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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신의주 빅딜’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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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1,751회 작성일 11-06-0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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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은 북·중 간 최대 현안인 ‘신의주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방중한 것으로 보인다. 신의주를 중국에 위탁해 개발하는 대신, 거액의 북한 재건 자금을 받기로 합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금평·위화도 차원을 넘어 신의주를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특구로 개발하는 문제가 앞으로 수면 위에 떠오를 것이다.” 국제전화 수화기 너머로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5월20일 새벽부터 시작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 방중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온 의문의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번 김 위원장 방중은 미스터리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이번엔 아들 김정은 차례라고 목을 빼고 기다렸는데, 뜬금없이 김 위원장이 등장했다. 덕분에 한국의 대북 정보력의 밑천이 다 드러났다(22~23쪽 딸린 기사 참조).


   
ⓒXinhua
지난 5월25일 중국을 방문 중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이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 방중 역시 파격의 연속이었다. 대개 3개월 전부터 중국 측과 조율에 들어가는 게 관례인데, 중국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는 4월 중순께 갑자기 정해졌다. 시점도 이상했다. 5월 말 황금평·위화도와 나진·선봉(나선)의 착공식을 앞둔 기세몰이라고 보기에는 볼륨이 작았다. 이 문제는 지난 4월 이수용 북한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의 베이징 방문 때 실무적인 매듭이 끝난 상태였다(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김 위원장이 특별히 나설 이유가 없다.

신의주는 북·중 간 모든 문제의 ‘진앙’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방중 경로. 초기에 난양-투먼 루트를 이용할 때만 해도 창지투(창춘·지린·투먼)-나선 개발 등 북·중 경협에 초점을 맞추는가 싶었지만, 일정 대부분이 장쑤성 양저우에 맞춰지면서 장쩌민 전 주석과의 면담이 이번 방중의 핵심 목적이라는 것이 선명해진 것이다.

왜 장쩌민 전 주석일까. 일부 언론은 후진타오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당) 계열이 김정은 후계 문제에 대해 미온적이다보니, 장쩌민의 상하이방(上海幇)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김 위원장 방중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사리에 맞지 않는다.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장쩌민 전 주석 면담은 ‘중국 중앙(후진타오 주석)’이 주선했다. 그렇다면 ‘공청단 수장’인 후 주석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상하이방 수장’인 장쩌민 전 주석과 후계 문제를 논의하라고 알선한 꼴이 된다.

5월25일 북·중 정상회담 이후 벌어진 일들 역시 수수께끼이긴 마찬가지다. 5월28일로 예정됐던 황금평·위화도 행사가 연기됐다. 이미 실무 합의가 끝난 사안이 정상 간 회동 이후 변경되었다는 것은 뭔가 거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정이 생겼다는 얘기다. 바로 이 같은 수수께끼를 풀 핵심 열쇠로 북·중 간 ‘신의주 쟁점’이 떠오른 것이다.

신의주 문제란 무엇인가? 2000년대의 북·중 관계, 특히 김정일 위원장과 장쩌민·후진타오 주석 간에 얽히고설킨 관계가 바로 이 문제에서 발단했고, 이로 인해 풀리기도 했다가 다시 악화되기도 하는 등 신의주 문제는 ‘북·중 간 모든 문제의 진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양국 수뇌부 내에서 논의가 오간 만큼 밖으로는 이 문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김 위원장 방중은 10여 년간 끌어온 숙원 과제를 김 위원장과 장쩌민 전 주석, 그리고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 총리 등 당사자들이 풀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먼저 이 문제에 대해 앞의 베이징 소식통이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에서 중국 측이 중국 자본으로 신의주 경제특구를 개발하고 싶어한다는 뜻이 전달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신의주 특구 문제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신의주 특구는 ‘양빈 사태’ 이후 중단돼 있을 뿐 특구가 폐지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 문제가 북·중 정상 간 선언에는 포함되지 않겠지만, 양국의 합의 이행 사항에는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이 통화는 정상회담 하루 전인 5월25일 밤 이뤄졌다. 따라서 북·중 합의 결과라기보다는 중국 측 희망사항이 반영됐을 수 있다.

신의주 위탁 개발 제안자는 장쩌민


그럼에도 이 짧은 얘기는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 내막이 거의 모두 설명 가능할 정도의 폭발력이 있다. 먼저 원자바오 총리가 밝힌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이유부터 들여다보자. 그는 “중국의 발전 상황을 이해하게 하고, 이를 자신들의 발전에 활용하기 위한 기회를 주려는 목적으로 (김 위원장을) 초청했다”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중국 지도자들이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 ‘중국식 경제발전의 경험’ 등을 언급할 때, 국내에서는 거기에 숨은 뜻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해서 경제를 발전시켰듯이 북한도 개혁·개방해야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순진한 생각이다.

2000년대 이후 신의주 개발을 둘러싸고 북·중이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반복해온 역사를 감안하면, 중국 지도부가 얘기하는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이나 중국 경험이란 중국이 과거 홍콩을 영국에 100년간 조차지로 내준 수모를 겪었지만, 결국은 되찾아 홍콩의 금권력으로 선전을 개발하고, 이어 주하이-광저우를 거쳐 상하이 개발로 나간 경험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북한 역시 중국의 선례를 따라 북·중 간 쟁점이 되어온 신의주를 중국에 일정 기간 위탁하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 ‘중국식 발전 모델’의 적용을 최초로 들고나온 사람이 바로 장쩌민 전 주석이었다. 2001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를 방문해 ‘상하이가 천지개벽했다’는 유명한 말을 한 직후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였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를 방문한 것은 신의주를 상하이처럼 자력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위해 중국으로부터 개발자금을 지원받으려 한 것이다.

김정일·장쩌민, ‘신의주 혈투’ 두 차례 벌여

장쩌민 주석은 이런 김 위원장의 심중을 꿰뚫어본 듯하다.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해 도와달라’는 김 위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북한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택할 경우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장 주석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김 위원장을 상하이에서 수행하기도 했던 주룽지 당시 총리가 “북한의 경제특구로 신의주는 적당하지 않다. 차라리 남한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개성이 낫다”라고 함으로써 확연하게 드러났다. 즉 김 위원장이 신의주를 중국의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것을 중국은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를 말로만 한 게 아니다. 이듬해인 2002년 7월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초대장관으로 양빈 어우야 그룹 회장이 임명되자, 그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는 실력 행사까지 불사했다.

이것이 바로 신의주를 둘러싸고 김정일 위원장과 장쩌민 주석 간에 벌어진 1라운드 혈투였고, 그 내막까지는 아니어도 외피는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 다음 2라운드가 2004년 4월 김정일 위원장 방중을 계기로 시작됐다. 2004년 들어 북한은 외부 지원이 더욱 절실해졌다. 7·1 조치 3년차에 접어들면서 외부 물자 공급이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인플레 같은 부작용이 심각해졌다. 남한이 1960년대 경제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배상자금이 종잣돈(시드머니) 구실을 했던 것처럼, 김 위원장으로서는 북한 재건을 위한 종잣돈이 절실해졌다. 결국 도움을 청할 곳은 싫어도 중국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4년 4월 장쩌민 당시 주석을 만나 화끈하게 좀 도와달라고 한 것인데 돌아온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예의 ‘중국 경험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원자바오 총리 역시 똑같은 말투로 김 위원장을 압박했다.


   
ⓒXinhua
2000년 5월30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이 베이징에서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을 만났다.


그러고 나서 2004년 9월 후진타오 주석 시대가 개막했다. 신의주 개발을 중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장 전 주석의 유지는 후진타오 지도부에도 ‘대를 이어’ 이어졌고, 오히려 강화됐다. 중국이 신의주 개발을 주도해 자기 영향력 아래 둘 수 있는지는 후진타오 주석이 자기 시대 10년의 업적으로 삼고 있던 동북진흥 계획의 안전을 담보하는 문제와 직결되었다. 또한 동북공정 등과 연관해 중국의 영향력을 북한 권부의 핵심인 평양에까지 파급하기 위해서라도 신의주라는 전략거점을 장악하는 것은 필수였다.

2004년 9월 후진타오 주석 등장 이후 2006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남부 순방에 이르기까지 북·중 양국 수뇌부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한편으로 중국 지도부의 설득 역시 집요했다. 중국 처지에서 신의주가 ‘대륙 진출의 관문’으로서 안보상 요충지라면 북한에게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신의주를 장악해 동북지역의 안전을 도모하고 평양을 영향권에 두고 싶어하는 것처럼 북한 역시 신의주가 중국에 장악되는 것을 막아야 할 안보상의 이유가 분명하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나 그를 둘러싼 원로 그룹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2004년 말부터 김 위원장이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게 당시 부시 정권의 압살정책. 이로 인해 ‘평양에 단 ‘한 달러(1달러)’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신의주를 독자 개발하기에는 그 비용이 양빈이 추산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내용이 나중에 확인됐다고 한다. 즉 양빈은 50억 달러를 예상했는데 북한 측이 나중에 다시 계산해보니 300억 달러는 필요하고, 중국 도움 없이 독자 개발은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2004년 말 남포 앞바다 유전 발견을 계기로 ‘대조선 정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즉, 북한의 경제재건 과정을 중국이 주도함으로써 북한을 중국에 일치시킨다는 ‘중조일치(中朝一致) 전략’이 중국 공산당 산하 연구소를 중심으로 입안됐고, 이를 위해 약 50억 달러에 이르는 경협자금을 책정하는 등 과거와 다른 통 큰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정일, 2006년에 ‘중국식 개발’ 마음 굳혀

이런 진통 끝에 2006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은 ‘후진타오 주석이 권유한 노선’을 따라 8박9일의 중국 남부 순방길에 다시 오른다. 2001년 상하이 방문과 2006년 1월의 광저우-주하이-선전 방문은 전자가 중국의 독자 개발 모델인 데 비해, 후자는 홍콩을 기반으로 한 위탁 개발 모델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후 주석이 권유한 이 노선을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로 이미 마음의 정리가 끝났던 것이다.

이런 내용은 극소수의 정보 관계자 외에 소상하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당시 이들 정보 관계자들이 ‘이제 신의주가 중국 손에 넘어가는구나’라며 장탄식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알 수 없지만, 북·중 관계는 2006년 2~3월에 발생한 ‘스파이 사건’으로 갑작스레 악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의 정보 요원들이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의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다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김 위원장이 이를 계기로 후진타오 주석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감정싸움이 격해졌고, 북한은 북한대로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와 10월의 핵실험을 중국에 거의 사전 통고 없이 감행해버렸다.

그 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이 이뤄지기까지 북·중 관계는 3년여에 이르는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이런 와중에 이뤄진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은 마침 시작된 중국의 창지투 개발계획의 흐름을 타고 북한이 나진·선봉 특구를 조성하고, 압록강 쪽으로도 신압록강 대교 건설과  황금평·위화도 개발이라는 새로운 북·중 협력사업을 추진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이들 사업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염두에 두는 북한 경제 재건과 코앞으로 다가온 2012년 강성대국 진입,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한 후계구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여전히 종잣돈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중국으로 하여금 이런 대규모 경협자금을 내놓게 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신의주 개발계획 외에는 없다. 이 점은 북·중 관계가 회복된 이후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신의주 개발을 둘러싼 양국의 물밑 신경전이 계속돼왔다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중국 측에서 보면 단둥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신의주와의 연계 개발을 추진할 필요성이 새롭게 떠올랐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이 1~2년 전 단둥종합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자금 유치와 산업모델 양 측면에서 신의주를 포함시키면 훨씬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신의주를 포함할 경우 북한의 인력을 활용할 수도 있고, 신의주 항만과 연계해 대규모 조선소를 건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금 면에서도 중국이 주도하되 외부 자금 유치가 필요한데, 신의주가 포함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2009년 하반기 나진·선봉을 포함해 신의주·남포·원산·김책·함흥·사리원 등을 8대 산업단지로 명명해 앞으로 종합개발할 계획을 수립했다. 이 8대 산업 계획을 위해서도 신의주를 둘러싼 빅딜의 성사 여부가 바로미터가 된 것이다.

경협자금 지원액은 100억 달러?


실제로 지난해 8월 김정일 위원장과 후진타오 주석의 창춘 회담에서는 북·중 양국 간 경협사업 지대로서 ‘압록강 하구 개발’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 활약하는 북한 경제 전문가인 이찬우씨(도쿄 국제대학 대학원 강사)는 “압록강 하구 개발은 위화도와 황금평, 그리고 압록강 하구의 비단섬과 남신의주 일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북한 합영투자위원회 7국이 담당하는데 그 역할이 ‘압록강 하구지대 투자유치 담당’으로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 중 나진·선봉과 황금평·위화도를 묶어 일구양도(一區兩島)라 해 왔다. 나머지인 비단섬과 남신의주 개발은 수면 아래 잠복돼온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한 신문이 8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100억 달러 상당의 대북 경협자금 지원 문제가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북한에 100억 달러를 내놓을 수 있는 개발 프로젝트라면 기존 황금평, 위화도, 나진·선봉이 아니라 비단섬이나 남신의주 일대의 특구 개발일 것이라는 게 경협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였다.


   
ⓒAP Photo
중국 관리가 중국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중조우의교’에서 북한 차량을 검문하는 모습.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은 바로 이런 흐름 속에서 갑자기 결정된 것이다. 여정의 상당 부분이 장쩌민 전 주석과의 미팅에 할애됐고, 그 미팅을 후진타오 주석이 주선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목표가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즉, 김정일-장쩌민-후진타오 세 사람 사이에 2001년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중 간 ‘신의주 문제’를 이제는 매듭지어야 할 때가 왔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먼저 내년이면 임기를 마감하는 후진타오 주석으로서는 자기 임기 중 가장 큰 업적인 동북개발의 명운을 좌우할 신의주 문제를 여전히 미제로 둔다는 게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과로 볼 때 자기가 직접 나서기는 껄끄럽다. 따라서 ‘중국식의 위탁 개발과 대규모 경협자금 지원’이라는 아이디어의 원작자인 장쩌민 전 주석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도 2012년 강성대국 진입과 후계체제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중국과 빅딜을 해서라도 지금 종잣돈을 마련해야 한다.

세 사람의 수 싸움이 지난 6일간 어떤 방향으로 귀결됐는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지난 10년간도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북·중 관계 및 북한의 향후 대응 역시 이번 수 싸움의 향방에 따라 결판날 것이다. 과연 그들은 지난 10년의 ‘신의주 대전’을 이번 참에 마무리할 수 있을까?



신의주 둘러싼 북·중 협의 일지

2001년 1월 김정일·장쩌민 회동
김정일 지원 요청에 장쩌민,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채택 요구
2002년 7월 중국, 양빈(아래) 사기죄로 구속
2004년 4월 김정일·장쩌민 회담에서 대규모 지원 요청과 중국식 경험 채택  놓고 줄다리기
2006년 1월 김정일 중국 남부 순방. 그러나 북·중 관계 악화로 3년간 냉각
2010년 8월 김정일·후진타오 회담 전후 100억 달러 지원설 대두


2011년 5월20~26일 김정일 방중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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