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실화소설집 북부전역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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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서포땅의 녀인들
최학명
4
새벽 5시.
은은한 애국가의 선률이 울려퍼지는것과 함께 녀맹일군들과 녀맹원들은 구역중심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태양상앞에서 충정의 맹세를 다지는것으로 전투의 하루를 시작하였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것이 아니라 그들스스로가 정한 일이였다.
류례없는 대재난에 정든 집과 가산을 다 잃으면서도, 지어는 자기의 목숨까지 바치면서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보위하고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인 혁명전적지들을 지켜낸 북변땅인민들의 고결한 정신세계에 자신을 세워보며 북부피해복구전투의 참전자들로 살고싶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어길수 없는 일과였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그렇게 순조롭게만 풀린것은 아니였다.
하루사업총화가 끝난 후 허정희와 순희가 다음날 사업계획을 토론하고있는데 안영옥이 방문을 두드렸다.
《위원장동지, 이런것도 보고 참아야 합니까?
우리 동의 한 녀맹원이 오늘 리유없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나 잘못된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인 안영옥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여있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요. 혹시 앓는게 아닐가요?》
《아닙니다. 어제 저녁까지 아무 일도 없었댔어요.
오늘 아침에도 동네를 돌아다니는걸 다 보았답니다. 그런데…》
안영옥은 김성순이라는 그 동무가 아침부터 어디론지 먼길 떠날 차비를 하느라 나오지 못했다는것을 이야기했다.
《정말 한심한 동무라니까요. 지금이 어느때라구…》
안영옥은 김성순이 언제인가 비사회주의를 하다가 녀맹조직의 비판을 받았던 때의 일까지 상기해내며 열을 올렸다.
김성순은 서포1동에서 소학교에 다니는 딸을 키우며 사는 녀인이다.
그의 남편은 해외출장을 나간 상태였다.
안영옥의 말이 사실이라면 생각했던것보다 일은 더 심각했다.
동녀맹위원장들이 돌아간 후 정희는 더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수가 없어 덧옷을 찾아쥐고 일어섰다. 그런 그를 순희가 말없이 따라섰다.
캄캄한 밤길을 걸어 김성순의 집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환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집문앞에 낯선 두사람이 무엇인가 넘쳐날듯 담은 두개의 구럭을 들고 대문앞에서 서성거리는것이 눈에 띄였다.
발자국소리를 듣자 낯선 두사람의 얼굴에 반색이 어렸다.
《이 집 주인들이신가요?》 앞에 선 젊은 사람이 물었다.
허정희와 순희는 도리머리를 했다.
《그럼 혹시 수정이 생일때문에?》
실망하는듯싶던 눈빛들에 반가움이 확 실렸다.
수정이란 소학교에 다니는 김성순의 딸이름이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곱게 포장한 사탕과자며 어린이 새 옷가지가 정희의 눈을 아프게 자극했다.
보매 성순이네와 가까운 친척이거나 친교가 깊은 사람들같았다.
(오늘이 딸애의 생일이였구나.)
정희는 더는 숨길수 없어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니 구역녀맹위원장동무로구만요. 반갑습니다.
수정이 어머니를 훌륭하게 키워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뒤에 서있던 안경을 쓴 지성미있어보이는 50대의 사나이가 앞으로 나서며 그들의 손을 뜨겁게 잡았다.
정희는 낯도 모르는 그들의 인사에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고맙다는것일가?
바로 그때 타박타박 내짚는 어린 수정이의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정아!》 그들은 거의 동시에 아이이름을 불렀다.
《아이, 당위원장아저씨!》
수정은 반기며 달려와 안경을 쓴 그 사람의 목을 덥석 끌어안았다.
《어떻게 왔나요? 당위원장아저씨.》
《음, 오늘이 수정이 생일이라고 해서 이렇게 왔단다. 어이구, 너 벌써 분단위원장이로구나. 용타.》
《누가 대줬나요? 옳지, 우리 아버지가 대주었지요, 그렇지요?》
허정희는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서야 그 낯선 사람들이 수정이 아버지네 사업소 일군들이라는것을 짐작했다.
《그래 오늘 생일을 잘 쇴니? 우리 수정이가 무얼 해먹었을가?》
당위원장의 품에 안긴 수정은 함뿍 웃으며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나 오늘 생일 안 쇴어요. 대신 엄마랑 같이 상점에 나가서 고운 새옷 많이많이 사왔다.》
《그래, 좋겠구나. 》
《나 입을거 아니구 북부피해지역 아이들에게 보낼거야요.》
또랑또랑 울리는 수정이의 목소리에 당위원장은 물론 허정희도 깜짝 놀랐다. 바로 그래서였구나. 뜨거운것이 가슴속에 흘러들었다.
《야, 이건 뭐나요? 이거 다 나 주는거나요?》
수정은 손벽을 치며 물었다.
《아저씨, 나 이것두 다 북부지구 아이들한테 보낼래요. 좋지요?》
당위원장도 눈굽이 뜨거워오는지 고개만 끄덕인다.
《그래 어머닌 어디에 갔니?》
《엄만 장갑이랑 어깨받치개랑 가내반에 부탁했던걸 가지고 인춤 온댔어요. 우리 엄마 래일 북부피해지역에 탄원하겠대요. 돌격대루…》
허정희는 바늘방석에 앉은것처럼 그 자리에 있기가 거북해졌다.
그는 순희의 손을 살며시 잡고 대문밖으로 나섰다.
《저 녀맹위원장동무!》 당위원장이 그를 부르며 따라나왔다.
《무슨 일때문에 오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편질 좀 읽어보십시오. 수정이 어머니가 해외에 나가있는 남편인 황철동무에게 보낸겁니다. 이 편지를 받아본 우리 기업소동무들은 이런 아름다운 녀인들이 있어 우리 조국의 미래가 그토록 밝은것이라고 모두들 감동했습니다.》
당위원장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있었다. …
그날 밤 허정희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어가며 김성순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수정이 아버지, 이렇게 펜을 들고보니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있을 당신의 모습이 뚜렷이 떠오릅니다.
…인민들이 한지에 나앉아 슬픔에 잠겨있을 모습을 생각하시며 때식도 잊으시고 밤잠도 드시지 못하실 우리 원수님을 생각할 때면 집에 앉아 편히 밥술을 뜨고 잠을 자는것이 큰 죄를 지은것 같은 죄책감이 자주 듭니다. 수정이 아버지, 당신이 전번 편지에 아버지의 몫까지 합쳐 수정이의 생일을 잘 쇠주라고 했는데 글쎄 수정이는 자기 생일대신 북부피해지역 아이들에게 보낼 지원물자를 마련하자는게 아니겠나요.
이젠 수정이가 다 컸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여보, 오늘은 우리 가정이 이 길을 가고 래일은 이 나라 천만가정이 이 길을 간다면 북변땅의 기적적승리는 반드시 성취될것입니다. …》
허정희는 별들이 깜박이는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감동에 젖은 당위원장의 목소리가 다시금 귀전에 울려왔다.
《…이런 아름다운 녀인들이 있어 우리 조국의 미래가 그토록 밝은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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