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근·현대사]①일본에 관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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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근·현대사]①일본에 관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김갑수 | 2014-9-11 12:54 |
“우리나라와 한국과의 관계는 신대(神代) 무렵부터 시작되었는데 진구황후(神功皇后)가 삼한을 정벌함에 따라 여기를 복종시켰고 히데요시가 출병하여 일본의 강함을 보여 주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국교를 맺었으며, 나아가 보호국으로 삼았는데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황제는 국토를 메이지 천황에게 바쳤다. 천황께서는 동양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것을 받아들이셨고, 한국은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싸우지 않고 영토를 넓힌 것은 천황의 인덕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업적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것은 일본 쿄토 인근 미야케하치만 신사 경내에 있는 한국병합봉고제비 비문의 주요 내용이다. 1910년 일본인들은 한국을 병합한 것을 자축하는 행사를 벌이고 이것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이를 천황에게 아뢰는 제사를 올린 것이다.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책을 그르쳐 전쟁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하여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 대하여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의심할 바 없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다시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감정을 표명합니다.” 1995년 당시 한국의 신문들에 의해 일본 수상이 ‘통석의 염(痛惜의 念)’을 표명했다고 대서특필된 이 담화에서 무라야마는 제 나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 사과했지만. 정작 1910년 일한병합의 불법성 여부를 묻는 구체적인 질문에는 끝내 말문을 흐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일본이 조선을 빼앗은 것이 부도덕한 침략 행위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한합병조약의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한 술 더 떠 요즘 일본 정치인들은 무라야마 담화조차도 재론하기를 주저하면서 아예 침략 사실 자체도 시인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고 있으니 이것은 또 뭔 일이라는 말인가? 일본인들의 망언이 있을 때마다 한국인들은 총궐기(?)한다. 침략 부인이건 위안부건 독도건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들은 외친다. ‘망언을 규탄한다’고. 한국에서 국론이 일거에 일치되는 것은 오직 이때뿐이다. 종편에서 조중동 한경오 민중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새누리에서 민주당 통합진보당에 이르기까지, 할배 일베 시국회의 민권연대 심지어 여성단체에 이르기까지 허구 헌 날 똑같은 것을 부르짖는다. ‘일본군국주의 책동을 저지하자’
오늘날 중국의 국부로 추앙 받는 쑨원(孫文)은 1924년 고베에서 행한 강연 ‘대아세아주의’에서 “일본은 서양 패도의 앞잡이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동양 왕도의 간성이 될 것인가?”라고 물었다. 3·1항쟁 때의 기미독립선언서에는 ‘조선의 독립(토록 하는 일)은 일본이 사악한 길로부터 나와 동양을 지탱하는 나라로서의 중책을 다하게 하는 일’이라는 언명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 패도의 앞잡이 역을 포기하지 않았고 특히 조선을 결코 놓치려 하지 않았다. 대미전쟁에서 일본 군부가 마지막까지 항복을 거부한 것은 기실 조선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와 군부가 패전의 막바지까지 골몰했던 것은 조선반도를 영토로 확보하는 일이었다. 일본이 소련에 평화교섭 중재를 요청했을 때의 조건도 이것이었으며, 만주국 주둔 관동군의 최종 배치 역시 조선반도 확보를 목표로 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일본의 조선 욕망이 얼마나 집요했는지를 새삼 알 수 있게 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에 근대적 법 제도를 이식시키기 위해 우메 겐지로를 시켜 민법 등을 제정하는 사전조치로서 구관조사(舊慣調査)를 실시토록 했다. 그 의도는 근대법인 일본 민법을 그대로 조선에 적용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여 근대법에 적합하지 않은 구관을 조사한 다음 조선 독자의 민법을 만들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조사를 진행해 보니 이러한 예상은 빗나가 근대적 소유권과 매우 유사한 토지 소유권이 이미 조선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야지마 히로시 논문, <일본사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 더 이상 조선을 봉건사회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학사관임과 동시에 식민사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이 ‘잘난 조선’은 망한 것일까? 지면상 다음 회에 논의하기로 한다.<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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