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에볼라, ‘인재’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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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에볼라, ‘인재’인 까닭 | ||||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에볼라 바이러스. 왜 치료제가 없을까. 왜 하필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할까. 답을 찾다 보면 에볼라가 인재이며 세계의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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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괴물’은 단연 에볼라 바이러스(에볼라 출혈열)다. 일단 걸리면 걷잡을 수 없는 출혈과 함께 몸 내부의 장기까지 파괴되면서 처참하게 사망한다. 더욱이 예방도 치료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에볼라 공포증이 세계를 뒤덮으면서, 이 병이 창궐하는 서아프리카 4개국(기니·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나이지리아)은 그야말로 ‘현실의 지옥’으로 간주되었다. 이 나라들에서 밖으로 나오는 인간과 물자는 1급 통제 대상이 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7월20일까지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수는 1427명이다. 나라별로는 라이베리아 624명, 기니 406명, 시에라리온 392명, 나이지리아 5명이다. 이쯤에서 ‘에볼라가 왜 하필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할까’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존재가 이미 십몇 년 전부터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왜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성찰해봐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번 사건이 단지 천재지변(괴질)이 아니라 인재(人災)이며, 세계의 정치·경제·국제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REUTERS
8월20일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의 빈민가 웨스트포인트 주민들이 정부의 봉쇄 정책에 항의하며 군경과 대치하고 있다. 이 같은 인구밀집 지역은 바이러스에게 좋은 표적이 된다.내전 국가·자원 부국이라는 공통점에볼라가 창궐하는 서아프리카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내전 국가’라는 점이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라이베리아에서는 1989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내전이 개시되었다. 14년 동안 폭력적인 방식으로 정부가 세 차례나 교체되었다. 라이베리아 남성들은 어느 쪽에든 가담해서 전투원이 되거나 피란을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전 기간에 25만여 명이 살해되었다. 주로 도시화가 덜 된 지역에서 전투가 발생했다. 근대화에 성공한 다른 나라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산업화 및 일자리 창출이 농민들을 도시로 이끈다. 그러나 라이베리아에서는 고향이 내전으로 파괴된 탓에 그나마 안정적인 도시로 향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전쟁 세대’ 중 상당수가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의 해변을 따라 조성된 웨스트포인트 판자촌에서 실업 상태로 허덕이고 있다. 이런 인구밀집 지역은 바이러스에게 좋은 표적이 된다.
라이베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66위다(2012년 기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지난 20여 년 동안 가혹한 전쟁이 휩쓰는 가운데 대다수 라이베리아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도, 부(富)를 축적할 수도 없었다. 더욱이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재앙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정부도 무능하기 짝이 없다. 무장투쟁으로 권력을 잡는 데만 혈안이 되었을 뿐이지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위급한 사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행정기구나 의료 시스템은 갖추지 못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날뛸 수 있는 최적의 배양지다.
ⓒAP Photo 다이아몬드 채취 작업을 하는 시에라리온 소년들. 자원 개발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된다. |
기니에서는 종교 간, 종족 간 분쟁이 무장투쟁으로 번지기 일쑤다. 기니의 제2 도시인 은제레코레에서는 최근 2~3년 동안에도 무슬림과 기독교도들 혹은 게르체족과 코니얀케족 사이에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기본 식량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식량을 찾아 정글로 들어간다. 은제레코레에서 팜유를 파는 마무드 씨(24)는 “우리 관심사는 먹는 것뿐이다.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으니 정글로 들어가 풀과 나무열매를 채취하고 짐승들까지 잡아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글의 동물들은 아주 좋은 먹을거리다. 그중에서도 기니 주민들이 가장 흔하게 섭취할 수 있는 ‘단백질’이 바로 과일박쥐(날여우박쥐)였다. 과일박쥐로 수프를 끓여 먹는다고 한다. 이 과일박쥐가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의 자연계 숙주로 밝혀졌다. 은제레코레는 올 들어 최초의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에볼라가 창궐하는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자원 부국이기도 하다. 서방의 자본을 업고 정글 깊숙한 곳에 숨겨진 막대한 부(富)를 캐내려는 자원 개발이 지난 20~30년 동안 대대적으로 시도된 나라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글 깊숙한 곳의 자원 옆에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그곳에 웅크리고 있던 ‘존재’가 있었다. 바로 바이러스들이다. 바이러스들은 생물학적으로 숙주에 붙어 살아간다. 인간을 만나기 전에는 정글 속의 동물이 숙주였다. 이제 부를 좇아 정글 속으로 침입한 인간이 새롭게 ‘숙주 리스트’에 등록되었다.
앞서 언급한 시에라리온 내전(1990년대)은 결국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정부군과 반군 간의 싸움이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이 밀집한 지역은, 수도 프리타운에서 260㎞ 떨어진 동부 내륙의 도시 케네마다. 반군들은 이 지역을 접수해 돈을 벌고 싶었다. 주변 정글에서는 연일 전투가 벌어졌고 셀 수 없이 많은 병사와 주민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러나 케네마의 중심지인 항가 거리는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피의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려는 현지인과 서방 자본가들로 흥청거렸다. 이런 도시를 에볼라가 덮쳤다. 에볼라에 대항하기 위한 치료시설도 발전했다. 케네마 소재 국립병원은 에볼라 진단 및 치료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국립병원의 의사로 에볼라 연구 부문에서 최고 권위자인 오마르 칸은 에볼라 환자를 돌보다 감염되어 사망했다. 병원 관계자인 반디 씨(25)는 “케네마를 중심으로 내전과 다이아몬드 거래, 에볼라 확산이 같은 시기에 전개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에볼라는 다이아몬드 때문에 엉망으로 파괴된 정글 속에서 뛰쳐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1976년 민주콩고에서 첫 에볼라 환자 발생
아프리카 중부 내륙의 민주콩고 역시 자원 개발과 에볼라 간의 상관관계를 관찰할 수 있는 사례다. 민주콩고는 콜탄, 구리 등의 매장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서방 자본은 수십 년 전부터 현지인을 앞세워 정글 깊숙한 곳을 파헤쳐왔다. 민주콩고는 1976년 처음으로 에볼라 환자가 발생한 ‘에볼라 원조국’이다. 지난 7월24일에도 민주콩고 보건당국이 ‘에볼라 양성반응 환자 2명을 확인했으나 이들은 모두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나라 일간지 <르 포텐셜>의 한 기자는 자원 개발이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고 믿는다. “에볼라뿐 아니라 수많은 바이러스들이 콩고에 창궐하고 있다. 온갖 바이러스 감염자가 보고된 시기가 정글의 본격적인 개발 시기와 맞물린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콩고인 중에는 서양인들이 괴질을 갖고 이 땅에 왔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콩고 과학자들은 ‘서양인들이 한 일은 정글 속에서 잠자던 바이러스를 깨운 것’이라고 말한다.”
ⓒAP Photo 8월21일 에볼라 치료제 ‘제트맵’을 투약받은 켄트 브랜리 박사(파란색 옷 입은 이)가 의료진에 감사를 표하며 퇴원했다. |
이에 더해 서아프리카 정부들의 독단적 봉쇄정책이 오히려 피해를 더 키우기도 한다. 에볼라를 앓고 있는 환자는 물론 살아남은 가족과 회복한 이들까지 고립시킨다. <뉴욕 타임스>에서 소개한 시에라리온 은잘라 응기에마 마을의 경우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응기에마는 쌀과 카사바 농사로 생계를 꾸려가던 인구 500명 규모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에볼라로 61명이 사망했다. 부모가 모두 숨진 여섯 살, 일곱 살배기 자매는 울다 지친 모습으로 방치돼 있다. 정부는 살아남은 주민들까지 마을을 떠나지 못하게 봉쇄해버렸다. 그러면서 식량과 의료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않아서 주민들이 영양실조와 기아로 숨지고 있다. 감염 지역은 거대한 감옥이자 격리 수용소다. 라이베리아 정부는 감염 도시를 폐쇄하고 이에 저항하는 주민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시위에 나선 17세 소년이 군경의 총에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가 없는 이유
이처럼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인증된 백신과 치료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콩고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거의 40여 년 전인 1976년이다. 이후 1970년대와 1990년대,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간헐적으로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대대적인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혹시 에볼라 바이러스는, 현대 과학으로도 대적할 수 없는 ‘괴물’인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현대 과학과 기술보다 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볼라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봤자 ‘돈이 안 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맞다. 예컨대 어떤 제약회사가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을 출시하려면 개발 기간만 최소 10여 년, 비용도 1조원 이상 들어가리라 추정된다. 기업 처지에서는 이 정도 투자를 했다면 그에 걸맞은 수익을 챙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에볼라 백신을 주로 소비할 지역은 어딘가? 가난한 아프리카다.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정도로 충분한 가격을 매기기 힘들다. 설사 개발에 성공한다 치더라도 바이러스는 매우 빠르게 진화한다. 개발된 약품으로 해당 바이러스에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기껏 출시한 약품이 몇 년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 퇴출되어버릴 수도 있다. 즉,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은 인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민간 기업이 떠안기는 힘든 프로젝트인 것이다. 더욱이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전염성이 엄청나게 강한 에볼라 바이러스를 직접 다뤄야 한다. 그런 만큼 최고 수준의 생물안전등급(BSL4)을 갖춘 실험 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실험 시설을 갖춘 나라는 21개국뿐이다. 한국에도 BSL4 수준의 실험 시설은 없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를 극복할 희망의 약물로 ‘제트맵(ZMapp)’이 등장했다. 미국 맵바이오 제약사가 만든 시험 단계의 치료제다. 에볼라 감염자로 확진된 미국 의료인 두 명과 스페인 선교사, 라이베리아 의료진 등에게 투약되었다. 이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제트맵처럼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치료제도 에볼라 환자에게는 투약을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중 미국 의료인 두 명은 회복되었으나 나머지 두 명은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국제 의료계에서 제트맵의 효용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오랜 세월 원시 정글 깊숙이 잠복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첨단 과학기술 문명을 누리고 있는 서방세계를 위협한다. 에볼라의 출현은, 단순히 재앙에 과학기술로 대처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한 세계 자본주의의 첨병들은 원시 정글 땅속 깊은 곳의 지하자원까지 ‘수익률 높이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에볼라 바이러스도 ‘개발’하고 말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프리카 현지 권력자들은 그 수익의 일부를 배분받기 위해 전근대적인 무장력으로 내전을 도발해 동포들을 살육했다. 전근대적인 주민들의 의식과 종교·종족 분쟁이 에볼라의 확산을 촉진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지만, 수익률 중심의 서구 자본주의(의료) 시스템은 이에 철저하게 무능하다. 현대와 ‘현대 이전’, 서방과 비(非)서방 세계의 각종 모순들이 거대한 체인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하면서 ‘에볼라 바이러스’라는 거대한 화두를 인류에게 던지고 있다.
감수: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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