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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836회 작성일 22-03-0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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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회

상원사람들

리 명 순

3


2016년 9월 20일

《48시간과 3시간》


우려하던 문제는 끝내 터지고야말았다. 소성로가 멎었던것이다. 오전 10시에 재혁은 일출봉광산에서 그 소식을 받았다. 전화를 걸어온 직장장 한문성은 마치나 사고가 난것이 자기탓이기나 한듯 몇번이나 말을 끊으며 겨우 사고의 경위를 설명하였다.

《보수주기가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재작년에 현대화한 1호는 좀 일없는데 2호는 정말 거들거들하단 말입니다. 글쎄 이거야…》

《그래 2호에서 어디가 걸렸소?》

《랭각기불판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뭐라구?!》

재혁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랭각기불판이라면 로안을 보수해야 했다. 그러자면 1 400도가 넘는 소성로를 식히는데 수십시간이 걸려야 했고 못해도 며칠간은 세멘트생산이 중단된다. 그렇다면… 하루에 수천톤의 세멘트가 나온다고 볼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것으로 되는가. 재혁은 목이 막 타드는것 같았다.

그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물었다.

《그래 기사장동문 알고있소?》

《기사장동진…》

참, 어제 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과학기술전당에 간다고 했지.… 원, 이런 때 사고가 나다니…

아름드리거목과도 같이 누워서 거인의 생명력을 뽐내던 소성로는 멎어있었다. (조종실에서 경보가 울리면 자동적으로 그 부분은 멎게 되여있다. ) 지구가 자전을 멈추었다고 해도 이토록 가슴아프지는 않을것 같았다.

《사람들을 소성로동체에 접근시키지 말고 송풍기들을 만가동시키시오.》

이렇게 지시하던 재혁은 깜짝 놀라서 주춤하였다. 공장정문이 사람들로 들끓고있었던것이다. 정양소의 녀인들과 병원의사들도 보였다.

아이들의 목소리도 챙쟁히 울리는듯싶었다. 로인들, 젊은이들, 남자, 녀자… 누가 공장종업원이고 누가 종업원이 아닌지 갈라볼 사이도 없었다.

그들은 저들스스로 일감을 찾아하고있었다. 아이들은 나팔을 불면서 사기를 돋구어주었고 녀인들은 샘물을 떠다가 로동자들에게 넘겨주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불속에 입고들어갈 솜옷들을 가져다가 입구에 무드기 쌓아놓기도 하였다. 걸음을 천천히 하면 이 전투에서 락오자가 될것 같은 생각에 샘물공급소에서부터 물통을 들고 냅다 뛰여오는 녀인도 있었다. 자전거에 정성껏 지은 아침밥을 싣고 바람처럼 씽씽 달려오는 처녀도 있다. 어쩌면 그 모습들은 싸우는 고지에 탄약과 음식들을 져나르던 전화의 날 후방인민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야 소성로가 왜 살아나지 못하랴!… 현장에 도착하니 소성직장장이 땀으로 목욕을 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면목이 없습니다.》

《보수주기가 지난거야 어쩌겠소. 헌데 소성로를 빨리 살릴 방도는 뭐요?》

《우리 사람들은 3시간이면 해낼수 있답니다.》

《3시간?!》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3시간동안에 로가 식을수 없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그때 가까이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착하고 사리정연한 목소리… 듣기만 하여도 마음속 불안이 연기처럼 가셔지는 놀라운 힘을 지닌 당위원장의 목소리였다.

소성로동체에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소성공들과 감시공들이 앉아있었다. 당장이라도 로에 들어가겠다고 윽윽대던 사람들 같았다.

그들의 복판에 바로 나이가 많은 최용 당위원장이 앉아서 이야기판을 벌리고있는것이였다.

《97년에 말이요. 세멘트직장의 크링카분쇄기에서 감속기가 고장났소.》

《당위원장동지도 그때 있었습니까?》 하고 한 제대군인청년이 물었다.

《글쎄… 있었던가?… 그건 중요치 않고… 감속기가 고장나자 기계를 만들어 팔아먹었던 그 나라에서는 고장난 감속기를 해체해서 자기나라로 실어오라고 호통을 쳤소. 당신네 나라같이 작은 나라에서는 해체도 못할터이니 자기 기술자들을 보내겠는데 그 값으로 기술자 한사람에 한해서 수천딸라의 보수를 지불하라고 요구했지.…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믿을것은 우리 힘밖에 없다, 그 오만한자들에게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 상원로동계급에게 과업을 주시였소. 나사 하나 무게가 20키로를 넘는 극초대형의 감속기를 해체하고보니 중축이 깨여졌는데 그것도 우리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에서 우리 자체의 힘으로 깎아서 끼웠단 말이요. 자강력이란 바로 이렇소. 위대한 힘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것이 아니였단 말이요. 후날 이 사실을 안 그 나라 기술자들이 우리한테 와서 제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는 이렇게 말했소. 〈조선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공화국기를 줄수 없는가고 했지. 왜 줄수 없겠는가.… 그들은 우리 기발을 보면서 영웅조선의 기상이 어떤것인지를 생각하겠다고 하면서 정히 간직하고 갔단 말이요.…》

재혁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나 소성로안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이윽히 지났지만 아직도 로안은 뜨거운 열기를 확확 내뿜으며 천지만물을 다 태워버릴듯이 위력을 시위하고있었다.

재혁은 무져놓은 솜옷더미에로 다가가 그중 큼직한 솜옷과 솜바지들을 뒤적였다. 호수가 큰것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에쿠, 하나 있군!… 기뻐서 그것을 몸에 막 걸치려는데 누구인가 팔을 슬그머니 쥐는것이였다. 흠칫 놀라서 보니 당위원장이 어느새 자기의 뒤에 와 서있었다. 그뒤에는 또 녀의사의 얼굴도 보였다.

《지배인동지, 다른 사람이 그러면 말리셔야 할분이 어쩌면 그럴수 있습니까?》

녀의사의 눈물에 젖은 목소리였다.

《말두 마십시오. 의사선생은 요전날에 나한테 무슨 주사를 놓았습니까? 잠자는 약을 섞은 주사약이였지요? 사람을 그렇게 깜박 속이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재혁은 시틋해서 내뱉았다. 그런데 물러설줄 알았던 녀의사가 또 달라붙는다.

《지배인동질 두고 누군가 땅크라고 하더군요. 땅크병출신은 아닌것 같은데…》

《뭐라구요?》 이건 칭찬인가 비난인가. 그것을 가릴 사이가 그에겐 없었다. 그는 성이 나서 소리쳤다.

《그런 말이나 하겠거든 날 따라다니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비는데…》

《허허허… 지배인동지, 의사선생을 나삐 생각지 마시오. 그건 사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던겁니다.》 당위원장의 웃음어린 목소리였다.

《예?!》

재혁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단념할수 없었다. 그는 옷들을 더 와락와락 껴입었다. 그리고 안전모우에는 솜옷 하나를 뒤집어썼다. 마치 달나라에 올라간 우주로케트병과도 같은 모습으로 옆에 놓여있는 함마를 손에 들고 발자국을 떼였다.

《가만 좀 서십시오. 그렇게 하고 그냥 들어가다간 발이 단박에 익어버리지요.》

당위원장이 그를 멈춰세우더니 두툼한 나무각자를 발바닥에 대주었다. 그리고는 끈으로 꽁꽁 묶어주기까지 한다. 그는 눈굽이 쓰려남을 느끼였다. 그것은 소성로안에서 몰려나오는 열기때문이 아니였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코잔등이 쓰리고 손등이 타들어가는듯하였다. 10초도 못되여 쓰고들어간 낡은 면직솜옷에 불이 확 당기고 신발바닥에 댄 나무각자가 숯덩어리로 변하였다. 그러나 그는 함마질을 멈추지 않고 녹아붙은 내화물을 까내였다.

활랑거리던 심장이 이제는 아파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재혁의 눈앞에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상원로동계급에게 보내주신 축하전문의 구절구절이 확대되여 안겨왔다.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가 이룩한 자랑찬 성과는 백두의 붉은 혁명정신과 자강력제일주의를 필승의 무기로 틀어쥐고 투쟁해나가는 영웅적인 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이 있는 한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악랄한 고립과 제재, 압박책동도 우리에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영광의 천리길, 만리길만이 펼쳐지게 되리라는 확신을 더해주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곁에서 울리는것만 같은 행복한 순간이였다. 재혁은 그지없는 환희가 마음속에서 불길처럼 확 일어남을 느끼였다. 아, 행복의 이 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였으면… 누군가가 툭 치는 바람에 그는 정신을 차리였다.

《위험계선을 넘어섰습니다. 어서 나가십시오.》 직장장 한문성이 그에게서 함마를 빼앗으며 밖으로 떠밀었다. 더는 참을수 없어 나가려던 그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서버렸다. 소성직장장의 뒤에 바로 그 김영길이 서있었던것이다. 낡은 솜옷을 아무리 뒤집어썼어도 그의 커다란 눈을 어떻게 몰라볼수 있겠는가.

재혁은 주먹을 쳐들어보였다. 그러자 두억시니같이 솜옷을 뒤집어쓴 영길이 그안에서 벌씬 웃는것이였다.

밖으로 나오자 재혁의 온몸은 통채로 홰불덩어리가 되였다. 활활 불붙는 낡은 솜옷을 집어던지니 그것은 형체도 가려볼수 없는 재가루로 부스러졌고 나머지는 나무등걸처럼 쭈그러들었다. 숨이 가빴다. 그리고 온몸의 맥이 싹 빠져달아난듯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나 지금 막 뛰여들어가려는 부직장장의 안전모우에 쓴 솜옷자락을 꼼꼼히 여며주었다.

그렇게 세포위원장이며 반장들이 뛰여들어갔다. 재혁은 슬그머니 로안으로 들어서고있었다. 벌써 세번째였다. 그러는 그를 당위원장이 붙잡았다.

《이제는 정말 안됩니다. 앞머리칼이 다 끄슬린걸 보십시오.》

재혁은 자기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꿰뚫고있는 당위원장의 웃음어린 얼굴에 투정질하듯 한마디 하였다.

《어째서 위원장동진 날보구만…》

《지배인동진 생산을 책임졌단 말입니다. 지휘관의 위치야 응당…》

당위원장은 더 말하지 않고 소리내여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쉽게도 작업은 끝났다. 시계를 보니 20분이 걸렸다. 그러나 그 20분이 죽음을 각오한 격전의 20분이라는것을 세상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소성로를 식히느라고 송풍기들을 돌린 시간까지 합치면 꼭 3시간이 걸린셈이였다.)

방송선전차에서 방송원의 격정에 찬 목소리가 울리였다.

《과연 무슨 힘이 그들에게 그런 불사신의 힘을 준것입니까. 피끓는 심장을 당중앙위원회 뜨락에 이어놓고 당과 사상도 숨결도 발걸음도 같이하며…》

그렇다. 축하전문의 구절구절이 울려나오고있음을 재혁은 제꺽 알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자기자신이 바로 천수백도의 로안에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저 축하전문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행복에 겨운 순간이였다.

소성로가 다시 고르로운 숨결로 돌기 시작하였다. 온몸에서 큰숨이 확 나가는듯 하였다. 사람들은 자기 기대들에로 헤여져가고 다시 그 주위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그는 천천히 소성직장 수리반 휴계실에 들어갔다. 아담하게 꾸려진 크지 않은 휴계실이였다. 네 벽들에는 안전규정이며 기술학습자료들이 빼곡이 그려져있었다. 반장의 완강하고도 집요한 성미를 그 글씨들에서 엿보는듯 하였다. 두명의 로동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휴식하다가 일어섰다.

《반장동문 어디 갔소?》

《글쎄… 아마 설비들을 순회하러 갔을겁니다.》

문득 재혁의 눈에 이상한것이 비껴들었다. 한쪽 구석에 세워져있는 낚시대였다.

《저건 뭐요?》

《저… 그건 우리 반장동지가…》

《반장이 낚시질을 좋아하오?》

《글쎄… 아직 한번도 낚시질하는건 못 봤는데 자기 말로는 지독한 질군이라지 않습니까. 매일 밤 한번씩 손으로 낚시댈 쓸어보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던지…》

《허, 그렇소? 앉아서 휴식들을 하오.》

재혁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밖으로 나왔다. 락천적이고 쾌활한 사람을 알게 된것이 기뻤다. 성실하고 소박하면서도 자기식의 배짱이 있는 사람!… 그의 문제를 놓고 의사선생과 진지하게 토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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