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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584] 동아시아 반제전쟁의 역사와 중국의 군사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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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84회 작성일 24-05-0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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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동아시아 반제전쟁의 역사와 중국의 군사 개혁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차례>

1. 제1차 동아시아 반제전쟁

2. 제2차 동아시아 반제전쟁

3. 중국의 제1차 군사 개혁

4. 제2차 군사 개혁과 제3차 동아시아 반제전쟁


1. 제1차 동아시아 반제전쟁

지도를 펼쳐놓으면, 동아시아 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4개 땅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자리를 잡은 순서대로 열거하면, 만주, 한(조선)반도, 오끼나와, 대만이다. 이 4개 땅을 전부 강점해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려고 미쳐 날뛴 전범국가가 바로 일본 제국이다.

1879년 일본 제국은 류큐 왕국을 해체하고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오끼나와는 일본 제국이 강제 편입한 류큐 열도의 일본식 이름이다.

1894년 7월 25일 일본 제국은 청 제국을 공격해 침략전쟁을 도발했다. 노쇠한 제국주의 국가와 신흥 제국주의 국가가 격돌한 청일전쟁에서 신흥 제국주의 국가가 승리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은 청 제국의 영토인 대만을 뺏었다.

1904년 2월 8일 일본 제국은 서해에 주둔하는 로씨야 제국 전투함을 기습해 침략전쟁을 도발했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와 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가 격돌한 로일전쟁에서 일본 제국이 승리했다. 로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은 한(조선)반도를 식민지로 강점했고, 로씨야 제국의 영토인 사할린을 빼앗았고, 서해와 동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1931년 9월 18일 일본 제국은 만주사변을 도발해 만주 전역을 강점했고,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이라는 간판을 내건 괴뢰국을 세웠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일본 제국은 1879년부터 1931년까지 52년 동안 무력도발과 침략전쟁을 자행하면서 오끼나와, 대만, 한(조선)반도, 만주를 순차적으로 강점했다. 그런 식으로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일본 제국은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을 도발함으로써 동아시아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미쳐 날뛰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극악무도한 침략전쟁과 야만적인 식민 통치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식민지 조선의 항일세력과 반식민지 중국의 항일세력은 일본 제국의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고,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를 타도하기 위한 항일전쟁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제1차 동아시아 반제전쟁이다.

지도를 펼쳐놓으면, 동아시아 대륙을 감싸고 있는 4개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자리를 잡은 순서대로 열거하면, 동해, 서해, 동중국해, 남중국해다. 동아시아 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4개 땅을 전부 강점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한 일본 제국은 더욱 기고만장해져 동아시아 대륙을 감싸고 있는 4개 바다의 제해권까지 장악해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했다.

일본 제국이 4개 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려면, 필리핀(Philippines)을 식민지로 강점한 미 제국, 그리고 싱가폴(Singapore)과 브루나이(Brunei)를 각각 식민지로 강점한 영 제국과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제해권을 노리던 일본 제국은 1941년 12월 8일 필리핀을 침공했다.

태평양전쟁(1941~1945)은 미영 제국과 일본 제국이 4개 바다의 제해권을 둘러싸고 벌인 제국주의 각축전이었다. 같은 시기에 식민지 조선의 항일세력과 반식민지 중국의 항일세력은 일본 제국의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고,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를 타도하기 위한 동아시아 반제전쟁을 전개했다.

일본 제국은 동아시아 반제전쟁으로 타격을 받던 중 미영 제국과 소련의 압도적인 협공을 받고 패망했다. 1945년 9월 2일 일본 제국의 항복을 받아낸 미 제국은 일본 제국이 강점한 4개 땅 중에서 38도선 이남지역과 일본 열도를 전리품으로 빼앗았다. 만주는 소련의 항일전쟁 승리로 해방되었고, 대만은 중국 내전에 휘말려 있었으므로 미 제국은 만주와 대만을 강점할 수 없었다.


2. 제2차 동아시아 반제전쟁

지난 시기 미 제국은 내전에 휘말린 중국국민당 군대에 무기를 지원해주었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중국국민당 정권은 내전에서 연전연패하다가 결국 대만으로 패주했다. 섬에 고립된 중국국민당 정권이 살아남는 길은 미 제국의 ‘보호’를 받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 제국의 ‘보호’는 공짜가 아니다. 그것은 대만의 이권을 미 제국에 상납해야 하는 반역을 의미하였고, 대만이 미 제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받아야 하는 굴욕을 의미하였다. 중국국민당 정권이 1949년 11월 25일에 작성한, ‘대만에 관한 중미합의문 초안’이라는 제목의 비망록은 대만 최북단에 있는 지룽항(基隆港)과 대만 최남단에 있는 가오슝항(高雄港)을 각각 미 제국 해군기지로 상납하고, 대만 철도 운영권을 미 제국에 넘겨주는 대가로 미 제국의 ‘보호’를 받는 방안이 검토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장제스 종미우익 정권을 무력으로 전복하고 대만을 해방하는 영토완정을 서둘러야 했다. 1949년 7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은 소련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딸린(Iosif Stalin, 1878~1953)에게 보낸 전문에서 “대만 공격은 공군부대를 조직한 뒤에 가능”하므로 우선 소련이 중국인민해방군 전투비행사와 항공정비사를 훈련시켜 주고, 전투기와 폭격기를 중국에 판매해주고, 해군 함대 창설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면서 1950년도 하반기에 대만해방전쟁을 단행하겠다고 했다.

1950년 1월 5일 미 제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은 대국민 담화에서 미 제국이 대만 방어를 포기한다고 밝혔고, 1950년 1월 12일 미 제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Dean G. Acheson, 1893~1971)은 전국기자협회 발언에서 대만이 미 제국의 서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되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 제국이 대만 방어를 포기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대만 방어 포기’라는 유인책을 살랑살랑 흔들어대면서 중국을 관계 개선으로 유인하여 중국과 소련을 이간시키려고 교활하게 책동한 것이었다. 그런데 1950년 2월 14일 중국과 소련이 동맹조약을 체결하자 미 제국의 중국·소련 이간정책은 파탄되고 말았다. 그에 따라 미 제국은 ‘대만 방어 포기’라는 유인책을 폐기해야 했다.

미 제국의 그런 교활한 책동과 무관하게 중국은 대만해방전쟁 준비를 다그쳤다. 1950년 2월 중국은 대만해방전쟁에 동원할 중국인민해방군 전투 병력을 40,000명에서 156,000명으로 대폭 증강했다. 전쟁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직감한 대만 주재 미 제국 대리대사는 대만에 주재하는 미 제국 정부 기구들을 1950년 6월 15일 이전까지 전부 철수시킨다는 방침을 본국에 보고했다.

1950년 6월 12일 마오쩌둥 주석은 대만해방전쟁 야전사령관으로 임명한 리위(粟裕)에게 보낸 전문에서 “대만을 신속히 해방할 것”을 지시했다. 바야흐로 대만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대만해방전쟁을 불과 3개월 정도 앞둔 1950년 6월 25일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만일 대만해방전쟁이 한국(조선)전쟁보다 먼저 일어났더라면, 한(조선)반도와 동아시아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대만으로 패주한 장제스(蔣介石, 1887~1975)와 점령군 사령관의 군모를 쓰고 도꾜에 머물고 있었던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는 중국국민당 군대와 미 제국 점령군이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해 만주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무력 침공 망상에 들떠있었다. 만일 중국국민당 군대와 미 제국 점령군이 만주를 점령하면, 중국은 내전에서 패하게 된다.

조선인민군이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였던 서울(*)을 탈환했던 1950년 6월 28일 장제스는 3개 보병사단, 1개 기갑여단, 수송기 20대로 편성된 ‘지원군’을 한국(조선)전쟁에 참전시켜 38도선을 돌파하겠다는 무력 침공 제안서를 백악관에 보냈다. 한국군의 연전연패로 궁지에 몰린 이승만(1875~1965)은 중국국민당 군대가 한국(조선)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애걸하는 서한을 당시 주한 미 제국 대사 존 무쵸(John J. Muccio, 1900~1989)를 통해 맥아더에게 보냈다. 맥아더는 미 제국 합참의장에게 중국국민당 군대의 한국(조선)전쟁 참전 제안을 수락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조선)전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1개월이 지난 1950년 7월 말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한 맥아더는 장제스에게 미 제국군이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해 만주를 점령하겠다고 약속했다.(*북한은 1948년에 제정한 헌법 제10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는 서울'이라고 규정했다. 1972년 헌법개정을 통해 비로소 평양을 수도로 바꿨다.-편집자 주)

1952년 4월 8일 미 제국 극동 공군사령관 오토 웨일랜드(Otto P. Weyland, 1903~1979)는 미 제국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와 서면 대담에서 미 제국 공군이 “만주에 있는 군사시설에 대해 효과적인 폭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2년 6월 10일 미 제국 합동참모본부는 제국주의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한국(조선)전선에 파견된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에게 “부득이한 경우 워싱턴 당국과 협의하지 말고 즉시 보복행위(만주 폭격을 뜻함-옮긴이)를 단행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1953년 3월 27일 미 제국 합동참모본부 비밀회의에서 미 제국 공군참모총장 호잇 밴든벅(Hoyt Vandenberg, 1899~1954)은 “만일 우리가 핵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면 만주의 군사기지에 사용하게 되기를 바란다. 만주에서는 (핵무기 사용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망발을 늘어놓았다.

미 제국 중앙정보국(CIA)은 1953년 4월 8일에 작성한 특별 정보보고서에서 6개 전쟁방침을 제안했는데, 그중에서 3개 전쟁방침에 만주 공격이 명시되었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은 일본 제국이 강점했던 4개 땅 중에서 38도선 이남과 일본 열도를 전리품으로 빼앗고도 성이 차지 않은 미 제국이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해 만주까지 점령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 제국의 동아시아 무력 침공 야욕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조선과 중국은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해 만주까지 점령하려는 미 제국의 야욕을 분쇄하는 항미전쟁에 돌입했다. 조선과 중국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1930년대 항일전쟁이 1950년대 항미전쟁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조선과 중국은 무장력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한 미 제국과 맞서 싸운 혈전을 거듭한 끝에 38도선을 돌파해 북진하려던 미 제국의 동아시아 무력 침공을 현재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저지했다. 이것이 제2차 동아시아 반제전쟁이다.


3. 중국의 제1차 군사 개혁

1953년 7월 27일 조선과 중국은 미 제국의 동아시아 무력 침공을 일단 저지했지만, 그것으로 동아시아 반제전쟁이 종식된 것은 아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장장 70년 동안 한(조선)반도와 대만해협에서는 소규모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전쟁이 재발 위험이 감소하기는커녕 차츰 증대해 왔다.

올해 2024년에 이르러 전쟁이 재발될 위험은 최고 수위에 육박했다. 재발 위험이 최고 수위에 육박한 그 전쟁은 어떤 전쟁인가? 그것은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닌 특별한 전쟁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 가지 성격이란 해방전쟁의 성격과 반제전쟁의 성격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은 중국 영토 안에서 중국인들끼리 싸우는 내전이고, 중국의 항미전쟁은 중국 영토 밖에서 미 제국의 동아시아 무력 침공을 격퇴하는 반제전쟁인 것이다.

변변한 무장력을 갖지 못했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 대만군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장력을 갖추고 전투훈련으로 단련된 중국인민해방군의 압도적인 공격을 받으면, 급속히 소멸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대만해방전쟁을 개시하면, 그 전쟁은 중국의 승리로 신속히 결속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이 고심하는 문제는,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전쟁에 돌입하면, 미 제국군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을 공격할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미 제국군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을 공격하려는 해상전투훈련과 공중타격훈련을 미친 듯이 감행하고 있다. 미 제국군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감행하는 각종 전투훈련에 관한 정보가 외부에 거의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위험이 얼마나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는지 감지하지 못한다.

중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군사 강국이지만,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졌다고 떠벌이는 미 제국도 만만한 상대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중국의 전쟁 준비는 대만군을 소멸하기 위한 대만해방전쟁보다 미 제국의 무력 침공을 격퇴하기 위한 항미전쟁에 더 많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해방전쟁 준비에만 시선을 집중하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의 항미전쟁 준비를 더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미 제국의 무력 침공을 격퇴하기 위한 항미전쟁 전략을 최고 수준에서 수립하고 항미전쟁 준비를 다그쳐온 중국의 국가지도자는 단연 시진핑 주석이다. 1949년 10월부터 1950년 6월까지 기간에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을 전혀 예상치 못했고, 오로지 대만해방전쟁 준비에만 총력을 집중했다. 그런 점에서 ‘항미원조전쟁’은 중국이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수행한 동아시아 반제전쟁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 오늘날 시진핑 주석은 동아시아 반제전쟁을 준비하는 데서 마오쩌둥 주석을 능가하는 최고의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2012년 11월 15일 시진핑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추대했고, 중국 인민은 2013년 3월 14일 그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선출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을 이끌었던 최고 지도자들인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대만해방전쟁과 동아시아 반제전쟁을 중국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최고, 최대의 과업으로 정하고, 그 두 전쟁을 위한 준비사업을 강력히 추진해왔다. 시진핑 주석이 추진해온 전쟁 준비사업의 중심에는 그의 표현대로 중국인민해방군을 “싸우면 이길 수 있는” 강군으로 육성하는 대대적인 군사 개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군사 개혁을 하지 않으면 중국인민해방군을 강군으로 육성할 수 없었고, 중국인민해방군을 강군으로 육성하지 않으면 대만해방전쟁과 동아시아 반제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시진핑 주석의 전략구상이다. 그리하여 시진핑 주석은 다음과 같은 경로로 군사 개혁을 추진했다.

2013년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의 군사 개혁방침을 실행하기 위한 결정서가 채택되었다. 2014년 3월 시진핑 주석은 ‘국방·군대 개혁영도소조’를 조직하고 자신이 직접 지도하면서 군사 개혁을 실행하기 위한 자기의 구상을 구체화했다. 그는 중국인민해방군 통합지휘기구를 창설하는 것을 군사 개혁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업으로 정했다.

당시 중국인민해방군은 4개 총부(總部-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를 수뇌부로 하고, 그 산하에 육군 7대 군구(軍區), 해군, 공군, 제2포병(전략미사일부대), 인민무장경찰부대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4개 총부, 7대 군구, 4개 군종으로 분산된 군사 체계로는 작전 효율을 높일 수 없었다. 단일한 작전지휘 체계로 통합해야 작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우선 당중앙군사위원회 산하에 통합작전지휘쎈터를 설치해 각종 군사훈련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게 했다. 시진핑 주석은 통합작전지휘쎈터를 수시로 방문해 군사훈련을 준비하고, 군사훈련 명령을 내리고, 군사훈련을 직접 지휘했다.

2014년 12월 25일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당의 지휘를 따르고 전쟁을 잘 지휘할 수 있는 새로운 사령 기관 건설에 관한 의견’이라는 제목의 결정서를 채택했다. 이 결정서에 명시된 ‘새로운 사령 기관’은 새로운 통합작전지휘부를 의미한다.

2015년 11월 24일부터 26일까지 베이징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개혁공작회의가 진행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소집한 그 회의에 중국인민해방군 수뇌부 200명이 참석했다. 개혁공작회의에서 ‘국방과 군대개혁 주요 방안’이 논의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군사 개혁방침에 따라 4개 총부가 해체되었고, 4개 총부의 권능을 분담한 15개 부서가 신설되었다. 신설된 15개 부서를 열거하면, 연합참모부, 정치공작부, 훈련관리부, 후근보장부, 장비발전부, 국방동원부, 기율위원회, 정법위원회, 과학기술위원회, 전략규획판공실, 개혁편제판공실, 국제군사합작판공실, 심계서, 기관사무관리총국, 판공청이다. 또한 7대 군구(선향군구, 베이징군구, 란저우군구, 지난군구, 청뚜군구, 난징군구, 광저우군구)를 통합작전에 유리한 5대 전구(戰區-북부전구, 중부전구, 동부전구, 서부전구, 남부전구)로 개편했고, 로켓군과 전략지원부대를 신설했다. 또한 육군 병력을 감축하는 대신, 해군 병력을 23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증원하고, 로켓군 병력을 12만 명에서 14만 명으로 증원하고, 공군 병력을 40만 명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중국인민해방군을 공군, 해군, 로켓군을 중심으로 개편하는 군사 개혁의 일환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이런 과정과 절차를 거쳐 군사 개혁을 완수했다. 이것을 제1차 군사 개혁이라고 부른다.


4. 제2차 군사 개혁과 제3차 동아시아 반제전쟁

시진핑 주석은 제1차 군사 개혁을 단행한 때로부터 9년이 지난 2024년 4월 19일 제2차 군사 개혁을 단행했다. 제2차 군사 개혁은 중국인민해방군에 4개 군종을 신설하는 조치였다. 신설된 4개 군종은 신식지원부대(信息支援部隊, 정보지원부대), 망락공간부대(網絡空間部隊, 싸이버부대), 군사항천부대(軍事航天部隊, 우주항공부대), 연합후근보장부대(聯合後勤保障部隊, 합동군수지원부대)다. 신식지원부대는 정보전을 수행하고, 망락공간부대는 싸이버전을 수행하고, 군사항천부대는 우주전을 수행한다. 제2차 군사 개혁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정보전, 싸이버전, 우주전을 수행하는 현대화된 강군으로 변모되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인민해방군은 이전에도 정보전, 싸이버전, 우주전을 수행하는 군사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시진핑 주석이 제1차 군사 개혁을 시행하면서 2015년 12월 31일에 새로운 병종으로 창설한 전략지원부대였다. 그런데 전략지원부대가 정보전, 싸이버전, 우주전을 전부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정보작전 역량, 싸이버작전 역량, 우주작전역량이 강화, 발전되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이번에 제2차 군사 개혁을 단행하면서 전략지원부대를 해체하고, 정보지원부대, 싸이버부대, 우주항공부대를 3개 병종으로 신설한 것이다.

정보전, 싸이버전, 우주전은 21세기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요인이다. 제3차 동아시아 반제전쟁에서도 당연히 정보전, 싸이버전, 우주전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될 것이다.

지난 시기 시진핑 주석은 제1차 군사 개혁의 마지막 공정으로 군수지원부대를 개편했다. 2016년 9월 당중앙군사위원회 산하에 후근보장부(군수지원참모부)를 두었고, 후근보장부가 지휘하는 연합후근보장부대(합동군수지원부대)도 두었으며, 5개 전구사령부에 각각 후근보장중심(군수지원쎈터)도 설치했다.

그런데 이번 제2차 군사 개혁에서는 연합후근보장부대를 독자적인 병종으로 개편했다. 이것은 중국인민해방군 군수지원능력이 지난 대폭 증대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제1차 군사 개혁에서 재래식 전쟁 수행력과 핵전쟁 수행력을 갖추었다면, 이번에 제2차 군사 개혁에서는 정보전, 싸이버전, 우주전, 군수지원전을 수행하기 위한 역량을 갖춘 것이다. 이것은 중국이 대만해방전쟁 준비와 동아시아 반제전쟁 준비를 사실상 완료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2024년 3월 20일 당시 미 제국 인디아양-태평양사령관 존 아퀼리노(John C. Aquilino)는 미 제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지난 3년 동안 중국이 전투기를 400대 이상 더 증강했고, 주력 전투함을 20척 이상 더 증강했고,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비축량을 2배 이상 늘렸다고 하면서, “모든 징후는 중국이 2027년까지 대만을 침공할 준비를 마치라는 시진핑 주석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요즈음 미 제국의 정계, 군부, 학계에서 2027년이 자꾸 거론되는 까닭은 2027년 8월 1일 중국인민해방군이 창건 100주년을 맞기 때문이다. 존 아퀼리노는 중국인민해방군이 창건 100주년을 맞는 2027년까지 대만해방전쟁 준비를 완료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중국이 대만해방전쟁 준비를 2027년까지 완료하게 된다면,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해방전쟁을 2027년 이후에나 하게 된다. 이런 식의 예측 발언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떠드는 횡설수설에 불과하다.

존 아킬리노의 엉터리 예측보다 좀 더 합리적인 예측 발언을 꺼내놓은 사람은 미 제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번스(William J. Burns)다. 그는 2022년 10월 3일 미 제국 텔레비전방송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는 시진핑 주석이 2027년이 지나기 전에 대만을 성공적으로 ‘침공’할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창건 100주년 이전에 대만해방전쟁 준비를 완료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중국이 2027년 이전에 대만해방전쟁을 단행할 것이고, 2027년에 중국인민해방군 창건 100주년을 ‘승리자의 축전’으로 맞이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2027년 이전이라면 2024년, 2025년, 2026년인데, 앞으로 2년 6개월 남았다.

그러나 미 제국의 정계, 군부, 학계가 알지 못하는 것은, 중국이 대만해방전쟁 준비보다 제3차 동아시아 반제전쟁 준비에 훨씬 더 많은 힘을 기울여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정력적인 지도 밑에 두 차례에 걸친 군사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2024년 4월 현재 동아시아 반제전쟁 준비를 사실상 완료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제3차 동아시아 반제전쟁이 2024년부터 2026년까지 기간에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3년 1월 27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의하면, 미 제국군 항공기동사령관 마이클 미니핸(Michael A. Minihan)은 2023년 1월 중순 자기 휘하 장병들에게 보낸 사령관 지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나의 직감에 따르면, 우리는 2025년에 싸우게 될 것이다. 시진핑은 2022년 10월 자신의 세 번째 임기에 들어섰고, 전쟁협의체를 가동시켰다. 2024년에 진행될 대만의 총통 선거는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이유를 제공할 것이고, 2024년에 진행될 미국 대통령 선거는 혼란을 유발할 것이다. 시진핑의 지휘부, 이유, 기회는 2025년을 향해 정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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