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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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명절일색으로 단장되여 설레이는 4월의 어느날 밤 정평군의 한 자그마한 역에 북행렬차가 멎어섰다. 회색 닫긴옷차림의 나이지숙한 사람이 홈에 내려섰다.
그 사람은 홈의 웃쪽으로 걸어가서 저 멀리 산기슭에서 반짝이는 농장마을의 불빛을 침울한 얼굴로 바라보며 움직일줄 몰랐다. 송규태였다.
그는 당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자기를 뉘우쳤으며 인민경제대학에 가서 공부하며 사상단련도 더 하라는 결론이 내리자 탄광이나 광산, 어려운 부문에 가서 로동계급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자신을 혁명화하게 해달라고 절절히 청원하였다.
며칠전 그 소원이 가까스로 이루어져 함경북도의 기계화수준이 가장 높은 광산으로 가는 길이다.
떠날 때에는 고향에 들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은은한 경적소리와 함께 북행렬차가 향촌의 역에 멎자 외면할수 없는 가책에 떠밀려 땅에 내려섰던것이다.
거의 30년만에 밟아보는 고향땅이였다. 어스름속에 서서 고향마을의 불빛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그것들이 모두 놀라서 초롱초롱 눈을 밝히며 자기만을 지켜보는듯… 어찌보면 불찌로 되여 날아와 가슴을 지지는듯 하였다.
가슴이 저렸다. 광복후의 학창시절, 전쟁, 복구건설… 온갖 추억들이 휩쓸어들어 가슴이 커지는듯 하였다. 전쟁의 일시적후퇴시기 세포위원장인 아버지는 적들에게 체포되여 감자움에 생매장되였다. 움속에 구겨박힌 아버지는 머리우로 흙소나기가 쏟아져내릴 때 마지막숨결을 다하여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하였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송탄군의 책임비서로 사업한 초시기만 하여도 제사날같은 때 술에 거나해져 눈을 감으면 아버지의 그 부르짖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것 같았다. 그후에는 일에 쫓겨 아버지에 대한 생각 같은것은 까마득히 잊게 되였고 간혹 생각한다고 해도 그 피타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서늘하고 눅눅한 대기를 흔들며 저 멀리 어둠속에서 그 부름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다.
그는 이 30년동안 자손들이 찾아오지 않아 무주고혼처럼 되여버린 아버지의 묘로 찾아가 엎드려 절을 하고싶었지만 한편 생각하면 그렇게 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고향사람들은 누구의 아들 아무개가 어디서 군당책임비서로 일한다, 도행정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였다, 싸리그루에서 싸리가 자란다더니 싸리정도가 아니라 싸리거목이 자라올랐다고 자기를 고향땅의 자랑으로 여기면서 아버지의 묘를 알뜰히 거두어주었을것이다. 이제 그 소박한 사람들이 이런 꼴이 된 나를 본다면 얼마나 실망할것인가. 고향사람들을 만나기 창피스러웠다.
두 장정이 옆으로 지나가며 낯익은지 흘끔흘끔 돌아보았다. 송규태는 황황히 돌아섰다.
침대칸에는 새 손님 둘이 들었다. 환갑이 썩 지나보이는 무던하게 생긴 늙은이와 약삭바르게 생긴 20대의 젊은이였다. 송규태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상단의 자기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인차 기차가 떠나기 시작하였다.
번듯이 누운 그는 이마에 팔을 얹으며 눈을 감았다. 전기기관차의 은은한 경적소리… 서서히 멀어지는 고향의 불빛들이 선히 떠오르며 가슴이 찢기는듯 아파났다.
북행렬차는 끝없이 달리고 그는 잠을 청하려 했으나 정신이 점점 더 맑아지며 온갖 괴로운 생각들이 가슴에 갈마들었다.
하단침대의 손님들은 태평스럽게 쩝쩝 입소리를 내며 무엇인가 부지런히 먹고있었다. 그들은 농장살림살이며 연유절약, 뜨락또르부속품의 구입, 어느 작업반장의 요령주의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화제가 평양으로 뛰여가 경축행사에 온 외국의 당대표들을 꼽아내려갔다.
《에- 수태 왔구만… 고문아바이, 영국신공산당이란건 뭐인가?》
《신공산당? 처음 듣는 이름이다?… 거야 새로 생긴 공산당이란 소리겠지…》
《음, 그 소린가… 무슨 운동이란것도 많던데… 로씨야에서두 무슨 공산당, 무슨 공산주의당, 무슨 운동 하는 따위들이 여러개 왔는데 그것들은 쏘련이 망한 다음에 생긴걸가?》
《그렇겠지, 에- 머저리들, 그렇게 망하다니, 쯧쯧쯧…》
《령도자를 잘못 만나 그렇게 망했대요, 간부들은 인민들한테 관료행세를 하구…》
《그런 소리두 있더구나. 한심해서…》
《아바이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여기가 뜨끔하지 않습데?》
《내가 왜 뜨끔해? 엉?》
《아바이, 관리위원장 20년에 관료주의를 얼마나 부렸소다?》
《내-가?- 야 야, 그런 흰소리 그만둬라.》
《챠- 이거 좀 늦게 나와두 욕질, 뜨락또르가 배추 몇포기를 깔아두 벌금이다 뭐다-욕질…》
《이녀석아, 그건 관료주의가 아니야. 요구성이지.》
《헤헤헤… 뒤에서 뭐라고 했는지 아시오다?》
《뭐라고 했니?》
《돌아가시면 묘에서 삼년동안은 욕설이 나올거라구 했소다. 히히히…》
《하, 고약한놈들… 그런게 다 관료주의라구 해두 쬐꼬만 관리위원장이 어째서는 나라가 어떻게 되지 않아. 도쯤에 있는 높은 간부들이 그러면 몰라두…》
《히야… 도당에 있는 외삼촌이 그러는데 지도자동지께서 제일 싫어하는게 관료주의, 세도, 인민은 눈밖이구 제혼자 잘살겠다구 하는게라오. 당일군이 그러문 당관료, 당세도가 되기때문에 아예 지레 용서가 없다우.》
《우리 지도자동지 제일이야…》
《… 제일이야…》
죽은듯이 까딱 움직이지 않고 누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송규태는 모진 후회와 가책으로 가슴이 찢어져 조용히 신음소리를 내였다. 저 청년이 내가 홍수때 제 한몸을 아껴 송탄으로 가지 않고 피했다는걸 알면 나를… 나를 무엇이라고 할것인가?! 아, 나는 왜 그런놈으로 되였던가, 왜?… 왜?… 인민들이 믿고 존경하고 따르니까 차차 자기를 사람들우에, 인민우에 군림한 특수한 존재로, 인민을 다스리는 권력자로 여기게 되고… 그래서 소박한 사람들과 점점 멀어졌어… 인민이 안중에 없고 제 살 욕심만 부리구… 결국 나는 사회주의사회의 공기를 흐려놓는 존재로 되지 않았는가.… 당일군으로 있을 때에는 그래도 책임비서라는 높은 정치적자각으로 하여 스스로 자기를 통제하고 다잡았는데 행정경제일군이 되자 그 탕개가 풀렸단 말인가…
전선에서 아버지가 생매장되였다는 비보를 받고는 피눈물을 뿌리며 다시는 누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이 제도를 지켜 싸운 내가 아,… 인민대중속에 들어가라, 인민대중과 혼연일체가 되라, 인민의 충복이 되라… 수령님께서 광복직후부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당사업을 령도하신 첫날부터 얼마나 강조하시였던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하라는대로 하지 않아 나는… 내 운명은 이렇게 되였다.
무심결에 모로 돌아누우며 저려드는 가슴을 쓸어만지는데 안주머니에서 유별나게 빨락거리는 종이같은것이 감촉되였다. 꺼내보았다. 아들의 편지였다. 벌떡 일어나 일부인을 보니 어제 온것이 분명하였다. 다심한 안해가 집을 떠나는 자기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가봐 후에 읽어보라고 몰래 넣어준것 같았다.
그 편지를 단숨에 읽었다. 기선이는 자기때문에 아버지가 잘못되였다고 시라소니, 날강도, 불효막심… 온갖 극단적인 표현을 쓰며 자신을 타매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이 몇달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자기를 반성하며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서는 깨끗한 량심과 성실한 노력으로 살아야지 일은 적게, 헐하게 하고 수놀음과 협잡으로 더 많이 받아, 더 잘살자고 했다가는 도적이나 다름없는 죄인으로 된다는것을 심장으로 깨달았습니다…》
송규태는 편지를 쥔채 자리에 번듯이 누웠다. 환기창으로 불어드는 시원한 바람에 머리칼이며 편지지가 나붓거렸다.… 만약에… 만약에 나와 같은 일군이 많다면 우리 사회주의제도도 쏘련이나 동유럽나라들에서처럼 인민들의 버림을 받게 될것이다. 그래도 당에서는 나한테 재생의 길을 열어주고 저녀석은 평양가까이에서 혁명화하게 하고… 아, 얼마나 고마운가!
북행렬차의 은은한 경적소리… 길게 끄는 그 여운을 타고 아버지의 피타는 부르짖음소리가 아스런히 들려오는듯 하였다.
그의 눈꼬리에서 뜨거운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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