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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과 고 장자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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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2,014회 작성일 11-03-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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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를 안고 있는 마거릿 생어


오늘(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14일로 착각하고 있었던 나는 출근하자마자 서둘러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여성의 날 자료’를 만들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를 비롯한 몇 군데 여성 관련 사이트를 찾아보았으나 맞춤한 자료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103회 '세계 여성의 날'


보관해 온 ‘읽기 자료’ 가운데 묵은 것이지만 ‘통계로 본 여성의 지위’라는 자료와 여성의 몸을 여성 스스로에게 돌려주고자 한 ‘산아제한운동’의 상징인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1883~1966)를 소개한 자료를 서둘러 편집했다. ‘…여성의 지위’는 수업시간에 간단하게 언급했고, 생어를 소개한 자료는 B4에 담아 각반 게시판에 붙이게 했다.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나 꼭꼭 챙기지만 아이들은 정작 여성의 날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긴 ‘여성의 날’을 알고 기리는 이는 과연 우리나라 전체 여성 가운데 얼마나 될까.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여성의 날’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여성의 날’은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 함께 변화한 여성들의 지위와 밀접히 연관된다.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변동에 따라 여성들은 가사노동 담당자에서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체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다.

▲ 마거릿 생어(1883~1966)

뉴욕의 여성노동자들은 1857년 항의 시위를 조직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했고 남성 위주의 주류사회는 가혹한 탄압으로 응수했다. 2년 후 3월, 이 여성들은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908년에는 일만오천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시간 단축, 임금 향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후 1910년 제2 인터내셔널의 주도 아래 ‘매년 같은 날,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의 날 행사가 제안되고 1911년 3월 19일에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 치러졌다. 이 행사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덴마크 등지에서 약 백만 명 이상이 참가하였다. 뒤에 여성의 날은 1913년부터 3월 8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메이데이가 우여곡절 끝에 공휴일이 된 이 땅의 역사는 ‘세계 여성의 날’에서도 비슷하게 되풀이되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정권 시절에 이 날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소수에 의해서 기념되는 행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은 1985년에 가서야 일부 해소되면서 비로소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다. 1987년의 6월항쟁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날은 그 정치경제적 의미를 구현하는 기념일로 다시 서게 될 수 있었다.

마거릿 생어, 자기 몸의 주인 선언

세계 여성의 날에 굳이 마거릿 생어를 떠올리는 까닭은 자명하다. 그이의 삶과 투쟁은 곧 여성이 비로소 독립적 존재로 거듭나는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생어는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간주되고, ‘아이 낳는 기계’로 취급되는 폭력에 맞서 자신이 ‘자기 몸의 주인’이라는 것을 선언한 최초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마거릿 생어는 “어머니가 될 것인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뜻대로 선택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어머니가 되지 않을 권리’를 제창했다. 그 스스로 11명의 자녀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생어는 ‘과도한 출산과 가난’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산아제한 운동에 뛰어들었다.

피임에 대해 교육조차 금지되어 있었던 때여서 임신은 여성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손에 놓여 있었고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많은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 애쓰다가 죽어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산아제한 운동’은 남성 위주의 주류사회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풍속교란방지법’ 등의 탄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1916년 산아제한진료소를 열어 여성들에게 피임법을 교육했다.

▲ 여성의 날 구호 '그녀에게 빵과 장미를'

공안질서방해죄로 체포되어 노동형을 선고받으면서도 그녀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성병 예방과 치료를 위해 여성에게 피임기구를 제공할 권한을 의사에게 준다’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는 제한적이나마 여성에게 피임의 권리를 부여한 첫걸음이 되었다.

1939년 의사에게 무제한으로 ‘피임처방권’을 부여하는 법이 제정되고 1960년 생어와 과학자들은 먹는 피임약을 개발해냄으로써 산아제한 운동은 역사를 새로 썼다. 이 경구용 피임약의 개발로 여성들은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활동을 앞당겼을 뿐 아니라 여권 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관습과 여성 억압에 굴하지 않았던 한 여인의 인간 승리는 여성과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기술하게 된 것이다.

올 ‘세계 여성의 날’과 관련하여 언론은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이 어제 이정희 대표, 한명숙 전 총리, 박근혜 의원 등 여야 여성 국회의원과 여성단체 관계자 등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노 상임고문은 17대 국회의원이었던 2005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에 대한 관심 촉구와 성평등 실현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여성정치인과 지인들에게 해마다 장미꽃을 선물해 왔다고 한다.

성별 격차 104위, 성상납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초상

국가의 공식 기념일이 아니니 민간 행사로 치를 수밖에 없는 여성의 날은 이 나라 여성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지도 모를 일이다. 노 상임고문의 편지에 따르면 ‘한국여성의 성별 격차는 세계 104위에 그친다. 세계 십몇 위를 넘나드는 국력에 비기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한편으로 성 상납을 강요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자 탤런트가 남긴 편지에서 드러난 성상납의 전모가 언론계를 달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편지에서 자신이 성상납을 강요당했던 대상을 31명이라고 지적한다.

‘기획사 대표 6명, 대기업 대표 간부들 4명, 금융업체 간부 2명, 무슨 옛날 일간지 신문사 기자 출신 그런 놈, IT 업종 신문사 대표 간부 2명, 일간지 신문사 대표 2명, 드라마 외주 제작사 피디 7명, 영화 등 감독 8명…31명’

이들은 볼 것 없이 우리 주류 사회의 기득권 계급이다. 그 넘치는 권력과 금력 너머에 음험하게 도사린 비열한 욕망의 얼굴들은 바로 21세기 대한민국, 그 천민자본주의의 수치스러운 얼굴이다. 불안스레 주변을 훔쳐보며 진실을 숨기려는 이들의 추악한 얼굴들 위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기 몸의 주인이 자신임을 증명해야 했던 한 여인의 모습이 겹쳐지는 ‘세계 여성의 날’이다.



<201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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