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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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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332회 작성일 22-01-2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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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한 해 총 화


25


허명숙은 평양에서 열리는 전국농업대회에 매번 참가하였지만 1975년 1월에 있었던 일을 특히 잊지 못하고있었다.

수령님께서 한랭전선의 영향으로 인한 농업생산의 부진상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앙양에로 이끌어주시기 위해 몸소 농업전선의 사령관이 되시여 쉬임없이 온 나라 농촌을 현지지도하시며 농민들, 농업일군들과 의논도 하시던 그 잊을수 없는 해들은 참으로 농사에서 보기드문 성과를 이룩한 해들이였다. 1973년에 풍년을 이룩한 뒤 농업생산은 1974년에 다시 비약하였다. 이 성과가 이듬해 1월의 전국농업대회에서 총화되였다. 이 대회는 감동적인 일화가 많은것이 특징이였다. 대회에서는 태성할머니의 둘째며느리 리옥상이 토론하였는데 수령님께서는 20여년전에 만나시였던 할머니를 추억하시며 동무네 가정이 어데 있는가 했더니 고창에 있었구만, 이 동무의 시어머니는 어려운 시기에 나에게 힘을 주고 고무를 해준 잊을수 없는 할머니요 라고 말씀하시였다.

이 대회에 참가한 연백벌의 관리위원장 허명숙은 무거운 몸이였다. 회의에서 만족을 금치 못해하시는 수령님을 뵈옵고 또 농사에서 큰 성과를 올린 관리위원장들과 작업반장들, 농업과학자들의 토론을 들으며 몹시 격동된데다가 긴장한 일정을 보낸탓인지 해산예정일이 앞당겨져 집으로 돌아가려고 평양역에 나가 기차를 기다리는 사이에 진통이 시작되였다.

군당책임비서(이전의 군당위원장)가 녀성관리위원장 한명을 붙여주어 직접 역에서 가까이에 있는 평양의학대학병원으로 명숙을 데리고가도록 보살펴주었다.

《명숙동무, 좀 참소.》

군당책임비서는 진통을 이겨내느라 신음하는 명숙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명숙은 진통이 올 때면 오만상을 찌프리고 신음하며 세상만사를 다 귀찮아 하였지만 진통만 멎으면 평온한 얼굴로 책임비서동지, 참 안됐습니다, 어서 가보십시오, 차시간이 됐습니다 하고 인사차림을 하기에 분주했다.

책임비서는 그를 산부인과에 입원시키고 같이 데리고온 관리위원장을 떨구어둔 다음에야 역으로 나가며 명숙을 고무해주었다.

《용감성을 발휘하오. 아들이 태여날거요. 옥동자를 보면 이 늙은 책임비서를 고맙게 생각해야 해.》

명숙은 웃으며 《그러지 않아도 고맙습니다. 잘 가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다가 다시 배를 그러쥐였다.

새벽에 딸을 낳았다. 명숙은 명옥이가 시집을 가자 《아, 이제는 2 대 2, 력량관계에서 균형이 보장됐소.》 했다가 두번째 자식으로 딸이 태여났을 때 《이 집은 녀자가 득세하는 집이구만.》 하고 롱을 하던 남편의 얼굴이 방불하게 떠올랐다. 이번에도 딸을 낳았으니 남편이 또 뭐라고 롱을 할가? 롱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서운해할거야. 딸만 해도 셋을 낳았다.

남편이 그리웠다. 아마 집이나 진료소에서 해산했다면 마당에서 서성거리다가 가시어머니에게 《저 어머니, 들어가봐도 됩니까?》 하고 조심스럽게 묻고는 《좀 있다 들어오게.》 하는 대답을 듣고 실망했을 사랑하는 남편, 밤에 들어와서는 얼굴에 주름진 애기를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고 해쓱해서 누워있는 안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갑자르다가 《수고했소.》 겨우 이 한마디를 할 남편. 하지만 그 짧은 말속에 얼마나 깊은 애정이 담겨져있는가.

순산을 했고 후탈이 없으니 옆에 떨어졌던 녀성관리위원장을 등을 밀어 보내였다. 보내며 집에 련락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동무마저 없으니 허전했다. 다른 산모들에게는 시어머니, 본가집어머니, 남편들이 련이어 찾아오는데 명숙이에게는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와 남편생각이 더 간절했다.

남편은 딸이름을 뭐라고 지을가? 《재》자 돌림으로 딸들을 재련, 재옥이라 지었으니 《재》 뭐라고 지을테지. 군당책임비서동지는 아들을 낳을거라고 하며 자기를 고맙게 생각하라 했는데 이제 만나면 뭐라 할가? 《딸이 재산이야.》 할가? 하긴 군당책임비서동지가 할말을 못 찾을가… 온종일 이러루한 상념속에서 보냈다.

이튿날 아침, 느닷없이 과장선생이 간호원과 함께 신중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호실안을 쭉 훑어보았다.

《호실안을 빨리 정돈하시오.》

그는 간호원과 함께 산모들까지 꺼들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호실안이 이게 뭐요. 기저귀, 식기… 5분내로 하시오.》

호실안이 소란해지는 속에서 과장이 명숙이에게로 다가와 방금전의 엄하던 표정을 싹 없애고 친절하게 물었다.

《일어설수 있겠습니까?》

《예.》 하고 명숙은 일어서려 하였다.

과장은 급히 손으로 제지했다.

《아니아니, 좀 있다. 이제 간부동지들이 옵니다. 그때 잠간 일어서면 됩니다.》

《무슨?…》

《곧 알게 됩니다. 머리카락이랑 좀 손질하시오.》 하며 과장은 자신이 직접 하불을 당겨 주름살이 펴지게 하고 베개도 바로 놔주었다.

과장이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에서 사람들이 오는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무슨 일일가? 무슨 간부들이 올가?)

명숙은 기껏 자기가 녀성관리위원장이니 병원측에서 관심을 돌리는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정도로 추측하고있었다.

문이 열리고 과장이 먼저 들어와 명숙이에게로 다가왔다. 명숙이가 일어서려 하자 과장은 《가만있으시오.》 하고 조용히 일렀다. 뒤이어 대학병원 당비서의 안내하에 몸가짐과 차림새가 세련된 중년의 키가 후리후리한 남자가 서류철같은것을 들고 들어왔으며 그다음으로 안경을 번뜩이며 원장이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명숙의 침대앞에 와섰다.

과장이 신호하여 명숙이가 일어섰다.

중년의 키가 후리후리한 남자는 수령님의 서기였다. 그는 명숙이에게 건강이 어떤가고 물었다.

《좋습니다.》

명숙이 대답했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서류철을 펼치고 정중하게 말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어제 허명숙관리위원장동무가 농업대회에 참가하고 돌아가려다가 평양의학대학병원에서 해산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습니다.

〈참 잘됐소. 농업대회에도 참가하고 아이도 낳고… 아주 좋은 일이요. 허명숙이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의 정을 모르고 자랐소. 우리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애기옷이랑 애기어머니보약이랑 보내줍시다.〉》

아, 수령님!

뜨거움이 가슴에 꽉 차오르는 순간 명숙은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목이 메이였다.

놈들의 매질과 칼질에 얼굴이 알아볼수 없게 되였던 아버지의 주검, 어머니의 통곡소리, 어린 딸들의 애절한 울음소리, 폭격에 집마저 허물어져 집을 지을 재목을 찍으려고 언니와 함께 산에 갔다가 벼랑에서 딩굴어 허리를 상한 어머니, 이를 사려물고 눈물을 씹어삼키며 아버지의 원쑤를 갚기 위해 어머니와 딸들은 일어섰다. 대지에 두발을 딛고 일어서서 생활을 개척해나갔다.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며 전시식량생산과 전후 농업협동화운동에 자그마한 흔적들을 남기였다.… 이렇게 지나간 일들이 한순간에 머리에 번개처럼 스치였다. 이어 수령님의 모습이 환하게 떠올랐다.

《놈들이 아버지를 빼앗아갔구만.… 나는 피살자유자녀들을 만나본 날이면 가슴이 아파 잠이 오지 않소.…》

그이께서 하신 말씀…

명숙이는 격정의 파도에 휘말려들었다. 다른 산모들도 경건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서기는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이 트렁크들과 지함들을 침대곁에 날라왔다.

《이것이 선물명세입니다.》

서기는 명세를 읽어주려 했으나 명숙이가 울고있기에 그만두고 말로 설명하였다.

《계절에 따르는 갖가지 갓난아이옷들, 포단, 애기보약과 산모보약입니다.》

명숙은 눈물에만 잠겨있어서는 안되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물기어린 눈으로 받아든 선물명세를 들여다보고 트렁크들과 지함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꿈속에 잠긴듯 하였다.

《허명숙동무, 수령님께서는 아이를 잘 키워서 이다음에 훌륭한 일군이 되게 하라고, 이 말을 명숙동무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애기어머니가 건강을 빨리 회복하고 농사를 잘 지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명숙은 선물명세를 가슴에 꼭 안았다.

《할말이 없소, 관리위원장동무?》

당비서가 물었다.

명숙은 수령님께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농사를 더잘 짓겠다는 맹세를 올리고싶은 열망으로 가슴이 뻐근해났다. 하지만 숨이 차올라 말을 할수가 없었다. 보다는 꼿꼿하게 서서 공식적으로 말하고싶지 않았다. 수령님께서 아버지를 대신한다고 하셨는데 아버지에게 공식적으로 결의를 다지는 자식이 어데 있겠는가.

《아, 됐습니다.》

서기가 입을 벌린채 말을 못하고있는 명숙의 심정이 리해되는듯 손을 가로저었다.

《천천히 얘기합시다. 힘들겠는데 앉으시오.》

흥분때문에 가슴이 떨고있을뿐아니라 다리도 후들거려 겨우 서있던 명숙은 서기를 고맙게 여기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과장이 옆에서 친절하게 거들어주었다.

의자에 앉은 서기가 다시 산모와 아이의 건강상태를 물어보고 언제쯤이면 퇴원하는가, 집에는 련락을 했는가, 산모를 데리러 남편이 오는가 하는 생활적인 이야기로부터 농장에서 작년에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가, 애로는 없는가 등등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에로 넘어가며 한동안 담화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서기가 물었다.

《수령님께 전해드릴 말이 없습니까?》

명숙은 고개를 들고 어딘가 수령님께서 계실듯 한 곳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뜨거운것이 가슴속에서 끓고있었다.

《서기동지, 어버이수령님께 이 딸이 일을 많이 못했다고, 은혜에 꼭 보답할 결심을 보고드린다고 말씀드려주십시오.》

침대옆에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한 사람들은 유감스러운 표정을 짓는가 하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유감스러워하는 사람들은 고맙다는 인사는 없고 결의도 좀더 길고 격동적으로 했으면 하는 심정이였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이 딸》이라고 한 말에서 녀인의 깊은 진정을 들여다보았던것이다. 서기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관리위원장동무의 그 진심을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기가 떠나갔고 같이 왔던 사람들이 다 갔다. 그러자 침묵을 지키고있던 산모들이 달려와 명숙을 축하해주었다.

《아니예요. 저는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이 못됩니다. 저는 연백벌에서 아직 벼정당수확고를 높은 수준으로 올리지 못했고 농장원들의 분배몫도 많지 못합니다. 신임은 큰데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이번 농업대회에 참가하여 받은 충격을 그대로 말한 진심이였다. 이 진심을 그는 서기에게도 말했었다.

다음날 신호석이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그는 왜 그런지 좀 성난것 같았다. 남편을 보자 명숙은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고이였다. 눈물어린 눈에는 웃음이 담겨져있었다. 그 눈을 피하며 호석이 말했다.

《건강이 어떻소?》

남자답게 무뚝뚝하면서도 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아주 좋아요. 애기를 보겠어요? 애기방에 있는데…》

《좀 있다.》

《미안해요. 딸을 낳았어요. 성났어요?》

《딸이 무슨 상관이요?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당신에게 성을 내겠소? 우리 집안에 대경사가 나지 않았소! 내 다 들었소. 과장선생한테서… 다 들었소. 그리고 여기로 걸어오며 집에서 지어가지고온 아이이름도 고쳐지었소. 〈보은〉이라고 말이요. 이 크나큰 은혜를 우리 집안모두가 잊지 않고 보답해야 한다는 의미요. 반대없겠지?》격정이 끓어오른 명숙은 남편을 쳐다보며 겨우 머리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버이수령님의 대해같은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여 계속 성과를 올리는데서 특출하게 공헌한 허명숙의 위훈이 평가되여 보은이를 낳은지 3년후 가을에 그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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