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예감 611]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린 계엄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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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린 계엄병란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차례>
1. 윤석열 일당을 도청하고 감시한 수슬락
2. 2023년 12월부터 2024년 8월 15일까지
3. 2024년 9월부터 10월 8일까지
4. 2024년 10월 10일부터 11월 10일까지
5. 2024년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1. 윤석열 일당을 도청하고 감시한 수슬락
미제국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한국 지부의 명칭은 수슬락(SUSLAK)이다. 수슬락이라는 명칭은 특수 미국 연락 고문(Special US Liaison Advisor)이라는 기구 명칭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수슬라(SUSLA)에 코리아를 뜻하는 K를 덧붙여 지은 것이다. 수슬락은 서울에 본부를 설치했고, 한국 각지에 비밀도청기지 6개소를 두었으며, 도청 장비를 탑재하고 한국 앞바다를 돌아다니는 도청선박들도 운용한다.
수슬락이 조선만 도청하고 한국은 도청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오판이다. 2013년 10월 24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미 제국이 자기의 동맹국 또는 우방국이라고 부르는 35개국 국가원수들의 전화 통화를 도청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한국도 당연히 도청대상 35개국에 포함된다. 국가안보국은 세계 각지에서 비밀 도청기지를 4,200여 개소나 가동하면서 동맹국 및 우방국 국가원수들의 전화 통화를 24시간 도청한다. 무선전화도 도청하고, 유선전화도 도청한다. 2021년 5월 31일 영국 ‘로이터즈통신’ 보도에 의하면, 국가안보국은 단마르끄(덴마크)의 인터넷 통신망에 교묘히 침투해 프랑스, 도이췰란드, 노르웨이, 스웨리예(스웨덴)를 비롯한 유럽 동맹국 최고위층의 전화 통화를 도청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자신이 사용하던 일반 휴대전화를 대통령 취임 이후 보안전화기(secure phone)로 바꿨다. 한국에서는 보안전화기를 ‘비화폰’이라고 부른다. 윤석열의 보안전화기는 삼성전자가 만든 갤럭시 스마트폰(Galaxy Smartphone)에 도청 방지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것이다. 윤석열을 비롯한 최고위층과 대령급 이상 군사지휘관들은 보안전화기를 사용한다.
그러나 보안전화기를 사용하는 윤석열이 수슬락의 도청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슬락은 윤석열의 보안전화기를 집중적으로 도청한다. 국가안보국의 암호해독기술이 삼성전자의 암호통신기술을 능가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
더욱이 수슬락은 감시 대상들이 실내에서 이야기하는 목소리까지 도청한다. 2024년 4월 9일 ‘뉴욕타임스’는 미제국 국방부의 기밀문서가 외부에 유출되었다고 보도했는데, 그 기밀문서는 국가안보실장 김성한과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 이문희가 2023년 3월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안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도청한 자료에 의거해 작성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수슬락이 사용하는 첨단 도청 장비가 용산 대통령실의 벽과 유리창을 통과해 실내 담화를 도청, 녹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슬락은 윤석열 일당이 대통령 집무실, 한남동에 있는 대통령 관저, 삼청동에 있는 ‘안전 가옥’ 등에서 비상계엄을 모의한 밀담을 도청, 녹음한 것이 분명하다.
윤석열 일당이 수슬락의 도청을 피할 수 있는 방도는 글을 써서 의사를 소통하는 필담밖에 없다. 수슬락은 필담을 엿보지는 못한다. 윤석열 일당이 도청을 피해 필담을 나누려면 비밀회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일당은 수슬락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힘들다. 수슬락은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와 합동으로 특수수집국(Special Collection Service)을 운용하는데, 특수수집국 소속 비밀 요원들이 윤석열 일당의 동선을 감시했다.
수슬락은 윤석열 일당의 전화 통화와 실내 담화를 도청하고, 그들의 동선을 감시해 얻은 중요한 정보를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에 있는 국가안보국 본부로 전송했다. 국가안보국장은 그 정보를 국가정보실장에게 보고했고, 국가정보실장은 그 정보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했다. 이런 사정을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윤석열 일당의 비상계엄 모의와 준비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서술한 사실들은 한국이 미 제국의 도청과 감시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도청과 감시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수슬락의 감시와 도청을 받는 ‘자유한국’에는 자유가 없다. 수슬락의 감시와 도청을 받는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허언에 불과하다. 한국이 미 제국의 도청과 감시 속에서 지배를 받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한미동맹의 실상이다. 철통같은(iron-clad) 한미동맹은 철통같은 감시와 지배를 의미한다. 미 제국의 철통같은 감시와 지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한미동맹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자주화와 민주화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 2023년 12월부터 2024년 8월 15일까지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일당은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으로 내란을 도발했다. 내란 도발에 실패한 윤석열을 체포해 엄벌에 처하라는 한국 민중의 외침이 들린다. 그런데 윤석열 일당의 범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내란에서 멈추지 않고 외란까지 도발하려고 미쳐 날뛰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외란은 조선에 대한 무력 침공을 의미한다.
한국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들은 윤석열 일당이 내란과 외란을 연속적으로 도발하려고 했던 극악한 범행의 내막을 보여준다. 2024년 12월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윤석열 일당의 비상계엄 사태에 관련된 참고인의 발언을 청취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방송인 김어준의 발언을 들어보면, 윤석열 일당은 내란에서 멈추지 않고 외란까지 도발하려고 광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윤석열 일당은 내란 도발과 외란 예비-음모를 포괄하는 대역죄를 저지른 최악의 범죄자다.
윤석열 일당이 저지른, 내란과 외란을 포괄하는 대역죄는 전대미문의 신종 범죄다. 내란과 외란을 포괄하는 대역죄를 가리키는 단어는 없다. 그래서 내란과 외란을 포괄하는 신종 범죄를 계엄병란이라는 신조어로 부를 수 있다. 병란이라는 말은 군대를 동원해 일으킨 동란을 의미한다.
윤석열 일당이 계엄병란을 언제, 어떻게 모의하고 준비했는지 살펴보자. 이와 관련된 언론보도 내용을 날짜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2023년 12월
윤석열은 자기 심복들인 김용현(당시 대통령 경호처장), 여인형(당시 방첩사령관)을 만나 3자 회동을 했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은 “어려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대권 조처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윤석열이 말한 “어려운 사회문제”는 반윤석열세력이 윤석열의 실정과 김건희의 위법행위를 지속적으로 폭로, 규탄하면서 반윤석열 정치공세를 강화해온 상황을 의미한다. 또한 윤석열이 말한 “비상대권 조처”는 비상계엄령을 발동해 계엄병란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은 2023년 12월 3자 회동 이후에도 비상계엄령을 발동하려는 의사를 심복들을 만날 때마다 여러 차례 표명했다.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고, 여당은 패했다. 그로써 국회 안에서 이전보다 더 강한 반윤석열 기류가 형성되었고, 윤석열은 궁지에 몰렸다.
2024년 6월
윤석열, 김용현, 여인형, 이진우(당시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당시 특수전사령관)이 제1차 5인 회동을 했다. 윤석열은 이 회동에서 비상계엄령을 발동해 계엄병란을 일으키려는 “확고한 의사”를 표명했다.
해설 – 윤석열 일당 5명이 만난 것은 계엄병란 준비가 이미 2024년 6월에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계엄병란 주모자들은 윤석열을 수괴로 하고, 김용현, 여인형, 이진우, 곽종근이 하수인으로 따라붙은 것이다. 5인 주모자 이외에 노상원과 문상호가 있다. 노상원은 정보사령관 출신 예비역 장성이다. 그는 비상계엄 포고령 초안을 작성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써버 탈취 작전을 준비했다. 그런데도 노상원이 계엄병란 주모자로 되지 못한 까닭은 품성이 좋지 않은 그가 군대에서 각종 사고를 일으켜 나쁜 평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상원은 2018년 10월 1일 육군정보학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여군 병사를 성추행한 범행으로 구속되어 실형을 받았고, 불명예 제대로 군복을 벗었다. 그런데 김용현은 그런 노상원을 심복으로 삼았다. 노상원은 자신이 정보사령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부하였던 문상호(당시 정보사령관)를 심복으로 삼았다. 대역죄를 저지른 윤석열 일당의 검은 인맥은 그렇게 구성되었다.
2024년 8월 12일
윤석열은 대통령 경호처장 김용현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해설 – 계엄병란을 일으키려면 계엄군을 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윤석열은 자기가 가장 신임하는 김용현을 계엄병란을 지휘할 국방부 장관에 지명한 것이다. 김용현은 2024년 9월 6일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2024년 8월 15일
윤석열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조선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흡수 통합하겠다는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8.15 통일 독트린(doctrine=교리)’을 발표했다.
해설 – 윤석열 일당은 계엄병란이 한국군과 조선인민군의 국지적 무력 충돌을 촉발시키거나 또는 미 제국의 북침 공격을 유도해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그 전쟁에서 한미연합군이 이겨 조선을 점령하고, 조선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흡수통합하게 될 것으로 망상했다. 윤석열이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의 배경에는 그런 망상이 깔려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윤석열 일당의 계엄병란이 반윤석열 세력을 제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북침전쟁 도발과 조선 점령과 흡수통합으로 대폭 확장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 2024년 9월부터 10월 8일까지
2024년 9월
노상원은 자기와 가까운 김용군(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본부장 출신 예비역 대령)과 정00(정보사령부 소속 현역 대령)에게 지시했다. 그의 지시는 정보사령부 소속 특기자들 가운데서 격투와 전투에 능한 35명을 선발하라는 것이었다.
해설 – 노상원이 정보사령부 소속 특기자들 가운데서 격투와 전투에 능한 35명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은, 윤석열 일당의 계엄병란 준비가 2024년 9월 당시 상당히 진척되었음을 말해준다. 윤석열 일당은 격투와 전투에 능한 35명을 선발해 계엄병란 습격조를 편성하려고 했다. 습격조 35명 중에는 암살 공작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암살조원 5명이 포함되었다. 암살조원 5명은 ‘돼지부대’로 알려진 북파테러부대(HID=Headquarters Intelligence Detachment) 소속이다.
계엄병란 습격조 35명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약 4간 전인 12월 3일 오후 6시경, 정보사령관 문상호가 지휘하는 정보사령부 예하 제100여단에서 출동 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정보사령부 예하 제100여단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다.
2024년 12월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안 질의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방송인 김어준의 발언에 의하면, 윤석열 일당은 조선인민군 군복을 입고 조선인민군으로 위장한 암살조가 미제국군을 사살하는 테러 자작극을 준비했다고 한다.
윤석열 일당이 계엄병란 암살조로 선발한 북파 테러부대 소속 암살 전문 요원 5명이 미제국군을 사살하는 테러 자작극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미제국군 제501군사정보여단 소속 전문병들이 평소에 정보사령부에서 한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전문병들과 합동으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계엄병란 암살조는 조선인민군 군복으로 위장하고 매복했다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제501군사정보여단 소속 미제국군 전문병을 즉시 사살하는 테러 자작극을 벌일 수 있다.
정보사령부는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발동하기 3주 전인 2024년 11월 중순, 북파 테러부대에서 사용할 조선인민군 군복을 특수피복 제조회사에 주문했다. 이런 정황은 윤석열 일당이 비상계엄 하에서 조선인민군 군복으로 위장한 암살조를 동원해 정보사령부에서 합동으로 근무하는 미제국군을 사살하는 테러 자작극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완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4년 10월 3일
한국군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입했다. 10월 9일 밤과 10월 10일 밤에도 한국군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입했다.
해설 – 윤석열 일당은 군사도발로 조선의 보복공격을 유도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려고 미쳐 날뛰었다. 그들은 전쟁 위기가 고조된 비상사태에 대처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비상계엄령을 발동하려고 했다. 그래서 윤석열 일당은 조선의 보복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무인기를 평양 상공에 침입시켰다.
윤석열 일당이 무인기를 평양 상공에 침입시키려면 유엔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미제국군 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유엔사령부가 비무장지대 관할권을 장악,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한미제국군 사령관이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입시키려는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승인해줄 가능성은 0%다. 그래서 윤석열 일당은 비무장지대가 없는 특별구역에서 미 제국 몰래 무인기를 발진시켰다. 그 특별구역이 바로 백령도다. 백령도 앞바다에는 비무장지대가 없고 북방한계선(NLL)만 있다.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에 규정되지 않은 불법적인 경계선이므로, 윤석열 일당이 백령도 앞바다 북방한계선 너머로 무인기를 날려 보내도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2024년 10월 27일 조선 국방성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국군 무인기 침입 사건의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의하면, 백령도에서 이륙한 한국군 무인기는 황해남도 장연군과 초도 주변 해상을 지나 남조압도 주변 해상까지 비행하다가 변침하여 남포시 천리마 구역 상공을 거쳐 평양 상공에 침입했다고 한다.
유엔사령부는 한국군 무인기들이 조선 영공에 침입한 사건을 조사했다. 이것은 윤석열 일당이 미 제국의 감시망 밖에서 무인기 도발을 감행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 제국은 윤석열 일당이 자기의 감시망을 교묘히 빠져나가 무인기 도발을 감행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 무인기 도발 사건을 통해 미 제국은 윤석열 일당이 무인기 도발로 조선의 보복공격을 유도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려고 광분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미 제국은 윤석열 일당이 전쟁 위기에 대처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비상계엄령을 발동하려고 광분한다는 것도 알았다.
미 제국의 시각에서 보면, 윤석열 일당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그것을 구실로 비상계엄령을 발동하는 것은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리는 ‘불장난’이 아닐 수 없다. 미 제국은 윤석열 일당의 ‘불장난’이 국지적 무력 충돌을 촉발하는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어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미 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강력한 전술핵무력을 사용하는 조선인민군의 압도적인 공격을 받은 한미연합군이 궤멸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래서 미 제국은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릴 윤석열 일당에 대한 도청과 감시를 한층 더 강화하는 한편,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릴 무인기 도발 같은 ‘불장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상조치는 윤석열 일당이 비상계엄령을 발동하지 못하게 만류하는 것이었다. 미 제국은 특사를 서울에 급파해 윤석열 일당의 비상계엄령 발동을 만류하려고 했다. 그래서 미 제국은 쌔뮤얼 파파로(Samuel J. Paparo)를 서울에 급파했다.
2024년 10월 8일
미제국군 인디아양·태평양 사령관 쌔뮤얼 파파로가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김용현(당시 국방부장관)과 회담했다.
해설 – 김용현은 쌔뮤얼 파파로에게 무인기 도발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파파로를 안심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용현은 파파로가 비상계엄을 만류하자 비상계엄설은 소문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파파로를 안심시킨 것으로 보인다. 2024년 9월 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진행된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김용현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비상계엄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제기하자 계엄설은 거짓 선동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었다. 쌔뮤얼 파파로는 김용현과 회담한 직후 판문점에 가서 공동경비구역을 시찰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둘러보는 파파로는 국지적 무력 충돌위험을 불러올 윤석열 일당의 ‘불장난’을 어떻게 억제해야 할지 그 방도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2024년 10월 10일부터 11월 10일까지
2024년 10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정책방송원(KTV)은 KTV 국민방송을 통해 집권세력의 견해와 주장을 대변한다. 10월 10일 한국정책방송원 원장 이은우는 방송제작회의에서 “북한 기습 도발 시 생방송”을 제작하기 위한 기획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제작진은 10월 16일 이은우에게 생방송 기획안을 보고했다. 생방송 기획안은 윤석열 정부가 조선인민군의 기습적인 공격에 대처하고, 국민을 대피시키는 내용을 담은 전시 긴급 방송을 신속하게 송출하기 위한 비상 계획안이다.
해설 – 무인기를 평양 상공에 침입시키는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감행한 윤석열 일당은 조선인민군이 그에 상응한 보복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조선인민군의 기습적인 공격에 대처하고, 국민을 대피시키는 내용을 담은 전시 긴급 생방송을 준비하기 위한 비상계획안이 한국정책방송원에서 작성된 것이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2024년 10월 12일 조선의 남부국경선(군사분계선) 부근의 “포병연합부대들과 중요화력 임무가 부과되어 있는 부대들에 완전 사격 준비태세를 갖출 데 대한 작전예비지시를 하달”했다. 이것은 조선인민군의 보복공격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2024년 10월 14일
김정은 총비서는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소집하였다. 협의회에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은 무인기 도발을 응징하기 위한 “대응 군사 행동계획”을 보고했고, “주요 연합부대들의 동원 준비상태”에 대해 보고했다.
해설 – 김정은 총비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응 군사 행동계획”을 보고받고 그 계획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김정은 총비서는 무인기 도발이 조선을 자극해 국지적 무력 충돌을 일으키려는 흉계라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에 “대응 군사 행동계획”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2024년 10월 중순
윤석열, 김용현, 여인형, 이진우, 곽종근이 만났다. 이것은 윤석열 일당이 계엄병란을 주모한 제2차 회동이다. 윤석열 일당은 제2차 회동에서 계엄병란 준비상황을 점검했다.
2024년 10월 30일
노상원의 심복들인 김용군과 정00은 노상원이 2024년 9월에 내린 지시에 따라 자기들이 정보사령부 소속 특기자들 가운데서 선발한 35명 명단을 문상호(정보사령관)에게 제출했다. 노상원은 2024년 9월 김용군과 정00에게 정보사령부 소속 특기자들 가운데서 격투와 전투에 능한 35명을 선발하라고 지시했는데, 35명 가운데는 조선인민군 군복으로 위장하고 미제국군을 사살하는 테러 자작극을 벌일 북파 테러부대 암살조 5명이 포함되었다. 2024년 11월 6일경 문상호는 김용군과 정00이 선발한 35명을 직접 검열했다.
해설 – 위에 서술한 내용은 윤석열 일당의 테러 자작극 준비가 거의 마감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보사령부가 특수피복 제조회사에 주문한 조선인민군 군복이 정보사령부에 배송되면 테러 자작극 준비는 완료되는 것이다.
2024년 11월 초
윤석열, 김용현, 여인형, 이진우, 곽종근이 제3차 5인 회동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에 자신이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비상계엄을 해야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해설 - 제31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는 2024년 11월 15일 뻬루의 수도 리마에서 개최되었고, 제19차 G20 정상회의는 2024년 11월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되었다. 윤석열이 11월 초 제3차 5인 회동에서 자신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비상계엄을 해야겠다고 단호하게 말한 것을 보면, 윤석열은 2024년 11월 중순 계엄병란을 일으킬 결심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1월 10일경
문상호는 자기가 지휘하는 정보사령부 소속 지휘관들의 휴가를 금지시키고, 위수지역(관할 경비구역)에서 출동명령을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해설 – 문상호의 명령은 계엄병란이 임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석열 일당은 2024년 11월 중순 계엄병란을 일으키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계엄병란을 일으키지 않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024년 11월 14일 출국했다. 그는 11월 21일까지 뻬루와 브라질에 머물면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런 정황은 윤석열 일당이 2024년 11월 중순에 일으키려던 계엄병란을 뒤로 미루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윤석열 일당은 계엄병란을 왜 뒤로 미루었을까? 이에 관한 정보는 언론보도에 나오지 않았지만, 윤석열 일당이 미 제국의 만류를 듣지 않고 계엄병란 준비사업을 계속 추진하자 미 제국이 윤석열에게 엄중히 경고했기 때문에 계엄병란을 뒤로 미룬 것으로 추정된다.
5. 2024년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2024년 11월 30일
윤석열, 김용현, 여인형이 대통령 관저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은 반윤석열세력의 정치공세가 격렬해진 “시국 상황을 언급하면서 흥분하고 격노”했다.
해설 – 이런 분위기는 윤석열 일당이 계엄병란을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일당은 미 제국의 만류와 경고를 듣지 않고 계엄병란을 일으키려고 더욱 광분했다. 미 제국은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 미 제국은 자기의 만류와 경고를 듣지 않고 계엄병란을 끝내 일으키려는 윤석열 일당의 ‘불장난’을 계속 방치하면, 계엄병란이 일어나 한미동맹이 위험에 빠질 것으로 우려했다.
윤석열을 수괴로 하는 종미우익세력은 평소에 한미동맹이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는 가련한 존재이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일으킨 계엄병란이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종미우익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머저리 집단이다.
‘불장난’을 저지하려는 미 제국과 ‘불장난’을 강행하려는 윤석열 일당의 관계는 어느덧 적대적 관계로 돌변했다. 미 제국은 윤석열 일당의 ‘불장난’을 강제로 저지시킬 특단의 대책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특단의 대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윤석열을 암살해 계엄병란을 원천봉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석열 일당이 계엄병란을 일으키자마자 신속히 좌절시키는 것이다.
미 제국은 자기의 만류와 경고를 듣지 않고 제국의 지배체제를 위험에 빠뜨린 제3세계 국가원수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살해한 암살 공작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미 제국은 자기의 만류와 경고를 듣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해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린 박정희를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전 가옥에서 김재규의 손으로 암살했다.
미 제국은 박정희처럼 윤석열도 암살해 계엄병란을 원천 봉쇄하고 한미동맹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를 암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 제국이 윤석열을 암살하면 한국이 극도의 정치적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무인기 도발 사건 이후 보복을 다짐한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을 공격할 것으로 심히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 제국 중앙정보국은 1979년 12월 20일에 작성한 정보보고서에서 박정희 암살 이후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지면,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을 공격하는 육해공군 협동작전을 단행할 것이고, 특수군이 한국의 전방 후면과 후방 내부로 깊숙이 동시에 침투해 기습공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45년 전 미 제국이 박정희를 암살한 사건이 조선인민군의 전면 공격을 촉발시킬 뻔했는데, 지금 만일 미 제국이 윤석열을 암살하면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을 전술핵무기로 공격할 가능성은 100%에 이른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미 제국은 윤석열을 암살하지 않고, 윤석열 일당이 계엄병란을 일으키자마자 신속히 좌절시키는 특단의 대책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2024년 12월 1일
김용현, 노상원, 문상호, 김동군, 정00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햄버거 식당 롯데리아에서 만나 계엄병란 준비상태를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2024년 12월 2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전시환자 분류작업이 실시되었다. 이것은 전쟁이 일어나 환자 수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환자의 부상 정도와 생존 가능성을 평가하고, 즉시 치료해야 할 환자와 나중에 치료할 환자를 선별하는 작업이다.
2024년 12월 3일 오전
김용현은 12월 중순까지 진행하려던 군사훈련 계획을 갑자기 취소하면서 비상대기하라는 명령을 각 부대들에 하달했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윤석열 일당은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전사령부, 방첩사령부, 정보사령부에서 차출한 1,500명 병력으로 계엄군을 편성해 출동시켰다. 출동하기 직전 계엄군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유서를 작성하고 채혈도 했다. 유서 작성과 채혈은 전쟁에 출전할 때 하는 집단행동이다.
계엄군은 “국지도발 대비 작전”에 사용한다고 하면서 실탄과 공포탄 75,806발, 섬광폭음 수류탄과 폭약 418발을 탄약고에서 불출해 무장했다. 국제조약이 전쟁범죄로 규정해 전투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HP탄 30발도 계엄군에 지급되었다. 계엄군만이 아니라, 최전선에 주둔하는 부대들도 무장을 갖추고, 유서를 쓰고, 실탄을 지급받았다.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한 행동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약 20분 전 문상호는 격투와 전투에 능한 것으로 하여 계엄군으로 선발되어 정보사령부 제100여단에서 출동 명령을 대기하던 35명에게 “곧 계엄이 선포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그들이 각자 수행할 작전 임무를 하달했다. 그로써 북파 테러부대 암살조 5명은 정보사령부에서 야간합동근무를 하는 제501정보여단 소속 미제국군을 사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날 밤 평소처럼 야간합동근무를 정상적으로 하던 제501군사정보여단 소속 미제국군 전문병들이 1명만 남기고 어디론가 돌연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것은 윤석열 일당이 미제국군을 사살하는 테러 자작극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제501군사정보여단 소속 미제국군 전문명들을 안전한 곳으로 급히 빼돌린 것이다.
다른 한편, 계엄군은 군용차량 107대, 블랙호크 작전헬기 12대, 전술지휘차량 2대에 분승해 국회의사당으로 출동했다. 윤석열은 이진우(당시 수도방위사령관)에게 보안전화기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계엄군 병력 4명이 국회의원 1명씩 체포해 국회의사당 밖으로 전부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윤석열은 곽종근(당시 특수전사령관)에게도 보안전화기로 전화를 걸어 “빨리 국회의사당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국회의원들을 전부 끌어내라”라고 명령했다. 김용현도 이진우와 곽종근에게 보안전화기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계엄군을 국회의사당 안으로 진입시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윤석열과 김용현의 명령은 실행되지 않았다. 계엄군은 국회 경내에 들어갔으나, 국회의사당 안에까지 들어가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이진우와 곽종근이 결정적인 시각에 국회의사당 진입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했기 때문이다. 윤석열보다 높은 ‘윗선’에서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는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말라는 특명이 이진우와 곽종근에게 내려와 계엄군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계엄군의 발목이 잡혀있는 동안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의결될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해제한다는 담화를 발표했고, 계엄군을 철수시켰다. 한미동맹을 위험에 빠뜨린 윤석열 일당의 계엄병란은 6시간 만에 신속히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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