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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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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884회 작성일 22-01-17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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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한 해 총 화


21


모내기와 김매기기간에 철수는 경애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다시말하여 경애의 학습지도를 받지 못했다. 한것은 한해농사과정의 제일 바쁜 대목이여서 경애가 태평농장에서 자리를 뜨지 못했으니 어쩔수 없었다.

그들의 학습은 중단된 상태에 있었지만 그사이에 경애를 군으로 올려보내기 위한 그의 어머니 양옥실의 노력은 꾸준히 중단없이 진행되였으며 어느 정도 진척되여갔다. 철수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철수는 뜨락또르정비작업을 하고있었다.

모내기가 끝난 후 뜨락또르들은 긴급한 수송과제를 수행하는 몇대를 내놓고 전부 정비에 들어갔다. 한때 뜨락또르수리공, 운전수를 했던 차성재는 기계화반사업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고 명숙의 사업을 적극 뒤받침해주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기계화반사업을 맡아나섰다. 그래서 영농준비와 모내기에서 뜨락또르운전수들의 역할이 한결 높아졌다. 명숙관리위원장과 직접 진지한 담화를 한 곽철수는 차를 애호하고 기름을 절약하며 정비를 책임적으로 하는데서 앞장섰다.

《곽철수가 뜨락또르수리를 수리공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자체로 정비도 하고 수리도 하자면서 자검자수하는데에 앞장섰소.》 하고 차성재는 어느날 기계화반을 찾아온 명숙이에게 말했다.

《비서동무도 수리와 정비를 직접 하지 않습니까?》

명숙은 얼굴에 기름이 얼룩진 차성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차성재가 고마왔다. 차성재는 작업반에 매일 나오다싶이 하여 당세포의 역할을 높이도록 했고 당원들이 앞장서도록 지도하였다. 관리위원장은 리당비서가 기계화작업반을 중시하고 운전수들과의 사업을 직접 하고있기때문에 한시름을 놓고 논에서의 빈포기보식과 김매기작업에 집중하였다.

어느날 철수의 교대운전수가 씨물씨물 웃으며 말을 걸었다.

《철수, 너 기사장의 딸 경애하구 보통사이가 아닌것 같더라?》

《응? 무슨 소리야?》

철수는 흠칫했다.

《둘이 휴식일이면 과학지식보급실에서 늦도록 앉아있다더라. 나두 봤어.》

《그거야 경애한테서 학습방조를 받느라구 그러는건데 뭐가 이상할게 있어?》

《글쎄, 학습방조를 받겠지. 그렇지만 젊은 남녀가 밤늦도록 같이 있다는건 벌써 다른 무엇이 있다는거야. 사람들이 말하더구나.》

철수는 모자채양을 밀어올리였다. 곱슬머리가 삐여져나왔다.

《태호, 나는 농업대학을 통신으로 공부한다. 입학준비를 할 때부터 나는 경애한테서 방조를 받았고 입학한 후에도 드문히 방조를 받는다. 경애가 농대를 졸업한 기사이기때문에 도움을 받는데 너희들이 이걸 가지구 시비를 해야 옳겠니?》

태호는 시무룩한 얼굴로 그의 말을 받았다.

《철수, 그걸 시비하는 사람은 없어. 그런 심보고약한 놈은 혼내줘야 해. 내가 말하자는건 그렇게 배워주고 배우는 사이에 뜨거운 무엇이…》 하며 그는 오고간다는 손시늉을 했다.

철수는 찌뿌둥해서 무시한다는 표정이였지만 속심을 숨길수는 없었다.

아닌게아니라 교대운전수는 정통을 찔렀다. 철수는 경애한테서 학습방조를 받기 위해 휴식일을 기다리군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점차로 학습방조를 받아야 한다는 목적에서보다 자그마하고 예쁜 처녀를 만나보고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더 휴식일을 기다리는것이였다. 그는 이것을 부인할수 없었다. 모내기전투기간에 만나보지 못한지가 벌써 달포를 넘었다. 그는 그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처녀에 대한 생각으로 몸이 달아나는것을 어쩌지 못하고있던차였다.

하지만 태호앞에서는 태연한체 했다.

《글쎄, 청춘남녀니까 자주 만나는 과정에 애정이 싹틀수 있지.》

철수가 말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 처녀를 감히 넘겨다볼수 없어. 대학을 졸업한 기사와 짝이 맞을수 있나? 난 꿈도 꾸지 않아.》

《흥, 사랑의 감정이 뭐 그런것을 타산한대?》

이미 장가를 든 태호다.

《어쨌든 우리사이엔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얼굴은 왜 붉히나?》

《내가? 내야 원래 얼굴이 시커멓지 않는가.》

《음-》

태호는 여전히 시무룩했다. 그는 심중해질 때면 늘 그랬다.

《그렇다면 공연히 걱정을 했군.》

《걱정은 무슨 걱정?》

《철수는 귀가 없는가? 경애의 어머니가 사위감을 하나 골랐대.》

《그거 잘했군.》

철수는 금시초문이였고 그것이 심상치 않은 소리였으나 태연한체 했다.

《뭐, 군경영위원회 지도원이라던지. 모내기때 우리 농장을 담당하고 내려와있었는데 경애 어머니가 보고 확 반했대. 제대군인이구 농대를 졸업했구 미끈하게 잘 생겼다누만. 경애 어머니가 벌써 그치를 만나 교섭을 시작했대.》

《그래?》

철수는 공연히 공기청정기를 매만지며 일부러 무심한체 했다.

《거 잘됐군. 경애두 반대없겠군.》

《그건 모르겠어. 아직 당사자들끼리는 대면을 한것 같지 않아. 여, 그런데 철수, 정말 모르고있었어?》

《듣다 처음이야. 그 경영위원회 지도원은 한번 피뜩 봤어.》

《어드래?》

《괜찮더구만.》

《그러면 경애두 반대없겠구만.》

《아마 그럴테지.》

태호는 철수를 살펴보았는데 별다른 기미가 느껴지지 않아 흥미를 잃었다. 그래 《또 시작해볼가?》 하고 다시 차체밑으로 기여들어갔다.

(그렇단 말이지!…)

철수는 경애에게 대상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이 확 달아올랐다. 자기에게서 가장 소중한것을 잃게 되는것 같은 심정이였다. 군에 있다는 청년과 웃으며 걸어가고있는 경애의 모습이 떠오르자 철수는 주먹을 틀어쥐기까지 했다.

(아니, 안돼!)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철수는 손에 들고있던 나사틀개를 내동댕이치고 량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씩씩거렸다.

태호가 차밑에서 기여나왔다.

《왜 그래?》

그는 철수를 유심히 살폈다.

《상점에 갔다오겠어.》

물론 구실이였다. 도저히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던것이다. 들바람이나 쏘이면 어떻겠는지…

《상점에는 왜?》

《상관말라구.》

그는 자꾸 간섭하며 자기의 속내를 알아내려고 치근거리는 태호를 경멸하듯 힐끗 쏘아보고는 작업장을 떠났다.

《알만 해. 나두 총각시절에는 그랬지.》

태호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다시 차밑으로 기여들어갔다.

철수는 인차 돌아왔지만 일체 말을 하지 않고 수걱수걱 일만 했다. 점심시간에도 오후작업시간에도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저녁이 되였다. 하루일을 끝낸 운전수들이 퇴근길에 올랐다. 철수도 수수한 외출복을 입고 작업반정문을 나섰다. 그러나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잠정마을가운데로 난 도로를 따라 걸었다. 대수로가 나타났다. 도로는 대수로의 다리를 건너 평양으로 뻗어있다.

수로에는 물이 차넘치고있었다.

다리로 수로를 넘은 철수는 뚝을 따라 동쪽으로 거슬러올라갔다. 해는 지평선너머로 떨어지고 사위는 어둑어둑했다. 더운바람이 들에서 불어왔다.

그는 내처 걸었다. 온몸이 땀에 젖도록 힘차게 걸었다. 머리를 수굿하고 옆을 돌아보는 일 없이 앞으로만 돌진했다. 그리하여 반시간후에는 태평마을에 도착했다.

날은 아주 어두워졌다. 농가들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 아이들을 집으로 부르는 아낙네들의 목소리와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마을은 하루의 로동뒤끝에 차례지는 휴식과 식사 그리고 단란한 가정분위기속에 푹 잠겨있었다. 모두 집에 들어가있어 골목길에는 사람이 없었다.

관리위원회를 찾아가 경비원에게 리합숙을 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거기 로경애라는 기사가 있습니까?》

《있지.》

《몇호실입니까?》

《4호실이야.》

《4호실이라…》

철수는 속으로 호실번호를 되새기며 《지금 가면 만날수 있을가요?》 하고 물었다.

《어디 가지 않았으면 있겠지.》

《예, 고맙습니다.》

철수는 무슨 웅뎅이같은데 한발이 빠져 역시 까닭모르게 두덜대며 리합숙을 찾아갔다. 합숙은 세멘트기와를 올린 길게 련결된 집이였다. 칸수가 많지 않았다. 4호실은 끝방인데 불이 켜져있고 안에 사람이 있는것 같았다. 처녀가 자리잡고있는 호실답게 유리창에 종이로 꽃을 오려붙여서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렸다.

응답이 없다. 다시 두드렸다.

《누구예요?》

경애의 쨍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요.》

《누군데?》

《문을 여우.》

《목소리가 귀익은데…》

혼자소리를 내며 방문으로 다가와 달카닥하고 걸쇠를 벗기였다. 문이 열렸다. 방안에서 쏟아져나가는 불빛에 드러난 청년의 모습은 처녀를 아연케 했다.

《아니, 철수동무가!》

《그래 철수요.》

《어서 들어와요.》

《혼자요?》

《혼자예요.》

신을 벗고 들어갔다. 작고 아담하고 정갈한 호실이였다. 책상이 있고 침대가 있었다. 책상우에는 꽃병에 생화들이 꽂혀있고 책들, 물주전자와 고뿌, 탁상거울과 탁상시계가 놓여있었다.

철수의 모양은 어떠했는가. 우선 우람한 어제날의 땅크병이 들어서자 방안에 꽉 차는것 같았다.

몸매작은 경애에게 어울리던 소박한 모든 세간들이 완구같이 작아보였다. 철수가 모자를 벗자 굽실굽실한 고수머리가 이마에 흩어졌다. 밤길을 걸어오느라 얼굴, 목이 죄다 땀으로 번지르르했다. 코날은 우뚝 솟고 눈이 번들거리였으며 큰 입은 꾹 다물려져있었다.

그가 왜 갑자기 뛰여들었겠는가? 몸매작은 경애는 애처로운 웃음을 지으며 《앉으세요.》 하고 자리를 가리켰다. 철수가 앉자 벽에 붙어 경애도 앉았다.

어째서 얼굴이 심각할가? 경애는 그의 거동을 살폈다.

《태평리에 볼일이 있었어요?》

경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요, 경애동무를 만나자고 일부러 왔소.》

그는 무쇠덩어리같은 주먹을 쥐였다폈다하였다.

《아이참, 저는 왜 갑자기?…》

《물어볼것이 있어서 왔소.》

그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말했다.

《급한 문젠가요?》

《그렇소.》

《그런데 왜 성난것 같군요?》

《아니, 성이 난건 아니요. 대답해주시오, 시집을 가오?》

돌발적이고 직선적인 공격이였다.

경애는 세운 무릎우에 팔굽을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뺨과 턱을 고이고 뽀얘진 눈으로 철수를 바라보았다.

철수는 경애의 눈길을 피해 어딘가 다른데를 보며 가슴을 들먹이고있었다.

《경애동무는 훌륭한 청년을 택하는것이 응당하고 나같은것은 아예 거들떠볼 필요도 없을거요. 그렇기때문에 나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요. 그렇지만 알고싶단 말이요. 왜 알고싶은지 나도 모르겠소. 경애동무가 군경영위원회 지도원한테 시집갈것 같다는 소리를 듣자 진정할수 없었소. 참, 어리석지. 그렇지 않소?》

《…》

경애는 변함없는 자세로 철수를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직접 경애동무한테서 듣기 전에는 진정할수 없단 말이요. 대답해주오. 그러면 그만이요.》

경애는 눈길을 떨구었다. 얼굴에 서글퍼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자 철수는 이 자그마한 처녀가 애처로와 견딜수 없었다. 마치도 처녀는 자기와는 상관없고 마음에도 없는 청년에게 어머니로부터 강요되여 시집을 가게 되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며 처녀에 대한 애정으로 목이 메여왔다.

그런데 대답은 뜻밖이였다.

《철수동무는 무엇때문에 나한테서 대답을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나한테 강요해요?》

처녀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내, 내가 강요를 했다구?》

대답을 우직스럽게 강요한것이 사실이였으므로 철수는 당황해졌다.

《철수동무, 부탁해요. 나를 괴롭히지 말아줘요, 부탁해요.》

경애의 눈에 눈물이 고이며 불빛을 받아 구슬처럼 반짝이였다.

철수는 더욱 당황해져 어찌할바를 몰라 쩔쩔맸다.

《아니, 저, 난… 그런데 울기는 왜 우오? 왜 그러오? 내가 무엇을 괴롭혔다구…》

《철수동무, 가주세요. 조용히 가줘요. 지금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아줘요. 나를 내버려둬주세요, 부탁해요.》

그는 속에 불이 활활 이는것 같았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시집을 간다, 안 간다 하면 될게 아닌가. 내가 무얼 강요했고 괴롭힌단 말인가? 눈물은 어째서 흘리는가.

《젠장! 이거야 어디 속이 타서.》

그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쾅 울리였다.

《좋소, 가겠소. 내가 괴롭혔다니 나쁜 놈이지. 가겠소.》

그는 일어서서 모자를 푹 눌러썼다. 캄캄한 밖으로 나가 신을 신고 문을 쾅 닫았다. 경애는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몇걸음 터벅터벅 걸어가던 철수는 갑자기 그 어떤 배신감을 느꼈다. 시집을 가겠으면 가라! 그렇지만 나같은건 아무렇게나 대상해도 된단 말인가? 그러니까 내가 괴롭혔다는건 시집가는걸 가지고 강요하듯 물어보았다는 뜻이겠는데 내가 방해군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아, 녀자들의 마음이란!…

분노가 치밀어오른 철수는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는것만 같았다. 아니다, 그저 공손히 물러가지 않겠다. 할 소리는 하고 가야 하겠다! 이렇게 결심한 그는 돌아서서 4호실 방문을 향해 땅크가 진격하듯 육박했다.

문고리를 잡고 홱 잡아당겼다.

경애는 그냥 벽에 기대인채 몸을 푹 숙이고 앉아있는데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껴울고있었다. 가냘픈 어깨가 떨고있었으며 흐느낌소리도 들리는듯 했다.

철수는 술취한 사람처럼 문설주에 부딪치며 돌아섰다. 돌아서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뛰여들어가 처녀를 와락 껴안고 위안해주며 용서를 빌고싶은 강렬한 욕망을 누르기가 정말 힘들었다.

(용서하오, 경애! 난 경애를 사랑하오. 아니, 난 경애를 그 누구한테도 보내지 않겠소. 경애, 아, 경애…)

그는 비틀거리면서 걸었다. 그는 경애가 어머니의 강요를 받고있다는것을 확신했으며 그러자 의분이 치솟아 눈물까지 나올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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