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실화소설집 북부전역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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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회
세상에 부럼없어라
동 의 희
1
《 〈소쩍 소쩍…〉 오늘도 어둠이 찾아들자 소쩍새가 울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는 내가 외할머니네 집에 온 첫날밤부터 들어온 소리입니다.
그칠새없이 반복되는 저 새의 울음소리를 듣느라면 또다시 마음은 눈물의 흙탕물속에 빠지는것처럼 슬퍼납니다. 그러면서도 왜서인지 눈물은 한방울도 나오지 않아요. 그저 오도카니 앉아서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뿐입니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조그만 계집애가 어쩌면 그렇게 무섭게 변할수 있는가고 혀를 찹니다. 종조리마냥 쉴새없이 조잘거리던 윤화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들려옵니다.
〈소쩍 소쩍…〉
〈원, 저놈의 새는 오늘도 떠날 생각을 않고 계속 울어대누나.〉
외할머니는 참지 못하고 눈까지 흘기며 주먹질을 합니다.
원래 이 고장 소쩍새는 가을이 오면 따스한 고장으로 날아가군 하댔다는데 이즈음은 이렇게 늦가을이 다 되여오는데도 이 고장을 떠나지 않고 저렇게 밤새껏 웁니다. 왜 그럴가요. 저 소쩍새도 나처럼 아빠, 엄마를 잃었을가요. 아니면 내가 불쌍해서 밤이면 저렇게 울가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언제이건 날아갈가봐 겁이 나기도 합니다. 밤이 되면 소쩍새 우는것이 그래도 동무가 됩니다.
한순간에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잃고 집도 없어진 나와는 달리 우리 외할머니 줌안에나 찰 그 작은 새에게는 이 고장을 떠나도 자기의 집이 있습니다.
저 소쩍새는 얼마나 좋을가요.
갑자기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옵니다.
〈아니, 오늘은 우리 집 뒤산에 있는 사스래나무에 앉은게구나. 원 우리 윤화가 자지도 못하게. 내 얼른 쫓아줄라.〉
외할머니는 정말 그 새를 날려보낼 생각인지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지 않아도 될걸, 내가 불쌍해서 떠나지 않는지도 모를 소쩍새.
하지만 무슨 말도 하고싶지 않습니다.》
…
입을 꼭 다문채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쓰기만 하고있는 외손녀를 보다못해 소쩍새를 날린다는 구실로 밖으로 나온 할머니는 딛고선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여 요즘은 버릇처럼 한숨이 그칠새 없었다.
할머니에게는 슬하에 딸자식이 두명 있었다. 해변가로 시집을 간 둘째딸과 달리 맏딸은 여기에서 몇십리되는 상창구라는 곳에서 살고있었다. 하지만 림산사업소에 다니는 사위의 도움으로 나무를 실으러 오는 차가 생기면 빈번히 본가집에 오군 해서 곁에서 사는거나 다름없었다.
그때마다 따라와 조잘대군 하던 외손녀였다.
금슬도 좋아서 깨가 쏟아지게 살던 그 맏딸내외가 저 종다리같은 윤화만 남겨놓고 들이치는 폭우에 휘말려 한순간에 사라졌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였다. 지난 8월말 하늘이 무너지기나 한것처럼 폭우가 쏟아지더니 집도 마을도 다 쓸어버리는통에 생긴 참사였다.
그때부터 외손녀는 말이 없어졌다. 감탕에 묻힌 제 아버지, 엄마를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그 애는 이 외할머니의 집에 온 다음부터는 목이 꽉 잠겨버리고 눈물도 말라버렸다. 열세살 어린 나이에 피여나던 봉오리채 떨어져버린 아이 아닌 아이로 되여버린것이다.
온지 며칠후부터 이 고장의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다른 애들과도 휩쓸리지 않고 말도 안한다고 학교선생들이 걱정을 놓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그가 하는 일이란 학습장에 무엇인가 자꾸 쓰는것이였다.
그게 일기라는건지, 거기에 적힌 글을 보고 이 할미도 딸내외의 참상이며 외손녀가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자상히 알게 되였다.
어이구, 억이 막힌 사연을 다 털어놓고 이 할머니의 품에 안겨 엉엉 울기라도 한다면 이 가슴이 이다지도 쓰릴가.
끼때가 되여도 숟가락을 손에 들려주어 재촉하지 않는다면 하루종일 맹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을 윤화였다.
지금 할머니의 제일 큰 걱정거리는 윤화가 밥맛을 잃은것이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십리건 이십리건 가서라도 이것저것 눈에 드는걸 사오군 했다. 피해가 들이닥친 후로는 이 북변땅에 전국의 건설자들이 많이 달려왔다. 그들이 오면서 특산물도, 원호물자도 많이 가지고와 마음에 드는 물건들이 많아졌다. 이 고장의 귀물인 고구마가 쌓인것도 별로 신기해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바다가의 수산물뿐아니라 시멀겋게 다듬은 남새도 어렵지 않게 손에 쥘수 있었다.
했건만 외손녀는 어제도 오늘도 그저그만이였다. 지금도 어둠을 꽉 채운 때지만 아직 저녁먹을 생각을 않고 저렇게 앉은뱅이책상앞에서 떠날줄 모른다. 그 애의 유일한 동무는 저 학습장이고 거기에 자기의 마음을 담는것이 그가 하는 일이였다.
늘 혼자 있는 할머니여서 집에 누구든지 오면 때식을 끓이는 재미가 류별났지만 그 무엇이건 도리질을 하는 윤화를 본 다음부터 은근히 마음이 졸아들고 부엌에 나가는 일이 서슴어지군 했다. 오늘은 좀 먹을가. 저 애가 먹고싶은게 무엇일가.
문득 윤화가 좋아하는 산천어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부지런히 움안으로 들어가 정히 말리워 간수한 산천어꿰미를 찾아냈다. 이걸 기름에 튀겨주면 입맛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이 빨라졌다.
왜 진작 윤화가 제일 좋아하는게 산천어라는 생각을 못했담.
잠시후에 할머니는 기름에 튀겨낸 산천어접시와 토장을 곁들여서 저녁상을 차리고 윤화를 불러앉혔다.
그제야 앉은뱅이책상에 마주앉아있던 외손녀가 고개를 들었다.
《자, 어서 저녁을 먹자. 오늘은 산천어를 튀겼다.》
윤화의 눈이 산천어가 담긴 접시에 멎어섰다.
《그래 네가 좋아하는 산천어다.》 할머니는 틀림없이 윤화의 마음이 열려질걸 생각하며 숟가락을 쳐들었다.
갑자기 윤화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려났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칠듯, 그러면서도 상앞으로 다가올 생각을 안했다. 할머니는 가슴이 섬찍해났다.
산천어가 그 애의 여린 가슴을 허비였다는것을 뒤늦게야 알았던것이다. 아닐세라 외손녀는 벽가로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엔 얼마전에 친정나들이를 왔던 딸내외가 윤화를 가운데 앉히고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에그나, 저 사진을 치웠어야 했을걸.
할머니는 당장이라도 일어설듯 무르팍을 짚었지만 그만 그대로 주저앉고말았다. 사진을 찍고나서 딸이 했던 말이 가슴에 콕 박혀들어서였다.
《우리 윤화생일에 또 모여앉자요. 어머니, 그때 모시러 오겠어요.》
《그렇구나. 난 그럼 우리 윤화가 좋아하는 산천어를 준비해놓지.》
《내가 다 해놓았어요. 이번엔 기름에 튀기려고 다 말려놓았는걸요.》
바로 윤화의 생일을 생각하며 입에 올렸던 산천어다.
그러나 이번 란리통에 산천어는 떠내려간 집과 함께 없어졌고 윤화의 생일도 물과 함께 흘러가버렸다.
외손녀가 좋아하는 산천어만 생각했지 그것이 오히려 그 애의 가슴을 허비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산천어접시는 도로 내놓고 산나물무침으로 억지로 몇술 뜨게한 후 할머니는 잠자리를 폈다. 그리고는 윤화를 곁에 눕혔다.
그전날 이렇게 할머니곁에 누우면 외손녀는 늘 옛이야기를 청했다.
한가지만으로는 성차지 않아 자꾸자꾸 조르군 했다.
할수없이 할머니는 꿍져놓은 옛말주머니에서 한가지한가지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물그물 감겨지는 눈까풀을 쳐들며 요전날 한 옛말을 떠듬거릴라치면 잠자코 듣던 외손녀가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하고 이제껏 들으며 기억했던 옛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되풀이하군 했다. 바뀌여진셈으로 외손녀가 할머니에게 옛말을 들려주는것이다.
그 애의 목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시내물이 흘러가는것 같기도 하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는것 같기도 한 어조로 차분차분 엮어나가는 소리를 듣느라면 정말로 옛말속의 선녀가 되고 목동이 되는 심정이였다.
《정말 듣기 좋구나. 이제부턴 네가 이 할미에게 옛말을 들려주려무나.》
《그럼 외할머닌 우리 집에 와서 사나?》
허, 할머니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여기 림산지구 산림감독원으로 있던 령감을 저세상에 보내고난 후부터 딸들은 저마다 모시겠다고나섰다.
그러나 한생 산골에서 살아온 늙은이가 해변가로 갈테냐. 그저 윤화네가 있는 고장으로 가지. 사위도 령감처럼 산림감독원이니 생소하지도 않았다. 이제 3년상을 마친 후에 가자던중인데 외손녀는 불쑥 이말을 꺼낸것이다.
《그러자꾸나. 너희네 집에 가서 네가 들려주는 옛말을 실컷 들으련다.》
《할머니, 나 이다음 크면 대학에 갈래. 그래서 식물박사가 될래.》
뭐, 대학에 가서 식물박사가 된다구? 좋은 세상 만나 오래 사니 우리 외손녀가 대학에 가는걸 다 보게 되누나. 그게 진짜 락이구말구. 세월두 빠르지. 외손자를 둘씩이나 받아안고 길러보니 장난꾸러기들 성화가 시살스러웠다. 이젠 손녀가 있었으면 했는데 정말 세번째는 손녀를 받아안게 되였다. 갓난애기때부터 애지중지 길렀더니 손자녀석들보다 더 정이 있었다. 방학이거나 틈나는대로 할머니를 찾아와 살갑게 구는 외손녀는 손바닥의 구슬처럼 귀하고 사랑스러웠다. 이 애가 벌써 이렇게 커서 대학갈걸 다 꿈꾸누나.
참 좋은 세월이지.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잠든 밤은 얼마나 재미있고 꿈나라처럼 달콤했던가.
그랬던 저녁밤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숨결도 없는것 같은 손녀가 곁에 누워있는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어디선가에서 소쩍새가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소쩍 소쩍…》
단조로우면서도 구슬픈 정서를 안겨주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이밤 동무가 되는것 같았지만 역시 애잔한 슬픔을 더해주기만 했다.
자연히 잠이 오지 않았다. 워낙 초저녁잠이 많아 저녁술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지던 할머니는 곁에 윤화가 있은 때부터 잠이 없어졌다. 노상 그 애의 눈치만 살피게 되였다.
아직 윤화가 잠든것 같지 않는데 까딱도 하지 않았다.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열기가 무서웠다.
갑자기 저아래 길쪽에서 자동차 멎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후에 부릉부릉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이밤에 동네로 오는 모양이였다. 두만강변에서의 수해처럼 이 산골마을의 하천들도 어방없이 불어나서 근방에 있던 집들이 많이 잠겨버렸다. 다행히 언덕받이에 있는 할머니네 집은 무사했다. 마당에 나서 얼마 안 가면 새집들을 짓는 건설장이 빤히 보였다. 그래서 이즈음은 깊은 밤이건 관계없이 차가 많이 다녔다. 전국이 떨쳐나서 피해복구를 하는판이니 밤이 제일 길던 이 무산땅이 밤을 모르는 고장으로 변했다. 또 나무를 실으러 들어오는 모양인게구나.
갑자기 마당에서 부스럭소리가 나더니 개가 맹렬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흰둥이라 불리우는 집지기는 풍산개인 수컷을 닮아 여간 사납지 않았다.
할머니는 귀를 기울였다.
《계세요? 저, 여기에…》
흰둥이의 짖어대는 소리가 누구인가의 목소리를 대번에 삼켜버렸다.
할머니는 푸시시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 낯선 사람이 온 모양이였다. 이 동네 사람을 못 알아보고 저렇게 짖어댈 흰둥이가 아니였던것이다.
《지개!》부엌문을 열고 나선 할머니는 얼른 개목사리를 잡으며 앞을 여겨보았다.
《저, 여기에 상창구에서 김윤화라는 녀학생이 오지 않았습니까?》
누구길래 이밤에 우리 윤화를 찾누?
《아이, 할머니! 여전히 정정하시네.》
갑자기 반가움이 함뿍 배인 차랑차랑한 목소리가 앞에서 울리는 바람에 할머니는 벙벙해졌다. 방안에서 내비치는 불빛에 싸인 휘친한 자태, 흩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양복앞섶을 여미는 모습을 보니 처녀같았다. 스물네댓 났을가.
조갈이 든 입술을 감빨며 처녀가 다가왔다.
《할머니, 저를 모르겠어요? 송희예요. 실습할 때 윤화 오빠와 함께 할머니네 집에 온적이 있지요. 제가 대학으로 떠날 때도 할머니한테 왔댔지요?》
《엉?!》 그런데도 아직은 송희라는 이름이며 얼굴이 안겨오지 않았다.
하지만 맏손자 윤철이며 윤화를 아는걸 보니 반가운 손님이 분명했다.
《어서 들어가자구. 원, 어디서 오는데 이렇게 밤에 오나. 어서 들어오라구, 어서.》
할머니는 처녀를 덥석 안다싶이하며 안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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