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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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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9,455회 작성일 22-04-05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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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 회


오산덕기슭의 녀인들

김 홍 균

4. 샘물집 어머니

차는 원산리를 출발하였다. 시에서 40리길인 이곳은 허정숙의 고향이다.

허정숙이 이곳을 다녀가는것은 나들이때문이 아니였다. 려단의 남새를 실으러 왔다. 건설물자수송때문에 늘 수송기재가 긴장한 부대의 고민을 자기가 덜어주려고 이 일도 맡아나선것이다. 접수한 남새외에 1톤의 남새를 더 실었다.

허정숙은 마음이 마냥 즐거워 흥얼거렸다.


스치는 바람결도 내 노래 담았는가

춤추며 흐르는 시내물도 이 기쁨 담았는가

향도의 밝은 해님 내 희망 펼쳐주니

종다리 저 하늘 날으는듯 내 마음 즐거워라


이번길에 40여년 교육자로 산 오빠를 집에 오도록 합의를 본것도 성과다. 장기환자인 남편이 수도물을 받느라 밤에 너무 무리하다보니 요즘 병상태가 더욱 나빠진게 알려 은근히 걱정하며 방도를 모색하다 찾은 해결책이였다.

《형님, 경우가 아니됐다는걸 알면서도 방법이 없어 그럽니다.》

69살 오빠의 나이도 문제고 또 오붓이 사는 로인내외를 갈라 제 욕심을 차리는게 미안하여 입이 떨어지지 않는것을 겨우 말했는데 오빠의 대답이 흔연스러웠다.

《로친, 그래야 한달이면 되겠는데 내가 내려가 누이동생을 돕고 오겠소. 내가 없는새 딴 눈을 팔면 안되우.》

오빠 허종철이 로친이 서운해할가 마음을 쓰며 늙은이답지 않게 롱을 했다.

《애개개, 다 늙은걸 놓고 아직두 마음이 놓이지 않수? 누이두 봤지. 저 령감이 젊어서부터 어떻게나 눈을 밝혔는지 내 왼눈을 한번 팔지 못하고 저 령감 그늘밑에서 이렇게 시들었다우. 글쎄 나흘을 예견한 출장길두 하루새 돌아선 령감이니.》

안주인의 대답이 천연스러워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내 이번에 한달쯤 뚝 떼여 로친한테 시간을 주자는거우. 실것 눈을 팔아보라지. 아마 이 허도령이만 한 사람이 없을게우.》

늙어서 그렇지 원래 사내답게 체격이 큰데다 이목구비가 그쯘한 허종철이라 그쯤 뻐길만도 했다.

《말이야 바른대루 내사 춘향이 소릴 들었지만 령감이야 언제 그런 소릴 한번 들어봤수?》

그 말도 옳다.

《그래서 사실 이번에두 가기 찜찜하네만 원군이 중요하니 주저없이 가자는게 야.》

그래서 실컷 웃었다. 로친이 혼자 있으면서 걱정없게 해놓고 인차 떠나겠노라 약속했다.

어머니가 흥얼거리는것을 보는게 기뻐 옆에서 은철이도 싱긋 웃었다.

허정숙은 제 기분에 겨워 자식이 옆에서 웃는것도 모르고 이번엔 손전화기로 조카를 찾았다. 이렇게 은철이가 남새접수차로 오는 날도 물보장만은 넘기지 말아야 했으므로 조카 현철(조카도 운전사)에게 부탁하군 했는데 어떻게 되였는지 궁금했다. 남새도 중요하지만 물은 더욱 중요하고 시간을 어기면 안되는 일이다. 조카한테서 물을 실어다주었노라는 답이 왔다. 오늘은 허정숙이네가 남새운반에 갔다는것을 알고 조창순이와 려진숙이 녀맹원들을 휘동해가지고 와서 생각지 않게 물운반이 헐하게 되였다고 했다. 모든 일이 이렇게 얼음에 박밀듯 되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차가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고장나서 그걸 수리하는데 시간을 떼워 애간장이 마르던 날도 얼마인지 모른다.

《이제 샘물만 길으면 되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시간을 늦잡으면 야단인데…》

은철이가 걱정하는 소리다. 맡은 일을 미뤄놓고 이 길에 나섰으니 이제 도와서라도 그 일을 해야 하는 아들이다.

그러면서도 언제한번 얼굴을 찡그리는 일이 없다.

《일없겠니?》

《걱정마세요.》

하긴 일군들부터가 먼저 원군사업을 앞에 놓고 조직사업을 하니 그렇지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자동차운전사가 이렇게 자가용차처럼 멋대로 끌고다닐수 없는것이다.

차가 샘물터에 이르니 당장 물을 받을 형편이 못되였다.

물을 받느라 줄을 선 사람이 여라문명 잘되였다. 급하게는 되였다.

한바께쯔쯤이라면 사정을 구하고 먼저 받을수도 있겠지만 네개의 수지통에 물을 받아야 하니 그럴수도 없다.

이게 인민군대를 위한 일이니 하고 재세를 할수도 없어 뒤자리에 가섰다.

시간이 급한 은철이 와서 어머니에게 소곤거렸다.

《어머니, 아무래도 시간이 급하니 사정애기를 하고 먼저 받읍시다.》

《그렇게야 어떻게?…》

하면서도 급해하는 아들의 심정이 리해되여 자연 목을 기웃이 빼들고 주런이 놓인 물통의 크기를 가늠해보는데 제일 앞에 선 젊은이가 알은체 했다.

《샘물집어머니로구만요. 가만 여러분, 저 어머닌 인민군대식사보장을 위해 샘물을 길어가는데 우리가 양보하고 먼저 물을 받도록 하는게 어떻습니까?》

대뜸 호응이 일어났다.

《우린 바쁘지 않은데 어서 나와 먼저 받으시우.》

가슴이 뭉클했다. 대뜸 앞에 떠밀려나와 물을 받으려는데 샘터를 마주한 집대문이 열리더니 할머니 한분이 나왔다.

허정숙을 알아보고 반색했다.

《에그, 언제 물을 받겠수. 가만, 저기 내가 받아놓은 물이 있는데 그걸 먼저 가져가우.》

누군가 부탁하여 조용한 새벽시간에 받아놓았노라고 했다.

《물통이야 같은 물통인데 뭘하우. 군대를 돕는 일인데. 이제부턴 내가 물을 받아놓을테니 샘물걱정은 말라구.》

《쌍둥이 할머니, 고맙습니다.》

모두가 걱정해주어 허정숙이네는 물통을 싣고 인차 그곳을 떠날수 있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 강창걸이 불편한 몸으로 물을 받느라고 힘들게 움직이고있었다.

《은철이 아버지, 힘들겠는데 들어가 누워요. 이제 하루이틀이면 둘째오빠가 올거예요. 그러면 은철이 아버지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여느때 같으면 괜찮노라고 웃을 남편이 무척 괴로운 얼굴로 비척비척 방으로 올라간다.

《몸이 불편해 아무래도 내 좀 누워야 할것 같애.》

그러니 이제껏 안해를 도와 강한 의지로 물을 받은것이였다.

그 저녁부터 남편은 온밤을 혼수상태에서 깨여나지 못했다.

의사들이 왕진을 오고 당세포위원장사업을 하는 조창순이 달려와 침상을 지켜주고 식구들과 함께 물을 받아주었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에야 강창걸은 겨우 의식을 회복하였다.

《은철이 아버지!》

지금껏 남편의 병에 무관심했던 자신이 돌이켜져 허정숙은 머릉한 눈으로 자기를 보는 남편앞에 고개를 떨구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남편이 알릴듯말듯 머리를 저었다.

《무슨 소릴, 당신이 안팎으로 뛰여다니며 정말 수고많았소. 쉽지 않은 일이지. 나도 정말 기쁘오.》

강창걸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끊기더니 눈길이 오른쪽아래로 처졌다.

그쪽을 내려다보니 남편의 손이 옴지락거리고있었다.

손을 잡아들어 자기의 볼로 가져다붙였다. 바로 남편이 그것을 바라고있었던것이다. 남편의 손이 허정숙의 볼을 어루쓸었다.

《겁이 나누만. 내 마감까지 당신을 돕지 못할것 같애서. 건설이 끝날 때까지만 견뎠으면 좋겠는데… 이젠 물을 가져가야 할 시간이 아니요?》

시계가 걸린 벽쪽을 피끗 올려다보더니 어서 가보라고 떠밀었다.

《걱정말아요. 오늘은 다른 사람을 보내겠어요.》

남편이 도리질했다.

《무슨 소릴? 병사들이 아는건 샘물집어머니- 당신인데 나때문에 누굴 대신 보내다니 그러지 마오. 난 일없소.》

대신 가려던 조창순이 남편이 바라는대로 해주는게 옳지 않겠는가 허정숙에게 물었다.

허정숙은 곧 자기가 가기로 결심하고 나섰다. 자기가 가지 않으면 오히려 남편이 더 마음을 쓸것이였다.

차가 샘물터까지 돌아 금방 회령천다리를 건너서는데 손전화기의 호출음이 울렸다. 물을 보장하고 지체말고 돌아오라고 울먹이며 하는 조창순의 목소리가 손전화기에서 새여나왔다. 묻지 않고도 알수 있는 일이였다.

불식간에 허정숙의 눈가에 눈물이 솟구쳐오르고 입에서는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훌륭한 남편! 그의 마지막길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옆에서 아들이 또 주먹으로 연신 눈가를 훔쳤다. 그도 어머니의 행동을 보고 사연을 알았던것이다.

차가 보초막을 가까이할 때까지도 모자는 계속 울었다.

《차를 세워라.》

이렇게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자격지심이 허정숙을 다잡게 했다.

한동안 마음을 진정하고서야 아들에게 가자고 일렀다.

《은철아, 우리 마음을 다잡자. 군인들앞에서는 절대로 내색해선 안된다.》

보초막을 지나는데 애어린 보초병이 허정숙을 보고 경례를 붙였다.

차에서 내리는 그들을 보고 물통을 든 병사들이 달려오며 반겼다.

《샘물집어머니!-》

허정숙은 그들을 보며 웃었다. 설음을 묵새기며 내색없이 웃으려니 잘되지 않았다.

허정숙은 병사들과 눈길이 마주칠가 려단이 건설하는 소층아빠트건물을 바라보았다. 거기서는 만장을 얹느라 온 려단이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사실 나날이 변모되는 건설장전경을 자기의 눈으로 직접 보는것이 허정숙의 기쁨이고 행복이였다. 거기에는 남모르는 자기의 노력도 깃들어있기때문이였다. 그때문에 생활의 온갖 우여곡절도 웃으며 넘을수 있은것이였다.

《하루가 다르구만. 정말 대단해!》

《샘물집어머니, 어제 총화가 있었는데 우리 려단이 사령부적으로 1등을 하였답니다. 이건 전적으로 물보장을 잘해준 어머니의 공적입니다.》

《그런 말 말라구. 그거야 다 자네들이 밤잠을 모르구 전투를 한 결과야.》

《아닙니다.》

걸걸한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려단장이 자기를 보고있었다.

《우리 병사들은 이구동성 려단이 1등을 할수 있은게 다 샘물집어머니가 물보장을 잘해준 덕이라고 말합니다. 정말이지 려단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려단장동지, 믿어주십시오. 공사가 끝나는 날까지 샘물집어머니구실을 더 잘하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허정숙은 흐느낌속에 남편과 마음속 대화를 나누었다.

( 《여보, 샘물집어머니라고 불러주는 병사들의 이 평가엔 당신의 귀중한 노력도 깃들어있어요. 아마 당신이 물을 받느라 무리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소릴, 난 후회하지 않소. 자리에 누워 하는 일없이 지내던 내가 다문 며칠이라도 원군을 했다는게 얼마나 긍지롭소.》)

허정숙의 귀전에 남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맏아들 금철이가 와있었다.

《의사선생이 알려주더군요.》

금철이가 하는 말이였다. 맏아들 금철이를 보니 또다시 눈물이 왈칵 앞을 가리웠다. 그는 참고참았던 눈물을 맏아들앞에서 다시 쏟았다. 운명하는 남편의 마감자리도 지켜주지 못한 안해의 죄책감이 다시금 머리를 들었던것이다.

허정숙은 맏아들앞에 머리를 꺾고 흐느끼였다.

《미안하구나. 내가 아버지를 잘 위하지 못해… 마감길두 바래주지 못하구 이렇게 나가 돌아다닌 내가… 너와 토론도 없이 잔치때 쓸 밑천까지 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해요. 이 아들은 원군에 모든것을 바친 우리 가정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훌륭한 가풍이다. 너희 아버지도 그걸 바란거구.》

남편을 대신하러온 오빠 허종철이 조카들을 감싸안았다.

《금철이 아버지!》

허정숙은 그만에야 오열을 쏟으며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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