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영원한 넋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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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철의 부탁대로 두통의 편지를 가지고 강계로 간 은순은 먼저 금주가 다니는 학교부터 찾아갔다. 학교측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렇게 결심하게 된데는 은순이자신이 교원인것과도 관련되여있었다.
금주의 담임교원은 아직 중년에 이르지 못한 젊은 남자였다.
그는 조용한 빈 교실에서 리철이 보낸 편지를 다 읽고나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금주를 데리고가겠단 말이지요. 사실은 우리가 아니라 공장에서 금주를 돌보고있습니다. 합숙의 한 방을 금주의 살림방으로 내고 당비서동지를 비롯한 공장일군들이 적극 나서서 관심해주고있습니다. 그러다나니 학교에서는 그저 금주의 학과성적과 학급생활에만 남다른 관심을 돌리고있을뿐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금주가 태여나 지금껏 다니던 학교… 그것도 그처럼 극진히 돌봐주는 고향사람들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로서도 대답이 안 나가는군요.》
은순은 더 설명할 용기를 잃었다. 금주를 데려가는 일이 떠나올 때 생각했던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결코 아니였다.
그의 상심한 모습을 보았는지 담임교원은 부드럽게 권고했다.
《공장에 찾아가보십시오. 당비서동지를 만나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하면 혹시 다른 방도가 생길지 알겠습니까?》
은순은 담임교원의 바래움을 받으며 학교정문을 나섰다.
여름날 저녁이였다.
은순은 담임교원이 대준대로 평양의 거리와 달리 그리 복잡하지 않은 구획을 이룬 거리를 따라 공장으로 향하였다. 내륙지대의 메마른 폭양도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있었지만 마음속은 그리 가볍지 못했다. 그것은 금주에 대한 리철의 진심이 어떤 커다란 장애에 부닥칠것만 같은 예감때문이였다.
시변두리에 자리잡고있는 공장은 은순이가 생각했던것보다 규모가 대단히 컸다. 방대한 부지를 차지하며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들어앉았고 정문 역시 그에 어울리게 대형화물자동차 서너대도 동시에 어길만큼 드넓어보였다.
접수실에서 까만 닫긴깃옷을 입은 사람이 은순의 증명서를 받아들었다.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끔 쳐다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접수시간이 지났는데…》
은순은 더럭 조바심이 났다.
《좀 만나게 해주십시오. 전 이 공장에서 돌보고있는 신금주학생과 관계되는 일때문에 왔습니다.》
《신금주학생이요?! …》
그는 유심히 은순을 바라보았다.
은순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예, 얼마전에 어머니를 잃은…》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금주와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은순은 주춤거렸다. 어떤 관계라 해야 할지… 그러나 곧 용기를 내였다.
《전 그의 오빠가 복무하는 중대 지휘관동지들의 부탁을 가지고왔습니다.》
그 사람은 놀란 눈길로 은순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곧 곁에 놓인 전화기에서 송수화기를 들고 당비서를 찾기 시작하였다.
잠시후 련결이 되여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그는 친절한 태도로 은순에게 출입증을 떼주었다. 그리고는 밖에까지 나와 은순에게 당위원회가 자리잡은 3층짜리 건물을 가리켜보였다.
《2층계단을 올라 좌측 첫방이 당비서동지 사무실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은순은 그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3층짜리 청사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황철나무며 수삼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앉아있고 꽃나무들이 우거진 구내는 공장이라는감을 잊을 정도로 깨끗하고 산뜻하였다. 더욱 눈길을 끄는것은 곳곳에 세워진 《군자리정신》, 《혁명적군인정신》과 같은 힘있는 표어들이였다.
은순이가 계단을 오르자 60나이에 이르렀을 몸가짐이 틀스러운 당비서가 문밖에까지 나와있었다.
그는 은순의 인사를 받기 바쁘게 반기였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금주 오빠한테서 소식이 없어 나도 기다리던 중이였습니다. 들어갑시다.》
은순은 송구스럽게 당비서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서며 금주에 대한 공장의 관심을 다시한번 뜨겁게 느끼였다.
당비서는 친절히 은순에게 의자를 내여주고는 자기도 자리를 잡았다.
《어서 이야기하시오, 무슨 부탁인지…》
은순은 리철의 편지가 들어있는 봉투를 조심히 당비서앞에 내놓았다.
《중대장동지는 이 편지를 당비서동지에게 꼭 전해줄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당비서는 봉투를 받아 편지를 꺼내여 펼쳤다. 주의깊게 다 읽고나서는 너그럽게 웃었다.
《중대장동무는 금주를 돌보고있는 우리한테 감사를 보내여왔는데 아무렴 친부모만이야 하겠소. 기쁜건 금주 오빠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인차 가시고 전연경계근무에서 남다른 위훈을 세우고있다는거요.
참, 그런데…》
당비서는 그제야 호기심어린 눈길로 은순을 바라보았다.
《평양에 있는 선생이 어떻게 중대장동무의 편지를 가지고 오게 되였소?》
은순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
당비서는 그러는 은순을 보며 의미깊은 미소를 지었다.
《허, 남다른 사이인 모양이구만. 알만 하오!》
은순은 당비서의 호의적인 관심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이제 돌아가면 부대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여있습니다.》
《부대에서?! …》
당비서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긴 부대적인 경사로 될만도 한 일이지. 작년에 난 〈로동신문〉에서 최전연을 찾아간 대성요업공장 처녀들의 소행을 소개한 기사를 읽은바 있었소. 무척 감동되였더랬는데 그들과 꼭같은 주인공을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될줄은 몰랐소. 축하하오!》
은순은 고개를 들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당비서동지, 고맙습니다.》
당비서도 호인스레 웃고나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어쩐다? ! … 금주를 보내는 일 말이요.
중대장동무의 심정이 리해 안되는건 아니지만 금주가 어떻게 생각할는지. 이건 당비서로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은순은 시원스러우면서도 경우가 바른 당비서의 견해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이제 와서 가고말고 하는것은 실지 금주에게 달려있었던것이다.
당비서는 역시 호방스러운 사람이였다. 은순의 난처한 립장을 풀어주듯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선생으로 말하면 우리 금주한테 반가운 손님으로 될텐데 하루밤 함께 지내며 의향을 물어보는게 어떻소.
금주의 결심에 맡긴다 할가? …》
은순은 당비서의 그 호의가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그라고 금주를 선뜻 보내고싶을텐가. 그러나 금주에게 바쳐가는 성의를 다 소중히 받아들이며 쉽지 않은 아량을 표시하고있는것이였다.
은순은 비로소 미안한 눈길로 당비서를 바라보았다.
《당비서동지, 고맙습니다.》
《그런 인사는 우리들한테야 서로 어울리지 않지요.》
당비서는 웃음을 짓고나서 먼저 의자에서 일어섰다.
《퇴근시간도 지났는데 우리 합숙으로 갑시다.》
은순은 당비서를 따라 청사를 나섰다.
어느덧 구내에는 어둠이 깃들어 야외등이 켜져있었다.
당비서는 울창한 정원수와 규모번듯한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 구내를 둘러보며 은순에게 물었다.
《선생, 우리 공장이 어떻소?》
은순은 정문을 통과하면서 느낀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정원수와 꽃나무들이 우거지고 건물들이 깨끗하여 공장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평가해주어 고맙소. …》
당비서는 뒤짐을 진채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우리 공장이 고난의 행군을 끝장낼 때가 되였소.
지금 모두 위대한 장군님을 공장에 모실 일념으로 들끓고있소. 사회의 본보기로 내세워준 인민군대의 모범을 따라배워서 말이요.
저기 씌여진 표어처럼 혁명적군인정신이면 무엇인들 못해내겠소?》
당비서는 구내를 지나 아담하게 지은 2층짜리 합숙에로 은순을 안내하였다.
합숙현관앞에서 그들은 나이지숙한 녀인과 마주쳤다.
녀인은 어리둥절해하였다.
《아니, 금주가 걱정되여 왔어요? 점심에도 오고 저녁에도 오고…》
당비서는 허허 웃으며 은순을 돌아보았다.
《우리 로친이요. 합숙관리원으로 일하고있소.》
은순은 뜻밖의 소개에 서둘러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당비서는 이어 집사람에게 은순을 소개하였다.
《인사하오. 금주 오빠네 부대에서 온 귀한 손님이요. 이를테면 금성이네 중대장 안해요.》
녀인은 얼굴에 활짝 웃음을 담았다.
《이런 반가울데라구야! 금주가 얼마나 기뻐하겠나!》
당비서는 그러는 녀인에게 일렀다.
《우리 식사도 금주네 방에 날라오오.》
녀인이 바빠하였다.
《아이참, 당신두. 미리 전화라도 해줄게지.》
당비서는 짐짓 눈을 흘겼다.
《불의에 합숙식사질도 평가할겸 좀 좋은 기회요?》
확실히 당비서는 훌륭한 일군이였다. 이것은 금주를 합숙에 자리잡게 하고 관리원인 집사람이 돌봐주게 한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었다.
합숙 한 방앞에 이른 당비서는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금주야, 네 오빠네 중대에서 반가운 손님이 왔다.
중대장동지의 새각시이다!》
은순은 한순간 당황하였다. 그러나 곧 금주의 리해를 돕기 위한 당비서의 그런 소개를 고맙게 받아들이며 자기앞에 나타난 분대장의 녀동생을 바라보았다. 반가움과 호기심이 그의 크고도 아련한 눈매에 실려있었다.
은순은 다정히 웃음을 보냈다.
《금주, 이렇게 만나 반가워.》
금주는 마주 방긋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아지미, 안녕하십니까!》
은순이 척 보기에도 금주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당비서는 장판바닥에 자리를 잡으며 은순에게도 권했다.
《선생도 어서 앉으시오. 금주의 살림방이 그저 이렇습니다.》
은순은 그 권고를 따르며 새삼스러운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텔레비죤, 이불장, 그안에 들어있는 꽃이불, 책꽂이가 놓여있는 책상과 벽에 걸려있는 기타…
은순은 그 기타를 바라보며 당비서에게 물었다.
《금주가 음악에도 취미가 있습니까?》
당비서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취미정도가 아니지요. 학교예술소조에 참가하고있으니까요.
선생도 오늘 저녁에 금주의 노래를 꼭 한번 들어보시오.》
은순은 진심으로 사의를 표했다.
《금주에 대한 당비서동지의 관심이 정말 큽니다.》
당비서는 흔연하게 웃었다.
《사실은 그렇지 못하지요. 금주의 학습방조를 맡아안을데 대한 당적분공을 받고있지만 회의요, 출장이요 하면서 그 날자를 종종 어기군 한답니다, 허허!》
문이 열리며 음식그릇이 놓인 다반을 든 당비서의 안해가 들어섰다.
《이걸 어쩌나, 국수를 좋아하는지. 저녁에 국수를 했기에 그냥 들고왔답니다.》
은순은 송구스럽게 몸을 일으켜 금주가 가져다놓은 밥상우에 국수그릇들을 받아놓기 시작하였다. 꾸미는 시금치무침이였지만 금주에게는 닭알 한알이 더 놓여있었다.
당비서의 안해는 구미에 맞지 않아도 다 들라고 거듭 이르고는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방에서 나갔다.
식사가 끝나자 당비서는 더 시간을 끌지 않았다. 담배 한대를 피우고나서 금주와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는 간단한 인사를 남긴채 자리를 피했다.
은순이와 단둘이 남자 금주는 방시레 웃음을 지었다.
《아지미, 당비서할아버지가 왜 아지미보고 선생이라고 하나요?》
은순은 마주 웃음을 보냈다.
《아지미도 얼마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였단다.》
금주는 그제야 생각나는것이 있는듯 책상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왔는데 그의 손에는 뜻밖에도 손거울이 쥐여져있었다.
《아지미, 이 손거울 아지미가 준것이 아니나요?》
은순은 직감력이 빠른 그의 머리를 정겹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그때 아지미에게는 정말 이것밖에 없었단다.》
금주의 얼굴에는 티없는 웃음이 방긋 실렸다.
은순은 려행용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안에서 양복점에 부탁하여 만든 옷을 꺼내여 펼쳐들었다.
《금주, 우리 이걸 입어보자.》
금주는 놀란듯 선뜻 일어설념을 하지 않았다.
《금주, 왜 그러니? 오빠에게서 대강 듣고 짐작으로 만든건데 네게 맞겠는지 모르겠구나.》
금주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을 다 입혀본 은순은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도 몸에 꼭 맞았던것이다.
은순은 그 기쁨에 슬며시 금주를 끄당겨안았다.
《금주, 됐구나. 몸에 꼭 맞는다.》
금주도 기쁜듯 은순의 목을 꼭 그러안았다. 문뜩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보았던 기타가 눈에 띄였다.
《참 금주야, 아까 당비서할아버지가 꼭 노래를 들어보라고 하셨지? 새 옷을 입은 너의 노래를 들어보자꾸나.》
금주는 제꺽 기타를 벗겨들고와서 은순이와 마주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생긋 웃었다.
《아지미, 잘하지 못해요.》
은근한 기타소리와 함께 금주의 청아한 노래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키가 벌써 한뽐
한뽐이나 컸는데
우리 엄마 나를 보고
손잡고 함께 걷재요
언제나 언제나 걱정많은 우리 엄마
가슴엔 사랑넘쳐요
…
은순은 박수를 쳤다. 그러나 어머니를 절절히 그리는 금주의 마음이 노래에 담겨있어 금시 눈물을 쏟을것만 같았다. 그 기색을 감추며 그는 말했다.
《금주, 나도 한곡 불러볼가? …》
금주는 박수를 쳤다.
《야, 좋아라!》
은순은 기타를 받아안았다. 그리고 나직하고도 은은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
금주는 놀란듯 은순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아직 은순이가 성악교원이라는것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은순의 노래가 끝났지만 금주는 오도카니 앉아 움직일줄 모르고있었다. 반하기라도 한듯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그의 얼굴에 뜻밖에도 서글픔이 비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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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아지미, 오늘 밤만 자고 아지미는 떠나가나요?》
은순은 그제야 기타를 내려놓았다.
《그래, 금주와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고…》
《중요한 문제요? …》
은순은 왜 그런지 선뜻 입을 열기가 주저되였다. 당비서를 만나보고 합숙에까지 와보니 금주를 데려가는것이 얼마나 심중한 문제인가를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던것이다. 당비서를 포함한 공장사람들과 학교교원들의 서운한 마음도 그렇지만 금주가 리철의 부모님들한테로 가서도 과연 이곳 생각을 용케 털어버릴수 있을가?
은순은 애써 그 의혹을 밀어버리며 조용히 물었다.
《금주야, 저녁에 혼자 있을 땐 몹시 적적하겠지?》
금주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낮엔 동무들도 종종 찾아오고 저녁엔 당비서할아버지랑 합숙어머니들이 찾아오지만 밤에 잘 땐 적적해요. 그전에 어머니랑 함께 있을 땐…》
금주는 더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그래서 말이다. …》
은순은 비로소 자기가 찾아온 목적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중대장아저씨는 금주가 몹시 걱정되여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과 의논하고 그곳으로 보낼 생각을 가지게 되였단다. 그러면 금주는 외롭게 지내는 부모님들에게 기쁨이 될게고 부모님들은 또한 금주를 친딸처럼 사랑하게 될거다. 금주, 어떻니? 네 생각엔…》
금주는 약간 놀란듯싶었다.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떠듬떠듬 말했다.
《아지미, 그건 안돼요. 당비서할아버지랑 내가 가겠다고 하면 몹시 섭섭해하실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이랑 동무들이랑…
아지미, 난 여기가 좋아요.》
은순은 더 물어볼 의욕을 잃었다. 예견했던대로 금주는 설사 리철의 부모님들한테 간다 해도 이곳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할것이다.
은순은 이로써 당비서와 합의한대로 금주의 생각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결심하고나니 왜서인지 마음이 허전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때문인가? 리철의 진심이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때문일가? …
금주가 조심히 은순의 생각을 흔들었다.
《아지미, 텔레비죤을 켤가요?》
은순은 방싯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 그러자꾸나.》
금주가 텔레비죤을 켰다.
방송원이 화면에 나와 앞으로의 날씨를 예보해주고있었다.
《이와 같이 태평양상에서 발생하여 우리 나라 중부지역으로 이동하는 열대성저기압의 영향을 받아 강원도와 황해남북도의 전반지역에서 폭우를 동반한 많은 량의 비가 내릴것이 예견됩니다. 그러므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피해가 없도록 철저한 안전대책을 세워주기 바랍니다.》
은순의 눈가에는 은근한 근심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새생활이 시작될 고장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였고 걱정이였다.
금주가 걱정스럽게 은순의 무릎을 흔들었다.
《아지미! …》
은순은 그제야 금주를 미안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금주야, 오빠가 있는 전연에 많은 비가 내릴것이 예견되는구나.》
금주는 다시 물었다.
《아지미, 그럼 어떻게 되나요?》
《인민군대아저씨들이 폭우를 맞으며 전연을 지키게 된단다. 그리고 큰물피해를 입을수도 있고…》
때마침 화면에서는 공훈합창단의 합창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잠시 텔레비죤에만 전념하는듯싶었다.
불현듯 금주가 입을 열었다.
《아지미,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은순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금주의 간절한 눈길이 은순의 얼굴을 향하고있었다.
《아지미, 날 오빠한테 데려다줄수 없나요? 오빠를 꼭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요.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오빠가 더욱 그리워져요.》
순간 은순은 가슴짜릿한 충격을 느꼈다. 내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그러나 자신에 대한 그 질책에 이어 재차 가슴을 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금주를 맡아안는다면…
그제서야 느끼는바가 있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금주를 그냥 여기에 두기로 한 다음에도 허전한 마음을 달랠수 없은것은 바로 자신이 맡아안아야 할 책임감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은순은 금주를 바라보았다.
《금주야, 이 아지미는 꼭 금주와 같이 살고싶구나. 중대장아저씨랑 함께 말이다. 네 생각은 어떻니?》
금주는 마치 그 소리에 홀린듯 멍하니 은순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은순은 다시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난 금주만 동의하면 래일 함께 떠날테야.》
금주는 소리없이 일어나 은순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흐느꼈다.
《아지미, 난 아지미가 좋아요. 난 아지미하고 살구파요!》
금주를 마주 꼭 껴안는 은순의 두눈에도 눈물이 고여오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