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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1-2 베네수엘라의 해방자 우고 챠베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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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141회 작성일 21-08-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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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침략과 반미열풍

 

□ 베네수엘라의 해방자 우고 챠베스대통령

 

우리 나라 속담에 《×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흉본다.》라는 말이 있다.

1400년대에 북아메리카를 침략한 영국침략자들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자유의 추구자들이다. 하지만 저 남아메리카로 향한 에스빠냐사람들은 황금의 추구자들이다.》라고 흉을 보았다고 한다.

《Freedom Seeker》와 《Gold Seeker》의 차별을 주장하면서 《우리 영국인들은 저 에스빠냐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력설하였다는것이다. 이 얼마나 가소로운 침략자의 변명인가? 침략에 무슨 우월이 있단 말인가?

자유의 추구자라고 주장한 영국을 주축으로 한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가지고온 종교는 프로테스탄트교였다. 하지만 황금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진 황금의 추구자라는 루명을 달고 남아메리카로 향한 에스빠냐계의 식민주의자들이 가지고온 종교는 카톨릭교였다. 그러므로 남아메리카로 향한 에스빠냐침략자들의 식민정책은 보다 더 권위주의적이였고 보다 더 엄하고 보수적이여서 무조건적인 종교적복종을 원주민들에게 강요하였다.

어쨌든 남아메리카에서 침략의 발걸음을 시작한 에스빠냐식민주의침략자들의 《황금의 추구》의 행동은 오만하고 탐욕스럽고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에는 에스빠냐와 뽀르뚜갈인들이 먼저 대량으로 오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영국, 벨지끄, 프랑스인 등 많은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줄을 이어 남아메리카를 침략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식민주의침략자들이 저지른 만행은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만행에 못지 않게 잔인무도하였다. 남아메리카의 인디안족을 비롯한 모든 토착종족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노예화할뿐아니라 싸우다가 패배하고 겨우 살아남은 인디안과 토착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빈몸으로 밀림속으로 쫓겨가야만 하였다.

노예상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를 대량 실어와 남아메리카침략자들에게 판매하여 10배의 리익을 보았으며 흑인노예 1명을 5US$로 판매하였다.

베네수엘라가 에스빠냐침략자들의 눈에 로출되기 시작한것은 1500년대초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성급한 에스빠냐침략자들은 베네수엘라에 묻혀있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지상의 풍요로운 천연자원에 대하여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고 보다 더 큰것을 탐험하려고 타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후로부터 약 100년이 지나서야 에스빠냐침략자들은 베네수엘라에 다시 돌아와 농산물들을 착취하여 유럽으로 수출하기를 시작하였는데 코코아, 밀, 가죽 등을 수출하였다. 하지만 그때 에스빠냐의 왕은 식민지에서 농산물보다는 금광석 등 지하자원의 획득을 더 원하고있었다.

1749년경에 베네수엘라를 침략한 에스빠냐침략자들이 베네수엘라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유럽에 있는 에스빠냐왕권정부사이에 상호불화와 분규가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그후로 약 50년후인 1800년대초부터 베네수엘라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에 성공한 침략자들이 이제는 본국정부인 에스빠냐왕권정부의 지배와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독립을 원하였고 그 실현을 위하여 대중운동을 시작하였다.

1811년 12월 21일 드디여 에스빠냐침략자들은 Miranda의 지도하에 베네수엘라식민지력사 300년을 마감하고 공식적으로 베네수엘라를 에스빠냐본국정부로부터 분리되여 《독립》하는 최초의 《독립헌장》을 채택하고 선포하였다. 하지만 Miranda는 1816년 7월 25일에 독립을 완강히 거부하는 에스빠냐왕정에 의하여 체포투옥되였다가 옥사하고말았다.

하지만 Miranda사망후 약 100년동안 베네수엘라독립주의자들은 에스빠냐본국의 왕정에서부터 리탈하여 남아메리카에 독립한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을 계속하였다.

베네수엘라의 력사를 대략 4기로 나누어본다.

제1기 에스빠냐식민통치전성기 (1526~1800년), 제2기 에스빠냐식민통치에서부터 벗어나려는 독립운동기(1800~1830년), 제3기 베네수엘라내부의 인종간 평등과 민주화투쟁기 (1830년~1900년), 제3기 베네수엘라내부의 인종간 평등과 민주화투쟁기(1830~1900년), 제4기 미국제국주의외세침략과 반미외세투쟁기(1900년~)

베네수엘라력사를 4개의 단위로 나눈 년대에 다소 오유가 있음을 시인한다. 하지만 이 글의 뜻은 제4기에 속하는 1900년대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베네수엘라를 침략하는 외세에 대항하여 싸우고있는 반미반외세투쟁력사에 초점을 두고있음을 독자들이 리해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베네수엘라의 오랜 력사는 에스빠냐침략자들이 인디안원주민과 모든 토착종족들을 살해하고 추방한 침략의 력사였다. 그리고 침략에 성공한 에스빠냐침략자들이 멀리 유럽에 있는 에스빠냐왕권통치에서부터 벗어나 독립을 하기 위하여 줄기차게 싸워온 독립투쟁의 력사였다. 그리고 또한 독립을 한 후에 베네수엘라내부에서의 인종간의 불화와 계급투쟁의 력사였다.

하지만 1900년대에 들어서서 베네수엘라의 력사는 베네수엘라를 경제적으로 략탈하고 예속화하려는 미제국주의자들과의 제2의 반침략투쟁의 력사인것이다.

유럽의 에스빠냐혈통과 기타 유럽계백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오늘의 베네수엘라의 부유층에 속하는 소수의 특권층들은 베네수엘라국민의 소중한 안전과 인권을 빼앗고 희생시키면서 미제국주의침략자들과 교모하게 결탁하여 백인조상들이 침략시대에 획득한 그 오래된 옛날의 기득권과 유산들을 끝까지 지키고 옹호하려고 친미, 친제국주의추종의 로선을 적극 추종하고있다.

그러므로 우고 챠베스 베네수엘라대통령은 나라안에서 도전해오는 백인침략자후손들의 부유층기득권세력과 싸워야 함과 동시에 또한 다른 한편 나라밖에서부터 도전해오는 미제국주의침략자들과의 투쟁을 동시에 전개해야 할 2중의 무거운 짐을 량어깨에 지고있는것이다.

대내적으로는 대중의 평등과 민주화를 위하여 백인기득권세력과 싸워야 하며 대외적으로는 자주와 독립을 위한 반미외세의 벅찬 투쟁을 해야만 하는것이다.

 

 

       반미반제의 선봉자 키프리아노 카스뜨로대통령

 

키프리아노 카스뜨로 베네수엘라대통령은 1899년부터 1908년까지 9년간 집권하면서 베네수엘라의 력사상 처음으로 반미반제정권을 수립하는데 선봉자역할을 하였다.

그는 인디안과 토착종족의 두 혈통을 이어받은 지도자이다. 그는 백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엄청난 시련과 위험속에서 투쟁을 하였다. 그 당시 미국대통령 루즈벨트는 카스뜨로대통령을 《작은 고약한 원숭이》라고 멸시하였으며 기회만 허락되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겠다고 공공연히 엄포를 발하고있었다.

하지만 카스뜨로대통령은 굳건히 서서 미국의 리익에 종사하는 친미자본을 차단하고 봉쇄할뿐만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으로 원자재들을 수출하는 백인수출업자들에게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지금까지는 베네수엘라의 백인권력자들이 미국의 거대한 자본과 결탁하여 리득을 차지하고있었다. 지난 시기 오래동안 계속된 량국의 력사적흐름과 맥락에 대하여 비주류에 속하는 혼연출신의 카스뜨로대통령이 혜성처럼 나타나 잘못된 력사의 흐름을 차단하고 바르게 흐르도록 전환시킨다는것은 상상도 못할 어려운 일이였다.

그래서 미국의 국무장관 엘리후 룻은 카스뜨로대통령에게 《미친야수》, 《버르장머리없는 놈》, 《왜소한 검둥이》라고 하면서 온갖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유일한 희망은 베네수엘라의 상류층세력들이 봉기하여 카스뜨로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반란을 일으키는것이였다. 백인상류층의 지원이 끊기면 카스뜨로대통령은 자연히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리라고 미국은 장담하고있었다.

바로 이런 때에 기다리고나 있었던것처럼 베네수엘라의 백만장자 안토니오 마토스가 미국을 등에 업고 카스뜨로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반정부음모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마토스의 친미적인 반정부소동은 2년동안에 12 000명의 희생자만 냈을뿐 실패하고말았다.

마토스의 실패를 보며 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있지 않았다. 미국은 또다시 뒤에서 베네수엘라에 내분을 조장하였을뿐아니라 내분에 직접 개입하여 나중에는 미군이 직접 나서서 베네수엘라의 카스뜨로대통령을 강제로 랍치하였다. 랍치를 당한 카스뜨로대통령은 건강상리유라는 핑게로 저 멀리 영국으로 보내졌고 미군은 카스뜨로의 귀국을 영구히 봉쇄하였다.

1909년에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친미적부유층에 기반을 두고있는 빈센트 코메즈를 림시과도정부의 수반으로 내세웠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이 직접 세워놓은 과도정부의 수반인 코메즈는 오직 미국의 리익만을 위한 하수인으로서 미국에 충실할뿐아니라 베네수엘라인민에 대해서는 무서운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코메즈의 무서운 독재는 거의 30년 계속되다가 1935년에 그의 사망으로 끝났다.

코메즈가 무서운 독재를 하고있던 그 시절에 베네수엘라에는 놀라운 변화가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1920년대에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된 일이였다. 석유의 생산과 독재자와 미국의 자본주의적석유회사와의 상호관계는 베네수엘라의 정치적운명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뿐이였다. 코메즈대통령의 30년 독재가 끝났지만 그후 계속되는 군부의 쿠데타로 베네수엘라의 민주화의 앞길은 점점 더 멀고 멀어질뿐이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인민은 반미반제의 기치하에 민주화에 적극 나서는 새로운 시대적사명에 넘쳐있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베네수엘라인민들속에서 《행동하는 민주운동》(AD)이라는 선풍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으로 인하여 빈민들이 선거에 참여할 의욕이 생기고 18살이상의 남녀는 누구나 다 선거권이 부여되는 새로운 법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1948년에 2월 15일에 AD의 순풍속에서 갈레고스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유권자 4분의 3이 선거에 참가하여 73%의 압도적지지로 당선됐다.

갈레고스대통령은 석유재벌에게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 돈으로 빈민들을 구제하고 로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데 주력하였다. 이런 정책이 백인기득권층과 미국이 지배하고있는 석유재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리가 없었다.

갈레고스대통령은 절대다수 대중의 지지로 대통령에 추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취임한지 10개월만에 미국의 조종을 받는 3명의 군장교들이 주도한 무혈쿠데타로 인하여 외국으로 추방되는 운명에 이르렀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중에서 델가도가 주도하는 군사정권이 친미적인 로선으로 베네수엘라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델가도는 극단적인 극우파세력과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중도적로선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에 대한 불만을 품은 3명중 한사람인 페레즈(히메네스)에 의하여 1950년 11월에 델가도는 암살되였다. 페레즈는 베네수엘라의 모든 정치활동을 정지시켜놓고 스스로 자기자신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선포하는 무서운 독재자가 됐다. 쿠데타를 함께 일으킨 3인중에서 두사람을 암살과 추방으로 깨끗이 제거한 후에 혼자 남은 페레즈는 스스로 대통령이 됐고 또 무서운 독재자가 됐던것이다.

페레즈는 석유로 벌어들인 돈으로 국민은 외면하고 미국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였으며 개인구좌에도 2억 5 000만US$를 가지고 호황을 누리였으며 1954년에는 미국의 아이젠하워대통령으로부터 공훈훈장을 받기까지 하였다.

1957년에 형식적으로 선거를 실시하려고 하기는 하였지만 시민투표에 대한 공포심때문에 페레즈대통령은 긴급조치를 발동하고 형식적으로 국민투표라는 비상수단을 써서 투표후 2시간만에 85%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군민의 분노가 드디여 폭발하였는데 1958년 1월 1일에 공군비행기 한대가 수도 까라까스에 폭탄을 투하하는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전국적으로 대중적인 시위와 파업이 휩쓸었으며 견디다못해 독재자 페레즈는 미국으로 도망쳤다. 페레즈의 축출과정에 300명의 사망자와 1 0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페레즈의 8년 독재가 끝난 후에 군부와 민간단체사이에는 혼동과 분쟁과 갈등이 계속되였다. 하지만 민주적공명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대원칙에 합의함으로써 베네수엘라의 력사상 처음으로 3개의 정당, 단체를 대표하는 3명의 후보자를 놓고 투표를 할수 있었다.

《행동하는 민주운동》단체를 대표하는 베타코오트가 49%의 득표를 얻음으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베타코오트는 1959년에 2월 13일에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베타코오트대통령이 비록 민선에 의하여 정권을 잡았다 할지라도 친미기득권세력들의 로골적인 저항과 미국의 끊임없는 간섭은 여전히 계속되고있었다. 하지만 자주와 민주화를 원하는 대하의 흐름은 절대로 그치지 않고 계속 흘렀다.

1973년에 칼로스 페레즈가 대통령이 되였다. 그는 베네수엘라력사상 처음으로 좌파적성향을 지닌 정치가로서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사회복지사업에 투자하였으며 미국의 손아래에서 벗어나 남아메리카의 이웃나라와의 수교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또 그는 그 당시 《사회주의국제회의》의 부회장이 되기도 하였다.

칼로스 페레즈대통령은 1973년에 취임하여 1988년까지 비교적 안정된 장기집권을 하였으나 말년에 이르러 석유값의 폭락과 그가 획득한 카리스마가 쇠퇴됨으로 인하여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네오콘이 강요하는 IMF로 인하여 친미정책을 강행할수밖에 없게 되자 민심은 소란해지고 드디여 폭동이 발생하였다.

챠베스중령이 쿠데타를 시도한 때가 바로 이때이다. 1992년 2월에 챠베스중령(당시)이 쿠데타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여 구속되였다. 2년만에 석방된 후 챠베스는 《제5공화국운동》을 창당하고 1998년에 대선에 도전하여 56%의 득표로 페레즈정권을 물리치고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에 당선되였다. 챠베스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배후에서 미국이 개입한 실패한 쿠데타로 인하여 긴장하였으며 또한 역시 미국이 개입한 대통령소환투표라는 소동으로 인하여 7년의 집권기간은 실로 고전분투의 기간이였다.

그리고 2006년 12월 3일에 실시한 대선에서는 62. 87%의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아 3선의 대통령이 됐다.

지금까지 1900년대에 들어서서 베네수엘라의 주요정치변동과정들을 대략 살펴보았다. 1900년대초에 베네수엘라에서 반미, 반제운동의 선봉자로 키프리아노 카스뜨로가 처음으로 등장하여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되였다. 그후로 약 100년이 지난 2006년 12월 3일에 베네수엘라에서 21세기의 반미, 반제사회주의운동의 선봉자인 챠베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것이다.

전세계에서 모인 수백명의 참관인들이 가까이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선거는 75%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가하였으며 62. 87%의 높은 지지률로 챠베스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재선에서 승리하였다. 이번 선거는 베네수엘라력사에서 처음보는 성숙한 민주화의 모습을 전세계에 과시하였다.

미국CIA는 색안경을 끼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베네수엘라의 선거를 감시하면서 방해하였을뿐아니라 보수언론들도 총공세로 선거의 진행을 불투명하게 보도하였다. 하지만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미국무부는 론평을 통하여 《챠베스대통령은 대선에서 깨끗하고 확실하게 승리하였다.》라고 발표할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것은 1920년이후 6명의 미국대통령들이 획득한 득표률을 비교해보면 이번에 실시한 선거에서 챠베스대통령이 획득한 득표률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이다.

 

1920년 WARREN HARDING 대통령 60. 3%

1928년 HERBERT HOOVER 대통령 58. 2%

1936년 FRANKLIN ROOSVELT EOXDFUD 대통령 60. 8%

1964년 LYNDON JHONSON대통령 61. 1%

1972년 RICHARD NIXON대통령 60%

1984년 RONALD REAGAN대통령 58. 8%

2006년 챠베스대통령 62. 87%

 

서방의 언론들은 챠베스대통령을 인기영합대중주의라고 격하하는 론평을 하고있다. 하지만 챠베스대통령의 인기요인은 풀뿌리대중과 함께 하는 《참여민주주의》제도를 도입하고 토지로조와 공동체공동경영 등 대중의 정치참여를 주장하는데 인기의 기본적요인이 있다.

챠베스대통령은 자원의 국유화를 선언함으로써 미국의 자유무역주의자들을 정면으로 들이받고있다. 이와 같은 챠베스대통령의 인기요인은 미국의 네오콘들에게는 견딜수 없는 악몽이 될것이다.

 

 

       챠베스대통령의 종교

 

챠베스대통령은 대통령당선후에 처음 맞이하는 일요일 오후에 대통령관저 전망대밑에 모여 축하하는 군중들을 향하여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지금까지 나에게 지도자의 역할을 한이는 예수이다.》

도대체 챠베스에게 있어서 《예수》는 누구인가?

챠베스는 계속해서 그의 고백적인 말을 다음과 같이 또 하였다.

《예수의 나라는 사랑과 평화와 정의의 나라이며 그리고 단합과 형제애와 사회주의의 나라이다. 예수의 나라야말로 앞으로 베네수엘라가 지향해나가야 할 21세기의 사회주의적나라인것이다. 나는 예수가 아니며 나는 또 예수와 같아질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베네수엘라가 예수의 나라처럼 될수 있도록 힘을 쓸것이다.》

챠베스대통령이 주장하는 《예수의 나라》는 19세기에 에스빠냐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웠던 Simon Boliver정신을 이어받은 혁명적개혁정신을 뜻한다. 챠베스대통령이 력설하고있는 21세기의 사회주의나라건설의 꿈은 남아메리카의 나라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미국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것으로 생각된다.

역설적으로 카톨릭신자인 챠베스대통령은 보수주의적그리스도교의 신자라고 자처하는 부쉬대통령보다 일요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성적이 좋지 못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챠베스는 한두번이 아니라 여러번 그것도 유엔총회의 연설석상에서 부쉬를 향하여 《악마》또는 《악마의 악취》라고 직설적으로 공격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쉬는 지금까지 아무 응답을 못하고있다.

챠베스대통령은 지난 7년간 사회적복지와 가난한자들을 위해서 석유자원을 제도적으로 관리운영하도록 시도하였으며 앞으로 6년동안의 임기에는 예수정신에 기초하고 그리스도교의 기본륜리에 기초한 사회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국가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겠다고 3선의 대통령취임식에서 가족과 국민과 하느님께 맹세를 하였다.

그런데 입으로 《하느님, 하느님》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챠베스가 아니고 부쉬다. 부쉬행정부의 과거사는 말할것도 없고 최근에도 미국은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에게서 미국의 리득을 더 많이 얻기 위하여 군사적힘으로 지배하고 강요하는 침략적정책을 계속하고있다. 이런것을 보는 세계의 량심은 도대체 부쉬의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인가 하고 의심을 품게 한다.

지난 100년동안 베네수엘라의 력사는 미국의 석유식민지력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금 챠베스대통령이 《예수의 나라》를 주장하고있는 그 리유는 지난 100년동안 미국이 감행한 석유식민의 어두운 력사에 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에스빠냐침략자들이 가지고온 카톨릭교회와 그 전통에 대한 현실적인 종교적마찰인것이다. 챠베스대통령의 종교는 해방의 종교이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예수의 나라》는 대중의 웨침을 외면하지 않고 우익제국주의이데올로기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그리스도교의 깊은 메쎄지를 새롭게 립증하려는 참된 《예수의 나라》정신에 기초한 대중운동인것이다.

 

 

       국민의 영웅 챠베스대통령

 

챠베스대통령은 1954년 7월 28일에 베네수엘라의 사바네따라는 시골도시에서 태여났다.

챠베스대통령을 국민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리유는 무엇인가? 챠베스는 유년시절에 씨몬 볼리바르장군의 전기를 읽고 어려서부터 백인강자들의 횡포로 인하여 베네수엘라의 토착민원주민들과 서민농민들이 죽도록 착취를 당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감수성이 강한 소년 챠베스는 볼리바르장군의 통치철학은 베네수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혁명적사상이 되리라는것을 소년시절에 벌써 깨닫고있었다.

소년 챠베스에게 그렇게도 큰 감명을 준 볼리바르장군은 어떤 인물인가? 볼리바르장군은 1800년대초부터 기득권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예해방정책을 실시하면서 농민들에게는 토지무상분배정책을 실시한 혁명가였다. 볼리바르장군은 노예와 흑인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적평등을 보장하는 사회제도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볼리바르장군은 주장하기를 《사회개혁정책은 서두르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 하며 극빈자에게 고기를 주는것보다 고기를 잡는 그물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볼리바르장군은 사회개혁정책을 남아메리카전역에 확대시켜서 대륙전체에서 인민해방운동을 전개하려 하였다. 볼리바르장군은 그 당시의 영웅으로 추대될뿐아니라 오늘도 남아메리카인민해방운동권에서 여전히 존경받는 영웅이다.

그러면 챠베스대통령이 이와 같은 《볼리바르혁명사상》을 이어받아 제일먼저 실행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가?

챠베스대통령은 지금 미국이 주도하고있는 《아메리카자유무역지대협정》(FTAA)에 대하여 반대하는것이 오늘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하였다. 챠베스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뿐만아니라 남아메리카전체와 발전도상나라들이 련대하여 FTAA반대운동을 전개하도록 선봉을 서고있는것이다.

그리고 챠베스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 정부가 소유하고있는 국유토지와 악덕부호정치인들이 불법적으로 강점하고있는 농지 150만ha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분배하는것으로 개혁의 첫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베네수엘라에서 약 120만의 농민들이 처음으로 자기 땅을 소유하는 행복을 누리고있다.

지난 7년동안 교육부문과 국민복지분야에는 베네수엘라력사상 볼수 없었던 빠르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극빈자와 실업자수도 크게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과 인내는 챠베스대통령의 개혁운동에 있어서 성패의 원인이 될것이다.

챠베스대통령은 《볼리비아대안》(ALBA)이라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은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 의료혜택과 문맹퇴치운동에 국력을 최선으로 투자할것을 천명한 대안이다.

인민대중은 그 누구나 인격을 지녔으며 인종과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회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도록 제도를 세워야 한다고 대안계획(ALBA)은 주장한다.

챠베스대통령은 빈민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료의료제도를 정착시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챠베스대통령은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꾸바에서 의사 4명만을 초빙하여 베네수엘라지방전역에서 의료봉사를 하도록 배치하였다.

이와 같은 대안계획으로 인하여 오늘 베네수엘라는 국민 70%가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고있으며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 전국민이 모두다 무료의무교육의 혜택을 받고있다.

베네수엘라에는 뿌리깊은 백인특권세력들로 형성된 권력층이 있다. 이 권력층은 수백년동안 조상으로부터 유산으로 이어받은 리권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미국의 신보수주의와 결탁하여 챠베스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무섭게 압박하고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농민서민들과 토착원주민들과 흑인들을 포함한 대중은 지금까지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인간대우와 사회의료복지 및 의무교육혜택 등 놀라운 력사적변혁을 경험하고있다. 오늘 베네수엘라인민들의 의식의 변화와 국가에 대한 의욕적보답으로 챠베스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서 80%로 육박하고있다.

챠베스대통령은 나라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회개혁을 우선시하고있다. 하지만 그는 또한 혁명가로서 물질적인 빈곤문제 못지 않게 정신적인 빈곤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챠베스대통령은 엄청난 독서를 통하여 문학과 철학, 정치와 경제 그리고 특히 라틴문학에 통달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있다. 챠베스대통령의 카리스마는 그의 높은 꿈과 정신력과 그리고 풍부한 지식에 근거해있다.

챠베스대통령은 까라까스같은 큰 도시에서 또는 저 아마존밀림지대처럼 미개한 지역에서 언제든지 교육기관과 학교건축준공식에 참석할 때는 군중을 향하여 《공부와 독서》를 강조한다. 가난과 빈곤을 해결하는 길은 물질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교육과 지성이 절대적필수적조건이라고 챠베스대통령은 항상 력설한다.

챠베스대통령은 자기자신을 베네수엘라의 평범한 시민중의 한사람으로서 대통령직을 맡고있음을 강조하고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의 행적과 여론에 의하면 그는 틀림없이 베네수엘라뿐만아니라 남아메리카와 전세계의 발전도상나라 인민들에게서까지도 영웅적지도자로 추앙을 받고있음이 확실하다. 그는 그가 어렸을 때 독서를 통하여 감명받은 《볼리바리안혁명》의 정도를 지금 힘차게 달리고있는것이다.

 

 

      남아메리카사회주의를 꿈꾸는 챠베스대통령

 

지금까지 500년동안 남아메리카대륙은 서방문명의 연장선에서 백인침략자들의 꿈과 랑만의 땅이였으며 모험과 기회의 대륙이였다. 유럽인과 백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남아메리카의 부유층백인들은 아직까지도 자기자신을 유럽의 일부라고 착각하면서 살고있는듯 하다.

하지만 과거 몇백년동안 남아메리카를 지배해온 미국의 리념적헤게모니와 경제착취에 대항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제반미의 열풍이 오늘 남아메리카전역에서 세차게 일어나고있다.

유럽련합의 출현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아메리카에서도 유럽동맹에 상응하는 《메르코수르의회》를 출범시킴으로써 남아메리카를 정치, 사회적으로 통합을 하기 위한 위대한 설계에 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고있다.

우고 챠베스대통령을 선봉으로 하여 오늘 남아메리카에서는 에꽈도르,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띠나, 꾸바, 빠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여러 나라들이 반미반제의 기발아래 굳게 뭉쳐 남아메리카자체의 《국가공동체정상회담》을 발족하여 회합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있다.

이제는 남아메리카의 백인들이 더이상 유럽의 일부가 아니며 차라리 남아메리카의 《백인사생아》들이라고 불러야 할것이다.

2006년에 남아메리카에서 챠베스대통령의 지도를 선두로 하여 6명의 좌파대통령이 줄줄이 당선되여 집권을 하고있다. 남아메리카에 들이닥친 반미좌파열풍을 이제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길이 없다.

미국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시장경제의 모순과 관료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빈부격차가 심화되여 백인특권정치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는 대중의 성숙한 정치의식이 남아메리카에 좌파정권을 세우는데 힘과 맥이 되고있는것이다.

더우기 남아메리카에 수없이 많은 원주민부족들이 서로 련대협력하고있으며 또한 흑인노예들의 후손들이 하나로 집결된 대중의 정치력은 오늘 남아메리카에서 새로운 력량으로 등장하고있다. 1800년대에 씨몬 볼리바르장군이 남아메리카의 해방을 위하여 싸우다가 못다이룬 그의 혁명적과업을 오늘에 와서 완수하기 위하여 우고 챠베스대통령을 선봉으로 한 남아메리카의 6명의 대통령들이 《남아메리카좌파단합》의 굳은 의지를 전세계에 과시하고있다.

이처럼 챠베스대통령은 현대적남아메리카의 좌파력량의 중심축으로 높이 솟아 민족주의적인 에네르기의 국유화, 중남아메리카지역통합,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반대, 기존제도권개혁운동 등을 대중동원의 방법을 통하여 강력히 주진하고있다.

과거에는 《식민지에서 독립》을 웨쳤지만 오늘은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남아메리카의 광범한 대중은 웨치고있는것이다.

챠베스대통령은 3선승리를 바라보면서 선거운동을 할 때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패권세력에 맞서기 위하여 악마와의 대결을 하고있다.》

그리고 선거가 승리로 끝난 후에 챠베스대통령은 또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필요한 곳에 석유를 공급할것이며 우선적으로 남아메리카와 까리브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공급을 확대할것이다.》

챠베스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지금까지 미국에 집중되여온 석유시장의 리권독점을 라틴아메리카전역으로 전환하여 확대할것을 뜻하는 말이다.

챠베스대통령은 지금까지 종속되여온 남아메리카경제를 해방시켜 제2의 불리바리안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하고있다. 챠베스대통령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침략에 대하여 규탄하여 말하기를 《남아메리카의 천연자원들을 착취하기 위한 강대국의 간교한 수단이다.》라고 규정하고 폭로하였다.

챠베스대통령은 남아메리카나라들이 보유하고있는 외환을 공동으로 투자하여 《남아메리카은행》을 세워 미국에 종속된 경제구조를 속히 개선하여 남아메리카의 모든 천연자원들을 보호하는 대책을 세우는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남아메리카의 풍부한 농업자원에 대하여 말하기를 농기구와 농업기술의 현대화에 총력을 기울여 남아메리카를 세계의 곡창으로 만들어 곡물자원을 확보할 의지를 력설하였다. 이같은 챠베스대통령의 뜻은 미국이 식량을 무기로 삼아서 세계적인 기근의 문제를 정치화하고있는데 대한 직설적인 반응이다.

챠베스대통령은 농업뿐만아니라 공업분야에 있어서도 브라질과 아르헨띠나 등 기타 라틴아메리카나라들과 공동으로 개발하며 핵발전소건설분야도 호상협력할것을 시사하였다.

그러면 우선 챠베스 베네수엘라대통령이 남아메리카에서 추구하는 21세기형 신사회주의란 도대체 어떤것인가?

챠베스대통령이 추구하는 요점은 《계급사회의 철페》이다. 신사회주의는 전체주의가 아니며 인간은 누구나 다 각자의 능력과 요구에 따라 가능성과 다양성을 지원해주는데 큰뜻이 있는것이다.

챠베스대통령이 추구하는 21세기형 신사회주의는 20세기에 동유럽이 몰락한 병태를 교훈삼아 리론보다 실천을 중요시하고 특권층만 특혜를 누리는 과오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방지해야 한다고 력설한다.

개인의 능력과 효률성을 중요시하고 중소기업활동을 장려하며 민주적인 통제하에서 시장의 요구를 능동적으로 반영하는 리상형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챠베스대통령은 설명을 하고있다.따라서 남아메리카의 실정에 맞게 라틴아메리카형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빈부의 량극화라는 뿌리깊은 사회적병태를 제거하는데 모범을 보여주게 될것이라고 력설한다.

사실에 있어서 이와 같은 챠베스대통령의 주장은 베네수엘라에서 이미 어느 정도로 시작되고 제도화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있다.

특히 미국은 이에 대하여 고도의 신경을 쓰고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챠베스대통령이 추구하는 21세기형 신사회주의운동이 보다 더 시급하게 급선무로 요청되는 리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7억이상의 원주민들이 존재하고있으며 이 원주민들은 현대문화권이하수준에서 살고있다는 사실이다. 전세계인구중에서 25억이상이 절대빈곤에 처해있으며 16억의 사람들이 아직도 전기시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속에 살고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통계가 분명히 계속 발표되고있다.

오늘 현재까지 이라크에서 불의한 전쟁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죽은 이라크인들의 수는 60만에 이르고있으며 부상자들은 부지기수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념두에 두고 21세기 신사회주의의 건설을 위하여 챠베스대통령이 남아메리카에서 벌리고있는 개혁운동을 주목해야 할것이다.

《빈곤에서 구출해주는것은 곧 그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주는것과 같은것이다.》라고 챠베스대통령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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