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과 그의 시대 4> - 가서 편안히 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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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어루만지며 길게 노래하며
박용만은 이승만, 안창호와 함께 미주의 3대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1928년 북경에서 변절자라는 누명을 쓰고 동족의 손에 암살됐다. 1912년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신한민보'와 하와이의 '국민보' 주필을 역임했다.
그의 독립운동 노선은 '무력투쟁론'이었으며, 네브래스카 주와 하와이에서 군사학교를 창설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올해는 국치(國恥) 100년으로 그의 불꽃같은 삶과 투쟁을 재조명하고자 평전 <박용만과 그의시대>를 싣는다... 기자 말
"가서 편안히 죽으시오"
1898년 11월 21일 경운궁 인화문 앞에는 황제에게 내정개혁을 요구하는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1만 명이 넘는 군중이었다. 만민공동회는 각성한 일반 백성들이 주동했지만 독립협회 회원들도 적극 참여했다.
개화를 부르짖는 독립협회에 맞선 건 수구를 편드는 황국협회였다. 황국협회의 우두머리는 길영수와 홍종우. 홍종우는 김옥균을 암살한 사람이다. 길영수는 일당 1원 2전씩을 주는 조건으로 보부상 2천명을 동원했다.
물푸레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를 쥐어주고 두 패로 나눠 만민공동회의를습격하게 했다.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군중들은 보부상들의 몽둥이질이 시작되자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 한성감옥으로 면회 온 친지들. 이승만 앞에 그의 아들 태산이 서 있다.
그때 현장에 있던 이승만은 보부상들의 선두에 길영수가 나타나자 그를 향해 달려가 발길질을 했다. 군중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는데 너무 흥분해서인지 혼자 남아 외려 적진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승만씨, 진정하시오. 빨리 달아나시오."
그렇게 말하며 누군가가 등 뒤에서 두 팔로 안는 사람이 있었다. 도망가지 않고 외려 자기편 쪽으로 다가오는 이승만에게 보부상들은 몽둥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킨 노고를 치하해서 황제는 보부상들에게 백반과 육탕을 하사했다.
이승만의 목에 씌운 칼을 풀어주라고 명령한 사람은 홍종우였다.
7월 11일 재판이 열렸는데 재판장은 황국협회를 조직한 바로 그 홍종우였다. 하필 원수끼리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었다.
그러나 홍종우는 무모한 보부상들과 한 패거리였지만 당대의 인텔리였다. 일면 외세 의존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개화파와 달랐다. 근왕주의를 강조하는 자주적 개화파로서 대한제국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2년 간 아사이신문의 식자공으로 일해 배 삯을 마련했다. 프랑스로 건너간 게 40세 때인 1890년. 2년 정도 머물면서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서 촉탁으로 일했다. 그때 '춘향전'과 '심청전'을 불어로 번역했다.
귀국길에 그는 일본에서 이일직을 만난다. 김옥균을 암살하기 위해 조선 정부가 파견한 자였다. 그의 사주를 받고 김옥균에게 접근한다. 상해로 같이 간 홍종우는 권총으로 김옥균을 암살했다.
고종은 역도를 제거한 그의 공로를 높이 샀다. 중단됐던 과거를 일부러 열어 급제시킨 다음 요직에 오르게 했다. 고등재판소 재판관으로 승진한 홍종우는 같이 탈옥한 다른 사람을 사형에 처했다.
이승만에게는 무기형으로 낮추고 태형 100대를 언도했다. 권총을 발사하지 않은 점도 있고 그의 명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아버지는 매를 때리는 간수에게 돈을 찔러주었다. 그는 매를 들었다 놨다 하는 시늉만 하고 매질을 끝냈다.
6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이승만은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들을 수없이 보았다. 어떤 죄수는 끌려 나가면서 마치 그가 구해줄 수라도 있는양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서 편안히 죽으시오"라고 고함을 쳐주는 것이었다.
필자 이상묵은 1963년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했고, 1969년 캐나다로 이민했으며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다. 1988년 '문학과 비평' 가을호에 시인으로 데뷔한 후 한국의 유수한 문학지에 시들이 게재됐다. 시집으로 '링컨 生家에서' 와 '백두산 들쭉밭에서' 및 기타 저서가 있고 토론토 한국일보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독립지사 우성 박용만 선생' 카페(다음)의 모든 자료들
방선주 저 '재미한인의 독립운동'
안형주 저 '박용만과 소년병학교'
김현구 저 'The Writings of Henry Cu Kim' - 그 속에 '우성 박용만 약전'이 포함돼 있음.
신한국보, 국민보, 신한민보, 공립신보, 단산시보 등 1백년 전 고신문들.
독립기념관, 보훈처 등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각 종 자료들.
독립운동가 열전(한국일보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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