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미래행 급행렬차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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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24
《조장선생, 뭘하고있소?》
김호성이 저녁식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 별로 하는 일없이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량원일이 들어오며 말을 걸었다.
《저녁시간에야 동무들한테 가서 텔레비도 좀 보고 머리휴식도 해야 하지 않겠소?》
김호성은 히죽이 어설프게 웃을뿐 응대가 없었다. 요즘 별로 말이 없어진 조장이다.
《내가 조장선생의 사색을 방해하는게 아니요?》
김호성은 또 시무룩이 웃었다.
《사색은 무슨… 그런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일이야 있지요. 우리 조장선생이 요즘 내내 저기압인데 그게 일이 아니요?》
《량선생두, 제 기분이 어쨌다고 그럽니까?》
《그러지 마오. 우리 동무들이 모두 조장의 얼굴을 보고있소.》
김호성은 나직이 한숨을 그었다.
《내가 전번에 조장선생한테 공연히 노여운 소리를 한게 아니요?》
김호성은 생각에 잠겨 덤덤해있다가 갑자기 미안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조장선생이 내 말을 잘못 리해하는게 아니요? 솔직히 말하오. 그날 집에서 별난 전화가 오지 않았소? 조장동무가 집에 갔다온 다음에도 얼굴색은 좋지 않았단 말이요. 부국장동지도 물어보더구만. 조장선생한테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고 말이요.》
《이거 량선생한테는 솔직히 말해야겠구만요.》
김호성은 자기가 우영심이한테 화를 내서 그를 노엽히던 그날 딸애한테서 전화가 왔던 일이며 집에 내려가 가시어머니를 만났던 사연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우리 가시아버지는 전쟁참가자이고 영예군인이지만 고박하게 한생을 살아온 좋은분이지요. 그 로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저에게 잘 모셔달라고 부탁한 가시어머니입니다. 심장때문에 한생 고생하는 로인이거던요. 그래서 가시아버지도 눈을 감으면서까지 마음을 못 놓았겠지요. 처가 먼저 가지만 않았더라도 다른 일 없었을것인데… 사실 우리 가시어머니도 좋은 로인입니다. 다리 하나 못쓰는 영예군인남편 뒤시중을 하면서 한생 교원을 했는데 가식이 없고 의협심있고… 늙어 집에 들어왔어도 나라일을 두고 걱정하고…》
《그때 세대는 그렇게 살았지. 그들은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과 당을 티없는 마음으로 받들었단 말이요. 그래서 우리가 오랜 세대들을 존경하는것이고 따라배우자고 하는것이 아니겠소.》
김호성은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글쎄 그 어머니가 갑자기 집을 나가 숙천에 사는 제 작은 딸네 집에 가 살겠다는겁니다. 내가 재취를 하는데 제가 있으면 방해가 된다는거지요. 또 내가 사회사업을 하는데도 지장이 되고… 사실이야 로인이 심장병을 앓으면서 집안의 진일, 마른일을 다 맡아해서 나한테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데 말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내가 로인을 설복하지 못하고 올라온것 같단 말입니다.》
량원일은 심각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허, 그건 정말 생각을 많이 해야 될 고민거리요. 사위를 생각해서 그러는것이니 그 로인을 나쁘다고 할수는 없는것이고…》 그는 갑자기 밝은 표정을 얼굴에 떠올리며 김호성을 바라보았다. 《호성조장도 어차피 새 가정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소. 우린 창조하는 인간들이 아니요. 생활도 창조해야지. 프로그람이… 허허.》
량원일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적중치 않은 표현같아 객적은 웃음으로 얼버무려버리였다. 그는 한참이나 동정에 찬 한숨을 짓고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조장선생의 심정을 리해 못해서 하는 말은 아니요. 안해를 먼저 보낸 조장선생의 그 마음이야 오죽하겠소. 내 말은 그 아픔에 포로되지 말라는거요.》
김호성은 갑자기 가슴이 짜릿해왔다. 눈에 핑그르르 물기가 돌았다. 오늘따라 안해생각이 못 견디게 나는데 량원일이 나타나서 또 안해소리를 하지 않는가!
《참 좋은 녀자였습니다, 우리 그 사람은…》
그는 안해에 대하여 말했다. 잊을수 없는 안해의 소박하면서도 진실했던 사랑과 인간됨에 대하여 말했다. 들꽃이 어우러진 청량한 가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생의 아름다운 미래를 공상하던 시절의 안해에 대하여 그리고 안해와 철길순회원네 집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했다.
량원일이 감동되여 말했다.
《사람이란 그래서 세상에 태여난것이 행복이라고 하는것이지. 그런 정과 사랑이 없다면 태여난것자체가 불행일거요. 허허. 나를 그렇게 쳐다보지 마오. 이건 사실 어느 소설책에서 본거요. 하지만 말이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소.
동무의 안해도 훌륭한 녀성이고 세상떠난 가시아버지나 그리고 조장선생의 그 가시어머니도 참 깨끗한 마음을 지닌 로인이요. 내 조장선생한테 말하고싶은게 있소. 우리 시험연구조가 어떻게 하나 프로그람 〈미래〉를 훌륭한 창조물로 하루빨리 완성하여 내놓자는거요. 집단이 합심하고 조장선생이 늘 강조하는것처럼 나라의 부강번영에 우리들의 티없는 지성을 깃들이려는 그 마음이면 얼마든지 우리의 꿈을 실현할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 꿈이란 뭐겠소.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기쁨을 드리려는 우리들의 생의 목적이 아니겠소. 난 조장선생이 자나깨나 애오라지 그 하나의 꿈을 안고 심장을 불태우는거라고 생각하오. 안 그렇소?》
《옳습니다. 그건 우리 시험연구조성원들 모두의 꿈이지요.》
《내 생각은 그렇소. 그 로인이 정말로 집을 나가기야 하겠소. 조장선생,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넘기기 힘든 고비가 있을수 있는게 아니겠소. 이겨냅시다. 큰일을 위해서 말이요. 우리 시험연구조가 합심해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하나의 큰 자욱을 남긴다면 먼 후날 그 모든것이 긍지로운 추억으로 남을것이 아니겠소. 그때면 로인도 기뻐할거요. 동무가 낳아준 친어머니이상으로 모시는 로인이 아니요.》
어설픈 미소가 김호성의 살폭이 없는 까칠한 얼굴에 실리였다.
량원일은 시험연구조의 일과 관련하여 생각되는 몇가지 창발적인 의견을 말하고나서 인차 일어났다.
나가면서 그는 《내가 나이많은 사람으로 생각이 있어서 한마디 해준것을 참고하우. 조장선생, 새 가정을 이루는 문제 말이요. 그건 우리 연구조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하오.》하고 그루를 박아 말했다.
《고맙습니다, 량선생. 다른 동무들도 그렇구요.》
김호성은 자기 일을 두고 마음쓰는 동무들이 정말로 고마왔다. 생활의 공백을 남겨두는것도 랑비라고 언젠가 김광우부국장이 해주던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그러자 눈앞에는 한 처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상떠난 안해와 자별했던 처녀, 이름조차도 안해와 비슷하여 자매처럼 생각되는 강수영이란 처녀였다.
오늘따라 안해생각이 못 견디게 떠오르는것은 사실 그 일때문이였다.
어제 김호성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그 강수영을 만났다.
《동문 너무 아름답구만!》
생활이 흘러가는 거리, 드넓은 도로로 살같이 달려가는 차들, 길을 메우고 흐르는 사람들의 물결… 퇴근무렵의 도시는 활기로운 생활의 음향으로 가득차있었다.
김호성은 도로가까이에 있는 소공원의 의자에 앉아 처녀에게 말했다. 류다른 사연을 안고 온 처녀에게 하는 첫마디 말치고는 누가 들어도 싱겁기 그지없다고 할수 있는것이였다.
아닌게아니라 처녀는 아연해서 김호성을 바라보았다.
《?! …》
《모욕으로 생각하지 마오. 그런게 아니요.》
상대방의 속생각을 말짱 안다는듯 한 자신감과 어쩌면 거만기가 느껴지는 그 말에 처녀는 약이 올라 부르짖었다.
《그럼 뭡니까?》
《동무는 처녀가 아니요. 그리고 공부를 한 아름다운 처녀이고… 동무의 결심에 응할 권리가 나한테는 없소. 애당초 나한테 그런 편지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소. 왜 그런지는 말하지 않아도 동무가 알거요.》
처녀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태연한 미소가 살아났다.
《경박한 처녀의 결심이 아니예요. 동진 자기의 명석한 두뇌와 지식을 가지고 나라의 교육발전에 기여할 중요한 일을 하고있지요. 동진 그길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하며 성공해야 해요. 그것을 위해서 이 강수영은 수련동지가 섰던 자리에 설 결심을 한거예요. 그것은 나라의 진보를 위해 제가 할수 있는 일이예요.》
《동문 나를 괴롭히지 마오.》
처녀는 고개를 저었다.
《동지를 괴롭히자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저는 제 의무에 대해서 말하는거예요. 그리고 저는 강수련소대장동지에게서 그렇게 사는 법을 배웠어요.》
처녀는 한주일후면 자기는 평양에서의 일을 마치고 광산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에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했다.
《대답을 기다리겠어요.》 처녀는 그 말을 남기고 먼저 일어나 총총히 걸어갔다.
김호성은 그 일을 생각하며 나직이 한숨을 그었다. 한주일후에는 처녀에게 대답을 주어야 한다. 과연 무슨 대답을 주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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