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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한기정 선생을 회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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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971회 작성일 21-12-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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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한기정 선생을 회고하면서

                                                                                                                                                                                                     [민족통신]


한기정 선생은 1932년 7월 19일 강원도 평강에서 출생했다.

1950년 7월에 인민군에 입대하여 동해여단에서 복무했다.1950년 조국전쟁 중 남여단이 창설되어 여수까지 진격해 왔었다.

9.28후퇴를 맞아 추풍령까지 북상 중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내려와 화순 백아산에서 빨찌산 투쟁을 하게 되었다.이는 조선 반도의 최 남쪽해안 전선에 까지 내려 왔다 후퇴로가 너무 멀어서 적들의 차단 공세로 인하여 북상에 성공하지 못하고 남아 빨찌산 투쟁을 하면서 기회를 노렸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후방 빨찌산 투쟁에 몸을 바치게 되었다.




한기정동지는 백아산에서 총사령부 보위대에서 투쟁 중 1951년 여름 화순 수리마을에 보급투쟁 나갔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본부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새 마을에 숨어 있다가 마을 주민에게 발각되었으나 신고하지 않고 본부대로 돌려 보내주는 성의도 보여 주었다. 이는 백아산 지구 인민성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해 여름에 지리산으로 이동하여 투쟁을 전개하다가 또 부상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지리산 천암사골 의무과­ 환자 아지트에서 치료를 받던 중 적들의 대대적인 동기공세 때 수색작전에 노출되어 환자아지트에 있는 부상자들이 1952년 1월 말에 생포되고 마는 아픈 기록을 남기었다.

체포된 후 포로 수용소에 억류 되었다. 수용소에 억류된 포로들을 포로 교환 문제가 대두되자 포로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지 않고 소위 공비로 몰아 재판에 회부하여 7년형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7년을 받고 만기되어 출옥했다. 출옥 후 결혼까지 하여 3남매를 두고 생활하다가 주변정세에 의해서 살아생전에 그렇게도 원하던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2010년에 여한을 품은채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마는 아픈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자제들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진보당에 들어가 사회진보와 자주통일 운동에 몸담고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한기정 선생이시어!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에 동원되어 적들과 싸우다 한줌의 흙으로 산화하여간 전우들이 얼마나 많으랴! 그래도 선생은 우여 곡절은 겪었지만 결혼도 하여 3남매를 두고 갔으니 먼저간 전우들에 비하면 가정까지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였다는 점에서 부담감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내려놓으시고 자주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시며 대를 이어 투쟁하는 후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데 성원해 주기를 기원합니다.





한기정 동지의 장지는 실로암 공원묘원 제 2추모관.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사등길 181. (철마면 고촌리 산 95-16입니다)


2021. 6/11. 2021년 12/12일.



전국묘소답사반은 2021년 12월 12일 을 마지막으로 부산시 기장군 한기정동지 묘소답사를 마치고 2022년을 맞이하여 또 시작된다.


전국묘소답사반 일동,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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