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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지역감정,위안부,기독교,보수 그리고 진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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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댓글 0건 조회 2,090회 작성일 11-02-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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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 지역감정, 위안부, 기독교, 보수 그리고 진보(1)

             "사물에는 항상 정확한 이름을 사용해야 한단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가운데서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에게-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의 재집권으로 이미 예견되었던 가치관 붕괴와 새롭게

찾아든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아 다시 언어의 문제로 돌아가게 됩니다. 작금의 현실은

타락한 언어현상에서 가장 먼저 그 근본을 찾아야 할 만큼 우리 사회와 시대의 말의

타락과 왜곡은 극심해졌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지금 '폭력을 싫어(?)하고 워싱턴과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민주정의당(?) 총재 전두환 통치'에 버금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명백한 언어에 대한 강간이 자행되었던 암울했던 80년대의 재래.

이러한 썩은 말들은 본질을 왜곡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때때로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langue)는 본질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담론(discours)이라는 상황적

맥락(contexte)까지 추가되면 우리는 매우 쉽게 왜곡된 언어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

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마지막 희망인 '조직화된 깨어있는 시민'이 다수가

되려면 의식이 각성되어야 하고 제대로 된 말의 사용은 그 기본입니다.

 

   노무현 16대 대통령이 언급하셨던 "기울어진 축구경기장"을 가능케 하는 근본바탕에는

바로 타락한 언어와 본질을 왜곡하는 잘못된 단어의 사용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 현대사를 통해서 철저하게 그 의미와 사용이 오도되어버린 몇 가지 대표적인

단어들을 통해 언어의 타락과 왜곡과 의미의 변질이 어떻게 시민사회의 사고와 의식을

제한하고 비트는지 살펴보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친일파 VS 친일 부역,매국노,민족반역자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문제를 오직 한단어로 표현한다고 한다면 바로 '친일파'라

고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말은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시작과 굴레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친일파'라는 단어만큼 철저하게 왜곡된 말이 또 있을까요?

 

  원래 '친일파'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는 일본의 문물을 가까이 하고 잘 알고 지내서

우리의 이익을 도모하자는 의미로 봐야 합니다. 과거 우리의 역사에서도 잘 알 수 있듯

이 우리와 인접해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일본이라는 나라를 잘 몰랐던 경우, 항상 우리

에겐 임진왜란과 같은, 그리고 더 가까이는 일제에 의한 국권의 상실과 같은 불행을 겪

었다는 점에서 친일 혹은 지일의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임진년 7년 전쟁이후 도쿠카

와 막부와 거의 200년에 걸친 오랜 친선과 교류가 이어진 평화로운 세월도 있었음을 잊어

서는 안 되겠지요.(놀랍게도 우리와 일본이 근현대사에서 반목한 세월보다 훨씬 깁니다)

그러나 조선말기, 나라가 쇠망하자 일본의 힘에 기대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

하던 세력들이 급기야는 외세인 일본에게 나라까지 들어다 바치면서 '친일파'의 의미는

급격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친일파=매국노가 돼버린 것이죠.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친

일파'라는 단어에 그냥 매국노라는 의미만 온전하게 포함되어 있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의 건국은 미국이라는 또 다른 외세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반공을 표방한 친일파(사실은 친일부역 반민족세력 혹은 친일매국노라고 불러야 마땅한)

들이 이승만이라는 극우간판을 내걸고 시작한데서 비롯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반민특위

의 와해로 상징되는 민족정통성의 확립기회를 상실했고 초유의 4.3제주 학살과 각종 민간

인학살이 자행되며 폭력과 억압의 기초하에 근대국가를 강제주입당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들 반민족 부역세력들의 재발호로 민족모순이 극대화되면서 결국 분단과 내전이라는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까지 입었습니다. 모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 현실의 문제를

친일파(친일부역세력)로 정의될 수 있다는 우리 현대사의 근원문제는 이러한 사실에

기초합니다.

 

  비록 4.19혁명에 의해서 저들의 간판이었던 이승만은 축출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친일부역세력들은 대한민국 곳곳에 더욱더 그들의 기반을 탄탄히 하는 역사의

후퇴와 퇴행이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4.19혁명이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부역 군부세력

에 의해 좌절되면서 우리사회는 더 확고히 친일부역자들이 주도하는 사회로 전락합니다.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들에 의해서 주도되면서 '친일파'라는 단어는 또 한 번 우리

의 의식과 판단을 왜곡하는 단어로 변질됩니다.

 

   왜 친일파라는 단어가 부적절한지는 모두에서 잠시 언급했던 진정한 친일 혹은 지일의

의미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에서 통용되는 친일파라는 단어

에는 온갖 불순한 의미의 잡스러움이 스며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물어봅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일제에 빌붙어 일신의 영달과 안위를 추구했던 자들의 의식과 행위가 과거

조선조 후반 200여년은 물론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되어온 한일교류와 지일의 의미를 담

고 있는 친일이라는 의미와 과연 같은 것인가요?

  전혀 아닙니다. 우리 근세기 국권상실과 식민통치에 관련된 저들은 친일부역세력 혹은

친일매국노, 친일반민족세력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요컨대 친일파라는 말을 계속 써서는 역사적 청산이나 기억의 당위성을 주장할 명분이

절대적으로 떨어집니다. 아울러 대중들의 판단과 의식도 이런 두루뭉실한 단어로는 변

화나 근절의 필요성을 촉구하기 매우 어려워집니다. 얼마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 역시도

대중의 편의성을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을 또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이 작업에 투입된 노력과 시간과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몸조심이 너무 지나쳤었습니다.

 

  한편, 저들 친일부역세력들도 정확한 단어의 통용이 자신들에게 가져올 피해를 너무 잘

알았기에 언론과 교육과 각종 수단을 통해서 거의 반세기가 넘게 지속적으로 본질을 감

추고 은폐함은 물론 노골적으로 왜곡과 의미의 혼돈을 부추겨 왔습니다. 심지어 저들은

이들 친일파라는 단어를 광의로 혼동 악용하면서 비자발적 혹은 소극적 부역자까지 모두

친일파로 두루뭉실하게 섞어버리기 까지 했습니다. 그 혼동의 상태에다 정작 구분했어야

마땅할 자발적 적극적 부역자 매국노 그룹들까지 어물쩡 시대의 불행한 피해자로 인식하

게 만드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눙치는 것이죠. "나라를 잃어

버렸기에 이런 불행한 경우가 생겼던 것뿐이다. 이제 와서 어쩌자는 것이냐?"...

이러니, 친일부역의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저들 친일부역의 무리들이 앵무새처럼 불행

한 시대의 피해자네 어쩔 수 없었음내를 당당하게 떠들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광복이후 반세기가 흘러오면서 친일부역세력들의 죄상과 과오를 역사적으로

청산하기가 매우 힘들게 된 상황은 바로 '친일파'라는 변질되고 왜곡되고 타락한 단어

가 계속 우리 사회에서 별 무리 없이 통용되는 데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용어의 사용부터 전선을 다시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행동과 의식도 재정립될

수 있고 이 문제만 불거지면 두루뭉실 모든 의미를 뒤섞어 어물쩡 넘어가려는 친일부역

세력들의 주구와 앵무새들의 온갖 반칙과 교란행위로부터 다수의 대중과 시민세력들을

보다 더 확실하게 각성시킬 수 있습니다. 요컨대 친일파를 처단하자는 주장에는 온갖

이유와 궤변과 왜곡의 논리를 가져다 붙이기가 용이하지만, 친일매국노를 처단하고 역

사적으로 정리하자는 논리에 대해서 같은 짓을 하려다간 스스로 친일 부역의 대의에

동의한다는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궤변이 장난치기가 힘들어지죠. 그래서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부역배, 친일매국노, 친일반민족세력이라고 써버릇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명쾌한 의미구분과 역사적 의미망이 형성되고 그들과 분명한 대립전선의 형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덤블도어 교수의 말대로 모든 사물에는 분명한 이름을 써야 합니다.

흑암의 마법사 볼드모르트가 두려워 '이름을 말해서는 안되는 사람(He-who-can-not-

speak-his-name)'으로 부르거나 '누군지 잘 아는 그사람(You-know-who)'라고

부르는 동안 마법사들은 감히 그에게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해리나 덤블도어

사물의 본질을 당당하게 올바른 용어로 썼던, 깨어 있고 용기 있는 마법사들만이

볼드모르트에 맞서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녕 친일부역의 청산과 민족국가의 재확립이라는 이 오래된 질곡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 본질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현상과 사물에 딱 적

합한 용어의 사용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부역배, 혹은 친일 반민족세력입니다. 뭐라고 불러도

상관은 없지만 더 이상 그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맙시다. 그들과 친일파는 아무런 관

련이 없습니다.

 

 

*다음에는 지역감정이라는 단어를 왜 지역차별 혹은 호남혐오라고 써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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