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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3-4. 영제국주의가 한세기나마 괴롭힌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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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840회 작성일 22-12-0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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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국주의가 한세기나마 괴롭힌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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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 류태영 박사


말레이시아인들의 민족의식이 눈뜨기 시작한것은 18세기말부터였다.

이 시기 그들의 전통적인 군주제도의 왕국형태는 무너지고 일련의 공국들로 분렬되여 영국의 식민지지배를 당하는 비극적인 과정으로 전환된다.

침략초기에 영국은 말레이시아인들의 반항을 무마시키기 위해 위선적인 식민지정책으로 말레이시아를 통치했다. 그 다음에는 말라이해협을 통치하는 직할해협식민지정책을 내놓았고 또 얼마후에는 말라이련방을 내오는 방법으로 간접통치했다.

이렇게 여러가지 형태와 수법으로 식민지통치를 실시해오던 영국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말레이시아를 로골적으로 식민지화하였으며 영국인총독이 직접 통치하면서 경제적리익을 극대화하였다. 영국은 세계최대의 주석생산과 고무농장을 확대하였으며 중국인들과 인디아인들을 말레이시아로 대량 이민시켜 로동력을 확보했다.

대신 영국은 말레이시아원주민들을 농촌으로 이주시켜 농사에만 종사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분리정책으로 하여 말레이시아사회는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할수 있는 기회가 농사에만 종사하고있는 절대다수의 말레이시아원주민들보다는 오히려 해외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훨씬 더 유리했다. 이로부터 경제적으로 부의 재분배과정에서 소외된 대다수의 말레이시아인들과 소수의 이주민들사이의 관계가 좋을수 없었으며 두 집단간의 반목과 불화가 시작되게 되였다.

이러한 력사적과정속에서 말레이시아사회는 서유럽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친영국층으로, 일반대중은 반영국층으로 구분되였다.

그리고 영국의 분리정책에 의하여 중국인들이 유리한 처지에 있다고 판단한 말레이시아인들은 전반적으로 반중국인의식을 가지게 되였다.

그런데 1920년대에 들어서서 일본이 근대화를 꾀하면서 동남아시아를 향하여 새 식민지침략의 길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일본에 대하여 말레이시아의 친영국기득권층은 거부감을 강하게 나타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빈곤층인 일반대중은 영국의 식민지통치에 대한 반감의 표시로 은근히 일본을 지지해나섰다. 이러한 말레이시아민중들의 감정을 리용하여 일본은 이른바 반영국독립에 대한 선전을 교묘하게 진행했다.

그리하여 말레이시아민중들은 영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속에서 사회적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 1930년 4월에 말라이공산당이 창건되였다.

말라이공산당은 처음에 지하조직으로만 활동할수 있었지만 차츰 광산과 고무농장의 로동자들을 조직하여 사상교육과 반식민지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말라이공산당의 활동은 영국의 식민지통치를 곤난하게 했으며 영국의 식민지정부는 말라이공산당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영국의 식민지정부는 수많은 말라이공산당의 당원들을 체포하여 투옥, 추방했으며 살해하였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민중들의 반식민지투쟁은 소수의 게릴라전에서부터 시작하여 흐르는 강물처럼 남녀로소의 대중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한 지역에서 시작하여 주변동남아시아전역으로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942년 2월 일본군이 말레이시아를 점령하자 영국은 일본에 항복했지만 말라이공산당이 조직한 항일인민군은 3년동안 일본군을 격파하고 드디여 승리를 거두었다.

1945년 8월 15일에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고 일본은 말레이시아에서 물러갔다. 전쟁이 끝난 후에 항일투쟁에서 승리한 말라이인민군용사들은 영웅이 되였다.

그들은 산에서 내려와 도시를 장악하고 평화를 선포했다.

다급해진 영국은 어쩔수없이 항일인민군에 의존할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당시 영국은 항일인민군대표들을 런던에 초청하여 그들에게 호의를 표시하는 선심을 썼다.

말라이공산당은 이와 같은 영국의 호의를 바로 말레이시아의 완전한 독립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치명적인 착오였다.

영국은 1945년 9월 또다시 말레이시아로 되돌아왔을뿐아니라 옛식민지통치기구를 복구하기 위하여 이 나라 민중들이 창설한 무장부대들을 해산시키고 말라이공산당을 가차없이 탄압하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영국은 말레이시아에서 식민지통치를 완전히 다시 복귀하고 영구적통치기반을 보다 더 공고히 하기 위하여 두가지 정책을 선포했다.

첫째, 말라이련방을 창설한다. 말레이시아에 현존하고있는 모든 친영국적인 우익단체들을 하나로 련합하고 영국녀왕이 새로 임명한 통치자로 하여금 말레이시아를 통치하게 한다.

둘째, 말라이련방은 부족왕권의 군주제를 완전히 페지한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있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

이와 같은 정책은 말레이시아본토인들에 대한 우대를 근원적으로 페지함으로써 영국이 식민지통치를 보다 더 쉽게 하기 위한 수단이였다. 즉 원주민들의 기득권을 약화시키고 외국인들을 우대함으로써 내부갈등을 일으켜 식민지통치를 쉽게 하려는 술책이였다.

이와 같은 술책은 당연히 반대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반영, 반식민지적좌익세력이 총집결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1945년부터 1948년사이에 치렬한 반영, 반식민지투쟁이 말레이시아전역에서 전개되였다.

이 과정에 7천~8천명의 게릴라와 7만명의 말라이공산당원들이 단결하여 반영국운동을 벌리였다.

식민지통치를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좌익세력의 위협이 대두하고있다고 본 영국은 대포, 땅크를 비롯한 각종 현대식무기로 무장한 병력을 동원하여 말레이시아민중의 투쟁을 진압하려 했다.

한편 영국은 1948년에 또다시 새로운 신식민주의수단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종래의 련방 4개주와 비련방 5개주, 말라까, 삐낭을 통합하여 말레이시아련방을 조작하고 싱가포르는 직할식민지로 떼여냄으로써 식민지통치수단을 강화하고 모든 친영국우익세력들을 하나로 묶어놓으려 한것이다.

하지만 이 말레이시아련방의 창설은 좌우파모두에게 완전히 외면당하고 오히려 사분오렬로 혼란만 더 가증시켰다.

당시 보수파친영국계렬은 영련방제도안에서의 독립을, 지식층에서는 영국을 완전히 배제한 독립은 불가능하지만 중도적타협안을 주장했으며 어떤 세력은 영국을 완전히 배격하고 차라리 이웃나라 인도네시아와의 합병통일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극좌파세력과 중국계말라이인들은 공동보조를 취하고있었으며 중국계말라이인들중에서도 좌우파로 분렬되는 혼란이 발생하고있었다.

이와 같이 혼란된 정국속에서 영국은 통치수단을 최고로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우파적정치세력들을 총집결시키는 말라이련방을 또다시 출범시켰다.

영국이 말라이련방을 세번씩이나 새로 출범시킨 목적은 좌익민중세력과 게릴라들의 활동을 근원적으로 말살하기 위한 극단적인 정치공작이였다.

말레이시아의 좌익운동진영은 영국의 극단적인 정치공작을 합법적인 방법과 평화적인 방법만으로는 도저히 좌절시킬수 없다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1948년 좌익세력들은 말라이인민해방군을 창건하고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주로 촌락과 외곽지대에 사는 농민들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가난하게 사는 농민들에게 해방의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은 모든 말레이시아의 가난한 민중들을 잠재적게릴라폭도들로 간주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게릴라에 가담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말레이시아민중들은 영국의 어떠한 탄압작전에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것을 결의해나섰으며 말라이인민해방군은 1954년봄에 이르러 전령토의 4분의 3을 해방하였다.

이에 당황한 영국은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 독립이 가능하다.》라는 위선적인 말로 위기를 넘기려 하였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대영제국의 몰락을 막을수 없었으며 나아가서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말레이시아사회주의당

 

1930년 4월에 창당된 말라이공산당은 반영, 반일게릴라전을 줄기차게 벌려 1957년에 독립을 쟁취했다.

그후 말레이시아의 사회주의운동의 력사는 맥을 이어서 1994년부터 싹이 트기 시작하더니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8년 5월 1일 드디여 말레이시아사회주의당으로 회생되여 부활했다.

사회주의당은 창당된지 10년만인 2008년에 처음으로 정당등록을 했으며 2008년의 련방국회의원선거와 지방의회선거에서 각각 1명씩의 자기 당 후보자들을 당선시키였다.

이러한 말레이시아사회주의당앞에는 오늘 당면하게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나서고있다.

대표적으로 보면 우선 미국이 제3세계에 강요하고있는 자유무역협정(FTA)결사반대운동을 적극 벌리고 공기업민영화를 반대하며 서민들의 실업과 건강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것이다.

또한 시민단체들이 선거를 통하여 정치에 진입할수 있는 민주적통로를 활짝 열어놓아야 하는것이다.

또한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동남아 여러 피지배국가들과 굳게 련대하고 공동으로 투쟁하는 전략체를 형성하여 대응하여야 하는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사회적문제들을 안고있는 말레이시아사회주의당과 말레이시아민중의 앞길은 결코 순탄치 않을것이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 말레이시아는 보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번영하는 나라로 될것이라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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