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영원한 넋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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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선을 횡단하시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현지시찰을 수행하였던 박진건대장은 전선동부 군단지휘부에서 그이의 별도로 되는 지시를 받고 102련대를 거쳐 지금 418련대지역으로 가고있었다.
박진건의 눈가에는 그이와 작별하던 때의 일이 다시금 떠올랐다.
김정일동지의 표정은 심중하시였다.
《새 치약과 새 쌀마대문제는 그저 스쳐지날 일이 아닙니다.
나는 전선동부까지 오는 전로정에서 가끔 그 문제를 생각하였습니다.
부대지휘관들의 눈가림식은 매우 엄중하지만 부정할수 없는것은 부대, 구분대들의 형편이 날로 어려워지고있다는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나는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을 벌려나가는데서 여러 난점이 조성될수 있다는것을 예측해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동무는 곧 102련대와 418련대를 찾아가 대중운동실태를 현지에서 정확히 료해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갈대와 새초만 설레이는 바위투성이의 메마른 땅, 진펄로 혼잡을 이룬 무연한 고원, 퍼그나 낯익은 고장이 박진건의 눈앞으로 흘러가고있었다. 그는 5년전까지만 하여도 여기 전선중부에서 군단정치위원을 하였다.
박진건은 총정치국과 군단으로 오가는 사이 많은 경험을 체득했고 시야도 넓어졌다. 그러나 이미전부터 느껴오는 문제이지만 그이의 요구에 따라서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은 나날이 더 커가기만 하였다.
새 치약과 새 쌀마대문제만 해도 그렇다. 박진건은 처음 일부 지휘관들의 그릇된 눈가림식사업태도를 두고 그자체에만 문제의 엄중성을 부여하려 하였다. 그러나 102련대를 료해하는 과정에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예측하신것과 같이 제국주의자들의 끈질긴 봉쇄와 제재의 후과로 군인들의 식량은 그시그시 긴장하게 보장되고있지만 군인가족들에 대한 식량공급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있었다. 산기슭의 여기저기 껍질을 벗기운 소나무들이 실태를 증명해주고있었다.
식량문제만이 아니였다. 전투기술기재의 수리정비, 진지공사, 삭도건설, 후방토대를 꾸리는 사업도 힘겹게 진행되고있었다.
실태는 이렇듯 간고하였지만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을 대하는 부대장병들의 열의와 각오는 비상히 높았다. 조국결사수호에 대한 철저한 자각, 집단주의, 동지애의 미풍을 보여주는 여러 소행자료들을 통하여 박진건은 그것을 확신할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준엄한 현실과 그 현실에 맞서나가고있는 군인대중의 간고분투과정을 보지 못하고 일률적인 요구만 하면서 아래사람들의 준비정도를 저울질만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그 어려운 실태가 418련대라고 102련대보다 나을텐가! …
박진건은 불현듯 운전사에게 일렀다.
《차를 세우오. …》
야산기슭에서 몇명의 병사들이 모닥불을 피우고있었다. 삭정이도 아니요 무슨 번쩍번쩍하는 비닐봉지같은것을 불속에 던져넣는다.
박진건은 호기심을 가지고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세명의 병사들이 놀란듯 자리에서 일어나고있었다. 낯모를 장령이, 그것도 대장의 군사칭호를 단 장령이 다가오자 그들중 오목한 입귀가 인상적인 다부진 몸매의 사관이 구령을 쳤다.
《차렷! 대장동지, 3중대 2소대 2분대는 산나물채취를 하고있습니다. 중사 신금성!》
《쉬엿하오! …》
박진건은 답례를 하고나서 부드럽게 물었다.
《허, 산나물을 채취한다면서 무얼 태우고있나?》
분대장 신금성이가 다시금 몸가짐을 바로했다.
《장령동지, 쓰레기를 태우는중입니다. …》
《쓰레기? …》
박진건은 그제야 모닥불에 타고있는 적지물을 알아보았다. 당과류, 빵, 요구르트, 수지병에 넣은 막걸리, 담배… 그리고 런닝샤쯔, 양말, 지어 실패까지 있었다. 그중 화려한 상표가 찍혀있는 빵봉지를 손짓하며 짐짓 분대장에게 물었다.
《분대장, 저기에 먹어도 안전하다고 썼구만!》
《개나발입니다.》
신금성은 단마디로 부정해버리고나서 흘러내린 담배갑들을 불땀이 센쪽에 올려놓으며 말을 계속했다.
《설사 안전하다해도 그걸 먹는건 개들이나 할짓입니다. 하긴 우리들은 개한테도 저런걸 던져주지 않습니다.》
《음! …》
박진건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세 군인들을 정겹게 둘러보았다.
《자, 우리 여기 앉아서 담배나 한대씩 피우자구! …》
박진건은 풀밭에 자리를 잡으며 그들에게도 어서 앉으라 손짓하였다. 서로 눈치를 보며 따라 앉는 그들에게 담배를 한대씩 나누어주고 라이터불까지 켜들었다.
《담배불도 붙이고…》
신금성이가 사양하였다.
《대장동지, 우린 좀 있다 피우겠습니다. …》
《허, 이거 무슨 군대가 이래? 장령이 피우라면 피울게지.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 장령들이 이렇게 병사들과 마주앉으면 담배도 나누어 피워야 한다고 이르시였소. 그러니 이건 최고사령관동지의 지시이기도 하단 말이요!》
그제야 신금성은 박진건이 켜든 라이터에 조심히 담배불을 붙이다말고 그만 긴장하여 캑캑 기침을 하였다. 그 바람에 모두다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박진건은 한결 자연스러운 분위기속에서 자기도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나서 물었다.
《동무들에게 묻자구. 전연생활에서 제일 그리운것이 뭔가?》
신금성이가 말했다.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우리도 장군님을 초소에 모시고싶습니다! …》
박진건은 불쑥 가슴을 치는듯 한 충격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장군님께서도 지금 동무들을 그리고계시오. 그래서 동무들이 어떻게 지내는가 알아보라고 몸소 나를 동무들한테로 보내시였소.》
《장군님께서 말입니까?! …》
신금성이 감격하여 부르짖었다.
《그렇소, 바로 동무들, 병사들에 대한 걱정으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계시오.》
신금성은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어제 저녁에도 텔레비죤을 보다가 장군님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올해에는 더 수척해지신것 같다고 말입니다. …》
신금성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장령동지, 이제 평양에 가면 장군님께서 우리 병사들때문에 더는 마음쓰시지 않게 잘 말씀드려주십시오. 우리 병사들이 바라는것은 그저 장군님의 안녕뿐입니다!》
《동무들의 그 부탁을 꼭 전해드리겠소. 그리고 여기 산기슭에서 동무들을 만나보았던 일도 다 말씀드리겠소!》
《그게 정말입니까?!》
신금성은 물론이고 두 병사도 그 기쁨으로 하여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정말 아니면! …》
박진건은 비로소 자기가 앉아있는 주변을 더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참, 여기는 온통 달래판이로구만!》
신금성이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지금은 달래가 나오고있지만 계절이 좀 지나면 그땐 고사리판입니다.
장령동지, 저기에 왜 불을 놓았는지 아십니까?》
박진건은 그제야 산기슭의 평평한 공지에 산불이 번져지지 않게 둘레를 따라가며 도랑을 파고 불놓은 흔적을 알아보았다.
신금성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저렇게 불을 놓아야 잡풀이 나오지 않고 고사리만 돋습니다. 그것도 다른 땅보다 보름이나 일찍 말입니다. 낫으로 막 베여들일 정도입니다. …》
박진건은 그만 감탄하였다.
《허, 그러고보니 동문 고사리박사로구만! …》
박진건은 이어 화재막이도랑 건너편에 놓인 배낭들과 군용밥통들을 알아보았다.
《점심밥들을 싸왔나?》
신금성은 싱긋 웃었다.
《예, 오늘은 달래를 캘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래! … 달래는 그렇다치고 지금 남새는 어떻게 보장받고있나?》
《중대온실에서 재배한 남새를 먹고있습니다.》
《중대온실?! …》
신금성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자랑거리가 생긴듯싶었다.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이 시작되면서 남새온실을 크게 건설하였습니다. 하지만 남새온실은 제한되여있기때문에 이른봄에 나오는 산나물을 채취하고있습니다.》
《농장에서 접수해오는건 없고? …》
《농장사정으로 그것도 제한되여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련대가 총동원되여 70여정보의 부업밭을 개간하였습니다. 지휘관동지들이 그러는데 그 땅이면 남새는 물론이고 집짐승먹이까지 얼마든지 자체로 해결할수 있다고 했습니다!》
《거, 대단하구만! …》
박진건의 입에서는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것이야말로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의 생활력이 아니겠는가!
그는 신금성에게 청했다.
《분대장, 저 군용밥통들을 좀 가져오라구. 이젠 점심시간이 거의 됐겠다, 맛있는게 있으면 나도 한술 얻어먹자구!》
신금성은 앉은자리에서 뒤로 벌렁 자빠질 자세였다.
《대장동지, 저긴 대장동지몫이 없습니다! …》
《허, 이 친구 이자보니까 깍쟁이로구만! 안되겠군. …》
박진건은 새빨간 전사령장을 단 애리애리한 병사에게 일렀다.
《전사동무가 가서 가져오라구!》
전사는 흘끔흘끔 분대장의 눈치를 보며 풀밭에서 일어섰다.
전사가 가져온 군용밥통을 열어보던 박진건은 그만 두눈을 흡떴다.
달래를 섞은 잡곡밥이였던것이다.
《동무들은 매일 이런 밥을 먹소?》
신금성은 제풀에 바빠하며 두손을 내휘둘렀다.
《아닙니다. 밥에 달래를 섞은것은 어제부터입니다.
지휘관동지들이 말하는데 쌀은 저기 남포항에 도착하였는데 미처 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래밥은 별맛으로…》
금성은 장령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느꼈는지 말끝을 흐렸다.
박진건은 병사들의 앞이라는것도 잊고 그냥 생각에 잠겨 앉아있었다.
식량보장때문에 그처럼 마음쓰시는 장군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실가 하고 생각하니 속이 저려남을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량곡을 들여오기 위해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오시였던가. 그런데 그렇게 마련된 식량을 왜 실어다주지야 못한단 말인가! …
갑자기 도로쪽에서 들려오는 승용차 멈춰서는 소리에 박진건은 고개를 돌렸다. 두 지휘관이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급히 걸어오고있었다. 5년전에 군단을 떠났다지만 어느정도 낯이 익은 얼굴들이였다. 더구나 얼굴이 철색인 군관은 지난해 말 공훈합창단의 공연에 초대되였던 418련대정치위원, 김화준의 아들이다. 그러고보면 련대장, 련대정치위원이 어느사이에 자기가 여기에 온것을 알고 찾아오는 모양이였다.
박진건은 군용밥통을 병사들에게 돌려주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무들은 내가 여기에 와있다는것을 어떻게 알아냈소? 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
황명걸련대장이 싱긋 웃었다.
《낯선 승용차가 도로상에 서있다는 감시병의 보고를 받고 와보니 대장동지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암행어사라도 나타났는가 했던거지? 두명이 다같이 온걸 보니, 허허! … 》
박진건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병사들에게 손을 쳐들어보였다.
《친구들, 또 만나자구!》
병사들은 일제히 거수경례를 붙였다.
《대장동지, 안녕히 가십시오!》
도로에 내려서자 박진건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두사람을 둘러보았다.
《어제날의 군단참모, 지도원이 이젠 련대장, 정치위원이 되구… 그동안 찾아보지 못한데 대해 사죄하오.
사실은 최고사령관동지 말씀이 계셔서야 이렇게 왔소. …》
《예?! …》
박진건은 저으기 놀라는 련대장, 련대정치위원을 일별하며 말을 계속했다.
《동무들을 몸소 접견해주시고 전선동부로 떠나가신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걱정되시여 이렇게 나를 또 보내주시였소.
그래서 구분대들을 돌아보며 실태를 료해하고 동무들과 허심탄회하게 의견도 나누어볼 작정이요.
참, 여기서 긴말할것 없이 내 차에 오르오.》
박진건이 먼저 차에 오르자 그들은 뒤따라 뒤좌석에 올랐다.
야전승용차는 련대지휘부를 향하여 한동안 고원의 한가운데로 뻗은 도로를 따라 달렸다.
박진건은 문뜩 도로에서 퍼그나 멀리 떨어진 구릉지대에서 무엇이 건설되고있는것을 보았다.
《저건 뭐요?》
등뒤에서 련대장이 대답을 하였다.
《련대가 건설하고있는 반땅크차단물입니다.》
《들려보자구.》
운전사는 련대장이 대주는 소로길을 이리돌고 저리돌고 하며 공사장에 도착하였다.
야전차에서 내린 박진건은 공사장을 둘러보았다. 매우 견고해보이는 축성물이 여기저기 건설되고있었다. 그러나 공사가 일시 중지된듯 몇몇 군인들만이 축성물사이로 오가는것이 보였다.
련대장한테서 콩크리트장벽의 확장된 철문과 그에 대처하여 건설되는 축성물의 규모를 료해한 박진건은 물었다.
《공사자재는 제대로 보장되고있소?》
련대장은 대답하였다.
《공사초기에 세멘트는 군단이 보장하고 강재는 련대가 맡기로 토의하였습니다.》
《련대가 강재를? …》
박진건은 의아히 련대장을 돌아보았다.
《련대에서 강철공장에 파철을 지원해주고 강재를 접수합니다.》
박진건은 여전히 리해되지 않는것이 있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것이 강재인데 파철을 얼마정도 지원하기에 이만한 규모의 공사에 충당할 량을 접수해온단 말이요?》
련대장은 그제야 은근한 불만이 비낀 어조로 대답했다.
《대장동지, 그래서 공사가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하고있습니다.》
박진건은 더 긴말없이 야전차가 있는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련대지휘부로 달리는 차안에서 박진건은 생각에 잠겼다. 102련대와 다름없이 418련대도 목표는 높이 세웠으나 그 실천에서는 의연히 제기되는것이 많았다.
승용차가 사택구역에 들어서자 박진건은 갑자기 생각나는듯 련대장을 돌아보았다.
《가만, 련대장동무네 집구경이나 좀 할가? …》
황명걸은 깜짝 놀라 미처 대답을 못했다.
박진건은 짐짓 소리내여 웃었다.
《왜, 닭이라도 잡으랄가봐 겁이 나오?》
《아, 아닙니다. …》
황명걸은 그제야 운전사에게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대주기 시작하였다.
승용차는 아담하고도 그리 크지 않은 독집앞에 이르러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박진건은 련대장네 집과 이웃하고있는 그와 꼭같은 집을 바라보며 김윤범에게 물었다.
《저 집은 정치위원동무네 집일테지?》
김윤범은 자기 집 역시 가정방문대상에 들어가기라도 한듯 당황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박진건대장은 비로소 마당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이때였다. 부엌문이 왈칵 열리며 아들인듯 한 열두어살쯤 되여보이는 소년이 뛰쳐나왔다. 집안에서부터 채 신지 못한 신발을 마저 신느라 허리를 굽히고 누구한텐지 투덜거렸다.
《에익, 그놈 돼지 콱― 죽기나 하라! …》
소년은 허리를 펴다말고 와들짝 놀라 두눈을 크게 떴다. 난데없이 왕별을 네개씩이나 단 장령의 엄한 눈빛과 마주치자 급기야 비실비실 뒤걸음치다가 날래게 옆을 에돌아 뺑소니를 치기 시작하였다. 손에는 커다란 마대가 쥐여져있는데 몸에 걸친 커다란 군용비옷이 뒤로 퍼덕이고있었다.
박진건은 껄껄 웃으며 황명걸에게 물었다.
《아들이요?》
《예, 맏이입니다. …》
황명걸의 얼굴이 금시 시뻘겋게 되였다.
박진건은 소년이 사라진쪽을 돌아보다가 다시금 허허 소리내여 웃었다.
《그 녀석, 비도 오지 않는데 아버지비옷을 척 걸치고! …》
박진건은 문뜩 소년이 투덜거리던 소리와 손에 쥐여진 마대가 생각나 황명걸에게 물었다.
《혹시 호수에 돼지풀을 건지러 가는게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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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황명걸은 쩔쩔매였다.
《처가 가끔 앓다보니…》
박진건은 더욱 놀라와하였다.
《장기환자요?》
《산후탈인데 이젠 그게 정상입니다.》
박진건은 불만스럽게 김윤범을 돌아보았다.
《그런데도 돼지를 치게 하오?》
김윤범이 바빠하였다.
《만류하는데도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고기생산총화에서 련대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있습니다. …》
밖에서 나는 말소리때문인지 부엌문이 조심히 열렸다. 얼굴은 창백하나 퍼그나 유순해보이는 녀인이 밖을 내다보다말고 깜짝 놀라 미처 인사할 겨를도 찾지 못하고있었다.
박진건은 녀인을 향해 먼저 머리를 숙여보였다.
《집구경을 좀 할가합니다. …》
황명걸의 처 허준옥은 그제야 부끄러움이 어린 웃음을 지으며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런데 집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
박진건은 천천히 부엌을 거쳐 방안으로 들어섰다. 한동안 한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가깝게 군단정치위원을 할 때부터 전연군관들의 살림형편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텔레비죤을 내놓고는 집안에 이렇다할 가산이 없는데 대하여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부대자체로 만든 소박한 책상과 책꽂이 그리고 수수한 이불장, 이사용궤짝들…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가산은 값진것이 없어도 세심한 녀인의 손이 구석구석에 닿아 방안은 정갈하였다.
《집이 아늑합니다. …》
박진건은 이렇게 칭찬하며 다시 부엌으로 나왔다. 부뚜막앞에 내려와 가마뚜껑을 열어보니 잡곡이 약간 섞인 쌀밥 한그릇 그리고 세그릇의 죽이 놓여있었다. 밥은 아마 남편을 위해 따로 지었을것이다.
박진건은 가마뚜껑을 다시 덮고나서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허준옥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지금 군인가족들중 한끼라도 때식을 번지는 집은 없습니까?》
허준옥은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집은 없습니다. 서로 골고루 나누어 먹습니다.》
박진건은 군인가족들이 겪고있는 식량부족의 애로를 다시금 절감하며 집을 나섰다. 차에 오르기 전에 뒤따라 나온 허준옥에게 일렀다.
《아주머니, 몹시 앓는다던데 건강을 잘 돌보시오.
남편의 뒤바라지를 잘하자면 건강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
허준옥은 문앞에서 만났을 때처럼 허리굽혀 인사를 하였다.
야전승용차는 련대장네 집앞을 떠났다.
박진건은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히고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오늘의 시련과 곤난이 더해갈수록 군인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그 어떤 불평도 없이 오로지 당만을 믿고 따르고있다. 그렇다면 우리 일군들이 이들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오늘의 난국을 뚫고 나가자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
×
박진건대장이 련대의 곳곳을 다 돌아 3중대초소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이밤따라 달이 휘영청 밝게 떴다. 그 달빛에 드러난 초소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한곳에 이르러 눈길을 멈추었다. 한개 분대가량 군인들이 커다란 나무밑에서 무슨 모임같은것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저 동무들은 지금 뭘하고있소?》
련대장과 나란히 서있던 김윤범이 조용히 설명했다.
《뽕나무밑에서 복수결의모임을 하고있습니다. 저 뽕나무는…》
《가만…》 박진건은 뽕나무라 하기에는 너무도 큰 아름드리나무여서 김윤범을 돌아보았다. 《저 나무가 뽕나무란 말이요?》
《그렇습니다. 피맺힌 원한이 깃든 뽕나무입니다. 전쟁시기 이 지역에 기여든 미군놈들은 여기 인민위원회 위원장이였던 리설란어머니와 다섯살난 딸애를 체포하여 저 뽕나무밑에 끌고왔습니다. 그리고 먼저 어머니를 뽕나무에 포승줄로 묶어놓고 어린 딸애가 보는 앞에서 무참히 불태워죽였습니다.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다섯살난 딸애마저 도끼로 동강내여 불속에 집어던졌습니다.
전쟁이 끝나 여기 분계선이 생기고 우리 군대가 이 계선을 지켜선지 반세기가 가까와오지만 세대를 이어 병사들은 저 뽕나무앞에서 복수결의모임을 하고있습니다! …》
《음! …》
박진건대장은 묵묵히 뽕나무를 바라보았다. 바로 초소에서 10메터 되나마나한 곳에 그런 원한많은 뽕나무가 있다는것이 놀라왔다. 과연 언제까지 저 나무앞에서 복수결의모임을 하고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
모임을 끝낸 군인들이 근무를 나가자 박진건은 천천히 뽕나무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복수를 다짐하던 병사들의 심정에 서서 높이가 거의 15메터나 되고 그 둘레가 한아름이 될 뽕나무를 한동안 비분강개하여 지켜보았다.
련대장 황명걸이가 침묵을 깨였다.
《그때 미국놈들의 만행과 함께 뽕나무는 완전히 불타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951년 봄부터 그 밑그루에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는겁니다. 이상한것은 불타버리기 전에는 그처럼 많은 열매를 맺던 이 뽕나무가 다시 살아나 이처럼 거목이 되도록 열매를 맺을념을 하지 않고있다는겁니다! …》
《뽕나무도 령혼앞에 죄된다고 생각했겠지! …》
박진건은 이렇게 침통하게 뇌이고나서 김윤범에게 물었다.
《현재 동무들이 계급교양에서 주되게 취급하는 내용이 뭐요?》
《반제반미교양입니다. 승냥이가 양으로 변할수 없듯이 미제의 침략적본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며 따라서 미국에 대한 환상은 곧 죽음이라는것을 군인들에게 인식시키고있습니다.
이와 함께 반일, 반괴뢰교양, 내부에 숨어있는 계급적원쑤들과 사소한 타협도 없이 투쟁할데 대한 내용을 동시에 취급하고있습니다.》
박진건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소. 사회주의붉은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우리의 원쑤들, 적대세력들과의 심각한 사상적대결인 동시에 치렬한 계급투쟁이요. 따라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기 위한 투쟁은 본질에 있어서 치렬한 계급투쟁이라고 할수 있소.
앞으로 취급하는 계급교양에서 이 문제가 강하게 취급되여야 하오!》
박진건대장은 이윽해서야 뽕나무밑을 떠나 감시소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