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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1-6 과떼말라에 진보의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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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559회 작성일 21-08-15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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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영 박사

1.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침략과 반미열풍

 

□ 과떼말라에 진보의 바람이 분다
 

      20세기 인종말살의 현장 과떼말라

 

남아메리카를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스파노 아메리카》라고도 부른다. 왜 그런가? 15세기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대륙을 점령하고 처음 유럽의 식민지로 삼았을 때부터 시작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세 나라가 유리한 호칭을 붙여놓았기때문이다.

영국계침략자들은 신대륙을 무조건 《북아메리카ㅡ남아메리카》라고 불렀다.

하지만 1800년대에 이르러서 프랑스계통의 지식인들은 미국의 영향권이 남북아메리카전역에 팽창하는것을 시기하고 반대하여 새로운 이름을 고안해냈다. 프랑스계침략자들은 남아메리카만은 별도로 구분하여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를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질세라 에스빠냐계통의 지식인들은 미국과 프랑스의 주장에 대하여 분개하여 맞대항을 하면서 독자적인 호칭을 고안해냈는데 에스빠냐는 남아메리카를 《이스파노 아메리카》라고 부를것을 력설하였다. 에스빠냐는 남아메리카를 제일먼저 점령하였고 제일 많이 식민지를 확보한것을 저들의 력사적우선권으로 생각하고있다.

프랑스와 에스빠냐 두 나라가 미국을 대항하여 제각기 각자가 서로 다른 목소리와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있는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프랑스와 에스빠냐 두 나라가 서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또 함께 침묵을 지키면서 미국에 전적으로 동조하고 언행에 있어서 세 나라가 일치하는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과떼말라에서 벌리고있는 《마야족 인종말살정책》에 대하여서는 그들이 미국에 대항하여 반대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들 두 나라는 공통된 무관심과 공통된 침묵으로 과떼말라에서 미국에 의하여 진행되는 토착원주민 인종말살정책에 대하여서는 어느 나라이든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서로 침묵으로 오늘에 이르고있다.

미국과 이전 쏘련이 대립하던 랭전시기의 절정기인 1960년대에 과떼말라에서는 《좌익뿌리뽑기》라는 명분하에서 과떼말라원주민들에 대한 《마야족 뿌리뽑기작전》이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1960년대초부터 시작하여 1996년까지 계속된 피비린내나는 악몽의 34년동안에 과떼말라의 토착원주민인 마야족 20만명이 비참하게 살해되였다. 좌익소탕작전이라는 명분으로 살해된 수는 전체 사망자중에서 좌익게릴라활동에 관여한 사람들이 불과 3%뿐이고 97%의 사망자는 좌익게릴라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로서 오로지 《인종말살정책》에 의하여 토착원주민 마야족을 집단적으로 살해하였다.

34년동안의 과떼말라의 폭정과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1996년에 유엔의 감독하에 도이췰란드인변호사 Christian Tomuschat와 과떼말라인변호사 Edugar Balsells 그리고 마야인교사 Otilia Coti 세사람으로 구성된 《분쟁종식위원회》가 발족됐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3인위원회는 《마야족 인종말살행위》는 전적으로 미국의 책임이며 미국의 하수인격인 반공주의적친미독재정권이 저지른 력사상 최악의 범죄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3인위원회는 9 200명의 생생한 목격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하였으며 4만 2 000명의 사망자들이 죽음을 당하는 형장의 모습을 생생히 전해주는 기록들을 확보한것을 보고하였다. 20만명의 사망자중에서 단 3%만이 좌익게릴라활동에 실제로 가담하였던 사람들이였다고 유엔에 보고하였다.

과떼말라의 비극은 1954년부터 시작되였다. 민선대통령인 Jacobo Guzman대통령은 미국이 지원하는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쫓겨났다.

정권을 잡은 군정은 미국이 파견한 군사고문단의 지휘하에 이른바 《공산게릴라소탕작전》이라고 하면서 쓸만 한 농토를 전부 기업매수하여 토지를 황페화시켰다. 윁남전쟁에서 미군이 사용한 작전법과 똑같은 수법이다.

농사가 생명인 토착원주민들은 갑자기 실향민이 되고말았다. 땅과 고향을 잃은 원주민들의 슬픔은 곧 학살로 이어졌다.

과떼말라에서 학살의 비극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인 1980년대초는 미국에서 공화당의 로날드 레간대통령이 집권하고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과떼말라의 원주민학살이 계속되던 1980년대에 있어서 레간대통령정권은 동시다발적으로 니까라과, 엘 쌀바도르, 빠나마 등 까리브지역에 있는 모든 나라들에게 반공친미군사독재정권을 강압적으로 세우는데 몰두하고있었다.

2003년 6월에 과떼말라산지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몰사한 75세대의 가족들의 해골들을 파내서 다시 안장하는 집단행사가 있었다. 그후부터 과떼말라전역에 흩어져있는 250개의 비밀공동묘지에 파묻혀진 유골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시작되였다.

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걸려야 20만구의 유골발굴작업이 어느 정도 진전이 있게 될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지난 1991년에 이라크전쟁을 처음 시작할 때 침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리유중의 하나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있다고 허위로 주장한것 이외에 싸담 후쎄인이 량민을 대량학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살인마 후쎄인을 타도하기 위하여 이라크전쟁을 한다고 변론을 하였다.

그러면서 미국CIA는 후쎄인이 쿠르드족을 대량학살한 증거로 땅속에 묻혀있는 해골 수백구를 파내고 이것을 전세계에 선전하면서 소동을 부렸다. 하지만 오늘 미국은 과떼말라에서 10년동안 발굴해도 끝을 모를 20만여의 마야족유골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있다.

 

 

      비극의 나라 과떼말라

 

유럽인들이 침략하고 정복하기 전에 과떼말라땅에는 마야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들이 고대문명의 력사속에서 평화롭게 오래오래 살고있었다.

하지만 1524년에 에스빠냐침략의 선봉자 Pedro De Alvarado에 의하여 과떼말라는 에스빠냐의 식민지가 되고말았다. 315년동안 과떼말라는 에스빠냐정부의 식민지통치하에 있다가 현지에서 출생한 2세, 3세, 4세 후손들이 본국 에스빠냐정부의 가혹한 식민통치에 견디다못해 항거하고 반항하여 1839년에 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 드디여 과떼말라의 독립을 쟁취하였다.

독립을 쟁취는 하였지만 과떼말라에 또다시 새로운 봉건주의적독재정권이 등장하여 험난한 력사는 끊임없이 계속되였다.

1898~1920년에 독재자 Cabrera가 통치하였고 1931년에는 Castaneda장군이 집권하면서 무서운 군사독재정권이 1943년까지 계속 되였다.

독립을 하든말든 그것은 백인지배자들끼리 하는 이야기이지 토착원주민들에게는 독립이라는 말은 하나의 그림의 떡이였고 아무 의미도 없는것이였다. 왜냐하면 독립된 나라에서 원주민에 대한 정책은 오히려 더 엄하고 가혹해질수도 있기때문이였다.

과떼말라에서 마야족원주민에 대한 무서운 학살은 독립전이 아니라 오히려 독립후에 있었다.

력사의 어두운 쥐구멍에도 해빛이 드는 날이 있었던가?

1944년에 과떼말라에는 《창세력사》이래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말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인민혁명》,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좌경화운동》, 《자유민주주의단체련합체》, 《가난한 빈곤층 근로대중해방》…

그들에게는 들어보지 못한 낯선 말들이였다.

도대체 이런 낯선 단어들은 과떼말라력사이래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다. 순진하고 평생 눌리여만 살던 토착인들에게는 신기하고 어리둥절할뿐이였다.

1944년 10월에 Juan Arevalo가 이끄는 좌경학생들과 사회적으로 의식화된 지식인들이 이끄는 사회주의혁명운동이 일단 성공하였다. 무서운 독재자 Castaneda 장군은 혁명세력에 의하여 권좌에서 축출되고 끝이 보이지 않던 암흑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하여 1945~1951년에 Juan Arevalo가 대통령이 되여 력사이래 처음으로 과떼말라에 민주주의정부를 창설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1951~1954년에 Jacobo Guzman대통령이 집권하였다.

Jacobo Guzman대통령은 과떼말라에 진보적민주주의나라, 만민평등의 나라, 로동자, 농민들을 노예와 착취로부터 해방시키는 새 나라를 건설한다고 선포하였다. 과떼말라가 거대한 력사적 큰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였던것이다.

하지만 과떼말라가 시작한 거대한 발걸음은 하나의 허무한 꿈으로 사라지고말게 되였다.

미국이 동남북아시아나라들을 친미사대주의적예속국가로 만들고있던 그때에 까리브의 작은 나라 과떼말라에서 사회주의적민주주의나라가 등장하는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던것이다.

미국은 드디여 1954년에 Calos Armas륙군대령을 등장시켜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정권은 과떼말라의 좌경사회주의자 Jacobo Guzman대통령을 축출하고 그를 메히꼬로 망명을 시켜 돌아오지 못하도록 처리하였다.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독재정권을 세워놓은 후 미국은 뒤에서 그를 지속적으로 조종하고 지원을 해주므로 과떼말라에서 군사독재정권이 34년동안이나 지속되게 하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Calos Armas대령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7년동안 무서운 독재를 하면서 추방과 학살로 과떼말라를 피로 물들게 하였다.

그의 후임으로 1982~1985년에 력사상 최악의 살인마 Rios Montt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 두 대통령이 집권하는 기간에 그 무시무시한 살인행각이 계속되였는데 이른바 좌익분자 5 000명을 학살하였고 무고한 마야족인디안 20만명을 살해하였다.

1977년에 미국은 국제여론때문에 체면상 과떼말라군부에 대한 군사원조를 일부 삭감하는 연극을 연출하기는 하였지만 그것때문에 군부독재가 물러나지는 않았다.

한편 미국의 체면때문에 군부독재자들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1986년부터는 형식적인 《민주》선거를 통한 우익독재정권을 창출하는 방법으로 과떼말라에 대한 미국의 지배통치를 계속 유지하였다.

세계여론으로 인하여 사면초가에 이르게 된 과떼말라정권은 1996년 12월에 Alvado Irigoyen대통령이 유엔의 승인과 미국의 동의를 얻어 유엔의 감시하에 과떼말라의 내란을 종식시키는 평화조약(Peace Agreement)에 서명하였다.

유엔은 3인의 《분쟁종식위원회》를 임명하여 과떼말라의 인종말살현황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유엔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 보고서는 5 000명의 좌익분자학살과 20만명의 인종말살정책으로 인한 사망을 확인하여 유엔에 보고하였다. 그뿐만아니라 미국의 클린톤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한데 대한 공식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클린톤대통령의 사과는 정치적수단의 말뿐이였고 우익보수정권의 횡포는 여전히 계속되였다.

2003년에 진행된 과떼말라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저마다 과거에 군사독재정권이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사죄하는 발언을 열심히 하였다. 우익후보자들의 사죄발언들은 가소롭게 비겁할뿐 진실은 없었다. 더욱 가소로운것은 량민학살의 장본인 Rios Montt 전 대통령이 재출마한것이였다. 쿠데타에 관여한 범죄자는 공직에 출마를 금지하는 과떼말라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출마를 하였다. 결과는 보기 좋게 락선되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떼말라인민이 이제는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이 나라 국민들의 사회의식이 성숙해지고있었다.

2003년 선거는 제1차 투표에서 아무도 과반수를 얻지 못하고 제2차 투표에서 우익후보자 Oscar Berger와 중도좌파후보자 Alvaro Colom이 대결하였으나 아쉽게도 중도좌파후보자 Colom이 락선되였다.

하지만 2007년 11월 4일에 실시된 과떼말라대통령선거에서는 《희망전국련대》의 중도좌파후보자 Alvaro Colom이 52. 7%의 득표를 얻었다. 과떼말라독립(1839)이후 최초로 민선에 의한 대통령이 되였다.

락선을 한 보수주의우파후보자 Gen. Otto Perez는 막강한 권력과 경력을 과시하는 전 륙군장성 정보부장이다. 하지만 진보적좌파후보자에게 패배하였다.

Colom당선자는 2008년 1월 14일에 대통령취임식을 하게 된다. 그는 까리브지역에서 니까라과의 다니엘 오르떼가대통령의 뒤를 이어 두번째로 좌파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Colom당선자는 남아메리카나라들중에서 10번째 좌파정권의 대통령이 된다.

Colom당선자는 당선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선거공약에 이미 발표한 말그대로 전체 인구의 절반이상이 하루소득 2US$가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농민과 로동자근로대중의 빈곤퇴치를 최상의 과업으로 삼겠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는 남아메리카에 이미 불어닥치고있는 반미좌파정권들과 뉴대를 강화하고 련대하여 남아메리카공동의 주권을 회복하는데 힘쓰겠다고 언명하였다. 그는 또 과떼말라는 남아메리카에서 범죄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서 1년에 평균 5 000명이 살인사건으로 사망하는 현실을 감안하여 사회안전책을 제일의 정책으로 삼을것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과떼말라의 중도좌파 Colom후보자의 당선과 그의 당선소감을 듣노라면 다가오는 《한국》의 《선거》를 떠올린다. 말도 안되는 후보자들이 여론조사의 선두를 달린다는 웃기는 선거판이 진행중이다. 더운날의 소나기처럼 우리를 일깨워줄 12월을 생각하게 한다.

 

 

      과떼말라의 수수께끼

 

과떼말라의 인구는 1 270만명이다. 인구의 90%이상이 카톨릭교와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한다. 미국의 해외선교사수는 4만 5 000명인데 이 많은 선교사의 대부분이 남아메리카에 파견되였다. 이들중 상당수의 신구교선교사들이 과떼말라에서 60년, 80년대에 걸쳐서 선교활동을 한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과떼말라에서 5 000명의 좌경화된 사람들을 비인도적으로 학살하고 또 아무 죄가 없는 20만명 인디안원주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한데 대하여 그 많은 선교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있었단말인가?

많은 책들과 보고문서를 통하여 밝혀진바에 의하면 미국CIA와 선교사들은 남아메리카의 《경제개발과 반공주의》에 있어서 거의 전적으로 밀접하게 동조하였다고 폭로하고있다.

《CIA도 교회는 간다. 하지만 기도하러 가는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CIA와 교회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미국인 죤 디 마이크스가 쓴 책에 의하면 CIA요원들이 비밀공작을 하기 위해서 목사이든 신부이든 또는 승려나 수녀라도 필요하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리용하고 활용하였다고 고백하였다. 그가 회견한 사람들중에서 50%이상이 CIA와 교회가 비밀로 관련된 사건들을 직접 보고 알고있다고 대답하였다.

또 미국의 CIA요원이 선교사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활용하기 위하여 자신이 《매리놀회》의 신학교에 직접 입학하여 학생의 신분으로 과떼말라에 가서 비밀리에 선교사들과 함께 활동을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미국의 력대 대통령들은 과거 랭전시대에 남아메리카에서 벌린 CIA의 모든 불법적인 공작을 시인하였다. 미국은 자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타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극히 모순된 나라이다.

그렇다면 Colom당선자가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업은 수수께끼가 아닌가?

사실 지난 2007년의 과떼말라대선은 사회안전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이번 선거기간에 각 정당들의 무질서한 분쟁으로 인하여 50명이 사망하였고 Colom당선자가 속한 당의 당원이 지난 2년동안에 20명이나 죽었다. 선거기간동안 치안을 위하여 3만명의 경찰과 군인이 동원되였다.

마약과 깽으로 2007년에 5 000명이 사망하였다. 총인구의 절반이 넘는 700만명이 하루수입 2US$로 겨우 살아가고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현상이 있다. 과떼말라의 극소수 부자들은 자가용비행기를 소유하고있다. 그들은 물론 전부 백인들이며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기업가들이다. 우익이 아닌 정당은 오래 생존하지 못하고 생겼다가 없어지고만다. 1985년이후 오늘까지 30개 정당이 생겼다 없어졌다고 한다.
《민주주의》혹은 《민족주의》등의 명칭을 가진 정당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왜 그런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막후에 미국이 있기때문이다.

노벨평화상을 탄 인디안출신의 과떼말라녀성지도자가 대통령후보자로 나서면 3%의 득표률을 받는것이 과떼말라의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있는 친미기득권지배계급에 속하는 과떼말라사람들은 Colom당선자를 달가와하지 않는다. 영국계든 프랑스계든 에스빠냐계든 관계없이 Colom당선자에게는 모두가 힘버거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Colom당선자는 《나는 좌파가 아니고 중도좌파다.》라고 말해왔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리유를 충분히 리해할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그는 《이스파노 아메리카》에서 10번째로 근로인민을 우선으로 하는 정권을 창설해 그 방향으로 나갈것만은 확실한것으로 보인다. 그의 투쟁의 힘과 신념은 바로 그의 종교이며 그의 신앙이다.

 

 

      과떼말라의 력사적교훈

 

2007년 3월 26일에 과떼말라에서는 놀라운 력사적광경이 벌어졌다. 《이스파노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중에서 24개 나라의 토착원주민대표들이 함께 모인 큰 대회가 열리였다. 수천명의 대표자들이 과떼말라에 모여서 장장 2주일간 대회를 진행하였다. 놀라운것은 이 대회의 성격이다. 이 대회는 례사로운 토착원주민들간의 친목과 단합만을 위한 대회가 아니였다. 이 대회의 성격은 미래지향적인 남아메리카원주민전체가 결합하고 련합하는 대회로서 기본적으로 확실한 《정치적대회》였다.

보다 더 놀라운것은 이 대회를 시작하는 개회식진행광경이였다. 얼마전에 미국의 부쉬대통령이 남아메리카순방길에서 과떼말라를 잠간 통과하여 지나갔는데 이 대회에서는 부쉬가 과떼말라를 통과해 지나가면서 길에 떨어뜨리고간 《더러운 부정》(bad spirits)을 깨끗하게 정화시킨 후에야 비로소 인디안들의 중대한 대회를 시작한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과떼말라의 마야부족종교의 사제가 집례하는 《정화례식》을 마야부족의 성산인 Iximche산에서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엄숙하게 진행하였다. 반미감정에 사무친 원주민들의 원한을 잘 표현한 의미심장한 《정화례식》이였다. 남아메리카원주민들의 과떼말라대회는 이런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회의진행은 6개 분과로 나누어서 론의를 진행하였는데 분과토의마다 남아메리카원주민들의 미래를 정치적힘을 육성함으로 타개해나아가야 한다는데 견해를 일치하였다.

놀라운것은 이번 대회에서 볼리비아의 원주민출신인 모랄레스대통령을 차기 노벨평화상수상자로 추천한 일이다. 원주민인디안이 남아메리카에서 반미투쟁의 본거지중의 하나인 볼리비아에서 현직대통령으로 활약하고있다는 사실과 또 그를 노벨평화상후보자로 추천을 하였다는것은 길이길이 남을 력사적사건이 아닐수 없다.

남아메리카원주민들의 정치적인 대회가 2007년 3월에 진행된데 이어 과떼말라에서는 2007년 11월에 좌파후보자인 Colom이 미국이 지원하는 막강한 상대자를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해볼 때 이 모든것이 과떼말라의 력사에서 어떤 운명적전환점을 알려주는 서광의 빛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 서광의 빛이 말해주는 력사적교훈은 무엇일가?

과떼말라의 인구비례는 백인 59. 4%, 원주민 5개 부족을 통합해서 40. 6%이다. 그런데 Colom 52. 7%의 득표로 당선이 되였다. 이것은 놀랍게도 원주민들의 5개 분파가 완전히 단결하여 Colom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증거이다. 원주민들의 놀라운 단결의 힘이 승리를 쟁취하였다.

더욱더 사변적인것은 과떼말라의 백인유권자중에서 약 6%가 원주민과 합세함으로써 좌파후보자 Colom이 당선되였다는 사실이다.

과떼말라인민들은 수세기동안 세계에서 너무나도 고립된 상태에서 에스빠냐의 식민지적착취를 당해왔다. 19세기에 들어서서는 미국의 남아메리카진출로 인하여 독점자본가들에게 혹독한 착취를 당하면서 살아왔다.

과떼말라에 대하여 력사는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과떼말라여, 너는 하늘로부터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미국에게는 너무 가까이 있다.》

하지만 과떼말라는 죽지 않았다. 과떼말라는 2007년 11월에 력사상 처음으로 대중적인 선거혁명을 일으킴으로써 빼앗겼던 행복과 자유를 다시 찾았다. 그들의 가슴에서 솟구쳐오르는 분노와 정의는 높이 치솟아 하늘에 다달았다. 그리고 미국의 침략의 마수는 점점 멀리멀리 떨어져나가고있는것이다.

이제 미국에게는 과떼말라의 민심을 통한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과제만이 남아있을뿐이다. 미국은 지난 기간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서슴없이 온갖 술책을 다해오다가 마지막에는 무고한 원주민들을 20만명이나 집단살해하는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하였다.

과떼말라는 이런 과거의 어둡고 외곡된 낡은 력사를 《선거혁명》을 통한 인민대중의 힘으로 주체적으로 과감하게 고쳐나아가고있다.

그렇다. 진실과 정의, 민족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 오직 이 힘만이 군사대국 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과떼말라의 최강의 보루이다. 이것이 과떼말라의 현주소로부터 얻을수 있는 력사적교훈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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