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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물흙길 님의 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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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792회 작성일 15-03-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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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래 글은 한 5년전에 인터넷에 나왔던 글입니다. 
누가 쓴 저자도 없는 글인데 6.25에 대해서 여러 많은 글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글이라 오늘부터 한쪽씩 약 100여 쪽까지 여기에 씁니다. 많은 도움이 되길 빕니다. 4348(2015)년3월9일. 다물흙씀.

한국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1.
미 국무차관보 존 D. 히카슨의 폭로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사전 시나리오에 의해 계획된 전쟁이었다고 했다.

해방 직후 박헌영 (북한정권에서 부수상 및 외상에 취임-1955년 ‘미제의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됨)과 그의 직계인 이강국. 임화(작가) 등 남로당의 일부 핵심간부들이 주한 미군방첩대 (CIC)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재미사학자 방선주 교수와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가 미 정부측에 비밀해제를 요구, 공개된 미 육군 정보국 문서파일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던 ‘베어드 조사보고서’ 에서 드러났다.

1956년 미 육군 정보국 비밀자료에 따르면 이강국(초대 북한 외무성 부상)은 CIA의 비밀조직인 ‘JACK (한국공동활동위원회. Joint Activities Commission, Korea)’에 의해 고용됐던 것으로 나와 있다. 즉, 김일성 정권에 의해 ‘미제 스파이’ 혐의로 53년 처형된 이강국은 실제로 미 첩보기관의 끄나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이 미국은 남로당원들 탄압하고 일부는 포섭하여 간첩으로 월북시켜 북한 수뇌부에 들여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을 정복하기 위한 치밀한 사전 준비가 있었다.

1946년 5월 미군정은 당시 조선공산당을 제거하기 위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만들어냈다. 미군정은 자신들이 조작한 이 사건으로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돌리고 이를 구실로 정당 활동의 자유를 빼앗고 배후로 지목하여 소련대사관도 폐쇄하였다. 또 신문을 비롯한 정기 간행물을 허가제로 바꾸어 좌익계열의 간행물들을 폐간케 하고 좌익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와 같이 미군정은 일제강점기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일제의 치욕스런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좌익들도 핍박을 무릅쓰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선봉에 섰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1946년 대구 10.1 사건은 독립을 방해하는 미군정이 실시 하려는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전국적인 규모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 단선 단정 반대 대중 운동이었다.

이후에도 우리민족의 염원과 배치되는 미군정의 통치가 계속되었다. 1947년 친일잔재 청산을 위하여 남조선 과도입법의회는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미군정은 인준을 거부하였다. ‘반민족적 친일청산’이 시대 정신이었던 해방 직후에 미군정은 친일경찰, 친일관료, 친일정치인 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대신 그들 은 미군정에 충성을 받쳤다.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래 글은 한 5년전에 인터넷에 나왔던 글입니다.  누가 쓴 저자도 없는 글인데 6.25에 대해서 여러 많은 글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글이라 오늘부터 한쪽씩 약 100여 쪽까지 여기에 씁니다. 많은 도움이 되길 빕니다. 4348(2015)년3월9일. 다물흙씀.  한국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1. 미 국무차관보 존 D. 히카슨의 폭로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사전 시나리오에 의해 계획된 전쟁이었다고 했다.   해방 직후 박헌영 (북한정권에서 부수상 및 외상에 취임-1955년 ‘미제의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됨)과 그의 직계인 이강국. 임화(작가) 등 남로당의 일부 핵심간부들이 주한 미군방첩대 (CIC)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재미사학자 방선주 교수와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가 미 정부측에 비밀해제를 요구, 공개된 미 육군 정보국 문서파일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던 ‘베어드 조사보고서’ 에서 드러났다.   1956년 미 육군 정보국 비밀자료에 따르면 이강국(초대 북한 외무성 부상)은 CIA의 비밀조직인 ‘JACK (한국공동활동위원회. Joint Activities Commission, Korea)’에 의해 고용됐던 것으로 나와 있다.  즉, 김일성 정권에 의해 ‘미제 스파이’ 혐의로 53년 처형된 이강국은 실제로 미 첩보기관의 끄나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이 미국은 남로당원들 탄압하고 일부는 포섭하여 간첩으로 월북시켜 북한 수뇌부에 들여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을 정복하기 위한 치밀한 사전 준비가 있었다.   1946년 5월 미군정은 당시 조선공산당을 제거하기 위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만들어냈다. 미군정은 자신들이 조작한 이 사건으로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돌리고 이를 구실로 정당 활동의 자유를 빼앗고 배후로 지목하여 소련대사관도 폐쇄하였다. 또 신문을 비롯한 정기 간행물을 허가제로 바꾸어 좌익계열의 간행물들을 폐간케 하고 좌익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와 같이 미군정은 일제강점기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일제의 치욕스런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좌익들도 핍박을 무릅쓰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선봉에 섰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1946년 대구 10.1 사건은 독립을 방해하는 미군정이 실시 하려는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전국적인 규모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 단선 단정 반대 대중 운동이었다.    이후에도 우리민족의 염원과 배치되는 미군정의 통치가 계속되었다. 1947년 친일잔재 청산을 위하여 남조선 과도입법의회는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미군정은 인준을 거부하였다. ‘반민족적 친일청산’이 시대 정신이었던 해방 직후에 미군정은 친일경찰, 친일관료, 친일정치인 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대신 그들 은 미군정에 충성을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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