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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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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214회 작성일 22-01-30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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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생활은 앞으로


34


최윤구는 침울한 얼굴로 관리위원장을 맞이했다. 명숙이가 관리위원회에서 토의된 내용을 설명하는데 윤구는 등을 구부정하고 서서 줄곧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들었다. 다 듣고나서는 한숨을 쉬였다. 기사장을 만나고온 후 더는 자기를 옹호해줄 사람이 없으리라고 생각한 윤구였기에 관리위원회의 지시를 흥정할 배심이 없어졌다.

《왜 그래요?》

명숙이가 그에게 왜 한숨을 쉬는가라는 뜻으로 물었다.

《작년에 5작업반에서 시범적으로 하면서 애를 먹었지요?》

그래도 윤구는 윤구여서 이와 같이 조심스럽긴 해도 속을 터놓았다.

《첫걸음떼기가 항상 힘든 법이예요.》

명숙은 5반의 경험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관리위원장이 1반과 2반에 자주 나와볼것이며 3대혁명소조원들도 도와주겠다고 하니 신심을 가지고 해보자고 한동안 그를 설복하였다.

《왜 시원한 대답을 못해요?》

《나는 미리 장담하는 성미가 아닙니다.》

윤구의 이 대답은 마음에 들었다. 작년에 지원로력이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짓는가고 펄쩍 뛰며 놀랍게 반문하던것에 비해서는 한걸음 전진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날 저녁 그는 마장석을 찾아갔다.

《이 꺽다리가 웬일이야?》

《여보게 〈마대장〉, 당신네 금년에는 지원로력을 아주 안 받고 할수 있소?》

《왜 〈마대장〉이 또 마지막에 손을 내미는걸 보고싶어 그러나? 아마 코웃음을 쳤겠지?》

《코웃음을 쳤네. 한데 그 불똥이 우리한테 튀여왔단 말이야.》

마장석이 하하 웃었다.

《그거 잘됐다. 그래서 나한테 왔구만? 내 최윤구가 나처럼 지원자없이 한다면 손에다 장을 지지겠네.》

윤구는 찌뿌둥해서 이렇게 대꾸했다.

《너무 전체 하지 말라구. 담배나 한대 주게.》

그들은 같이 담배를 피우며 오래 이야기했다. 윤구가 주로 묻고 마장석이 기본적으로 대답을 하였다.…

모내기가 시작되였다.

이른새벽 명숙은 2반으로 나갔다. 이미 소조원들이 준비사업을 도와주었고 명숙이도 나서서 농장원들을 교양하고 궐기시켰으며 5반의 경험을 이야기했었다. 이런 준비사업에 기초해서 모내기전투가 2반에서 조용히 시작되였다. 지원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날이 희붐하게 밝아오는 속에서 작업복바지를 걷어올리고 1분조의 모판에 들어갔다. 분조장과 몇명의 분조원들이 인사했다.

왜 사람이 적어보이는가 하는 명숙의 물음에 분조장은 좀 늦어지는것 같다고 했다. 작년에 5반에서 본 결함이 반복되고있었다.

명숙은 계속하여 2분조, 3분조, 4분조 모판을 돌아보았다. 4분조 모판에서 강현의 안해 리신옥을 만났다. 강현이가 5작업반에서 기술원을 하였으므로 안해는 2작업반에 배치했었다.

리신옥은 화송리에서 작업반기술원을 했는데 강현을 따라 잠정리로 온 후로는 평농장원으로 일했다. 그랬다가 얼마후 4분조장이 되였다. 신옥은 복스럽게 생긴 녀자였다. 강현이로부터 그들의 관계를 들어 알고있으므로 명숙은 각별히 친근감을 가지고 신옥이와 만났다.

《밥도 지을래 아이들도 돌볼래 분조장사업도 할래 힘이 들지요?》

명숙이가 따뜻하게 물었다.

통통한 손으로 솜씨있게 모를 뜨고있던 신옥은 명숙을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시어머니가 나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다 한답니다, 새벽에 일어나 밥도 짓고 아이들을 탁아소에도 데려다주고. 그러지 않구야 누구보다 먼저 모판에 나와야 하고 저녁에도 늦게야 집에 들어가야 하는 분조장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옥의 동실한 얼굴이 려명의 엷은 빛이 어리여 무척 곱게 보였다. 명숙은 신옥이옆에 나란히 앉아서 모를 떴다.

어느덧 동녘하늘이 불그레해졌다. 날이 밝으면서 작업반원모두가 나와 모를 뜨는데 유독 반장 윤구만이 보이지 않았다.

윤구를 작업반사무실앞에서 만났다.

《반장동무는 여기서 뭘해요?》

키큰 윤구는 무슨 작은 쪽걸상들을 달구지에 싣고있었다.

《그건 뭔가요?》

《모뜰 때 앉는 걸상입니다. 모판에 내가려구요.》

명숙은 온몸의 피가 얼굴에 쏠리는것 같았다.

《그건 어제 벌써 내다놨어야지요 예, 반장동무? 작업반원들은 다 모판에 붙었는데 동무는 여기서 우물거려요?》

윤구는 침울하게 대답했다.

《내야 반장인데 조직사업두 하구 보장사업두 해야 하잖겠습니까?》

《조직사업, 보장사업?》 어처구니가 없어 명숙은 숨이 차기까지 했다. 《전투조직은 사전에 했구 분조별로 경쟁이 붙었는데 동무가 무슨 조직사업을 해요? 반장은 모를 안 떠요? 어서 모판에 가서 모를 떠요. 먼저 일을 나가 하고 제일 늦게 들어오는 이신작칙이 바로 조직사업입니다! 2작업반이 늘 영농공정이 늦어지는 원인을 오늘 찾았어요. 반장동무의 건달풍, 말공부에 있어요.》

명숙의 눈에서 불이 이는듯 했다. 그 눈빛은 이상하게도 녀인의 매력을 더해주고있었지만 윤구는 가슴속이 서늘해났다.

《나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작년에도 내가 느꼈는데 반장동무는 지원자들의 보장사업이요, 무슨 조직사업이요 하면서 논에는 들어가지 않고 뒤전에 서있었어요. 제1선이 아니라 제2선에 있었단 말입니다.》

명숙은 2작업반의 실태를 바로잡고 모내기전투를 옳게 결속지으려는 확고한 립장에서 드팀이 없었다.

작업조직에서 세밀하지 못하고 분조장들에게 욕은 잘하지만 실속있게 그들을 틀어쥐지 못하는 윤구를 3대혁명소조원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윤구자신도 관리위원장이 모내기현장을 자주 찾아오고 저녁총화에도 참가하여 떠밀어주고 소조원들이 방조를 주니 각성이 되였다.

한번은 모내는기계운전공이 휘발유때문에 기계를 세운적이 있었다. 윤구의 먼 친척 된다는 사람의 막내아들인 모내는기계운전공이 그랬다.

언젠가 오만수로인이 윤구의 그 륙촌형벌 되는 사람보고 자네 아들이 모내는기계운전공이니까 라이타에 쓰는것을 비롯하여 휘발유를 푼푼하게 쓰겠지 하고 빈정대듯 말한적이 있었는데 과연 그는 아들에게서 휘발유를 잘 얻어썼다.

그런데 곽기춘이가 연유를 취급하면서부터는 휘발유통제가 어찌도 심한지 아들은 아버지에게 휘발유 한방울도 없노라고 딱 잘랐다.

《너 그게 진짜냐? 라이타에 쓸 휘발유도 못 줘?》

《못 줍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판인가? 곽기춘이가 그렇게 나와? 흠!… 그러고보면 관리위원장이 사람을 쓸줄을 안다. 빌어먹을, 점점 인심이 박해져가는군.》

그의 아들인 모내는기계운전공이 창고에 휘발유를 타러 갔다. 곽기춘이 운전수들과 운전공들을 개별대상을 하니까 별수 없다. 빨리 휘발유를 타와야 일을 계속 하겠는데 분조장에게서 작업증을 떼가지고 가느라니 시끄러웠다.

《빨리 주시오. 모내는기계를 세워놓았어요.》 하고 그는 급해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곽기춘은 꾸물거리며 장부를 뒤적여보고 차겁게 물었다.

《닷새분을 타갔는데 나흘만에 왔구나. 하루분 휘발유는 어디 갔어?》

《닷새할 모내기를 나흘에 했지요. 지금 우리 2작업반이 지원로력없이 전투하느라 모두 뛰고있는걸 몰라요?》

곽기춘이는 그 말에 아무런 긍정적인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휘발유를 타가며 별수단을 다 쓰는 축들이 있다. 그는 간단히 말했다.

《작업증.》

《여기 있습니다.》

작업증을 받아든 곽기춘은 계산하고 확인하느라고 꾸물거리였다. 조급해난 운전공청년이 화를 냈다.

《그저 작업증밖에 모르누만요. 작업량을 초과수행하는 운전공들의 정신을 따라서 휘발유공급도 해야지요. 시간이 바쁩니다.》

들었는지 말았는지 곽기춘은 장부에 기입할것들을 다 기입한 뒤에야 발브꼭지를 틀었다. 휘발유를 주며 말했다.

《너 봉구령감의 아들이지. 작업증에 너의 사상정신이 다 반영되여있다. 설명은 필요없어.》

《어쨌든 절차가 복잡해요. 시끄럽지 않습니까?》

《복잡해야 해, 시끄러워야 하구. 바쁘다는 녀석이 무슨 사설질이야, 어서 가봐.》

《난 아바이때문에 깍쟁이가 됐어요. 아버지한테 라이타에 쓸 휘발유도 못 드립니다.》

《거 잘됐군.》

청년이 휘발유를 타가지고 모내는기계가 서있는데로 오니 거기에 윤구반장이 얼굴이 시퍼래져가지고 지켜서있다가 꽥꽥 소리쳤다.

《너 기계를 세우고 어딜 갔댔어? 한시가 새로운 때에 기계를 세워?》

관리위원장으로부터 되게 추궁을 받고 그후에도 작업반에 자주 내려오는 명숙이로부터 이것저것 지적을 받으며 정신이 든 윤구는 모판과 논판을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쉬임없이 오가며 현장지휘를 하느라 분주했다.

《우리 반장의 왁새다리에 자개바람이 일겠군.》

《마장석반장을 닮아가는것 같소.》

《〈마대장〉을 닮는거야 좋은거지.》

작업반원들이 뒤에서 이렇게들 수군거리였다.

모내는기계운전공청년이 기름을 타러 갔다온 사정을 이야기했다.

《알았다. 빨리 발동을 걸어라.》

윤구는 곽기춘의 잔소리를 싫어하던 사람이여서 그가 기계화작업반으로 가게 되자 잘 되였다고 좋아했는데 결국 그의 휘발유통제를 받게 되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저녁총화시간에 명숙에게 운전공들이 휘발유를 타러 다니느라 시간을 랑비하여 작업실적에 지장을 주는데 종전처럼 분조장이 타다가 현장공급을 하게 하자고 의견을 냈다.

《분조장은 시간을 랑비해도 일없어요?》 명숙의 대답이였다.

《그리고 운전공만큼 바빠할가요? 운전공들도 그렇습니다. 여유시간이 없는것이 아닙니다. 하루일을 끝내고 저녁에 다음날 기름을 미리 타다놓으면 됩니다. 곽기춘아바이는 거기서 자면서 24시간 대기상태에 있어요. 모내기철에는 온갖 가능성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윤구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명숙은 세워놓은 질서를 옹호하고 유지하면서 불합리한것을 바로잡기 위한 방도를 제때에 찾아냈다.

2작업반은 보름동안에 자체의 로력으로 모내기를 끝냈다. 작년까지만 해도 숱한 지원로력을 받으면서도 한달동안 걸렸던 모내기였다. 보름동안에 발휘된 고도의 정신적앙양과 째인 조직사업이 은을 냈다. 농장원들은 자기들이 해놓은 성과에 오히려 놀라와하고 신기해하며 입이 귀밑까지 벌어지게 좋아했다.

5작업반은 물론 1작업반도 지원로력없이 보름어간에 결속했다.

그 다음공정인 빈자리보식과 김매기는 식은죽먹기였다.

《이렇게 하면 되는걸! 윤구반장이 체통은 큰데 심장은 작아. 하긴 키가 작아야 똑똑하다구 하더군. 키가 크면 좀 싱거워.》

농장원들이 기뻐서들 하는 소리였다.

래년부터 농장전체가 자체로 농사짓는 방향으로 넘어갈수 있을것 같았다.

여름 장마철이 왔다. 들에서 개구리들이 요란스러운 대합창을 하는 밤이다.

명숙은 그 합창을 듣지 못하고 저녁밥술을 놓기 바쁘게 잠자리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자체로 모내기를 하여 빨리 끝낸 몇개 작업반들에서는 김매기도 쉽게 하고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김매기실적이 높지 못했다. 한편 비료주기와 논물관리, 병해충피해막이, 공예 및 기름작물가꾸기, 비바람피해대책세우기, 남새가꾸기와 가을남새씨뿌리기, 풀거름생산 등 영농공정이 동시에 또는 잇달아 계속 제기되여 농산지도원, 기사장은 여전히 바쁘고 명숙은 농장을 매일같이 돌면서 작업반들을 지도하여야 했다. 그러느라니 밤이면 피곤이 몰려들어 꼼짝 못했다. 누우면 이내 깊이 잠드는 젊고 건강한 체질인데다가 어쨌든 땅에 심을것들은 다 심었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의 탕개가 좀 풀린것도 작용했을것이다.

깊은 밤에 누군가 명숙의 집대문을 두드리였다. 명숙은 미처 듣지 못하고 옆에서 자고있던 남편 신호석이 깨여났다. 개들이 짖어댔다.

대문을 두드리며 《관리위원장동지.》 하고 큰소리로 찾는데 남자였다.

신호석은 될수록이면 안해를 깨우지 않고 자기가 대신해보려고 옷을 입고 전실을 지나 밖으로 향한 문을 열었다. 밖에서는 비가 구질구질 내리고있었다.

《누구요?》

신호석은 터밭에서 자라고있는 강냉이들너머로 보이는 대문쪽에 대고 소리쳤다. 방안에서 내비치는 불빛을 받아 강냉이잎사귀들이 번들거리였다.

《관리위원회 로동지도원입니다.》

그는 오늘 밤 관리위원회에서 전화도 받고 제기된 정황을 처리하는 직일근무를 서고있었다.

《무슨 일이요?》

《관리위원장을 좀 깨워주시우.》

개가 그냥 짖어대서 시끄러워난 신호석은 개를 꾸짖는 한편 우산을 펴들고 대문께로 갔다.

바깥공기는 서늘했다. 새벽이니 그럴수 있었다. 초저녁부터 흐려가지고 내렸다멎었다하던 비가 아직도 후둑후둑하고 떨어지고있다.

호석은 대문을 열었다. 우산을 든 로동지도원이 서있었다. 그의 손에는 손전지도 쥐여져있었다.

《깨워보았는데 일어나기 힘들어하는구만.》 호석은 거짓말을 했다.

《하여간 집으로 들어갑시다.》

신호석은 로동지도원을 데리고 전실로 들어갔다.

《꼭 깨워야 합니다.》 로동지도원이 말했다.

《내가 오늘 밤 직일인데 윤구반장이 찾아왔더구만요. 윤구반장의 집이 길가에 있지 않습니까? 마침 새벽소피를 보려고 일어났는데 큰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군대차가 서있고 군대들이 떠들고있더랍니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밤도 깊었는데 한지에서 군대들이 비를 맞는것이 안되여서 윤구반장이 나가보았답니다. 그리고 왜 그러느냐 물어보니 다른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관리위원회에서 전화를 걸수 없는가고 하더랍니다. 자기들은 이 지구 발전소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인데 과제를 수행하고 돌아가던중 어느 리마을앞에서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는 조산원과 해산하게 된 녀성을 만났다고 합니다. 군대차라고 미안해하는것을 태우고 도병원에까지 갔다왔답니다. 그러다나니 휘발유가 떨어져 이곳 잠정리에서 부대에 련락하여 기름을 가지고오도록 대책하려 한다는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윤구반장이 가만있겠습니까? 우리 농장의 휘발유를 넣고 가라고,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군인들이 말리는것을 뿌리치고 왔더군요. 사정이 이러하니 관리위원장동무를 깨워야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호석이가 그를 나무람하였다.

《그렇다면 연유창고로 곧장 갈것이지 관리위원장을 깨워서 뭘하오? 인민군대를 위한 일인데.》

《말도 마시오. 곽기춘령감이 관리위원장이나 기사장, 부위원장의 출고전표가 없으면 천하없는 일이라도 휘발유를 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운 질섭니다.》

《그렇다면 할수 없군.》 하고 호석이가 살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어깨에 솜옷을 걸친 명숙이가 손에 출고전표를 들고나왔다. 그는 이미 잠을 깼었고 이야기를 다 들었던것이다.

명숙은 출고증을 로동지도원에게 주며 말했다.

《군대동무들의 차를 연유창고로 안내해요. 곽기춘아바이는 창고옆에 잠자리를 마련해놓고 거기서 잡니다. 밤중에라도 기름을 급히 내야 할 경우에 대처해서 그럽니다. 오늘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수고해주세요. 윤구반장은 어디 있어요?》

《군대차가 있는데로 갔습니다.》

《2반장동무가 참 옳게 행동했어요.》

《군대를 돕는 일인데 누군들 이런 경우에 가만있겠습니까?》

《그래두요.》

《하긴 최윤구가 올해 모내기를 자체로 하면서 좀 달라지는것 같습니다.》

로동지도원은 출고증을 품에 넣고 비가 내리는 캄캄한 밖으로 나갔다.

명숙은 책상에 있는 송수화기를 들고 교환대에 지시했다.

《기계화반 경비실을 찾아요.》

신호석은 옆에서 안해를 지켜보았다. 경비원이 나온것 같다.

《관리위원장입니다.》 명숙이가 지시했다. 《곽기춘아바이를 깨워서 휘발유탕크앞에 대기하라고 하십시오. 군대차가 곧 갈것입니다. 서두르십시오.》

굼뜬 경비원을 알고있는 명숙이가 독촉했다.

송수화기를 내려놓자 호석이가 의견을 냈다.

《당신과 곽아바이가 세워놓은 질서엔 빈틈이 있는것 같소. 특수한 경우를 예상하지 않았거던. 군대야 기동성이 기본인데 그 질서때문에 당신을 찾아오고 설명하고 쓰고 하느라 얼마나 지체했소?》

명숙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아바이, 고맙습니다. 훌륭한 아바입니다.》

이것은 연유창고를 떠나가며 군인들이 곽기춘에게 남긴 인사였다.

곽기춘은 꼭 전연에 있는 제 셋째아들이 왔다간것만 같아 오래동안 창고앞에 서서 어둠속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그 녀석두 이 비를 맞고있지나 않는지? 아들만 셋을 보아 늘 남의 딸자식을 부러워하는 곽기춘이였으나 그렇다고 아들자식을 한번도 탓해본적이 없었다.

잠자리로 돌아온 곽기춘은 장부책을 펼치고 적어넣으면서 관리위원장이 보낸 출고증을 구멍이라도 내듯 들여다보면서 거듭 읽느라고 등을 굽히고 입술을 우물거리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군인동무들에게 휘발유 30키로를 내주십시오, 즉시.》

그리고는 날자를 쓰고 수표를 했었다.

곽기춘의 입술에 흐뭇한 미소가 어리였다.

새날에 잡힌 밖은 더 어둡고 비는 계속 내리는데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즘즘해지는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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