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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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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513회 작성일 22-01-13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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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농산 제5작업반


17


이날 저녁 명숙은 5작업반 사무실에서 강현이와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장석이 들어가고 그들 둘이 남았다.

《강현동무도 잠정리 출신인가요?》

《아닙니다. 나는 해주사람입니다. 지금도 해주에는 년로한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잠정리에 왔어요?》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여기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장차 농업일군이 될것을 희망했는가요? 도시사람으로서 좀 이례적이라 할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기계에 취미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선반공이였습니다. 그래 평양기계대학에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농업을 중시하던 때여서 농업대학에 추천받았습니다. 나는 대학입학시험을 치지 않고 로동현장에 나가 일을 하려고까지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농업대학에 다니게 되였습니다. 대학공부를 하면서도 장차 졸업후에 다른데로 빠질 궁냥을 하면서 흥심없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도 성적은 늘 좋았습니다.

4학년때 년간실습이 있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을 태운 뻐스가 산골짜기에 접어들더니 끝없이 언덕을 오르내리는데 벌방지대가 많은 우리 도에 이처럼 궁벽한 산촌마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아마 대학에서 의도적으로 이런 궁벽한 농촌을 구경시킨것 같습니다. 나는 가슴이 막 답답해났습니다. 그런데 불시에 골짜기가 끝나고 눈앞이 확 트이며 넓고넓은 벌이 시야에 펼쳐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야!〉하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나는 지어 이 넓은 대지에서 한번 청춘의 활개를 펼치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뻐스가 군인민위원회에 멈추어서고 여기서 우리는 몇사람씩 조를 무어 농촌리들에 흩어져 갔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화송리라는 고장이였는데 벌방지대였지만 농사는 락후한 방법으로 짓고있었습니다. 종자처리를 재래식으로 하는데 종자를 가마에 넣고 증기로 쪄내고있었습니다. 그러니 발아률이 아주 낮았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이 달라붙어 흐름식처리장으로 개조했습니다. 이것을 본 작업반기술원은 황홀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스물세살난 처녀였습니다. 이름은 신옥인데 그가 하루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정말 뒤떨어져있어요. 화송리는 더합니다. 이 넓은 벌을 뜨락또르로 왕왕 갈아번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뜨락또르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소원대로 실컷 써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처녀가 한 말은 도시에 비한 농촌의 락후성을 직접 체험하고있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 고장에서 실습의 나날을 보내며 한평생을 농촌의 기술적진보에 바치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참 재미나게 번져져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우리는 3대혁명전위로서 농촌에 파견되였는데 나는 바로 그 화송리에 가게 되였습니다. 우리가 소조생활을 마치고 떠날 때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해하던 기술원 리신옥이 나를 다시 만나자 얼마나 반가워했던지! 정열적인 처녀였습니다. 화송리에 파견된 우리 소조원들은 농장청년들에게 농업과학기술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이 시기는 화송리에도 뜨락또르들이 적지 않게 들어왔습니다. 소조원들은 자신들이 뜨락또르운전을 배운 다음 농장의 청년들로 운전수들을 양성해내는 사업을 했습니다. 나는 소조기간 일곱가지 기계를 창안제작했습니다. 과수동력분무기, 알비료치는 기계, 논벼제초기, 영양단지이식기, 강냉이탈곡기 등인데 이 기계들을 쓰면서 좋아하던 농장원들과 리신옥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나는 날이 갈수록 농촌에 3대혁명전위들을 파견한 당의 조치가 얼마나 정당했는가 하는것을 깊이 느끼였습니다. 화송리 관리위원장은 그 사업을 십여년한 쉰살 가까이된 사람인데 열성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낡았습니다. 과학농사에 대한 인식과 믿음이 부족했고 따라서 시대에 뒤떨어져있었습니다. 이 관리위원장은 우리 소조원들이 작업반모판에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벼종자를 락종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미타해서 작업반장들에게 두곱되게 더 뿌리라고 지시하군 했습니다. 성글게 뿌린것이 마음에 놓이지 않았지요. 그래서 소조원들이 관리위원장보고 한사람이 먹어야 할 밥 한그릇을 두사람이 먹는 셈인데 모판이 배고프지 않겠는가, 과학을 믿으라고 했더니 농사는 자기가 책임진다, 만일 그렇게 듬성듬성 뿌렸다가 모가 모자라면 소조가 책임지겠는가, 우리 고장은 땅이 척박해서 아지를 많이 치지 못하기때문에 일없다고 하며 통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는수없이 소조원들이 따로 과학기술적요구에 맞게 락종을 했습니다. 실물교육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심은 모판에서 모들이 듬성듬성하게 자라고 키도 작으니 관리위원장은 자기의 주장대로 두배로 심은 모판에서 모들이 시퍼렇게 배게 자라는것과 대조하여 가리켜보이며 자, 어때? 하는 뜻으로 싱글싱글 웃었습니다. 그런데 관리위원장의 지시로 심은 모는 바늘모가 되여 논판에 나가 구실을 제대로 못했지요. 소조원들이 심은 모는 모살이를 이틀이나 앞당겼고 수확도 한톤이나 더 냈습니다. 이렇게 실물교육을 하니까 관리위원장은 머리를 숙였고 다음해부터는 과학기술적요구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3대혁명소조파견의 정당성을 말해주는 하나의 실례에 불과합니다. 우리 소조원자신들도 그 과정에 많이 배웠고 새형의 농업전문가로 준비될수 있었습니다.》

《강현동무가 대학실습기간에 한평생을 농촌의 기술적진보에 바치겠다고 결심한데는 작업반 기술원처녀 리신옥의 작용이 컸다고 했지요? 소조원으로 활동하는 기간 많은 기계들을 창안제작하여 그 처녀의 얼굴에 기쁨이 꽃피게 했겠지요.》

《그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도 가까와졌습니다. 관리위원장동지가 무엇인가를 낌새채고 묻는것 같은데 그럼 뭐 다 얘기하지요. 리신옥이는 나를 무척 따랐습니다. 나도 그가 싫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내가 위경련이 일어나서 병원에 입원한적이 있었는데 신옥이가 옆에 붙어서 며칠밤을 새우며 간호해주었습니다. 신옥의 어머니도 어디서 꿀을 구해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내가 그 어머니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그래 휴가로 해주에 있는 집에 갔다올적엔 나도 기념품을 준비해가지고 오군 했습니다. 소조사업을 끝내고 출발하기 전날 신옥이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쪽상에다가 음식들을 차려가지고 왔는데 나에게 마실줄 모르는 술까지 부어주고 이것저것 안주를 살뜰하게 집어주면서 이 말, 저 말을 하다가 〈강현소조원이 반대 없다면 딸을 주겠는데 어떤가?〉하였습니다. 나자신은 반대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부모님들과 상론해야 합니다.〉신옥이 어머니는 물론 그래야지 하며 내가 반대하지 않는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것 같았습니다. 떠날 때 신옥이가 역에 배웅나왔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헤여지는것이 몹시 가슴아팠던 모양입니다. 나는 〈신옥동무, 우린 다시 만날지도 모르오.〉하며 처녀에게 다정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차에 올랐습니다. 기차는 해주로 달리는데 나는 화송리에 심장의 한쪼각을 남겨놓고오는듯 어쩐지 쓸쓸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신옥이의 물기어린 까만 눈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휴식하며 며칠을 보내다가 나는 부모님들에게 리신옥이와의 문제를 꺼냈습니다. 〈야, 여기 해주바닥에서 숱한 처녀들이 너를 바라보고있다. 대학을 나왔지, 3대혁명소조를 거쳤지, 그 기간에 당원이 되였지. 앞길이 창창한데다가 인물이 잘났으니 처녀사태가 났다. 매일 소개군들이 온다.〉 하며 어머니는 사진들까지 꺼내보이며 고르라고 했습니다. 얼핏 보니 괜찮은 처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다 싫다고 하고는 다시 결혼문제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해당 기관에서 배치문제를 가지고 나를 불러 담화를 했습니다. 간부동지가 나를 특별히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에서는 동무가 3대혁명소조기간에 한 사업을 높이 평가합니다. 동무는 대학기간의 성적도 좋고 농업전문가로서, 일군으로서의 자질도 갖추었다고 인정하면서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곳에 배치하려 하는데 우선 동무의 희망을 들어봅시다.〉나는 나의 배치지가 이미 내정되여있는것이라고 판단하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러자 간부동지가 말했습니다. 〈강현동무는 도농촌경리위원회에서 사업하게 됐소.〉 사실 이것은 괜찮은 배치라고 할수 있었습니다. 도내 농업부문사업을 행정적으로 지도하는 위치가 아닙니까. 나는 가슴이 막 활랑거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마 화송리에서의 소조활동을 끝내고 돌아온지 보름쯤 지났을가 하는 때에 뜻밖에도 리신옥이로부터 문안편지가 왔습니다. 편지를 읽는 나의 뇌리에는 소조기간에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지어 눈물겹게 되살아났습니다. 〈우리 농촌은 도시에 비해 정말 뒤떨어져있어요.〉 신옥이가 한 이 말은 이상하게도 그 처녀가 나를 바래워주며 눈물을 머금고 손을 흔들던 모습과 합쳐지면서 나의 가슴을 비틀었습니다. 그 처녀를 알게 되면서 한생을 농업의 기술적진보에 바치리라 결심한 나였습니다. 〈그래서 도농촌경리위원회에서 사업하게 되지 않았는가. 강현이, 바로 됐어.〉이렇게 한쪽에서는 나를 위안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다른쪽에서는 〈가방을 끼고 돌아다니고 문서를 만들겠지. 소조시절에 화송농장에 박혀서 농기계들을 창안제작하여 신옥의 얼굴에 웃음이 넘치게 하였던 나날들과 농장원들에게 과학기술지식을 배워주고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농사를 짓도록 일깨워주던 그 나날들이 얼마나 보람찼던가를 잊지 말라. 강현이, 너는 현실에서 자기의 결심을 실현해야 해.〉 하고 나를 채찍질하는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다, 현실에서 리상을 실현하자. 이렇게 결심하고 나는 해당 기관에 찾아가 어느 농장도 좋으니 될수록 뒤떨어진 농장에 보내달라고 청원했습니다. 간부동지는 나에게 동무는 도적인 넓은 범위에서 지도사업을 하면 좋겠는데… 하고 아수해하면서도 나의 제기를 수락해주었습니다. 도에서는 나무리벌의 잠정농장이 중요한 대상이라고 하면서 이곳으로 파견해주었습니다. 내가 농촌으로 가게 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소개자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고 합니다. 나는 부모님들을 위안해드리였습니다. 〈어머니, 괜찮습니다. 잘됐습니다. 내가 이제 색시감을 데리고 오겠으니 잔치준비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화송리에 가서 신옥이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 딸을 나한테 주겠다고 했지요? 〉 신옥이를 만나서는 혹시 내가 해주에 떨어졌는가 생각할수 있는데 농촌으로 간다는것, 그래도 일없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신옥이가 대답했습니다. 〈저야 농장원인데 농촌이 아니면 어디를 바라겠나요.〉 저는 리신옥이를 데리고 해주로 돌아와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잔치를 한 다음 여기 잠정리로 내려왔습니다.…

농촌에 나와 정작 작업반 기술원으로 일을 하게 되니 나의 리상을 실현한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소조때는 리당비서, 관리위원장, 기사장, 작업반장들이 다 소조원들의 결심에 심중히 대했고 기술혁신을 할수 있는 시간도 자의로 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업반 기술원은 우선 농사를 지어야 하니 시간이 없었고 복잡한 인간관계의 제약을 받지 않을수 없었으며 관리위원장이나 특히는 기사장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소조때처럼 생각하고 기사장에게 몇차례 의견도 내고 비판도 했다가 허… 미움만 샀습니다. 큰 희망과 포부를 안고 잠정리에 왔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생기고 해가 자꾸 바뀌는데 해놓은 일이 별로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마침 관리위원장동지가 새로 와서 자체로 농사짓는 문제를 제기하니 나는 용기가 부쩍 납니다. 약속한대로 올해에 5작업반에서는 모내기와 김매기를 자체로 꼭 하겠습니다.》

강현이와 헤여져 관리위원회로 돌아오며 허명숙은 불꽃이 튀는듯 하던 그의 두눈과 열정에 넘친 목소리가 그냥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귀에 쟁쟁해 어둠속에서 여러번 발을 헛디디기까지 했다. 마치 서사시와도 같이 읊어진 한 인간에 대한 노래라 할가 감동 없이는 들을수 없는, 이 농장에 파묻혀있던 이야기였다. 본인은 자기 자랑으로 될것 같아서인지 비약을 하며 짧게 기본선만을 이야기했지만 명숙은 그 함축된 이야기속에 담겨진 풍부한 내용을 충분히, 생동하게 상상할수 있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들이라 해도 파고들어가보면 그에게서 들을 이야기가 있다. 강현은 평범한 농업전문가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정확하고 헌신적인 인간인가. 얼마나 인간적으로나 당적으로 준비된 농업일군이고 전문가인가. 귀중한 사람이 농산 5작업반에서 일하고있었다. 명숙은 강현이야말로 새형의 초급일군, 농업기술일군으로서 관리위원회의 농산지도원정도가 아니라 기사장으로 일해야 할 재목이라고 인정하게 되였다. 주체농법의 요구에 충실하고 현대농업의 과학기술로 무장하고 한생을 농업의 기술적진보에 바칠 각오를 하고 농촌현실로 진출하여 아득바득 애쓰고있는 이런 일군들을 알아내고 떠밀어주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기사장 로정만의 미움과 노여움을 사서 여태 5작업반에 못박혀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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