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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5-11. 렬강들의 틈에 끼여온 레바논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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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844회 작성일 23-11-2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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렬강들의 틈에 끼여온 레바논의 운명

 

류태영 박사.jpg

저자 고 류태영 박사

 

레바논은 1만 400㎢의 좁은 땅에 약 42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있는 작은 나라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 레바논은 한때 중동의 진주라고 불리울 정도로 풍요로운 나라, 중동의 빠리라고 여겨지는 아름다운 나라였는데 오래 계속되는 내전으로 인하여 려행자들의 지도에서 사라져 없어지고마는 비운에 처해있다.

레바논은 오래동안 페르샤, 그리스, 로마, 오스만제국 등 많은 세력들에 의하여 지배되여왔다. 특히 1516년에 이르러서 오스만제국이 레바논을 정복하여 19세기말까지 지배했는데 이때 이슬람교도들과 그리스도교도들사이에 분쟁이 격화되고있었다.

1861년에 프랑스가 레바논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으며 1918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이 패전함으로써 영국은 이라크를 수중에 넣었고 프랑스는 수리아와 레바논을 하나의 국가로 병합하여 식민지통치를 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레바논민중들은 자기 나라 령토에서의 외국군대의 철거와 민족적독립을 위한 완강한 투쟁을 벌려 1943년 11월 22일 프랑스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룩하고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갓 독립한 레바논의 정세는 의연히 복잡하였다. 그 원인은 종교적갈등이였다. 레바논은 중세기에 이슬람교의 뿌리가 깊이 내린 이슬람교영향권에 속했던 나라이다. 그래서 인구의 과반수를 이슬람교인들이 차지하고있었다. 이것을 타산한 프랑스는 레바논에 대한 식민지통치를 손쉽게 하려는 속심으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침투를 강화하여 두 종교간의 갈등을 조성하고 레바논인들의 민족의식을 약화시켜놓았다.

레바논의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였다.

그래서 레바논에서는 독립초창기부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서로 혼재하여 대결하는 혼란된 정세가 지속되였다.

이 기간 미국은 레바논의 그리스도교세력을 육성하고 지원해주었으며 이로 인하여 레바논은 독립초창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랍세계와 서방의 침략세력이 서로 첨예하게 대치하는 치렬한 전쟁터가 되였다.

그리스도교세력은 《레바논주의》(Lebanism)를 주장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이슬람세력은 《아랍주의》(Arabism)를 주장하면서 레바논을 아랍세계의 일부로 편입시키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두 세력은 다행히도 1943년에 국민협정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갈등과 대립이 해소되는듯 보였다. 이 협정에 따라 대통령은 그리스도교에서, 수상은 이슬람 순니파에서 그리고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에서 맡는 새 정부가 구성되여 레바논의 새로운 정권은 일단 출범을 했다.

하지만 레바논정권이 출현한지 15년째인 1958년에 비극적인 레바논내전이 시작되였다. 내전이 시작된 근본적원인은 그리스도교세력으로 등장한 대통령세력이 독단적으로 과도한 친미와 친서방로선을 선택하는데 대하여 이슬람민족주의세력들이 반발한데 있었다.

당시 정권을 장악한 레바논의 그리스도교는 친서방정치세력으로서 군부와 그리스도교민병대를 정권의 힘으로 삼고 장기집권을 해오고있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이 배후에서 막강한 지원을 제공했다.

한편 팔레스티나땅에 이스라엘이 세워진 후 수많은 팔레스티나피난민이 발생하였으며 그 대부분이 레바논으로 들어왔다.

레바논의 친미정권인 그리스도교세력은 팔레스티나피난민들을 불청객처럼 랭담히 대하면서 정부차원의 구제와 그들의 정착문제를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대하였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눈치만 보고있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이슬람 아랍편에서는 팔레스티나피난민들의 문제를 국가적차원문제로 중요하게 여기고 특히 PLO는 레바논안에서의 활동을 협력하고 지원해줌으로써 정부와 충돌은 물론이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의 대상이 되게 되였다.

레바논의 내전문제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지려면 팔레스티나피난민문제를 옳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스라엘신생국창건으로 인하여 야기된 중동전쟁

 

제1차 중동전쟁(1948-1949년)

이스라엘의 출현은 곧 제1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출현에 반발하여 아랍측에서 에짚트, 수리아,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이 군사행동에 참가하였고 예멘과 사우디 아라비아가 전쟁상태에 들어갔지만 내부불화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패하였다.

결과 이스라엘은 미, 영이 짜놓은 각본대로 유엔이 이미전에 정해준 국경선을 훨씬 넘어서 6 700㎢에 달하는 지역을 강점하였으며 수많은 팔레스티나인들을 자기들의 고향땅에서 내쫓았다.

이렇게 생겨난 팔레스티나피난민문제는 대립되여있던 레바논의 그리스도교측과 이슬람교측 량진영의 내전의 기폭제가 되고있었다.

제1차 중동전쟁에서 실패한 아랍진영과 팔레스티나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항쟁을 계속하기 위하여 PLO를 새로 결성하고 힘을 모으게 되였다.

 

제2차 중동전쟁(1956년 수에즈, 시나이전쟁)

제2차 중동전쟁은 주로 미국과 쏘련과의 대결로서의 성격을 띤 전쟁이였으며 이스라엘과 에짚트와의 결전이기도 했다.

이 시기 미국, 영국, 프랑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에짚트의 나쎄르대통령은 수에즈운하의 국유화에 성공했다.

한편 쏘련이 에짚트, 수리아, 레바논 등 여러 나라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반면에 미국은 이스라엘에 현대적무기를 대량 공급하고있었다.

 

제3차 중동전쟁(1967년 6월전쟁)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수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생한지 3일만에 교전쌍방간에 강화조약이 체결되였다.

1967년 8월 20일에 수단에서 개최한 아랍정상회담에서는 세가지 내용을 기본으로 하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한 정책을 채택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2) 이스라엘과는 평화를 구하지 않는다.

3)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세차례의 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빼앗은 령토는 초기의 령토보다 8배로 증가하여 총 10만 2 400㎢로 확대되였다.

또한 팔레스티나피난민수는 끝을 모르게 증가하여 레바논에 막대한 혼돈과 부담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가운데 PLO의 게릴라활동도 레바논에서 점점 더 활발해지고있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은 미국의 중동전략

 

레바논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충지이다. 그 리유는 이스라엘의 생명줄인 물줄기의 상류가 바로 레바논을 지나 흐르고있기때문이다.

제3차 중동전쟁때 이스라엘이 결사적으로 수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한 리유중의 하나도 역시 물줄기를 확보하기 위한 욕심때문이였다.

뿐만아니라 레바논은 게릴라들이 활동하는데 매우 적합한 지형으로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레바논의 히즈볼라흐와 팔레스티나해방조직의 전투적요새지로 되고있어 이스라엘은 이곳을 상당히 예민한 지역으로 여긴다.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레바논을 본격적으로 침공하기 시작한것은 1978년부터이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리유란 레바논 남부지역을 기지로 삼고있는 PLO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는것이였다. 이스라엘은 이 침공을 《리타나작전》이라고 했다.

유엔은 결의안 425호를 채택하여 1979년 3월에 이스라엘침략군과 PLO를 모두다 레바논에서 철수시키고 그대신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으로 친미와 친이스라엘로선을 따르는 레바논의 그리스도교계통의 민병대에게 레바논 남부지역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이와 같은 유엔의 처사는 레바논을 남북으로 갈라놓고 지역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선을 그어놓는 처사였다.

1982년 6월에 이스라엘은 유엔결의안 425호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두번째로 레바논을 침공했는데 이스라엘의 이 침공을 《갈랄리 평화작전》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레바논측에서는 제1차 레바논전쟁이라고 명칭을 붙인다.

제1차 레바논전쟁때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지역을 벗어나 레바논의 여러곳에 흩어져있는 팔레스티나피난민촌까지 무차별적으로 폭격함으로써 3 000명의 사망자와 막대한 재산피해를 가져왔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소위 다국적평화유지군을 레바논에 주둔시키고 레바논에 있던 팔레스티나피난민들을 수단, 뜌니지, 알제리 등의 나라들로 분산시켰다.

1982년 6월에는 국토안전과 보호를 위함이라는 구실밑에 레바논의 남부지역을 또다시 침략한 이스라엘은 이른바 《안전지대》를 설정해놓고 군대까지 주둔시키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이스라엘은 침략행위를 계속 감행하였으며 2006년 7월 14일에는 제2차 레바논전쟁을 도발하였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침략행위를 일일이 론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여서 이에 대한 서술은 이쯤해두는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침략이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있는가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궁해보아야 할 과제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레바논을 침공한 그 진의가 과연 무엇이며 그러한 이스라엘을 적극 비호두둔하며 저들이 직접 개입까지 해나서는 미국의 행동이 정말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서일가?

이스라엘이 리용하는 물의 40%는 레바논 남부 하사바니강을 통하여 흐르고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악착같이 침공하는 리유가 물때문인것도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레바논인구의 약 45%가 이슬람교도이다. 이 이슬람교세력을 약화시키고 력사적으로 뿌리깊은 그리스도교의 정치세력을 내세워 친미적인 정권을 조작하려는것이 바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의 주되는 목적이다.

그런데 레바논에서는 히즈볼라흐라는 정치세력이 친미, 친서방세력에 맞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고있다.

그래서 미국과 서방의 언론들은 히즈볼라흐를 《테로조직》 또는 《깡패집단》이라고 악선전과 외곡선전에 열을 올리고있다. 히즈볼라흐의 영향력을 차단함으로써 이슬람운동이 중동전역에 확산되는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레바논의 히즈볼라흐는 의회선거(2006년 7월)에서 24의석을 차지한 건전한 정치세력으로서 민중이 지지하는 민주적정당조직이다.

 

레바논전 휴전협정

 

레바논전은 미국이 끌어들인 유엔이 《휴전결의안 제1701호》를 채택함으로써 일단 중지되였다. 그리고 유엔은 미국의 주도하에 레바논과 이스라엘 두 나라의 국경선에 《블루라인완충지대》를 설치했으며 이 지대에 평화유지군 1만 2 000명을 주둔시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 결의안은 《블루라인완충지대》에서 레바논정부군과 유엔군이 총을 들고 자유롭게 왕래하는것을 허락하지만 히즈볼라흐무장세력에게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불공정한 결의안이다.

그런데도 레바논휴전협정에 대하여 전 미국무장관 라이스는 휴전결의안을 극구 찬양하면서 히즈볼라흐는 레바논의 친미정권의 주권을 시인하며 휴전협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력설했다.

어쨌든 레바논휴전협정의 성사를 계기로 강자인체 해오던 이스라엘은 코가 납작해졌다. 또한 레바논 남부를 영원히 완전한 점령지로 만들려던 미국의 계획도 실현되지 못하였다.

반면에 히즈볼라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만만찮은 전투력을 유감없이 과시하여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데 2010년 8월에 《블루라인완충지대》에서 이 히즈볼라흐무장세력과 이스라엘군사이에 또다시 총격전이 벌어져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욱 놀라운것은 이 사건에 대하여 레바논의 미쉘 쑬레이만대통령이 군부고위간부회의를 소집하여 이스라엘이 휴전협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즉시 발표한것이다.

레바논의 현직대통령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와 같이 강력한 비난의 발언을 한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다.

 

미국의 간섭이 빠지니 레바논에 평화가 온다

 

오래동안의 내전기간 줄곧 미국에 추종해온 레바논정권과 군부는 점차 종전의 자세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사이에서 중립로선을 지키기 시작했으며 미국-수리아-이란과의 관계에서도 미국에 기울지 않고 중립적립장을 취하고있다.

레바논의 전직대통령인 에밀 라후드는 전직 군최고지휘자였고 3대 그리스도교가정출신이였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 친미로선에서 벗어나 엄정한 중립로선을 유지했다.

에밀 라후드의 뒤를 이어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미쉘 쑬레이만이다.

라후드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의회선거기간 레바논에서는 친미적그리스도교집권당과 친수리아파, 친이란파 등 여러 정치세력의 대립으로 오래동안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있다가 오랜 기간 레바논 륙군사령관을 지낸바 있는 미쉘 쑬레이만을 단일후보자로 세우기로 일단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미쉘 쑬레이만이 수리아편이였다는 집권여당의 반대와 중도로선만이 레바논의 평화의 길이라는 히즈볼라흐측의 주장이 맞서게 되였다. 해결책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가?

이와 같은 난제에 직접 개입한것은 미국이 아니라 아랍련맹이였다. 아랍련맹은 레바논의 의회소집을 제3국인 까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할것을 제안했으며 그에 따라 2008년 5월 21일에 대통령선거를 치르게 되였다.

투표결과 미쉘 쑬레이만이 레바논대통령으로 당선되였다.

당선된 즉시 미쉘 쑬레이만대통령은 연설에서 《평온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것을 호소했다.

이러한 쑬레이만신임대통령에 대한 중동과 아랍의 여러 나라들의 기대는 크다.

이제 미국이 끈질기게 추진하고있는 레바논에 대한 고립정책과 히즈볼라흐의 무장해제를 목표로 삼고있는 미국에 대하여 쑬레이만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것인가 하는것이 큰 관심거리로 떠오르고있다.

쑬레이만대통령의 취임식에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서방나라들과 대부분 아랍나라들은 참석했지만 미국은 참가하지 않았다. 그만큼 미국은 레바논신임대통령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것이다.

그것은 레바논의 정국을 수습하는데 미국이 아니라 아랍련맹이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데 대한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표시이다.

레바논의 신임대통령의 취임이 있은 후인 2008년 6월 3일 《뉴욕 타임스》에는 《미국이 없는 자리에 평화가 깃든다》라는 글이 실리였는데 내용인즉은 이제는 중동의 아랍세계에서 많은 당사국들이 미국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자립과 평화를 향하여 움직인다는것이다.

반미자주화의 길로 나아가는 중동지역 나라들에서의 전반적인 정치흐름을 평하는 의미심장한 글이다.

이에 전적인 공감을 표시하면서 레바논 역시 이러한 대세의 흐름에 합세하여 자주와 평화, 번영의 길로 나가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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