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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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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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평양의 봄, 4월의 봄은 전에없이 아름답고 화창하여 사람들의 가슴을 환희와 희망으로 한껏 부풀게 하였다.
만경봉과 만수대언덕, 모란봉과 대성산 그 어디에나 진달래를 비롯한 갖가지 꽃들이 활짝 피여나고 천리마동상밑으로부터 개선문에 이르는 대통로가녁의 가로수들과 여러 거리의 가로수들에서 며칠사이에 꽃들이 폭발적으로 망울을 터쳐 시대의 기상인양 우뚝우뚝 솟은 고층건물들밑으로 연분홍의 구름떼가 굽이쳐흐르는듯 하였다. 눈부신 해, 푸른 하늘, 대지와 대공이 풍기는 봄의 훈향에 온 도시가 설레였다.
수도의 화려한 극장무대들에서는 년례적인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벌어져 행성의 모든 대륙에서 온 유명짜한 예술인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바야흐로 무르녹는 봄을 더욱 우아하게 장식하였다.
이즈음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 류수진박사는 개인적인 사연과 공적인 사업으로 한생의 어느 시기에도 없었던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개인적인 사연이란 사위감인 제대군관 오영준이 마지막수술을 하였으나 하지신경선이 이어지지 않아 거기에 마음을 쓰며 대학병원으로 찾아다녀야 하였다. 공적인 사업이란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80돐 경축행사준비위원회 한 분과를 맡아 그야말로 눈코뜰사이가 없었던것이다.
그는 어찌나 바삐 돌아갔는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이 드문히 있었다. 어느날 밤이 깊어 집으로 돌아가니 안해가 방아래목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있었다. 눈처럼 하얀 옥당목천에 꽃수가 놓인 베개잇을 깁는중이였다. 병원에서 오영준이 베고있는 베개가 좀 높은것 같아 베개를 새롭게 만든다는것이였다.
안해의 그런 모습을 보자 수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여보, 이런 베개를 베워주면 영준이가 얼마나 좋아하겠소. 요새 병원에 한번 찾아가보지 못해 정말 미안하오.》
《당신이 지금 어떤 중임을 맡고있나요. 병원일은 나한테 다 맡기라요. 어제 기술부원장선생님이 영준의 하지체온이 오른다고 기뻐하면서 이제 꼭 일어선다고 했어요.》
그는 안해의 두손을 따뜻이 잡아쥐고 부르짖었다.
《그러면 그럴테지. 당신의 지성이 은을 내는거요!》
《아이, 그런 말 말아요. 지도자동지께서 얼마나 보살펴주셨나요!》
어느날 그는 전화종소리들이 간단없이 울리고 사람들의 출입이 번잡한 분과사무실에서 사회주의가 전복된 북방의 대륙에서 오게 되는 대표단들의 명단을 받아 그 구성을 살펴보다가 낯익은 이름, 벗의 이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글레브 라옙쓰끼… 로씨야사회주의근로자당대표단 부단장… 같은 이름의 그 어떤 미지의 인물이 아닌가싶어 인물료해카트를 보니 생년월일, 출생지, 가정환경, 학력… 틀림없이 그 라옙쓰끼였다.
운명의 곡절과 번민, 방황을 걸쳐 마침내 진리에 도달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조직에도 참가했으며 오늘은 그 당대표단 부단장으로 우리 나라에 오는 라옙쓰끼, 그가 오는것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류수진은 때마침 곁으로 다가온 한석비서에게 그에 대하여 대충 말하였다.
한석은 연고관계가 있는 사람인데 각별히 반갑게 맞이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래일 도착하는 로씨야의 대표단들속에 있을테니 비행장에 나가 잘 환영해주라고 하였다.
이튿날 오전 평양비행장은 환영나온 각계층 시민들로 떠들썩하였다. 지구의 서반구 저쪽에서 날아온 은회색 대형려행기가 활주로에 내려 달리다가 서서히 멎고 형형색색의 유럽사람들과 아프리카사람들, 아랍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자 환영군중들은 수기며 꽃다발을 흔들며 비행장이 떠나가게 만세를 부르면서 환호하였다. 류수진은 한석비서를 비롯한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의 뒤에 서서 손님들의 손을 힘껏 잡아주기도 하고 포옹도 하였다.
로씨야사람들은 제일 마감으로 내렸다. 한석비서와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대표단 단장들이며 수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떠들썩하게 인사말들을 나눌 때 수진은 손님들속에서 라옙쓰끼를 인차 알아보았다.
라옙쓰끼는 쉐레메쩨브- 2국제항공역에서 동창회에 간 수진을 만났을 때처럼 반색이란 별로 없이 시무룩한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아흔들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코밑에 더부룩하던 수염을 밀어버려 시퍼런 면도자리가 눈에 띄는것이였다. 그는 수진의 손을 놓으며 누가 왔는지 보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식사다리밑에 은발의 녀인이 못박힌듯 서있었다. 독실한 이슬람교도녀성들처럼 온몸을 가리운 검은 옷차림, 바람결에 흐느적이는 하르르한 팔소매며 치마자락…
《어째서 당신은 늘 검은 옷을 입고 다니십니까?》
《이건 저의 생활에 대한 상복이예요. 저는 불쌍한 녀자니까요.》
그네들의 극작가 체호브의 유명한 대사를 상기시키는 옷차림이였다.
류수진박사는 숨이 멎는듯 한 격정을 느끼며 그 녀자를 지켜보았다. 분명히 리지야 꾸즈네쪼바였다. 그 녀자는 생소한 대지의 해빛이며 청신한 공기에 얼쳤는지, 하늘땅을 뒤흔드는 열광적인 환호에 주눅이 들었는지 소심한 얼굴, 타는듯 한 눈으로 이쪽을 지켜보고있었다.
승용차는 수도쪽으로 곧게 뻗은 대도로를 따라 살같이 내달렸다. 앞에서는 라옙쓰끼네 대표단을 비롯한 여러 손님들을 태운 승용차들이 달리고있었다.
《나는 리자를 이렇게 다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소.》
《저역시…》
승용차의 뒤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사람은 서먹하여 마주보기도 하고 차창밖으로 흐르는 교외의 봄풍경에 눈길을 주기도 하면서 이야기하였다.
《정말 꿈같소…》
그 녀자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우리 신문사에서 여기로 오게 된 기자한테 사정이 생겨 제가 오게 되였어요…》
《라옙쓰끼와 함께 와서 기쁘오.》
《그가 오는줄은 몰랐어요. 비행장에 와서 만나고 비로소 알게 되였어요.》
《라옙쓰끼는 사회주의근로자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되였더군.》
《요즘 우리한테서는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되여 기절할 정도의 일들이 많이 벌어져요. 지난날의 중앙위원회 2비서가 거부의 장사치로 되는가 하면 교화소 출소자가 무슨 우익정당의 고문으로 되고… 나역시 그렇지요.》
수진은 며칠후에야 그처럼 절망하고 타락했던 리지야 꾸즈네쪼바가 신문 《빠뜨리오뜨》편집국에 근무하게 된 경위를 알게 되였다. 작년말 크레믈리지붕우에서 쏘련기발이 내려질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리지야도 그들속에 끼여있었다. 사회주의조국이 종말을 고하는 이 비극적순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지만 좋아라 껄껄 웃으며 박수를 치는 놈팽이들도 있었다. 그날밤 리지야는 동무네 집 차거운 웃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레닌그라드의 니나 안드레예바를 찾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후 쥬가노브, 안삘로브… 여러 공산주의지도자들을 만났으며 그들을 따라서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리지야를 신문 《빠뜨리오뜨》편집국에 넣어주었다.
그 녀자는 쓸쓸한 얼굴로 차창밖을 내다보기만 하였다.
류수진박사는 석달전에 사회주의대국의 붕괴라는 크나큰 상실을 당한 사람한테 외국려행인들 남들처럼 기쁘랴싶어 거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박사의 추측은 옳았다.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크나큰 상실을 당한 다음부터 밝은 색갈이 싫어졌다. 일체 명랑한것이 역겨워졌다. 멋없이 유쾌하게 떠드는 놈팽이를 보면 혐오감이 북받쳤다.
누구하고 흉금을 터놓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대신 자기하고 혼자 속으로 이야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여 그 녀자는 손님의 례절을 지켜 가볍게 웃기도 하고 이따금 묻는 말에 대답도 하였지만 차창밖으로 흐르는 평양교외의 풍경을 보며 혼잡속으로 끝없는 이야기를 하는것이였다.… 밭들이 어쩌면 저리도 규모있게 정리되였을가, 조선사람들의 근면성은 듣던바과 같아, 저 야산들에 핀 연분홍꽃들은 무슨 꽃일가. 아 봄, 평화로운 봄…
차창밖으로 살구꽃이 하얗게 핀 가로수들이 흐르고 차안에 향긋한 냄새가 떠돌았다.
차가 시내에 들어서자 그 녀자는 차창에서 눈길을 뗄줄 몰랐다. 명절일색으로 단장된 거리, 웅장화려하면서도 씻은듯이 깨끗하여 신선한 기운을 풍기는 고층건물들의 흐름… 여기저기에서 환성을 터치며 날아오는듯 한 영어, 중어, 로어, 프랑스어, 에스빠냐어의 장식구호들 《환영》, 《친선》, 《단결》, 《평화》…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외국손님들을 반기며 손을 흔드는 행인들에게 손짓으로 답례를 보내기도 하고 현대적건축미를 자랑하며 높이 치솟은 고층건물들을 가리키며 저것들은 무슨 건물인가고 묻기도 하였다. 류수진은 그 물음들에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 녀자는 한참 차창밖을 내다보다가 현기증이라도 나는듯 좌석등받이에 기대여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가로수의 그림자가 그녀자의 해쓱한 얼굴로 언뜻언뜻 날아지나갔다.… 모스크바사람들속에 현대평양의 이런 모습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동방학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어떨는지…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있었어. 로씨야인테리들속에는 아시아에 대한 무식을 일종의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 만약 빠리나 런던에 대하여 그 어떤 무식을 드러냈고 그것이 화제에 올랐다면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지지만 아시아에 대해서는… 울라지미르 레닌까지도 로씨야현실에서 문화적인 락후성, 후진성을 목격하게 되면 아시아적인 락후성이라고 질책했지. 로씨야의 현실에서 보는 락후성인데도 로씨야적인 락후성이라고 하지 않고 아시아적인 락후성이라고 했지. 물론 일리이치께서는 중세기 락후한 아시아를 념두에 두고있겠지만 아시아적인 락후성… 아시아적인 락후성… 이 말은 우리 세대에 와서도 생활어로 고착되였어.
흐르쑈브가 열어놓은 《해빙기》가 오자 인테리들속에서 서구에 대한 동경은 하나의 풍조로 되고 아시아에 대한 무시는 생활습성으로 굳어졌지. 서방중시, 동방경시, 이 경향은 우리 경제발전에도 엄청난 후과를 미쳤어. 만약 쏘련의 력대 지도자들이 서쪽 못지 않게 동쪽을 중시하여 자원이 무진장한 씨비리를 대대적으로 개발했더라면 우리 세대에 와서 쏘련경제는 미국과 서구의 경제를 누르고도 남았어. 작가 게르쩬은 지난 세기에 벌써 연해주앞바다가 지중해처럼 통상이 끓어번지게 되여야 로씨야가 부흥한다고 예언했지. 19세기 혁명적민주주의자가 본것을 20세기 공산주의 정치지도자들은 왜 보지 못했는가.
쓰딸린시기는 꼼쏘몰쓰끄를 건설하고 노보씨비리쓰끄를 씨비리의 과학중심으로 크게 꾸렸지만 그후에는… 고르바쵸브시기에 와서는 서구중심사상이 완전히 인테리계를 휩쓸었어. 어느 누구도 동방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지. 좋은 경험은 참고하고 탁월한 사상은 그것이 서방에서 나왔건 동방에서 나왔건 알아야 하겠는데 그러지 못했어. 쏘련이 붕괴된 다음에야 모스크바에 김정일동지의 철학론문들과 정치론문들이 돌아갔는데 그것들을 읽고 개탄했지. 우리는 왜 이제야 이런 사상에 접촉하게 되는가… 아프리카보다도 늦게… 쏘련이 붕괴된 수많은 원인들중의 하나는 서방중시, 동방경시의 풍조와도 관계된다. 만약 평양이… 이런 신흥대도시가 오데르강 저쪽에 있었더라면 우리 모스크바의 인테리들속에 화제거리로 되였을것이다…
리지야의 입가에 싸늘한 비양조의 미소가 어리였다.
류수진박사는 그 녀자의 딸 쓰웨따의 운명에 대하여 몹시 알고싶었다. 그러나 만약 딸을 아직도 못찾았다면 그 녀자의 가슴속상처를 아프게 자극할것이라고 생각하여 먼저 묻는것을 삼가하였다.
그날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다른 손님들과 함께 고려호텔에 들게 되였는데 수진은 왼심을 써서 그 녀자를 31층 구석쪽의 아늑한 호실에 넣었다. 수진은 하루종일 소면담실에서 대표단 단장들과 방문일정을 비롯한 중요한 문제들을 토론하고 저녁녘에 리지야 꾸즈네쪼바의 호실로 찾아갔다.
그 녀자는 푹 쉬며 로독을 풀고나서 방금전까지 시가를 내다보고있은듯 창가름을 활짝 열어놓고있었는데 방안에는 향긋한 담배냄새가 떠돌았다. 그들은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웨베르라고 생각나오? 민주도이췰란드 류학생 칼…》
《우리 학부 축구선수가 아니였던가요?》
《그렇소. 어제 그가 보낸 편지를 받았소. 메히꼬에 망명했더군. 거기 친척이 있어…》
《아…》
《동창회에 갔을 때 그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소. 웨베르는 맑스가 서거한 다음 엥겔스가 인류는 그의 머리만큼 낮아졌다, 공산주의운동의 중심이 없어졌다고 통탄한 그 유명한 말을 인용하며서 레닌, 쓰딸린후에는 중심이 될만 한 수령도 당도 없었다고 … 이러나저러나간에 쏘련까지 허물어지면 끝장이라고 하더니… 가버렸소. 모든것을 포기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졌지요. 두뇌류출이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로… 옛날 중학교때 물리선생이 하던 말이 생각나요. 우주의 중심에서 거대한 항성이 꺼져버리고 인력이 사라지면 그 둘레를 돌던 행성들이 서로 부딪쳐 박산이 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고… 산산 부서진 쪼각들이 다른 인력권으로 날아든다고… 그때는 그런 이야기가 환상적인 추리로만 생각되였는데… 아, 무서운 일이예요. 정말 그 비슷한 참사가 벌어졌어요. 민족분쟁, 서방에로의 대대적인 탈출…》
그 녀자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어떻다고 말할수 없는 심각한 눈빛으로 수진을 지켜보며 두손으로 그의 한손을 꼭 잡아쥐였다. 그 녀자의 싸늘한 손바닥에서 전률이 느껴졌다.
《모두 행복하겠지요? 아버님도 부인도 딸도…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한다는 동생도…》
《그럼, 다 잘있소. 우리는 모든게 정상이요.》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갑자기 그의 손을 자기에게로 와락 끌어가 손등에 볼을 대였다. 그리고는 눈을 꼭 감고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리자…》
《…》
그 녀자의 속눈섭에 이슬이 맺혔다.
《왜… 왜 이러는거요?》
《이 나라가 전복되면 거기 가정도 우리 가정처럼 되여요.… 당신의 딸도 나의 스웨따처럼…》
《리자… 우리는 든든하오.》
《아니… 아니예요.》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그의 손을 놓고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그 녀자의 동실한 어깨가 오르내렸다.
《세계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쏘련도 허물어졌는데 작은 조선이… 미제국주의자들이 경제봉쇄를 하며 압살하려고 발광하는데 어떻게 견뎌요? 우리 로씨야대표들속에는 이번 경축행사가 사회주의조선의 마지막명절로 될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비방이나 중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진심에 넘친 동정이예요. 평양으로 날아오는 비행기안에서도 우려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였어요. <개편>조류가 흘러들지 못하게 강한 조치를 취해 무사했지만 이제 제국주의자들이 봉쇄, 압살책동을 계속 강화하면 여기… 당신들한테서도 지진이 일어난다는 견해도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류수진박사에게는 라옙쓰끼가 떠올랐다. 그는 아연해져 피기가 가신 얼굴로 리지야의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요?! 그건 공연한 걱정이요. 우리 나라는 철벽이요. 우리 사회주의는 허물어지지 않소!》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쏘파에로 돌아와 진정어린 눈매로 몇순간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지켜보다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아니… 벗들사이에 무슨 그런 선동이 필요한가요. 락관주의란 모든 경우에 다 좋은건 아니예요. 말처럼 그랬으면 얼마나 다행일가…》
《모스크바에 갔을 때 라옙쓰끼한테서 그 비슷한 소리를 들었댔소.》
《여기에 라옙쓰끼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그는 비행기안에서도 내내 침묵을 지켰어요.
그 침묵속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새로 생긴 우리 공산주의정당들은 정견이 서로 달라 조선에 대한 견해와 감정도 저마끔일수 있어요.》
수진은 리지야 꾸즈네쪼바의 말에 반감이 컸지만 우정으로 솔직한 말을 해주는데 면박을 주거나 론쟁을 건다는것은 외교사업의 요구에도 어긋나며 인간적인 도리도 아니여서 우리 현실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기를 바란다는 말만 하였다.
그는 한참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로씨야대표단과의 사업에서 난관도 많고 복잡한 문제까지 생길수 있다는 예감에 무거워진 마음으로 호실문을 나섰다. 호텔의 복도와 층계, 승강기, 광실, 매점 어디나 명절기분의 외국인들로 흥성거렸다. 화려한 건물안에 각양각색의 인종과 언어의 전시장이 펼쳐진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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