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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협 훈풍’ 부는 북·중 국경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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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1,835회 작성일 11-03-1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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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국 접경지대로 떠나기에 앞서 만난 정부 당국자 얘기는 강렬했다. 그는 북한·중국의 경협 움직임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선 경우는 없으며, 있어봤자 몇몇 개인 기업 차원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광물 팔아 식량 사오는 수준” 내지는 “북한이 하도 매달리니까 중국 정부도 귀찮아한다”는 말도 했다.

2월21일 옌지(延吉)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중국 남방항공 CZ6074편에 몸을 실으면서도 머릿속이 내내 복잡했다. 대북 정책에 깊이 관여하는 정부 당국자가 저토록 확언한다면 뭔가 근거가 있지 않겠나. 옌지 도착 후 처음 만난 A씨 역시 정부 당국자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북한과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다는 그는 “(북·중 간에) 말만 많았지 실제로 이뤄진 건 거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를 이틀에 걸쳐 만났지만 “4월 초가 되면 뭔가 변화가 나타날 것 같기는 하다. 원정리에서 나진항까지 도로공사가 시작된다는 얘기가 있다”라는 말 한마디를 겨우 들었다.

   
기자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나진항 개발이니 도로 철도 공단 개발에 대한 합의 등, 그 많은 언론 보도가 모두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의문이 풀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A씨에게 문제가 있었다. 그는 북쪽과 사업하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손해를 본 경험뿐 아니라 얼마 전 불쾌한 일도 있었고, 최근 진행 상황을 잘 모르기도 했다. “북한과 사업해 이익을 본 기업들은 영업 비밀이기 때문에 입을 닫고, 손해 본 기업들이 말을 많이 한다”라고 옌지 시의 한 대북 사업가가 말했다. 손해 입은 사람들 얘기가 이러저러한 인맥을 타고 남쪽 정부나 기관에 전달되어 취사선택된다는 것이다. 떠나기 전 만났던 그 당국자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지린과 창춘이 전면에 나서다

옌지·투먼(圖們)·훈춘(琿春)·팡촨(防川) 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내 북·중 접경지역을 1주일 정도 다니면서 만난 중국 지방정부 관계자나 대북 사업자 얘기를 종합한 결과, 실상은 A씨의 얘기와 매우 달랐다. “북·중 관계는 2009년 다르고, 2010년 다르다. 그리고 2011년 올해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라는 게 공통적인 얘기였다.

지난해 말 이후 옌볜 조선족자치주 내 북·중 접경지역인 투먼 시나 훈춘 시에는 한국 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그동안의 보도는 시가 계획한 것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1주일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지린성 정부와 창춘(長春)의 국영 대기업이 대북 경협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사례들이 속속 포착됐다. “2010년 다르고 2011년 다르다”라는 현지 얘기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시사IN 남문희
2월22일 훈춘의 취안허 세관. 나진에서 화물을 싣고 나온 중국 트럭이 세관을 통과해 나오고 있다.
지린성 정부가 52명의 매머드급 경제고찰단을 구성해 북한 나선시 인민위원회와 1박2일 회의를 가졌다는 소식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2월 11~12일 있었던 이 경제고찰단 파견은 지린성 상무부가 주도했다. 산업조·교통조·농업조·계획조 등 지린성과 나선특구 간 경협 의제를 분야별 5개 파트로 나눠 구성한 이 고찰단은 지린성 담당 공무원들이 주축을 이뤘고, 창춘 소재 2~3개 국영기업 관계자가 합류해 전세 버스로 이동했다.

지린성 성도 창춘 소재 국영 대기업들이 나선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는 움직임도 드러났다. 창춘은 중국 자동차 공업의 메카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제일자동차그룹(中國第一汽車集團公司)은 1951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지시로 설립된 중국 최초이자 최대 자동차 회사이다. 그동안 제팡(解放)·훙치(紅旗)라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생산해왔고, 폴크스바겐이나 도요타 등 외국 자동차 회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해온 국영 대기업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나진에 부품 조립공장을 짓는다는 소식을 지난 1월 동북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소식통에게서 들은 바 있는데, 이번 취재 기간 중 현지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장춘의 또 다른 국영 대기업인 야타이(亞泰)그룹 역시 나진에 100만t 규모의 시멘트 공장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이번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상하이 증권거래소 공시 결과에 따르면 야타이그룹은 2007년 3분기 순익이 1억6220만 위안(약 277억원) 되는 기업으로, 부동산·시멘트·의약품·축구·쇼핑센터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현재 투먼 시에 1억2000만t 정도의 시멘트가 매장돼 있는데, 나진에 100만t 규모의 반제품 공장을 짓고 투먼에는 완제품 공장을 짓는 등 연관 생산 체제를 갖출 계획이라고 한다.

또 다른 국영기업들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지난해 12월 말 크게 화제가 된 나진항 4·5·6호 부두를 중국 국영기업 중쯔그룹(中資集團)이 맡기로 했다는 소식도 그중 하나다. 앞의 정부 당국자는 나진항 부두 개발도 중국 정부가 일절 관여하지 않고 몇몇 민간 기업이 시도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의 얘기가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바로 국영기업 중쯔그룹의 등장이다. 현지에서는 나진항 4·5·6호 부두 개발을 중국 정부 돈으로 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 경우 중쯔그룹이 원청 기업이 되고, 옌볜의 대표 건설사인 톈위그룹(天宇集團)이 하청을 받아 시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Reuter=Newsis
창춘에 있는 중국제일자동차그룹. 이 기업은 나진에 부품조립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석탄 관련 회사들의 동향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올해 1월 초 사이 다롄(大連) 출신의 화물 수송업체인 창리그룹(創力集團)이 훈춘 일대 석탄 약 1만6700t을 한 달여에 걸쳐 나진항 1호 부두에서 상하이로 수송해갔다. 훈춘에 비해 고칼로리의 석탄이 풍부한 헤이룽장(黑龍江)성 지시(鷄西) 석탄을 나진항을 통해 운송하는 방안이 국영 석탄회사들을 통해 타진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린과 창춘인가. 물론 그 배경에는 2009년 8월 중국 국무원이 비준한 ‘창지투 개발개방선도구 계획’이라는 국가급 계획이 있다. ‘창지투(창춘·지린·투먼)’라는 명칭에서 보듯 이 계획의 중핵은 바로 지린성과 그 성도인 창춘이다. 그래서 지린성과 창춘을 창지투 계획의 ‘엔진’이라 말하기도 한다. 옌볜 조선족자치주에 속한 ‘옌룽투(옌볜·룽징·투먼)’는 최전선이고, 훈춘은 창구라 일컬어진다. 즉 창지투 계획의 초기에는 훈춘과 투먼같이 나선 지역과 마주하고 있는 ‘창구 및 최전선’ 지역이 전면에 부상하게 되지만, 계획이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 배후에 있는 지린성과 창춘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시점이 생각보다 매우 빨랐다는 점이다. 그 연유는 무엇일까?

바로 지난해 12월23일 북한 합영투자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합작투자위원회)와 중국 지린국제경제기술합작회사의 ‘북·중 나진항개발협약’과, 그보다 앞서 있었던 포괄합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시사IN>이 입수한 12·23 ‘나진항개발협약서’는 전문에서 지난해 5월 “창춘에서 열린 김정일 위원장과 후진타오 주석의 회담 내용에 의거해 쌍방이 나진항 지역 개발협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주요 골자는 ‘갑방(중국 측)이 나진항 4·5·6호 부두를 새로 건설하고 을방(북한 측)은 새로 건설하는 나진항의 50년 사용권 및 자유무역구를 제공한다. 갑방은 취안허에서부터 나진항까지의 고속도로와 취안허대교 및 철도를 설계·건설한다. 투자 금액은 쌍방이 인정한 계획에 의해 결정하며, 갑방은 투자와 융자에 대하여 책임진다. 쌍방 합작 수익은 다시 협의해 검토한다. 을방은 유엔개발계획(UNDP)에 가입한다. 을방은 갑방이 평양에 중국 측 사무소를 설립하여 업무의 발전 도모를 위하고, 갑방은 비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12·23 합의에 앞선 11·20 합의의 존재


당시 이 협약서 내용은 국내 언론에 일부 보도되어 반향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가 추가로 지적될 필요가 있다. 먼저 12·23 합의에 앞서 그보다 상위의 포괄적 합의가 북·중 양국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은 지난해 말 기자가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의 한 지인이 확인해줬다. 그는 지난해 11월 중국 동북 지역을 방문했을 때 북·중 간 포괄 합의 내용을 들었다고 한다. 즉, 11월20일 중국 상무부와 북한 합영투자위원회가 신의주의 위화도·황금평 지역과 나선 지역을 묶는 ‘일구양도(一區兩島:一區는 나선 지역, 兩島는 위화도와 황금평을 의미)’의 특구개발 계획에 합의했으며, 북한이 지하자원 개발권을 넘기는 대신 중국이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느닷없이 북한 합영투자위원회 김일용 국장(합영투자위원회에서 나선 지역을 담당하는 6국의 국장 겸 부위원장)이 듣도 보도 못한 ‘지린 국제경제기술합작회사’라는 곳과 12월23일 나진항 개발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11월20일의 포괄합의와 12월23일 합의 간의 상관관계가 불분명했지만 지난 1월 중순 그가 다시 동북 지역을 방문해 이를 확인함으로써 관계가 분명해졌다. 즉, 11월20일 나선과 신의주 양 지역을 묶어 중국 상무부와 북한 합영투자위가 상위의 포괄 합의를 한 데 따라 12월23일 나선 지역에 대한 별도의 좀 더 구체적인 합의가 이 지역을 담당하는 지린성 상무부와 합영투자위 나선 국장 사이에 맺어진 것이다.

   
ⓒ시사IN 남문희
취안허 세관에서 보면 원정교와 북한 측 원정리 세관이 보인다.
또 하나 의문점은 바로 지린 국제경제기술합작회사의 정체이다. 이번 접경지역 현지 취재를 통해 이 회사가 지린성 상무부의 대외적 명칭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북한을 배려하거나 미국·일본 등 주변국의 시선을 의식해 중국 측은 정부가 하는 일임에도 실제 합의문 등에는 정체불명의 민간단체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제경제기술’은 상무부가 즐겨 사용하는 명칭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창지투 계획의 기본 정신을 ‘정부 주도, 민간 참여, 시장 운영’이라고 천명한 바 있으며, 앞의 12월23일 합의 첫 조항에도 이 정신이 다시 한번 강조됐다. 그러니 중국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정부 당국자 발언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북한, 새로운 특구법 발표?

12월23일 합의에 앞선 포괄 합의의 존재를 강조한 것은 앞으로 있을 북·중 경협 전개 일정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현지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3월 말, 4월 초면 북·중 간의 움직임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시급하게 거론되는 (훈춘의 취안허 세관 맞은편) 북측 원정리 세관에서 나진항까지 약 54㎞ 직선도로 개·보수 작업 역시 현재 측량에 들어가 있는데, 3월 말이나 4월 초면 공사가 시작된다. 중쯔그룹에 의한 나진항 4·5·6호 부두 개발이 시작되는 시점 역시 4월 초이다.

왜 3월 말~4월 초일까.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바로 이 시점에 북한이 기존 위화도·황금평 개발과 나선특별시 개발을 총괄하는 새로운 특구법을 발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가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특별지대법’이 그것이다. 지난해 11월20일 북·중 양국의 일구양도개발 포괄 합의는 바로 그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후 이루어진 12월23일의 나진항 개발 합의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위화도·황금평 개발 협의를 총괄하는 새로운 법이 이때 나오게 된다. 북한이 이 시점을 택한 이유는 바로 ‘중국으로부터 최소한 수십억 달러의 돈이 들어온다는 확신이 생긴 데다가, 국제 정세도 4월 이전에 호전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한다. 나선과 신의주를 중심으로 한 북한 북부 지역에 경제협력과 개발 붐이 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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