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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실화소설집 북부전역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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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600회 작성일 22-02-19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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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전선에서 만나자

백 상 균

2


혈압계의 수은주는 단번에 200을 넘어섰다. 그것을 보는 처녀의사는 금시 터질 시한탄을 마주한듯 기급한 소리를 하였다.

《어마나! 큰일났네.》

그 소리에 놀라 흘끔 수은주를 띠여본 리효영은 마치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본듯 눈을 찔끔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걸 봐선 혈압이 170정도 될줄 알았는데 200을 넘어서다니.

자칫하다가는 뇌출혈을 일으킬수 있었다. 은근히 겁이 났다.

그의 불안을 눅잦히듯 처녀의사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리였다.

《당장 입원치료를 받아야겠습니다.》

효영은 의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입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불만이 튀여나왔다.

《뭐요? 입원…》

리효영의 퉁명스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듯 처녀의사의 버들눈섭이 꼬리를 쳐들었다.

《아이, 왜 그러세요? 현재상태에서는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수 있답니다.》

당장 죽을 운명이라는듯 한 그 소리에 리효영은 할말을 찾지 못하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지금처럼 혈압이 200을 넘어서게 된것은 좀전에 항전투지휘부 일군과 맞서 열을 올린탓이였다.

《제 자식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부모가 더 잘 알듯이 수십년간 날바다를 헤치며 배와 운명을 함께 해온 우리 동무들이 전문가들 못지 않게 배의 기술적상태를 잘 알고있기에 자체로 수리를 했는데… 그걸 믿지 못하겠다니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어데 있습니까.》

풍만난 사람모양 온몸을 후들후들 떨며 펄펄 뛰는 효영의 곤대질에 일군은 반박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어줍은 웃음을 지었다.

《선장동무, 너무 흥분해하지 말고 생각 좀 깊이 해보오. 륙로라면 몰라도 날바다우로 인원들과 짐을 싣고 가다가 도중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지 않소?… 그래서 우리도 결심을 못하는거요.》

진중하게 하는 일군의 말에 효영은 한동안 입을 열념을 못했다.

흥분의 도수를 넘어 길들이지 않은 말처럼 들뛰는 심장이 금시 밖으로 뛰여나올듯 쾅쾅 흉벽을 두드려댔다.

일군의 말마따나 짐을 싣고 가다가 사고라도 난다면…

부지중 그의 눈앞에 자기네 배가 짐을 싣고 항행중 날바다우에서 사고가 나 좌초하는 광경이 얼른거렸다

악몽같은 생각에 효영은 흠칫 몸을 떨었다.

제길, 재수없이 그런 얼빠진 생각이 떠오를건 뭐람.

잠시나마 나약한 생각에 빠졌던 자신을 원망하듯 리효영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우리모두가 기관이 되고 추진기가 되여 기어이 임무를 수행하겠으니 믿어주십시오, 예?!》

속타는 가슴을 탕탕 치는 효영의 량볼로 어느새 진액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어떤 사나운 파도에도 눈섭 한오리 까딱 않던 억대우같은 사나이의 눈물을 보기가 민망한듯 일군이 왼고개를 틀며 목갈린 소리를 하였다.

《선장동무, 그만하오.》

《미안합니다. 제 그만 격한김에…》

솥뚜껑같은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던 효영은 갑자기 머리를 휭 잡아돌리는감을 느끼며 비칠거리였다. 평시에 혈압이 높아 신고하는 그였다.

얼른 주머니를 뒤적거렸으나 늘 가지고다니던 비상약이 집히지 않았다.

그제사 옷을 갈아입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는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효영의 심중에서 일어난 생리적변화를 알리없는 일군이 위안하듯 입을 열었다.

《돌아가 기다리오. 내 성일군들과 토론을 하고 결론을 주겠소.》

《아니, 우린 더이상 기다릴수 없습니다.》

도리깨를 휘두르듯 내쏜 리효영은 일군이 더 어쩔새없이 건성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 즉시 어질어질하는 몸을 가까스로 유지하며 병원으로 왔는데 이렇게 《포로병》신세가 되다니… 기가 막히였다.

처녀의사가 약과 함께 물고뿌를 내밀었다.

《잡수세요.》

《고맙습니다.》

효영은 약을 입에 넣었다. 고뿌의 물을 마시는 사이 처녀의사가 누군가와 손전화를 하고있었다.

《…아직도 못 떠나고있어요. 그러다 지각생이라는 말을 들을가봐 겁이 나요. 뭐라구요? 오늘 떠나는 렬차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구요? 알겠어요. 나도 알아보겠어요.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고마워요.》

전화를 끊은 처녀의사가 무슨 일때문인지 쫓기듯 밖으로 나갔다.

약을 먹어서인지 머리아픔이 서서히 사라지는듯 하였으나 이상하게 졸음이 달려들었다. 졸면 안되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썼으나 검질기게 매달리는 졸음을 물리칠수가 없었다. 점점 머리가 아래로 숙어졌다.

그때였다. 경종을 울리듯 손전화기신호음이 울리였다.

펀뜩 정신을 차린 효영은 손전화기를 꺼내보았다. 액정판에 기관장 최영규의 손전화번호가 찍혀있었다.

호출건을 누르니 최영규의 불만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장동무, 배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폭동》이라는 귀에 선 소리에 효영은 한순간 얼떠름해졌다.

이건 무슨 도깨비같은 소리인가.

평시에 롱담을 좋아하는 기관장이였으나 오늘은 롱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보오, 기관장, 허튼소리말고 바른대로 말하오. 도대체 그건 무슨 소리요?》

《항전투지휘부에 간 선장동무가 돌아오지 않으니 오늘도 또 허탕인가부다 하고 속단한 동무들이 더이상 못 참겠다는거지요. 모두 배에서 내려 북부피해복구전선으로 가자는겁니다.》

효영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것 참 멋진 생각들을 했는걸. 하긴 그런 결심들을 할만도 하지.

하루가 멀다 하게 건설자재와 인원들을 싣고 청진항으로 떠나는 다른 배들을 보며 속이 달아 앙앙불락하던 선원들이였다.

그런 그들이 이 선장에게 산같은 기대를 걸고 이제나저제나 희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있는데 실끊어진 연처럼 무소식이니 그럴수밖에…

《나도 〈폭동자〉들의 결심을 지지하오.》

《뭐라구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항전투지휘부에서 우릴 무시했다는거군요. 에이, 이거야 어디 참을수가 있나.》

효영은 눈앞에 볼이 잔뜩 부어 두덜거리는 기관장의 퉁투무레한 얼굴이 얼른거리여 저절로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이보라구, 기관장, 그만 성을 풀고 모두 비상소집시켜 배상태를 다시한번 점검해보라구.》

그 말에 기관장이 환성을 터뜨렸다.

《그러니 북부전선으로 가는걸 승인받았단 말이지요?》

승인이라는 소리에 리효영은 골살을 찡그리였다.

《그쯤 알라구.》

기관장이 흥분해서 맞장구를 쳤다.

《야! 이거 경사가 났는걸. 하하하! 빨리 돌아오십시오.》

기관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기분이 뜬 효영은 누군가를 찾듯 사방을 두릿거렸다.

처녀의사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갔을가?

그렇지, 아까 밖으로 나갔지. 어쩐다, 의사가 없을 때 슬그머니 삼십륙계를 하는게 아닐가?

어린아이 외나무다리 건너가듯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는데 별안간 나들문이 벌컥 열리더니 처녀의사가 방안으로 들어서며 리효영의 앞에 담벽처럼 막아섰다.

창황중이라 효영은 나쁜 장난을 하다가 들킨 사람모양 흠칠 놀라며 그 자리에 굳어졌다.

처녀의사는 전혀 감촉을 못한듯 조용히 말하였다.

《빨리 입원수속을 하십시오.》

바자말뚝처럼 꼿꼿해있던 효영은 어줍은 표정으로 기여드는 소리를 했다.

《꼭 입원을 해야 하는가요? 약을 먹어 혈압이 내린것 같은데.》

《생명을 가지고 모험을 해서는 안되지요.》

더이상 흥정하지 말라는듯 처녀의 목소리는 랭정하였다.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절대복종해야 한답니다.》

녀성으로서의 온기나 부드러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낮고 가라앉은듯 한 목소리가 얼굴이 시내물처럼 아련해보이는 이 처녀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온것이 놀라왔다.

제길, 씹을 맛이 없는 생고무 한가지로군. 처녀라면 좀 나긋나긋하고 곰상스러운데가 있어야지.

좀전에 날쌔게 빠져나가지 못한 후회가 가슴을 쳤다.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궁리를 더듬던 효영은 기막힌 생각이 떠오른듯 능글능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허, 처마밑에 들어섰으니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가 없군요. 좋습니다. 의사선생의 지시에 절대복종하지요. 집에 가서 입원준비를 해가지고 와도 되겠지요?》

효영의 능청에 처녀의 고운 눈매가 리효영의 얼굴에 박히였다.

《집이라구요? 호호호, 선장동지 집이야 저 바다우에 떠있는 〈홍원88〉호인데 거기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믿을수 있을가요?》

효영은 깜짝 놀랐다.

이 처녀는 내가 《홍원88》호 선장이라는걸 어떻게 알가?

처음 병원에 들어설 때 내가 누구라는걸 밝힌것 같지 않은데.

효영은 얼결에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항전투지휘부를 찾아갈 때마다 부두에서 밤낮없이 짐싣는 전투를 벌리는 사람들앞에 말쑥한 례복을 입고 나타나는것이 멋적어 작업복을 바꾸어입어 아무리 보아도 배사람이라는 인상이 전혀 풍기지 않은듯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수수께끼였다.

《선생은 내가 〈홍원88〉호 선장이라는걸 어떻게 압니까?》

《전 퇴근후이면 매일 항에 나가 북부전역으로 보낼 건설자재들을 싣는 전투원들과 함께 일을 한답니다. 환자가 생기면 치료도 해주고… 어제 부상자가 생겨 항장동지 방에서 구급치료를 하는데 옆방에서 쌈싸우듯 떠드는 소리가 나더군요. 웬일일가 하고 기웃해보니 선장동지가 웬 사람과 싱갱이질을 하고있지 않겠어요. 〈홍원88〉호는 결코 도피선이 될수 없다고 책상을 탕탕 치면서 말이예요.》

처녀의 말에 효영은 더는 옴짝달싹 못하게 되였다는 생각에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 자기의 안타까운 호소를 먼산의 우뢰소리만큼도 여기지 않는 항전투지휘부일군의 목석같은 처사를 참을수가 없어 책상을 치며 목청을 돋구었는데 이 처녀가 언제 그걸 보았는지 모르겠다.

《옳소. 그런 일이 있었소.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테지요?》

《대충은 알고있어요.》

《그래 동무생각엔 내 말이 틀린것 같소?》

《그래요. 의학적으로 보면 중병에 걸렸다가 완치된 환자에게 정상사람과 꼭같은 짐을 지운다는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지요. 그건 기계설비도 다를바 없다고 봅니다. 더구나 전문가들이 인정하지 않는 선장동지네 배에 그 귀중한 짐들을 싣고 가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하던 처녀는 두눈을 흡뜨고 노려보는 효영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 기가 질려 뒤걸음질을 하였다.

《어마나, 왜 그러세요? 내가 못할 말을 했는가요?》

《동무, 누구 심장이 터지는걸 보고싶어 그러오?》

주먹을 후들후들 떨며 노려보는 리효영의 기상에 한동안 주눅이 들어 쩔쩔매던 처녀가 돌연 눈살을 뾰족하게 세워가지고 살을 날렸다.

《그래요. 선장동지 심장이 터질가봐 걱정스러워그래요. 현재 선장동지의 상태가 어떤지 알기나 하세요? 혈압관리를 정상적으로 하지 않아 심근경색직전이란 말이예요.》

폭탄선언같은 소리에 리효영은 그만 벙어리가 되고말았다.

이건 무슨 마른벼락인가. 뭐, 심근경색직전이라구? 내 병이 그렇게 깊어졌단 말인가. 처녀의사의 말마따나 혈압관리를 정상적으로 하지 않은것은 사실이였다. 그것이 나를 이렇게 죽음의 문턱에까지 끌고왔단 말인가.

억이 막히였다. 무거운 한숨이 절로 새여나왔다.

그때 문이 방싯 열리며 간호원인듯 한 처녀가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는듯 얼굴에 무지개같은 웃음을 함뿍 담고 의사선생에게 어서 나오라는듯 손짓을 하였다.

《제 인차 입원실 간호원을 보낼테니 수속을 하십시오.》

오금박듯 내쏜 처녀가 랭기를 풍기며 방에서 나갔다.

처녀가 사라진 문가를 멍해서 쳐다보는 리효영은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망돌에 짓눌린듯 가슴이 답답해났다.

이런 변이라구야. 제때에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단 말이지.

북부전선에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전투원들이 혁명가요를 부르며 하루빨리 대재앙을 가시기 위한 격전에 자신들을 초불처럼 깡그리 불태우고있는데 나는 내 한몸을 살리겠다고 병원침대에 매인다? 아니, 그럴수 없다.

한전호에 서기를 바라는 동생앞에 그리고 갑판장이 자기의 아들앞에, 그리고 우리 동무들이 당의 호소앞에 떳떳하기 위해 지체말고 떠나야 한다.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결심을 세운 리효영은 힘있게 걸음을 내짚어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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