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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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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728회 작성일 22-01-25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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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생활은 앞으로


29


차성재가 관리위원장방으로 들어왔다. 명숙은 그를 미소로써 반갑게 맞이했다.

《6작업반 금옥이 말입니다. 내가 그 애를 군기동예술선동대에도 도예술단에도 못 간다고 눌러앉힌걸 알고있지요?》

차성재가 앉으며 하는 말이였다.

《알고있습니다. 군당 부장동지가 나한테까지 화풀이를 했습니다.》

《오늘 내가 6작업반 부락당비서를 만나서 금옥이가 그새 어떻게 일했고 분배는 얼마나 탔는가 알아보았지요. 내가 약간 암시를 주었기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금옥이가 착실하게 일하고 예술소조활동도 잘한것 같습니다. 부락당비서도 평가하더군. 그래서 나는 금옥이의 심장에 향토의 넋이 깃들었다고 인정하고 그 애를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에 추천할 생각입니다.》

명숙은 차성재를 이윽히 쳐다보았다.

《왜, 반대요?》

《아닙니다. 나는 비서동무의 속이 그렇게 깊은줄 몰랐군요. 나는 사실 그 애를 군기동예술선동대에 보내자는 제기를 리당에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비서동무는 금옥이를 대학에 보내려고 준비시켰군요. 향토의 넋을 간직해야 노래를 불러도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게 부를것이고 그래야 장차 훌륭한 가수가 될게 아닙니까. 느끼는바가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차성재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는 우리의 예술발전을 위해 로고를 기울이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뜻을 따랐을뿐입니다. 금옥이가 훌륭한 가수로 자라 그이께 기쁨을 드리면 이것은 우리 잠정리의 크나큰 자랑이 아니겠습니까. 잠정리에는 좋은 싹이 많습니다. 기사장동무의 딸 경애도 자기를 공부시켜준 조국에 보답해야 한다며 농촌에 뿌리내리기로 결심한 기특한 처녀입니다. 나는 경애와 철수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합니다. 관리위원장동무에게서도 느껴지는것이 많습니다. 배울 점이 많습니다.》

《아이참, 무슨…》

명숙은 얼굴이 확 붉어졌고 머리가 숙어졌다.

당조직은 얼마나 다심한가.

차성재는 밝은 눈으로 명숙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금옥이 말입니다. 관리위원장동무가 만나주면 좋겠습니다.》

《그거야…》

《내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데 관리위원장동무가 만나서 대학입학준비를 시키고 평양에 가서 실무적인 절차를 밟는 문제도 잘 알으켜주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이모저모로 관리위원장동무가 나서면 더 좋을겁니다. 내가 짐을 떠민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명숙은 왜 리당비서가 그 좋은 일을, 한 예술적재능을 추천하여 대학에 보내는 일을 자기에게 맡기려 할가, 생각이 있어서 그런다는것은 무엇일가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였지만 대답은 명백히 했다.

《당조직의 분공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분공이라기보다 인간적인 부탁입니다.》 하고 차성재는 우선우선한 얼굴로 말했다.

인간적인 부탁… 이 말속에 많은 의미가 있을것이다. 차성재는 금옥이를 한해 착실히 농사일을 시키고서야 대학에 추천하려 한다. 이것이 한 처녀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기울인 그의 원칙적이고 인간적인 노력인것이다. 금옥이네 집으로부터도, 군당부장으로부터도 오해를 사면서 꾹 참았다. 그처럼 그는 속이 깊은 사람이다. 지금 자기가 공들인 노력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데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낄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한 결말을 관리위원장 명숙이에게 맡기였다. 어떻게 해서든 행정일군을 내세워주려는 당일군의 도량과 인간미에서 출발한것이라고 명숙은 생각했다.

차성재는 관리위원회가 연유에 대한 강한 통제로부터 제도와 질서를 세우겠다고 한 명숙을 지지하면서 어떤 실무적인 대책을 세우려 하는가고 물었다.

《기계화작업반에서 연유를 겸해서 보는 통계원을 아주 원칙적이고 엄격한 사람으로 앉혔으면 합니다. 지금동무는 다른 업무량도 있고 아무래도…》

명숙이 대답하였다. 차성재는 두말없이 지지했다.

《그렇게 합시다. 원칙적선에서 양보를 모르는 그런 사람을 골라 토론해봅시다.》

《예, 탐문하겠습니다.》

그후 명숙은 그 사업에 적합한 사람을 물색하였다.

어떤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야 하겠는가, 누가 적합하겠는가 하고 아무리 머리를 짜도 신통한 대상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차에 하루는 로동지도원이 찾아들어왔다.

《위원장동무.》

술만 마시지 않으면 조용하고 말이 적으며 사업에 충실한 그가 말했다.

《2작업반 곽기춘령감을 압니까?》

《곽기춘?》

《〈꽉쇠〉령감 말입니다.》

《예- 알구말구요. 언젠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는데요.》

명숙은 곽기춘이를 생각하자 저절로 웃음이 나갔다.

《그 령감이 환갑만 되면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한답니다.》

《그래요? 내 보기에는 원기왕성하고 건강한것 같던데요? 령감소리를 듣기엔 아직…》

《그런데 글쎄 그 령감이 반장 윤구와 잔뜩 틀렸습니다. 윤구는 곽령감이 쩍하면 잔소리를 한다고 싫어하고 곽령감은 윤구가 일을 되는대로 하고 깐깐하지 못하며 인간성이 없다고 비난하지요. 게다가 작업반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원칙적인 소리만을 한다며 곽령감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 령감이 나이가 되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것입니다.》

명숙은 심중해졌다.

어째서 작업반장이나 일부 반원들이 그를 싫어하겠는가? 곽기춘이는 전후에 애젊은 나이에 농사일을 시작하였고 농업협동화운동에서도 선진적이였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주의원칙으로 교양된 선배들이다.

작년 모내기현장에서 보았던 곽기춘이가 떠올랐다. 좁고 긴 얼굴에서 작은 눈에 명랑하고 능청스러운 웃음을 짓고있던 그는 관리위원장을 빈 소달구지에 타라고 했었다. 그는 여러가지 유익한 말을 많이 했다. 그는 가축들이 줄어들고 연유가 랑비되고 질서와 규률이 해이된데 대하여 말했고 농장이 자체로 농사를 지을수 있다고도 말했다. 한번 견해를 세우면 절대로 바꾸지 않는 고집이 센 성격이라 한다.

명숙은 곽기춘이와의 그날의 담화에서 충격을 받은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소를 잘 먹이지 않아 엉치뼈가 솟는다고 개탄한 그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명숙은 작업반장들의 모임에서 부림소를 잘 관리할데 대한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공동우사에 책임적인 로인들을 배치하고 그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이도록 하였다. 연유도 긴장한데 부림소가 할 몫이 많았다. 그러므로 부림소를 경시하는 현상을 없애며 관리를 잘하는것이 매우 중요했다.…

《윤구반장이나 일부 반원들이 곽기춘아바이를 싫어하는것은 그가 부정적현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키기때문이겠지요?》

명숙이가 물었다.

《그렇지요. 그런데 곽령감이 너무 원칙만 주장하고 꼬장꼬장하고 융통성이 없는것은 사실입니다. 고집은 하늘소 뒤발통같구요. 공연히 〈꽉쇠〉라 하겠습니까?》

로동지도원이 하는 대답이다.

《마장석반장이 나보고 뭐라 했는지 알아요? 로당원들이 나이가 되여 하나, 둘 집에 들어가면 농장이 참 허전해질것이다, 농장에서 오래 일하며 사회주의가 몸에 밴 그런 로인들이 있어야 새로 일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랬어요.》

명숙이가 하는 말이 심금을 울리였는지 로동지도원은 감동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명숙이는 그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곽기춘이야말로 자기가 찾아내려 했던 연유관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발견을 하게 되였다.

《준식동무, 래일 아침 첫시간에 곽기춘아바이를 내가 만나겠어요.》

《좀 자중하도록 설복하려고요?》

《하여튼 내가 찾는다고 하세요.》

《예, 그러지요.》

로동지도원은 의문을 품고 물러갔다. 그는 곧 2작업반에 전화를 걸었다.

경비서는 로인이 전화를 받았다.

《령감님.》 로동지도원이 말했다.

《곽기춘네 집에 얼른 뛰여가서 래일 아침 일찌기 관리위원장한테 오라고 전하시오. 알았소?》

《늙은게 뛰여가긴 어떻게 뛰여가.》

곽기춘이 이튿날 아침 일찌기 관리위원회에 출두하였다. 추운 날씨여서 털모자를 쓰고 솜덧저고리를 입고 솜신을 신었다. 추위에 얼굴이 퍼렇게 되고 코물이 코끝에 매달려 데룽거리였다. 그는 코물을 손수건으로 훔치고 숨을 좀 들이킨 다음 문을 두드렸다.

《예, 들어오십시오.》

녀성관리위원장의 힘찬 대답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그는 털모자를 벗었다. 온돌에 불을 땐 사무실이 덥기도 하거니와 관리위원회에 올라왔으니 관리위원장에게 응당한 례의를 표시하는것이였다. 관리위원장이 젊은 녀자이지만 농장의 호주가 아닌가. 또 작업반이나 길바닥에서 만난 경우와도 다르다. 여기는 관리위원장사무실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무실로 불렀을가? 명숙은 그의 깨끗한 옷차림을 보고 늙은이가 유식할뿐아니라 인격을 일정하게 갖추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녀성관리위원장은 일어서며 환하게 웃었다.

《아버님, 어서 오십시오. 추운 날 오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일이 있어서 불렀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러면 미안할게 없습니다, 관리위원장이 사업상으로 농장원을 부른거니까.》

명숙은 참 재미난 아바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두 년세가 있지 않습니까.》

《령감이래두 농장원이지요. 관리위원회에서 부르는데 싫어하거나 나이 많아서 가지 못한다면 일을 그만두어야지요.》

《자, 이쪽 더운데로 오십시오.》

명숙이가 관리위원장이 쓰는 앉은뱅이책상쪽으로 그를 이끌어가려 하였다.

《아니, 난 여기가 좋쉐다. 그러지 않아두 더워서 솜옷을 벗어야 할 형편이요.》

곽기춘이 사양했다.

명숙은 그가 솜옷을 벗게 하여 털모자와 함께 말코지에 건 다음 기어이 책상가까이로 이끌어갔다.

(대체 무엇때문에 불렀담? 누구에게나 이렇듯 친절한가.)

그는 관리위원장이 빨리 용건을 말했으면 하는 심정이였다.

그런데 관리위원장은 그의 집안일부터 묻는것이였다. 하기야 간부들이 누구와 담화를 하는 경우 의례히 가정형편이라든가 건강상태 등을 묻는 법이다. 기본용건을 꺼내기전의 예비담화인것이다.

《집에 누구누구 있습니까?》

《나하구 로친네, 맏아들내외와 손주들이 있습니다. 그리구 뜨락또르운전수를 하는 둘째가 있고 셋째놈은 군사복무중이외다.》

《둘째도 군사복무를 했지요?》

《예, 땅크병이였습네다.》

명숙은 철수를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왔다. 경애와 철수를 둘러싼 파동은 잦아들었고 아직은 무슨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있지만 두 청춘남녀가 받은 심리적타격은 결코 쉽게 아물지 않을것이며 그들의 뜨거운 사랑은 언젠가는 활화산처럼 분출할것이라고 생각하고있는 명숙이였다. 지금은 철수도 경애도 조용했고 양옥실이도 조용했다. 철수는 일체 그와 관련하여 입을 꾹 다물고있었으므로 그가 처녀를 단념했는지 어쨌는지 누구도 알수 없다고 한다. 부모들이 딸을 다른 좋은데 시집보내려고 하는데 뿌득뿌득 다가들며 나한테 주시오 하고 자존심없이 말하겠는가?

그러나 만약 서로 진정으로 뜨겁게 사랑한다면 부모가 설사 반대한들 상관이겠는가, 그렇지도 않아, 남의 일이니 말하기야 쉽지.… 이렇게 옆에서들 떠들었으나 철수 당자는 마치 벙어리 한가지였다.

경애는 어떤가? 경애는 아예 집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휴식일때도 태평농장에 박혀있다. 처녀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두사람이 그후 만났는가? 아니다. 그들은 서로 피하고있는것 같다.

경영위원회 지도원은 사람들앞에서 한바탕 웃는것으로 끝을 보였다. 로정만의 처는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있는것 같았다. 양옥실은 군경영위원회 지도원과 성사되지 못한것이 명숙이탓인듯 가슴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있었지만 그것을 더 터뜨리며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는 귀신이나 알노릇이다.

《아버님.》

명숙이가 입을 열었다.

《철수동무에게서 별다른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까?》

곽기춘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도 아들때문에 마음을 쓰고있는중이였다.

《버버리 한가지웨다. 통 말이 없지요. 차라리 잘됐습니다. 늦도록 책을 읽고 공부를 하니까, 난 철수한테 기사장의 딸을 단념하라고 엄하게 말했습니다.》

명숙은 저으기 놀랐다.

《아니, 왜요? 경애가 싫습니까?》

《경애야 착하고 똑똑한 애지요. 하지만 기사장의 딸이 아니요? 기사장네가 우리같은 농사군집에 딸을 주려 할리 있습니까? 내 그래서 철수보고 머저리짓을 하지 말라,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 다시 경애와 상종해서 또 말썽이 생기는 날에는 집에서 내쫓겠다 하구 강경하게 말해주었지요.》

명숙은 한숨이 저절로 나갔다.

《아닙니다. 사랑을 억지로 막을수는 없지요. 그들의 사랑은 깨끗하고 뜨거울거예요.》

《아니요!》 곽기춘이 자기의 성미를 드러냈다.

《관리위원장, 그 애를 부추기지 마시오, 나한테도 설복하려 하지 말고. 그 일때문에 불렀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할말이 없소. 가겠소.》

《아, 아니 아니예요!》

명숙은 황급히 일어서려 하는 곽기춘을 붙들었다.

《그 얘긴 그저 꺼냈을따름입니다. 아버님을 대하니 철수생각이 간절해서요. 나는 물론 그후 철수를 더러 만나긴 했지만 사업상이야기외는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담배를 태워도 되갔소?》

《네, 어서 태워요.》 하며 명숙은 남자손님들을 위해 늘 준비해놓고있는 담배곽과 라이타를 밀어주었다.

곽기춘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난 이 잎담배를 대통에 다져넣어 피우는게 제일 좋소.》

그는 말리워 썬 잎담배를 대통에 다져넣었다. 그리고 성냥을 켜 불을 붙인 다음 한동안 연기를 내뿜었다.

명숙이가 철수를 생각하면 가슴아프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말없는 괴로움에 어찌 비기랴! 명숙이는 어쩐지 철수이야기를 꺼낸것이 공연한 일이 아니였겠는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저- 용서하세요. 제가 공연히…》

《아니웨다, 관리위원장! 고맙소. 그 마음이 고맙소.》

곽기춘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너무 마음쓸것 없쉐다. 철수가 장가 못 갈가봐 걱정해본적은 한번도 없으니까, 허허.…》

《그건 그렇습니다. 철수같은 청년은 우리 농장의 자랑입니다. 인물도 그 어디 내놔도 짝지지 않습니다.》

명숙이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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