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대지의 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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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생활은 앞으로
31
땅이 녹기 시작하자 류순절은 분조의 청년들로 암거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좀처럼 능률이 나지 않았다. 아프다고 나오지 않는 사람도 생겼다. 순절은 동요가 일어났다. 어머니가 말한것처럼 정말 자기가 하는 일이 다 분조원들을 고생시키는 일일가?
순절은 안종기와 같이 두벌농사를 지을 밭들을 선정하러 다니면서도 늘 암거작업에 대한 걱정이였다. 순절은 암거작업에는 늙은이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안종기에게는 소 두마리를 맡겨 밭을 갈게 하였다.
순절은 올해는 알곡과 남새로만 2모작을 하고 래년에는 알곡 두벌농사를 본격적으로 할 계획을 세웠다. 요즘에 와서 알곡과 남새 2모작을 잘하지 않았는데 알곡 두벌농사는 더욱 하지 않았다. 품이 많이 들었던것이다. 그러나 안종기가 터밭에 쏟아붓듯이 품을 두배, 세배 들인다면 분조농사도 얼마든지 잘될것이다.
두벌농사를 지을 밭들을 새로 더 선정하고 암거만드는 들에 나간 순절은 거기서 한동안 일했다. 일을 하며 타산을 해보니 모내기전으로 끝낼것 같지 않았다.
분조원들은 맥빠진 소리를 하면서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의견을 냈다. 처녀 혜옥이가 그랬고 나이가 좀 든 경섭이도 《분조장동무는 일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반장한테 가서 좀 토론을 하오.》 하며 순절의 삽을 빼앗았다.
순절이는 하는수없이 작업반장 마장석을 만나려고 논을 떠나 달구지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한참 걷다가 주춤하고 멈추어섰다.
(그렇지 않아두 작업반에서 이미 각 분조에서 한명씩 세명의 로력자를 지원해주었는데 이제 무슨 청을 또 한담? 아니야, 그럼 관리위원회에 제기해? 그렇게 계속 손을 내밀어야 할가?)
그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차거운 들바람에 중발머리를 날리며 결심을 못하고 서있었다.
문득 등뒤에서 말소리가 나는것 같더니 누군가 반갑게 찾는다.
《아, 순절동무 아니요?》
순절이 돌아섰다. 인민군군관 두사람이 서있는데 그들은 순절이가 알고있는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이였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대의 지휘관들이였다. 이 중대의 군인들은 모내기철에 태평리와 잠정리에 여러번 지원나왔었고 농장에서도 건군절에 중대에 대한 원호사업을 했었다. 작년에 순절이는 인민대표단으로 뽑혔댔으므로 그들을 잘 알았다.
《아이, 중대장동지! 정치지도원동지!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두뺨이 익은 사과같은 처녀는 반가웁게 손벽을 치며 떠들었다.
《허허… 잘있었소?》 중대장이 싱글벙글 웃었다.
《언제 봐도 혈기왕성하거던! 그런데 길복판에 서서 무슨 궁리를 하고있었소?》
순절은 얼굴을 확 붉혔다.
《아니, 그저 좀…》 하며 순절은 어물어물했다.
《얼굴에 무슨 근심이 낀것 같다-》
키가 크고 얼굴이 철색인 중대장과는 달리 크지 않은 키에 몸매가 다부진 정치지도원이 하는 소리였다.
《저기선 뭘하오?》
중대장이 암거만드는 작업을 하고있는 분조원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처녀들이 쓰고있는 머리수건들이 들바람에 팔랑팔랑 날리고있는데 빨갛고 파란 진한 색갈들이 눈을 끌었다.
순절이는 암거를 만들게 된 사연을 쭉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가 매우 절절하였다.
《저는 올해 열아홉살입니다. 사회경험이 얼마 안돼요. 그러니 농사를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제가 무슨 농사군입니까. 그런데도 농장에서는 제가 남달리 나이에 비해 숙성해보이고 체격도 좋으니까 학교시절 사로청간부를 한 경력도 참작해서 분조장을 시켰지 뭡니까. 신임은 큰데 일을 할줄 몰라서 작년에 우리 분조는 농장적인 분조분배몫순위에서 뒤로부터 다섯번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분조를 새로 조직할 당시 내가 철부지라고 우리 분조에 오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작업반농사에 대한 파악이 없다보니 서로 밀퉁질하던 안개틀같은 랭습지논도 우리한테 차례졌습니다. 그래서보다 제가 분조장사업을 잘못해 지금에 와서 분조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예요. 아니다, 기운을 내서 새해에는 꼭 앞선 순위권내에 들자, 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작업반장동지도 저에게 신심을 주었고 특히 우리 농장 허명숙관리위원장은 우리 분조에 여러차례 내려와서 사람들을 불러일으키고 땅을 개량하여 분조관리제가 은을 낼수 있도록 깨우쳐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땅을 개량하는것입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랭습지에 암거를 만들어 찬물을 뺄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습니다. 관리위원장동지는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자고 저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을걷이가 끝난 다음 탈곡도 하면서 안개틀논에 도랑을 째고 돌을 채워넣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더군요. 겨울이 지나 올해 초봄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힘이 들어서 결근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안타까와 이렇게 서서 궁리하고있었습니다.》
처녀는 목이 갈리였다.
《하지만 기어이 해내고야말것입니다.》
순절은 이야기하다보니 안타까운 심정까지 내비치였는데 스스로 그것에 반발하는것이였다.
두 군관은 아무 내색도 없이 처녀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심중하게 들어주었다.
《참 기특하오. 처녀분조장이 수고하누만.》 하는 중대장의 말에 정치지도원이 《일하는 잡도리가 마음에 드오. 진짜 농장의 주인답소.》 하고 응수하였다. 그 순간 그들의 눈길이 마주쳤다.
《한 닷새동안에 해치울수 있지 않을가요?》
중대장이 묻는 말이였다.
《예.》
정치지도원이 대답했다.
《처녀동무.》 중대장이 순절이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오. 우리가 도와주겠소. 래일부터 우리가 와서 와닥닥 해치우겠소. 돌을 실어나르는 뜨락또르를 한대만 동원시켜주시오.》
순절은 깜짝 놀랐다.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며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뜨락또르는 농장에서 내주었습니다. 야! 이제는 다 풀렸습니다!》
군관들은 껄껄 웃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있소. 자, 우린 가겠소.》
중대장은 처녀분조장을 도와주게 된것이 기쁜듯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며 떠나갔다.
그때 처녀는 펄쩍 정신이 들었다.
《아니, 중대장동지! 제가 정말 철이 없습니다. 아무 말이나 망탕 하면서… 일없습니다. 훈련에 바쁜 군대동무들에게 부담을 끼치면 어쩝니까.》 하고 울상을 했다.
《래일 다시 오겠소.》
군관들은 활기있게 걸어갔다.
순절은 몇걸음 따라가다가 멈추어섰다. 이제는 별수 없다. 아버지가 해준 말에 의하면 자기가 아직 학교에 다니던 어느해인가 폭우가 내려 경사지의 강냉이밭이 패워나가는것을 군대들이 달려와 피해를 막아주었다고 한다. 그때도 그들은 바로 저들처럼 긴 말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떴을것이다.
인민군대가 다음날 약속대로 행렬을 짓고 노래를 부르며 안개틀논에 나타났다. 그들은 그 어려운 공사를 닷새동안에 어김없이 끝냈다. 2분조원들은 너무 감격하여 군인들을 붙잡고 환성을 올렸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였다.
(우리 군대가 제일이야.)
순절은 속으로 몇번이고 외웠다. 하자고 하는 사람에게는 방도가 생기고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는것일가.
기쁜 일이 련달았다. 군인들이 협조해서 암거작업을 해준 사실에서 느끼는바가 컸던지 혜옥이 어머니가 순절이네 집으로 와서 기르지 못하겠다고 하며 두고갔던 돼지새끼들을 도로 가져갔다. 혜옥이 어머니는 순절이 어머니에게 《내가 잘못했어요. 노력하면 얼마든지 돼지를 먹일수 있는데… 분조장네는 다섯마리나 먹이지 않나요. 내 머리통이 그렇게 좁다우. 분조장한테 미안해요. 말 잘해주우.》 이렇게 사죄하였다. 녀인이 집단의 노력과 힘에 대해 생각을 많이한것 같았다. 힘있게 전진하며 약동하는 분조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꼈으리라.
안종기도 점점 달라져가고있었다.
순절은 어느날 자기 집에서 키운 돼지와 마장석반장이 작업반돼지우리에서 내준 돼지를 합해서 두마리를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주고 인사를 전하였다.
순절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오는 길에 태평농장을 지나치다가 불시에 기사장의 딸 로경애를 만났다. 소달구지를 떠나보내고 자기는 돌아가는 길을 단축하려고 태평농장을 가로지른 수로로 향했기때문에 경애를 만날수 있었다. 태평농장을 지나고 논벌을 꿰지르면 잠정농장과의 경계선을 이루며 흐르는 수로에 이른다. 대수로를 건너 다시 논벌을 지나면 잠정마을에 닿는다. 아직 수로에 물이 흐르지 않아서 쉽게 건늘수 있었다.
하늘색머리수건을 쓰고 파란 솜옷을 입고 까만 바지를 입고 솜신을 신은 몸매 자그마한 로경애가 어떤 나이들어보이는 농장원과 같이 마주오고있었다.
《아이, 경애언니!》
순절이가 먼저 이야기에 열중하고있는 경애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너 순절이구나.》 경애는 반기며 같이 오던 사람더러 먼저 가보라고 했다.
《몰라보게 숙성했구나!》
경애는 순절이와 손을 맞잡았다. 순절이는 경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야, 정말 오래간만이야요! 농산작업반 기술원을 한다지요. 일이 바쁘나요? 입술이 다 트구.》
건강하고 성미가 시원시원한 순절이는 왜 그런지 연약해보이고 살이 빠진것 같은 경애의 얼굴을 보며 동정을 금치 못했다.
경애는 서글프게 웃었다.
《내가 많이 상했지?》
《말이 아니야요. 너무 무리하는것 같아요.》
순절은 속에 없는 말을 했다. 그는 경애가 왜 얼굴이 상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지금은 기술원이 바쁜 시기가 아니였다. 그러니 무리하게 일할것이 없었다. 경애의 얼굴에서 살이 빠지고 연약해보이는 진짜리유는 뻔했다.
참으로 모를 일이다. 왜 경애의 어머니는 딸의 혼사문제를 가지고 자기의 의사를 강요하는것일가. 철수와 좋아한다면 그와 결혼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는가? 순진한 순절에게는 도저히 리해되지 않는 일이였다.
스무살도 되지 않는 순절이는 이성문제에 참견할수가 없어 속으로만 경애를 동정할뿐이였다.
《뭐 무리하는것도 없어.》
경애가 대답했다. 그는 어린 처녀에게 속을 터놓을수도 없어 그 이상 더 말하지 않고 어떻게 여기 나타났느냐고 물었다.
순절은 중대에 원호물자를 보내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너 참 쉽지 않는 처녀분조장이구나. 너의 소식을 좀 들었다. 학교때 소년단위원장, 사로청위원장을 하던 그 본때로 농산분조장일을 한다구 칭찬이 자자하더라.》
《아이 언니두, 난 아직 서툴어요. 정말 분조장사업이 힘들어요. 그렇지만 보람이 있어요. 하나하나 일이 펴나가요.》
순절이는 군대들이 암거작업을 도와 끝낸 후 분조의 분위기가 앙양되였고 혜옥이 어머니도 돼지새끼들을 다시 가져간 사실을 말했다.
《안종기아버님은 분조 두벌농사일에 앞장섰어요. 정말 그 아버님은 일을 요령있게 잘하는 실농군이예요. 난 많이 배워요.》
순절은 이어서 안개틀논 암거공사를 끝냈으니 이제 돼지들을 길러 얻은 두엄을 논밭에 내면 수확고가 쑥 올라갈것이고 그러면 애쓰고 고생한 보람이 나타날것이라고 말했다.
《하여튼 나는 너한테 머리숙어진다.》
경애는 이어 명숙관리위원장이 잘있느냐고 물었다. 벌써 몇달째 잠정리에 가지 않는 경애로서 고향이 몹시 그리웠다.
《잘있어요. 명숙관리위원장을 두고 농장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아요. 6작업반 금옥이를 알지요? 그 애 노래소리가 색갈이 독특해서 군에서뿐아니라 도에서도 데려가려 했는데 리당비서동지가 꾹 눌러놓아 울기까지 했어요. 농촌에서 로력자가 빠져나가는것을 막으려는 조치로 생각했었지요.》
순절은 경애언니가 농촌을 뜨지 않겠다고 하는데 다른쪽에서 뽑아가면 영향이 나쁘지요 하고 말하고싶었으나 그냥 넘기고 계속했다.
《그랬는데 알고보니 금옥이가 들뜨지 않게 교양하려고 그랬다더군요. 관리위원장동지가 금옥이를 불러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자 금옥이는 막 춤을 추었대요. 관리위원장동지가 관심해주어서 입학시험도 잘 치게 됐대요. 정말 쉽지 않는 관리위원장이지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경애 어머니 양옥실이 심장병이 더해 군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순절이는 말할수 없었다. 양옥실은 관리위원장이 경애가 군으로 시집가는것을 반대하더니 금옥이 대학가는 일에는 그토록 관심이 크다며 남편에게 화를 터뜨리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로정만은 안해의 지청구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일만 하는데 갑자기 늙어지는것이 눈에 뜨이였다.
이런 사정을 순절이가 어떻게 경애에게 얘기해주랴.
《언니, 한번 집에 가봐요.》
순절은 이렇게 말했을뿐이였다.
《응, 가봐야지…》
가볍게 한숨짓는 경애는 곽철수가 요새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무척 알고싶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철수에 대해서는 끝내 묻지 않았다. 철수생각을 하면 그리고 철수를 포기하도록 꾸준히 진절머리나게 설복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왔기때문이였다.
이것이 순절이로 하여금 섭섭함을 금치 못하게 했고 의협심이 분출하도록 했다. 왜 철수동무에 대해 묻지 않아요, 철수동무가 지금 어떤 처지에 빠져있는지 알기나 해요… 끝내 순절은 의분을 터쳐 경애의 가슴을 허비였다.
《경애언니, 그런데 왜 철수동무를 묻지 않나요?!…》
수척해진탓에 더 커진 경애의 눈이 순간 컴컴해지면서 순절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철수동무를 잊었나요?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나요?》
순절이는 그냥 경애를 아프게 했다.
이성문제에 감히 참견하지 못하고있던 순절이의 이 돌발적인 질책을 받은 경애는 너무 불의적이고 뜻밖이여서 또 대답을 주기에는 상대가 너무 어리기때문에 꼼짝하지 않고 여전히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이런것을 알려고 하기에는 아직 어리지요?》
순절은 경애의 눈을 피해 옆으로 돌아섰다. 기분이 나빠 시쁘둥해졌다.
순절의 귀에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순절이, 고맙다.》 하며 경애는 눈길을 떨구었다.
순절은 순간 환희에 넘쳐 웨쳤다.
《언니, 이제 뭐라고 했어? 고맙다구 했어요?》
경애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순절은 그의 작은 손을 자기의 넙적한 손으로 와락 붙잡고 흔들었다.
《그렇지요, 언니? 이 순절이가 괜찮지요?》
순절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알았어, 난 알았어. 언니, 난 가겠어요. 잘있어요.》
순절은 머리수건을 펄펄 날리며 아직은 황량하지만 이제 곧 벼모가 꽂혀 주단을 펼친듯 푸르러질 들판을 달리다싶이했다. 어느덧 겨울이 물러가고 훈훈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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