등은 달성됐어도 ‘옛날부터의 남자다움을 중시하는 풍조는 여전하다’고 한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의 딸인 마리에라 카스트로가 소장을 맡고 있는 국가성교육센터(censex)의 의사인 페드로 파붐 바슈(48)는 말한다.

“남자도 사람 앞에서 울거나 실패해도 좋다, 걸프렌드가 3~4명 없어도, 성기가 크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성이 ‘다움’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남성 쪽이 먼저 죽고 사고나 자살이 많은 것은 마초 사상이 근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쿠바 보육원에서는 어린아이 때부터 ‘역할 연습’을 수용해 남자아이에게도 요리와 육아를 시키고 있다. 이런 ‘남성해방’ 교육의 총아라고 할까, 최근 쿠바에서도 연애에 사활을 걸지 않는 ’초식계’ 남성이 늘어나고 있다.

ⓒ 한겨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